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과 호응, 범과 곰은 실재했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왜 삼국유사를 우리 민족이 강세로 치고 있는가.

<삼국사>는 김부식을 비롯해 전문가 11인이 왕명에 의해 팀으로 편찬한 정사인데 <삼국유사>는 중 일연이 개인적으로 만든 일종의 히스토리 등 콘텐츠를 모은 이야기책에 가깝다고 삼국사를 40년간 연구해온 오재성 삼국사연구회장의 말이다. 이것이 700여 년 동안 우리민족의 중심사서인냥 언급돼 왔고 최근에 와사는 신채호가 더욱 <삼국유사>를 높이 평가하는 바람에 엄연히 역사서와 콘텐츠가 구분돼서 학계에 수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가 마치 우리역사의 정통사서처럼 군림하고 있는 실정을 우려하고 있다. 많은 역사서들이 전해 온다면 당연히 그 진위사실이라 판별되겠지만 우리 역사를 숨기기 위한 무리들의 방해로 우리민족의 역사는 <삼국사>와 <삼국유사> 두 종으로만 주류로 내려 오다보니 서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삼국사>는 역사의 뼈라고 보면 <삼국유사>는 역사의 살이 되는 서로 보완의 관계로 보면 좋을 듯하다. 하지만 서로 메꿀 수 없는 갭이 있다. 그것은 다루는 강역 차이 때문이다. <삼국사>는 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이며 <삼국유사>는 아시아 역사가 아닌 모든 사실을 한반도로 구겨 넣고 있기 때문에 오류가 심한 편이다. 우리민족의 활동지인 대륙의 유‧연‧제‧노‧오‧월 지역의 이야기를 한반도로 끌어 와 구겨 넣는 바람에 오류가 많고 또한 한국이 강단사학이나 일본인들은 <삼국사>를 한반도 사정으로만 해석하려고 하고 상황이 안 맞으면 위서라고 치부해 버리고 만다. 문제는 현재 일본인들이나 중국들은 우리들이 한반도로 이동 압축한 역사를 그대로 역이용하기 때문이다. 일연은 유‧연‧제‧노‧오‧월 지역의 명승들을 한반도로 끌어 오기 위한 민족주의적 방편으로 그 내용만 따와 우리 민족이 누볐던 유‧연‧제‧노‧오‧월 지역을 잃어버린 결과를 가져왔다고 오재성 회장은 그 역사적 허구성을 지적했다. 문제는 일연의 민족주의적인 사고로 유명한 스님들을 한반도에 구겨 놓은 사실이나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한 강단사학이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들이 장악한 강단 사학에서 학생들이나 국민들이 그 왜곡된 역사를 검정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세뇌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로 <삼국유사>에서 기록한 곰과 범의 토템을 범과 곰이라는 동물 이야기로 만들고 이를 빌미로 일본인들이 고조선의 단군시대를 신화로 만들어버리게 했다. 그럼 월남전에 파견했던 천룡부대, 맹호부대가 용과 범이 파견됐단 말인가? 엄연히 실재한 우리의 정체성을 갖는 단군사화인데 대신 자신의 역사를 그 이상으로 끌어 올려 민족적 우위성을 만들고 자존심을 세우려는 작업에 우리의 강단사학은 그대로 답습하며 아직도 그들의 입장에 조력하고 있다는 점은 역사를 파는 민족적 반역행위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번호에선 곰족과 범족의 지명을 살펴보기로 한다.

<삼국유사>의 고조선은 위서를 인용했다.

古朝鮮(王儉朝鮮)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今妙香山)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산해경 해내경의 조선은 동북이었다.

2) <삼국유사>는 <위서>를 인용

‘魏書云—’ 시작하는 삼국유사 <산해경> 해내경 조선

<위서(魏書)>에는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내용이 없다. <산해경> 조선을 <위서>가 나타낸 것을 일연이 인용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하던 <삼국지> 위서(魏書)에서 말하는 조선은 산해경, 해내경 조선을 벗어날 수가 없는데 그 조선 위치 지역에 지금도 호웅(虎熊)이 들어간 산 이름이 있다.

사기와 한서 조선전은 위만이 조선을 개국에 대한 것과 우거 때 패망하는 기록이다. 그런데 삼국지 후한서에서 예로 표현된 나라이므로 예조선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이 삼국지 후한서에서 고구리와 예지역에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호웅과 태백산이 20세기 지도에 같은 지역에 등장하고 있다.

太白山 39.31951 114.26043, 熊耳山 虎窩山

이 기록에 등장하는 것이 한 지역에서 나타나기 어렵다. 그런데 49년 고구리와 한나라의 전쟁지역인 북평과 태원 사이에 웅이산(熊耳山)과 호와산(虎窩山)과 태백산(太白山)이 함께 있다는 것은 예사일이 아니다. 더욱이 동국의 의미를 둔 와(窩)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오재성(삼국사연구회장)

Share:

Facebook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