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와 치우

불가사리

곰의 몸, 코끼리의 코, 물소의 눈, 소의 꼬리, 범의 다리를 가지고 주식은 무쇠이며 구리나 대나무도 먹는다.

세상에 처음 날 때는 엄지손가락만 하다. 바늘로 시작했다가 식칼이나 놋쇠화로 등 철을 씹어 먹으며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산만한 거대요괴가 된다. 두 다리로 엉거주춤 서고 손을 인간처럼 부릴 수 있는데 빨리 달리면 네 발로 달린다.

피부는 무쇠 털로 덮여있어 창이나 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다. 성벽 하나는 한방에 부술 정도로 힘이 장사다.

음허한 다른 요괴와 달리 양기(陽氣)가 매우 충만하여 특히 꿈속의 귀신들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

난폭하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천성은 순박하고 정의롭다. 불가사리의 약점은 불이다.

기름으로 팔팔 기운이 돋은 불길은 쇳물처럼 불가사리를 녹여 없앨 수 있다.

그 이름 ‘불가사리’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죽일(殺) 수 없는(不可) 놈’이라는 뜻,

다른 하나는 ‘불(火)로만 죽일(殺) 수가 있는(可) 놈’이라는 뜻이다. 생김새부터 보자면 우선, 덩치는 곰처럼 집채만 한데 눈은 코뿔소를 닮았으며, 코끼리처럼 긴 코가 있고, 호랑이 발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꼬리는 황소처럼 길고 끄트머리에 털이 숭숭 나있고, 온몸에는 바늘 같은 털이 촘촘히 덮여있어 몸에 줄무늬가 있고 없고를 갖고 암수를 구별하는데, 줄무늬가 없는 것이 곧 수컷이다.

불가사리와 신돈

우리는 불가사리의 그 괴이한 생김새보다도, 그 ‘튼튼한’ 위장에서 기인한(?) 놈의 ‘식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려 말의 어둠 속에 숨어 살며, 쇠와, 구리와, 대나무 뿌리를 먹었던 녀석.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지니고 모래와 돌을 먹었다는 옛날 치우(蚩尤)만큼이나 기이한 불가사리의 식성을 읽다보면, 이 불가사리가 태어날 당시의, 고려 말기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신화, 민담, 전설, 기타 구전되거나 후대에 일부 글자로 기록된 수많은 설화문학은 대개 그것이 창작되던 당시의 시대 분위기라던가, 중요한 역사적 사건 같은 것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려(九黎)의 군주였던 치우가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지니고 모래와 돌을 먹었던 것은 그가 ‘구려’라 불리는 동이계 제철집단의 우두머리였음을 비유해서 표현했던 것이고, 불가사리가 쇠를 먹어치우고 다녔던 것은, 고려 말의 혼란스러운 정국과 백성들의 고통과도 연관이 깊었다.

당시 고려 말기는, 밖으로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공, 안으로는 친원파 권문세족의 불법적 토지 수탈, 그러한 착취와 외적의 침공으로 인해서,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져만 갔던 시대였다.

국가의 관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농민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고, 고리대로 많은 빚을 진 농민을 협박하여 노비로 삼는 등 온갖 불법도 저질렀다. 몽골의 침공으로 황폐화된 농토를 다시 개간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내려준 ‘사패(개간지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문서)’를 빌미로 광대한 토지를 차지하고 대농장을 경영하며 더욱 재산을 불려나갔기 때문에, 고려의 재정 수입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기에 나타난 것이, ‘신돈(辛旽)’이라 불리는(걸출하다고 할지 아니면 교활하다고 할지 모를) 인물이었다.

MBC 드라마 <신돈>

<고려사>등의 기록에 나오는 이 신돈은, 고려 말의 괴승(怪僧)이다.

굳이 말하자면 제정(帝政) 러시아의 라스푸틴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이 ‘쇠 먹어치우는 불가사리’의 모티브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머니는 옥천사라는 절의 이름도 없는 노비였던 천한 신분에, ‘편조’라는 법명을 갖고 있었음에도 동년배 승려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승려였다. 우연한 기회에 공민왕의 신임을 얻어 고려의 전권을 쥐고 흔들었던 인물이었다.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이라는 것을 만들어, 귄문세족들이 불법으로 빼앗은 백성의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빚을 못 갚아서 노비가 된 사람들을 조사해서 양인으로 만들어 주었으므로, 당시 고려 백성들이 그를 가리켜 모두 성인(聖人)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당시의 관점에서나, 지금의 관점에서나, 신돈의 그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개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신돈의 개혁은, 당시 기득권층이며 집권층이었던 권문세족들의 불만을 샀고, 그를 탄핵하는 권신들의 상소는 빗발쳤다.

신돈 자신도 왕의 신임을 믿고 점점 방자해져서 부녀자들을 꾀어 간통하기도 하는 등 방탕하고 문란한 치부도 드러났다.

결국에는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를 받고 유배되어 수원에서 살해되고 만다.

불가사리 전설에서 본다면 백성들을 괴롭히는 무기를 먹어치우던 불가사리가, 나중에는 백성들의 농기구까지 먹어치우면서 비대해졌다가 불화살로 산산조각이 나서 죽었다고 할까.

고려의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이 괴승과, 괴물 불가사리 사이의 공통점에 대해서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둘 다 별볼 것 없는 최하층으로부터 나왔고, 백성을 괴롭히는 무기의 원료가 되는 쇠를 모두 먹어치우면서, 결국에는 입에서 불을 뿜으며 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그런 점에서 백성들에게 불가사리는 신돈이라는 이 괴승의 분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가사리가 하필이면 왜 ‘쇠(鐵)’를 먹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쇠’, 그것은 곧 ‘힘(권력)’의 상징이다. 석기를 쓰던 인간이 금속을 제련하기 시작하면서 나라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키고 무역을 했듯이, 고대 사회에서 쇠를 가졌다는 뜻은 곧 힘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군사들의 무기도, 화폐로 쓰이는 돈도, 모두가 쇠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쇠붙이’로 상징되는 ‘힘’과 ‘재력’을 독차지하고서, 그걸 앞세워 ‘가지지 못한’ 백성들을 가렴주구로 착취하고 억압하던, ‘가진’ 권문세족들과 그런 그들에게 착취당하던 백성들. 밖으로는 전쟁의 소용돌이, 안으로는 경제적 수탈…

그 틈바구니 속에서 허덕이던 백성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신돈’이라는 괴승의 개혁이 권문세족의 힘과 시대의 흐름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지켜본, 그저 빼앗기기만 하던 삶이 싫었던 백성들의 입과 입을 타고 전해진 염원이, 마침내 ’불가사리‘라는 쇠 먹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불가사리와 붉은 악마

쇠로 만든 무기를 먹어치우던 그 불가사리가, 치우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는 없는 걸까.

지금의 세상은 과연 그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쇠’가 아직도 세상의 정점에서 군림하고 있으며, 여전히 쇠를 녹여 무기를 만들고 돈을 만드는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많이 가진 자와 많이 가지지 못한 자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또 생겨난다.

어딘가에서는 그 쇠로 만든 무기 앞에 피 흘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혼란의 시대라면 틀림없이 어디에선가 불가사리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어쩌면 ‘붉은 악마’가 불가사리의 현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지니고 모래와 돌을 먹었다는 옛날 치우(蚩尤)만큼이나 기이한 불가사리 아니었던가. 동두철액이란 말. 당시 철을 다루는 것은 첨단 무기였다. 이것은 당시 미개했던 적이 그의 구리 가면과 쇠를 다루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글 양우영(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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