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에 불교가 점령하기 전, 토착 종교, 뵌교
신단수의 흔적, 수목 숭배 사상 여전히 남아
신목은 아기들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
알에서 나왔다는 신화는 우리의 알 신화와 닮아
중국 소수민족 신화(티베트족신화)
‘신의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싸의 중심부에는 조캉사원이 있다.
2007년에 청해성(靑海省) 서녕(西寧)에서 티베트 라싸에 이르는 ‘청장(靑藏)철도’가 열려 문명세계의 모든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조캉사원으로 오는 순례자들을 보면 종교적 경건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외지인들이 아무리 몰려든다고 해도 그들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굳건히 지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족의 영혼이란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불교가 티베트에 들어오기 전에 그들은 ‘뵌교’라는 토착종교를 믿었다.
뵌교를 믿는 사람들을 ‘뵌뽀’라고 하는데, ‘뵌뽀’란 ‘경전을 외우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불교는 티베트에 들어와 원초적 샤머니즘과 맥이 닿아 있는 뵌교와 오랜 투쟁을 벌여야 했다.
뵌교의 사제들은 종교의식을 거행할 때 자신들이 모시는 신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티베트신화의 전승자 역할을 했다.
바람과 햇빛, 설산과 호수에 관한 아름다운 티베트신화들은 그렇게 전해져왔다.
그러나 뵌교가 불교와의 투쟁에 패배하면서 신화는 불교식으로 각색됐으며,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성격도 모두 바뀌었다.
그들을 둘러싼 가장 장엄한 자연, 거대한 설산의 산신들은 티베트불교의 호법신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뵌교의 전통이 맥이 끊긴 것은 아니다.
지금도 바코르와 캉린포체의 순례 코스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 뵌교 신도들이 남아 있고(불교 신도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돈다), 적은 수지만 뵌교의 사원도 남아 있다.
뵌교 사제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오래된 신화 역시 남아 있다.
불교의 흔적을 살짝 지우기만 한다면 그것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티베트 동남부 린즈(林芝) 지역에 있는 ‘뵌'(本)산에 가보면 오래된 샤머니즘과 맥이 닿아 있는 수목 숭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뵌산 중턱쯤에 커다란 신수가 한 그루 있는데, 많은 가지에 나무 상자와 여러 색의 룽다가 걸려 있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나무 상자들은 아기들의 관이다.
아기들의 시신을 높은 나무 위에 올려 넣으면 아기들의 영혼이 하늘로 좀 더 쉽게 올라간다고 믿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영혼의 통로 즉 하늘 사다리인 것이다.
그들은 아기들의 영혼이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사유 세계를 지배하던 것은 저 머나먼 하늘로 영혼이 돌아간다고 믿었던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뵌교의 경전인 ‘세상의 기원’이란 뜻의 <스바줘푸>에서는 천계의 왕에게 다섯 가지의 원초적 물질이 있었다고 한다.
법사 츠제취빠가 그 다섯 가지 물질을 모아서 왕의 몸에 넣고 숨을 불어넣었더니 ‘바람’이 생겼다.
바람이 바퀴처럼 빠르게 돌면서 ‘불’이 생겼고, 불의 열기와 바람의 냉기가 합쳐져 ‘이슬방울’이 생겨났다.
이슬방울에서 미립 원소들이 나왔고, 그것이 바람에 날려 쌓여서 ‘산’이 되었다.
이렇게 츠제취빠가 세상을 만들었다.
여기에 나오는 바람 불 물 흙 그리고 텅빈 ‘공'(空)의 다섯 가지가 바로 티베트신화에서 세상을 만드는 요소다.
바람과 햇빛, 설산과 호수 그리고 텅 빈 하늘은 티베트 사람들의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지금도 티베트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오색 깃발 룽다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색깔로 표현하고 있다.
룽다는 ‘바람의 말(馬)’이라는 뜻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천신과 동일시했던 산신은 그들의 수호신이다.
가축의 새끼를 잘 낳도록 도와주고 인간의 병을 고쳐주었던 산신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사람들은 오색의 룽다를 걸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룽다는 신들에게 보내는 인간의 경외심과 소망이었던 것이다.
또한 <스바줘푸>에서는 이 다섯 가지 물질에서 하얀 알과 검은 알이 하나씩 나왔고, 그것에서 인간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 이 다섯 가지 물질이 아직 생물을 형성하지 않았을 때 거대한 알이 하나 있었는데, 이 알이 깨지면서 18개의 작은 알이 나왔고 티베트 사람들 역시 그 알 중 하나에서 나왔다고 한다.
티베트의 서부 아리 지역을 샹슝(象雄)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태초에 생겨난 호수에서 알이 하나 나왔고, 그 알에서 빛과 어둠이라는 두 마리 매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매가 결합하여 하얀 알과 검은 알, 무늬 있는 알을 낳았고, 그 세 개의 알에서 신과 인간이 나왔다는 것이다.
한편 티베트에서도 문답형 신화들이 전승되고 있다.
주로 감숙성 감남(甘南)장족자치주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스바문답가>나 <창세가>, <큰 새와 거북이>가 대표적이다.
<스바문답가>는 세상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스바’는 우주 또는 세상이라는 의미다. 이 신화에서도 최초의 우주는 혼돈 상태였다고 한다.
‘혼돈 상태의 우주’는 다른 신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나, 큰 새와 태양이라는 존재는 티베트 지역의 독특한 색깔, 불교 전래 이전의 샤머니즘적 색채를 보여주고 있다.
태양은 하늘의 상징이며, 큰 새는 매 즉 온갖 요마를 항복시킬 수 있는 신조를 뜻한다.
티베트의 문답 형식의 창세신화는 운남성의 바이족이나 이족 등의 창세기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장이주랑'(藏彛走廊)을 통해 저강(氐羌) 계통의 민족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이야기 내용이나 형태 역시 함께 이동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코리아히스토리 타임즈 제공 / 글: 김상윤(광주마당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