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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한

한약재는 약으로도 좋지만, 한약재를 직접 키우다보면 키우는 재미도 좋고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를 보고 약효를 추측하기도 한다. 내가 잘 키우는 약재 중 하나가 지황(地黃)이다. 한의원에 들어오는 생지황 중에서 좀 시들한 것이 있으면 화분에 심어 놓는다. 4월경에 싹이 돋았다가, 5월경에 꽃이 핀다. 꽃대가 올라올 즈음이면 꽃봉오리를 달고 나오는데,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꽃은 보라색으로 아래 꽃잎이 윗 꽃잎보다 길어서 약간 하늘을 바라보는 나팔꽃 모양이다. 우리한의원 입구에는 지금 생지황 꽃이 3개 화분에 피어 있다. 출퇴근 때도 보고, 진료 중간중간 심심하면 한 번씩 바라본다.
생지황은 경옥고의 재료가 되기도 하는데, 생지황은 땅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고 보고 땅을 상징하는 약재의 대명사로 불린다. 한의학에서는 노란색은 땅을 상징하고, 땅은 만물을 키우며, 세상을 포용하는 곳이다. 그런 땅의 기운을 간직한 약재이니 특히 관심을 가지고 많이 사용하며, 나 역시 생지황을 수시로 음식으로 먹기도 한다.
생지황은 현삼과에 속하며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주로 봄과 가을에 채취하며, 신선한 뿌리를 생지황이라 부르고 건조시킨 것을 건지황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신선한 뿌리를 선지황이라 부르고 건조시킨 것을 생지황이라 부른다. 건지황을 술에 담궈서 아홉 번 찌고 말리면 숙지황이 된다. 숙지황은 여러번 찌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검정색으로 변한다. 달여 놓은 한약이 검은색을 띠는 이유는 숙지황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한의원에서 생지황, 건지황, 숙지황의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하여 사용한다. 생지황과 건지황은 성질이 차고 지혈작용과 열을 내리고 진액을 보충하는데 사용한다. 여기에서 성질이 차다는 의미는 약 자체가 찬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약효가 몸을 차게 하여 열을 내린다는 의미다. 생지황은 간장 심장 신장에 작용하여 열을 내리는데, 눈은 간장에 배속되므로 눈이 붉은 사람에게 많이 사용된다. 최근 유행했던 미생이라는 만화에서 오과장은 눈이 붉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생지황은 더 없이 좋은 약이다. 자고 일어나면 눈이 유독 붉은 사람이 많은데, 이런 경우에도 생지황이 좋다. 생지황을 잘게 잘라서 죽을 쑤어 수시로 먹으면 눈을 맑고 시원하게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숙지황은 성질이 따뜻하며 음기와 피를 보한다. 특히 간과 신장의 정을 더해주는 주요 보약 중 하나다. 명나라 명의 장경악은 숙지황을 이용한 처방을 즐겨하여 신장의 정을 기르는 방법으로 환자를 많이 치료하였다고 전해진다. 생지황 건지황 숙지황은 포제법이라고 하여 한약재를 가공 처리하여 약재 본래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약이다. 아홉 번 술에 담갔다 찌고 말리는 과정의 포제법을 이용하여 찬 성질의 생지황이 따뜻한 성질의 숙지황으로 변하면서 피를 보하면서 간장과 신장의 정을 보하는 효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숙지황을 만드는 과정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약재를 어떻게 아홉 번을 찌고 말린단 말인가? 숙지황을 만들어 보면 다섯 번 정도 찌고 말리면 이미 색은 검정색에 가까워서 다섯 번 찌고 말린 약재인지 아홉 번 찌고 말렸는지 구별이 잘 안된다. 그래서 다섯 번 정도만 포제를 하고, 아홉 번 포제한 숙지황인 것처럼 유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눈은 속이고 색은 속일지라도 그 효능이 같을 리가 없다. 눈속임으로 숙지황의 효능을 대체하려면 처음부터 숙지황을 사용할 필요 없이 가공이 편한 다른 약재를 대체하면 된다. 질병을 치료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픈 몸을 생각해서 어떻게 치료할까 궁리하다 보면 아홉 번의 수고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에 숙지황을 먹고 무를 먹으면 흰머리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옛날 한의사들은 서당도 같이 운영하면서 동네 아이들에게 글공부도 가르친 곳이 많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면 아이들은 약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중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숙지황을 많이 훔쳐 먹었으리라 짐작된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어렵게 지황을 구해서 아홉 번을 수고하여 만든 숙지황을 아이들이 계속 훔쳐 먹으니 이런 말을 지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한의학에서 생지황과 무는 그 자라는 방법이 다르듯이 효능도 특이하다. 무는 아래로 자라면서 상하소통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생지황은 옆으로 자라면서 좌우 소통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이런 한의학적 사고를 이용하여 효능이 다른 약재가 섞이는 부작용 이야기도 겸해서 한 모양이다.
오늘도 퇴근 길에 한의원 앞 화분에 핀 생지황 꽃을 쳐다보고 집으로 간다.

성남시 오렌지한의원 원장
대구한의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석사
대구한의대학교 한의학과 박사
을지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한서대학교 외래강사
제천한방바이오진흥재단 이사
손해보험협회 자문한의사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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