유생 1천 70인을 거느리고 헌가요(獻歌謠)를 하다

문종실록 13권, 문종 2년 4월 10일 갑술 2번째기사 1452년 

옥연(玉輦)이 조용히 구천(九天)에서 내려오니, 면류(冕旒) 차림으로 비궁(閟宮)에 제사하고 돌아왔네. 거리에는 난로(鸞鷺)가 나누어졌으니 풍운(風雲)이 성대하고, 산은 봉영(蓬瀛)이 솟았으니 일월(日月)이 한가롭네. 백발(白髮)의 강구(康衢) 노래는 봉필(鳳蹕)을 맞이했고, 단성(丹誠)의 화산(華山) 축수(祝壽)는 용안(龍顔)을 절하였네. 이 마음을 환하게 하늘이 굽어보시니 지척(咫尺) 사이에서 천세(千歲)를 세 번 부르는 것이 방불하였네.

헌가요(獻歌謠)는 임금이 환궁(還宮)할 때 이를 환영하여 유생(儒生)들이 가사(歌辭)를 읊고 교방(敎坊)에서 가요(歌謠)를 노래하던 의식이다

임금이 궁궐에 돌아오니 성균박사 이계전이 가요를 올리다.

임금이 재전(齋殿)에 돌아와서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강사포(絳紗袍)를 입고 의장(儀仗)과 고취악(鼓吹樂)469) 을 갖추어 궁궐에 돌아오니, 종친(宗親)과 백관(百官)들이 조복(朝服) 차림으로써 시위(侍衛)하였다. 도상(道上)에서 나희(儺戱)를 설치하고, 또 채붕(綵棚)을 경복궁(景福宮) 문전(門前)에 설치하였다. 성균 박사(成均博士) 이계전(李季甸)이 유생(儒生) 1,070인을 거느리고 헌가요(獻歌謠)를 하였는데, 그 가사(歌辭)에 이르기를,

“신(臣) 등은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중리(重離)470) 가 계속해 빛나시니 효사(孝思)가 선유(先猷)471) 를 이어받았으며, 삼년(三年)의 상복(喪服)을 마쳤으니 희사(熙事)472) 를 청묘(淸廟)473) 에 이루어짐을 아뢰었습니다. 신(神)과 사람이 서로 기뻐하고, 해와 달이 더욱 더 빛났습니다. 신 등이 듣건대, 도(道)는 선대(先代)를 계승(繼承)하는 것으로써 어려움을 삼고, 예(禮)는 조상(祖上)을 제사지내는 것으로써 큰 일로 삼는다고 하는데, 계(啓)474) 는 현명하고 능히 공경했으니 당연히 구가(謳歌)475) 하는 사람이 돌아가게 될 것이고, 무왕(武王)476) 은 성철(聖哲)하고 왕업(王業)을 계승했는데 오직 상제(喪祭)477) 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대개 한 시대의 성대한 기회인데, 실로 예전에 없이 만나기 드물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학문은 일신(日新)478) 에 향상(向上)되고, 인효(仁孝)는 천성(天性)에서 나왔습니다. 선대(先代)의 뜻을 계승하고 일을 계승했으니 두루 다스린 사업이 위대했으며, 소리없는 데서 듣고, 나타나지 않는 데서 보니, 선왕(先王)을 추념(追念)하는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효도(孝道)로써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오직 예절만을 준행(遵行)했던 것입니다. 이에 하(夏)나라 제도의 상기(喪期)를 마쳤는데, 잇달아 은(殷)나라 예절의 시일을 맞추었습니다. 신주(神主)를 종석(宗祏)479) 에 부제(祔祭)하고 또한 힐향(肸蠁)480) 을 명인(明禋)481) 에서 받았습니다. 몸소 규장(圭璋)482) 을 받들었으니 곤의(袞衣)는 용장(龍章)483) 의 채색을 빛내었으며, 변두(籩豆)484) 를 빨리 날랐으니 소소(簫韶)485) 는 봉우(鳳羽)486) 의 모습을 이르게 했습니다. 예악(禮樂)의 흥기(興起)를 밝혀서 방가(邦家)의 경사(慶事)를 넘치게 하니, 화기(和氣)가 가득히 차고 송성(頌聲)이 떠들썩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신(臣) 등은 모두가 용렬한 자질로써 성대한 행사를 보게 되었으니, 이에 우(虞)나라 주자(胄子)487) 를 거느리고 공손히 주(周)나라 조반(朝班)에서 맞이했습니다. 나아가 보면 해처럼 따뜻하고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처럼 장엄(壯嚴)하며 우러러보면 더욱 높고, 연구하면 더욱 단단하여 볼 때는 앞에 있다가 갑자기 뒤에 있으며, 손으로는 춤추고 발로는 뛰면서 마음껏 즐기며 영탄(詠嘆)하겠습니다.”

하였다. 가사(歌辭)에 이르기를,

“밝고 밝으신 우리 임금께서는 성학(聖學)이 날로 향상(向上)되고, 큰 덕은 하늘처럼 덮으셨습니다. 원량(元良)488) 에 있을 때부터 삼선(三善)489) 을 진실로 잘 실행하여 효우(孝友)가 일찍 나타났는데, 한 나라를 감무(監撫)490) 하니 민물(民物)491) 이 덕을 사모하여 모두가 이극(貳極)492) 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별빛처럼 그 덕은 거듭 빛나고, 바다의 침윤(浸潤)처럼 은덕은 깊고, 구가(謳歌)가 같이 일어났습니다. 계서(繼序)493) 를 잊지 않았으며, 효사(孝思)가 한이 없었습니다. 상중(喪中)에 있을 적에 마음이 상했는데, 거상(居喪) 중에는 공손하고 말이 적었습니다. 전죽(饘粥)494) 의 식사(食事)와 안색(顔色)의 슬픔은 성훈(聖訓)495) 을 따르고, 선왕(先王)을 모범하여 행동이 빠진 것이 없었습니다. 세월(歲月)이 빨리 가서 3년이 갑자기 닥쳐서, 갑작스럽게 길제(吉祭)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난여(鑾輿)496) 를 타니 규사(虬駟)497) 가 허공(虛空)에 비등(飛騰)했습니다. 아아(雅雅)498) 하고 어어(魚魚)499) 하니, 의위(儀衛)500) 가 뇌가(磊砢)501) 하고, 기여(旗旟)가 아아(婀娥)502) 하니, 혹은 오른편에 서기도 하고, 혹은 왼편에서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묘우(廟宇)에 들어가서 이에 신주(神主)를 합사(合祀)시켜 이에 두조(豆俎)503) 를 올렸습니다. 공손한 태도로 홀[璋]을 받드니 직서(稷黍)504) 가 향기나고, 성악(聲樂)505) 은 양양(洋洋)506) 하였습니다. 신(神)이 위안(慰安)되었으니, 온갖 복록(福祿)을 받아 상서(祥瑞)를 낳고 복을 내리셨습니다. 법가(法駕)507) 가 궁궐에 돌아오니, 해가 꼭 중천(中天)에 오고 훈풍(薰風)이 바야흐로 온화해졌습니다. 황구(黃口)의 아이와 백발(白髮)의 노인이 잡답(雜沓)하게 앞서고 뒤서서 수다스러우며, 머리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우리 임금을 우리가 떠받드니 성덕(聖德)은 탕탕(蕩蕩)508) 하여 요제(堯帝)의 이마와 같았으며, 내가 지은 시(詩)를 내가 노래하니, 면면(綿綿)509) 한 과질(瓜瓞)510) 은 주 왕가(周王家)에 빛이 났습니다. 백성이 편안하고 풍속이 번성하여 어린애가 부모(父母)를 사모하듯이 다투어 만수(萬壽)를 불렀습니다. 신(臣)의 무리들은 노둔하고 용렬하나 다행히 천재 일시(千載一時)를 만나서 오늘날을 보게 되었으니, 즐거운 마음을 분발(奮發)하여 강구연월(康衢煙月)511) 을 영구히 축원하면서 종사(宗社)의 안녕을 노래합니다.”

하였다. 기로(耆老)인 판내섬시사(判內贍寺事) 경지(慶智) 등도 또한 가요(歌謠)를 바쳤으니, 그 가사(歌辭)에 이르기를,

“덕은 효도(孝道)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환심(歡心)은 여서(黎庶)512) 에게 얻게 되고, 예(禮)는 제사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 성사(盛事)는 종팽(宗祊)513) 에서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순제(舜帝)의 문명(文明)을 본뜨고, 탕왕(湯王)의 성경(聖敬)을 실천(實踐)하여, 이미 양암(諒闇)514) 의 상제(喪制)를 바쳤으니, 천부(遷祔)515)의 의식을 시행하게 됩니다. 이는 곧 소존(所存)을 공경하고 소친(所親)을 사랑하는 것이니, 대개 또한 공 있는 임금을 조(祖)로 삼고 덕 있는 임금을 종(宗)으로 삼는 것입니다. 옥찬(玉瓚)516) 을 이미 드렸으니 금여(金輿)517) 가 곧 돌아왔습니다. 화일(化日)518) 이 바야흐로 널리 퍼지는데, 훈풍(薰風)이 이에 이르렀습니다. 축융(祝融)519) 을 몰아서 길을 경계하게 하고, 우사(雨師)520) 를 명하여 먼지를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버들은 정기(旌旗)를 휘날리니 구가(九街)521) 에 용사(龍蛇)522) 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꽃은 검패(劎佩)를 영접하니 천관(千官)523) 은 원로(鵷鷺)524) 의 행렬(行列)을 늘어 섰습니다. 이에 거령(巨靈)525) 은 급히 닥쳐와서 방호(方壺)526) 를 대궐 아래에 이고 있으며, 과아씨(夸娥氏)527) 는 힘을 써서 화숭(華嵩)528) 을 어연(御輦) 앞에 높이 들고 있습니다. 금악(錦岳)과 수령(繡嶺)이 쟁영(崢嶸)529) 하고, 주궁(珠宮)과 패궐(貝闕)이 돌올(㟮屼)530) 하였습니다. 하늘을 뒤흔드는 아악(雅樂)은 팔음(八音)531) 을 연주하여 요란하게 울리고, 땅을 움직이는 환성(歡聲)은 구시(九市)532) 를 기울여 매우 분잡(紛雜)하였습니다. 신(臣) 등은 함께 상유(桑楡)533) 의 저녁 햇빛[晩景]을 보존하고, 우로(雨露)의 깊은 은혜를 거듭 입었습니다. 굶주리면 밥먹고 추우면 옷입으니 실상 임금의 은혜가 후해졌으며, 아침이면 일하고 저녁이면 쉬었으니, 어찌 임금의 힘이 있음을 알겠습니까? 비록 견마(犬馬)의 나이534) 가 쇠진했지마는 진실로 규곽(葵藿)535) 의 해를 향한 성심은 간절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반열(班列)에 나아가고, 눈을 닦고 하늘을 쳐다보니 학발(鶴髮)536) 은 헝클어져서 이미 수레를 뒤따르는 건장(健壯)함은 모자랐으며, 태배(鮐背)537) 는 구부러져서 삼가 격양(擊壤)하는 노래를 진술하겠습니다.”

하였다. 노래에 이르기를,

“옥연(玉輦)이 조용히 구천(九天)538) 에서 내려오니, 면류(冕旒) 차림으로 비궁(閟宮)539) 에 제사하고 돌아왔네. 거리에는 난로(鸞鷺)540) 가 나누어졌으니 풍운(風雲)이 성대하고, 산은 봉영(蓬瀛)541) 이 솟았으니 일월(日月)이 한가롭네. 백발(白髮)의 강구(康衢) 노래는 봉필(鳳蹕)542) 을 맞이했고, 단성(丹誠)의 화산(華山) 축수(祝壽)는 용안(龍顔)543) 을 절하였네. 이 마음을 환하게 하늘이 굽어보시니 지척(咫尺) 사이에서 천세(千歲)를 세 번 부르는 것이 방불하였네.” 라고 했다.

하였다.

[註 469]고취악(鼓吹樂) : 제향(祭享)이나 궁중에 큰 예식(禮式)·국장(國葬)이 있을 때 아악대(雅樂隊)가 부는 음악.

[註 470]중리(重離) : 《역경(易經)》의 이괘(離卦)는 해[日]가 둘 겹친 것을 뜻하니, 곧 부자(父子)가 왕위(王位)를 잇달아 상속함을 말함.

[註 471]선유(先猷) : 선왕(先王)의 모유(謀猷).

[註 472]희사(熙事) : 희사(禧事).

[註 473]청묘(淸廟) : 종묘(宗廟).

[註 474]계(啓) :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아들.

[註 475]구가(謳歌) : 여러 사람들이 제왕의 은덕을 칭송하여 제창(齊唱)함.

[註 476]무왕(武王) : 주(周)나라를 창건(創建)한 임금. 문왕(文王)의 아들.

[註 477]상제(喪祭) :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註 478]일신(日新) : 날로 새로워짐.

[註 479]종석(宗祏) : 종묘 안의 돌로 만든 신주를 모시어 두는 장(欌).

[註 480]힐향(肸蠁) : 흥성(興盛).

[註 481]명인(明禋) : 밝고 깨끗하게 하여 지내는 제사.

[註 482]규장(圭璋) : 예식(禮式) 때에 장식으로 쓰이는 귀한 옥.

[註 483]용장(龍章) : 용의 무늬.

[註 484]변두(籩豆) : 종묘(宗廟)에 쓰는 제기(祭器).

[註 485]소소(簫韶) : 순제(舜帝)의 음악 이름.

[註 486]봉우(鳳羽) : 봉황의 깃.

[註 487]주자(胄子) : 맏아들.

[註 488]원량(元良) : 세자(世子).

[註 489]삼선(三善) : 세 가지 착한 일. 곧 어버이를 친애(親愛)하고, 임금을 존경하고, 장상(長上)을 섬기는 세가지 도리를 말함.

[註 490]감무(監撫) : 감국무군(監國撫軍)의 준 말로서, 왕세자(王世子)가 임금을 도와서 국사(國事)를 감독하고 군사를 순무(巡撫)하던 일.

[註 491]민물(民物) : 백성을 이름.

[註 492]이극(貳極) : 왕세자(王世子).

[註 493]계서(繼序) : 계승하는 차례.

[註 494]전죽(饘粥) : 된 죽과 묽은 죽. 즉 거친 음식.

[註 495]성훈(聖訓) : 성인의 교훈.

[註 496]난여(鑾輿) : 임금이 탄 수레.

[註 497]규사(虬駟) : 네 마리의 용마(龍馬)를 이름.

[註 498]아아(雅雅) : 온화하고 문아(文雅)한 모양.

[註 499]어어(魚魚) : 호종(扈從)의 위의(威儀)가 있는 모양.

[註 500]의위(儀衛) : 의식 때 임금을 따르는 호위병(護衛兵).

[註 501]뇌가(磊砢) : 비범(非凡)한 모양.

[註 502]아아(婀娥) : 아리따운 모양.

[註 503]두조(豆俎) : 제기(祭器).

[註 504]직서(稷黍) : 메기장과 차기장. 곧 제수(祭羞)를 이른 말.

[註 505]성악(聲樂) : 음악의 소리.

[註 506]양양(洋洋) : 도처에 두루 충만한 모양.

[註 507]법가(法駕) : 임금이 거둥할 때의 의장(儀仗)의 하나.

[註 508]탕탕(蕩蕩) : 광대(廣大)한 모양.

[註 509]면면(綿綿) : 죽 연이어 끊이지 않는 모양임.

[註 510]과질(瓜瓞) : 오이와 북치. 종손(宗孫)과 지손(支孫)의 비유.

[註 511]강구연월(康衢煙月) : 태평한 세월.

[註 512]여서(黎庶) : 백성.

[註 513]종팽(宗祊) : 종묘의 제사.

[註 514]양암(諒闇) : 임금의 거상중(居喪中)을 이름.

[註 515]천부(遷祔) : 신주(神主)를 옮겨 종묘에 합사(合祀)함.

[註 516]옥찬(玉瓚) : 옥으로 만든 술 그릇.

[註 517]금여(金輿) : 금으로 만든 수레.

[註 518]화일(化日) : 봄날을 이름.

[註 519]축융(祝融) : 불을 맡은 신(神).

[註 520]우사(雨師) : 비를 맡은 신(神).

[註 521]구가(九街) : 도성(都城)의 큰 거리.

[註 522]용사(龍蛇) : 깃발에 그려진 용과 뱀.

[註 523]천관(千官) : 많은 관원.

[註 524]원로(鵷鷺) : 원추새와 백로. 이 새의 모습이 한아(閑雅)하다 하여, 조정에 늘어선 백관들의 질서 정연함을 이르는 말임.

[註 525]거령(巨靈) : 황하(黃河)의 신(神).

[註 526]방호(方壺) : 삼신산(三神山)의 하나.

[註 527]과아씨(夸娥氏) : 중국 고대에 신력(神力)을 가졌다는 인물. 태형산(太形山)과 왕옥산(王屋山)의 두 산을 옮겨서 길을 통하게 하였다고 함.

[註 528]화숭(華嵩) : 화산(華山)과 숭산(嵩山).

[註 529]쟁영(崢嶸) : 험준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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