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리 신석기 배

기원전 6천 년 전의 소나무 통나무 소재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낙동강과 인접한 경남 창녕군 비봉리 배수장 태풍 때문에 이곳이 침수됐다

그러나 이 태풍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신석기 시대의 귀중한 유물을 발굴하게 된다.

경남 창녕군 비봉리에서 발견된 기원전 6천 년 전의 신석기 배가 그것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청도천이 범람하면서 비봉리 배수장이 그만 침수가 되어 버린 것

태풍이 물러간 후 창녕군은 배수장 복구에 나섰다. 공사 도중 내륙 지방인 이곳에서 대량의 조개무지가 드러난 것이다.

이곳에서 왜 선사시대의 유물인 조개가 나올까 조개가 나오는데 바다 조개가 섞여 있고 그리고 거기에 빗살무늬 토기가 같이 나왔다. 이제껏 발견된 조개무지는 모두 해안가였다.

해안가에서 발견된 조개무지는 파도에 의해 부서지고 잘려나가 그 원형이 잘 남아있지 않은 것이지만 비봉리는 해발고도가 매우 낮은 저 시대의 습지 지역이었다.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유물이 온전할 거란 기대가 생겼다.

바로 발굴단이 꾸려졌고 마침내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유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풀과 나무 열매와 씨앗 동물 뼈 등의 유기 물질이 다량으로 출토됐고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도토리였다.

옛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도토리는 우리나라 발굴사에 있어서 최초이자 최고의 유물이었다. 일반 유물은 토기나 석기 등은 수천 년 지나서 또는 확인이 되지만 도토리 같은 경우는 쉽게 썩어버린다. 그런데 처음 발굴했을 때 흙에서 딱 드러났을 때의 모습은 지난해 가을에 떨어진 도토리를 보는 듯 그렇게 생생하게 도토리의 형태를 갖고 있었다.

이렇게 도토리가 잘 남아 있다면 유물도 정말 잘 남아 있겠다는 생각으로 기대를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솔방울 호도와 비슷한 나무 열매인 가래 망태기가 발견됐다 음식을 담거나 물건을 담기 위해 쓰였을 망태기의 발굴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것뿐만 아니었다. 신석기 시대 선사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생활 유물이 계속해서 발견됐다

동물 그림이 그려진 토기 조각도 나왔다. 멧돼지 모습이 음각돼 있는 이 그림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사람의 배설물이 화석처럼 굳어 생긴 분석 이것도 우리나라 고고학사에 있어 처음이자 최고의 유물이다. 최초의 저습지 유적을 확인한 발굴 성과는 놀라운 것들이었다.

생활 유물은 물론 다양한 유물까지 나오면서 동삼동 패총에서 배 모양 토기가 나왔다. 조그마한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건데 그것을 보는 순간에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에서 배를 한 번 찾아보고 싶다는 욕심을 자극했다. 배라는 거는 당연히 나무로 만들기 때문에 저습지 아니면 기대할 수가 없는 유물이다.

한반도에선 아직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선사시대의 배 일본에선 이미 조몬시대의 나무 배 100여 척이 발견됐다는 학계의 보고가 나와 있었다.

발굴단은 계속 발굴에 힘을 쏟았다.

조금씩 흙이 드러나자 평면을 가진 단단한 물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나무 조각 그것은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었다.

마침내 드러난 그 실체는 길이 삼백십 센티미터 너비 육십 센티미터 규모의 소나무로 만든 통나무 배였다. 한반도에 살았던 고대 선사인의 뛰어난 선박 기술과 해양 문명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다.

우리 보통 안압지에서 나온 통일신라 배도 그렇고 뭐 기껏해야 기원 후 한 800년쯤 돼서 나왔던 배가 가장 오래된 배였는데 기원전 5천년 넘어가는 6천 년 된 배가 나오니까 우리나라 선박의 역사가 갑자기 6천년 이상 더 올라가게 됐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이제 겨우 발굴만 했을 뿐 다음은 수습을 해야 할 차례 그런데 장마가 문제였다.

저지대 습지 지역인 비봉리 이곳에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면 유적지는 금방 물에 잠길 것이 뻔했다. 발굴단은 배의 수습을 뒤로 미루고 배를 다시 흙으로 덮어버렸다.

긴 장마가 끝나고 발굴단이 다시 유적 현장에 돌아왔을 땐 유적지 일대는 온통 물에 잠겨 있었다. 물과의 사투 끝에 마침내 공개된 배 언론의 관심과 반응은 뜨거웠다.

비봉리 배는 신석기 시대의 생활사는 물론 우리나라 고선박 연구에 있어 획기적인 자료가 되어주고 있다.

엄청난 세월을 건너뛴 최고의 유물 비봉리 신석기 배 바다와 육지가 만나던 신석기 시대 비봉리의 자연 환경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모두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유물들이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평범한 양수장이었던 이곳 그러나 이곳 비봉리에서 한국 고과학사의 큰 성과물인 신석기 시대의 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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