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 1권, 총서 9번째 기사

익조(翼祖)가 여진 천호(千戶)의 협공을 피해 알동(斡東)의 백성을 거느리고 적도(赤島)를 거쳐 의주(宜州)에 정착하다.

처음에 목조(穆祖)가 때때로 현성(峴城)에 가니, 여러 여진의가 천호(千戶)와 다루가치(達魯花赤)들이 모두 교체하기를 원하므로, 마침내 그들과 함께 놀았다. 여러 천호들이 예절을 갖추어 대접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고 반드시 소와 말을 잡아서 연희를 베풀고는 문득 수일(數日)을 유련(留連)했으며 여러 천호들로서 알동(斡東)에 이른 사람이 있으면 목조도 또한 이같이 접대했다. 익조 때에 이르러서도 이대로 따라 행하고 바꾸지 않았다. 익조의 위엄과 덕망이 점차 강성하니 여러 천호의 수하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모하여 쫓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천호들이 꺼려서 모해(謀害)하기를, 이행리(李行里, 익조)는 본디 우리의 동류(同類)가 아니며 지금 그 형세를 보건데 마침내 우리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니 어찌 깊은 곳의 사람에게 군사를 청하여 이를 제거하고 또 그 재산을 분배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에 거짓으로 고발하기들.

“우리들이 장차 북쪽 땅에서 사냥하고 오겠으니 20일 동안 정회(停會)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익조가 이를 허락했다.

기일이 지나서도 오지 않으므로 익조가 친히 현성에 가니 다만 노약자와 부녀들만 있었고 장정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 여자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그 많은 짐승을 탐내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였다.

익조가 이에 돌아오다가 길에서 한 할멈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손에는 한 개의 주발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익조가 갑자기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자 하니 할멈이 그 주발을 깨끗이 씻어 물을 떠서 바치고 이내 말하기를.

“공(公)은 알지 못합니까? 이곳 사람들이 공을 꺼려하여 장차 도모하려고 군사를 청하러 간 것이고 사냥하러 간 것은 아닙니다. 3일 후에는 반드시 올 것인데 귀관의 위엄과 덕망이 애석하므로 감히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익조는 황급히 돌아와서 가인(家人)들로 하여금 가산(家産)을 배에 싣고 두만강의 흐름을 따라 내려가서 적도(赤島)에서 만나기로 약숙하고, 자기는 손부인과 함께 가양탄(加陽灘)을 건너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라보니 알동의 들에 적병이 가득히 차서 오고 선봉 3백여명은 거의 뒤를 따라 왔다.

익조는 부인과 함께 말을 달려서 적도의 북쪽 언덕에 이르렀는데, 물의 넓이는 6백 보(步)나 될 만하고 깊이는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약속한 배도 또한 이르지 않았으므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북해(北海)는 본디 조수(潮水)가 없었는데 물이 갑자기 약 백여보 가량이나 줄어들어 얕아져서 건널만 하므로 익조는 드디어 부인과 함께 한 마리의 백마를 같이 타고 건너가고, 종자 들이 다 건너자 물이 다시 크게 이르니 적병이 이르러도 건너지 못했다. 북방 사람이 지금까지 이를 일러 말하기를

“하늘이 도운 것이고 사람의 힘은 아니다” 하였다. 익조는 이에 움을 만들어 거주하였는데, 그 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알동의 백성들이 익조의 있는 곳을 알고, 그를 따라오는 사람이 장꾼과 같이 많았다. 모두 섬 가운데 오랫동안 거주하다가 직도(稷島)·추도(楸島)·초도(草島)의 재목을 베어 배 10척을 만들고 지원(至元) 27년(1290) 경인에 다시 수로로 해서 의주(宜州)에 돌아와 거주하니 공주(孔州)의 백성들이 모두 그를 따라왔다 그들이 거주하던 땅을 지금도 적전(赤田)이라 일컬으니 그들이 적도(赤島)에서 온 때문이다.

익조 : 고려후기 조선 제1대 태조의 고조부인 왕족. 추존왕이다. 아들 익조(翼祖, ?~?)는 조선의 추존왕으로, 도조(度祖)의 아버지, 환조(桓祖)의 조부, 태조(太祖)의 증조부이다. 이름은 이행리(李行里)이다. 조선 개국 이후 증손자인 태조에 의해 익왕(翼王)으로 추봉되었다가 고손자인 태종 때 익조(翼祖) 강혜성익대왕(康惠聖翼大王)으로 재추봉되었다. 능(陵)은 함경남도 안변군에 위치한 지릉(智陵)으로 아내인 정숙왕후(貞淑王后) 최씨(崔氏)의 능(陵)인 숙릉(淑陵)은 함경남도 문천군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천호(千戶)란 직책은 조선초 진관체제(鎭管體制) 정비 이전에 지방군을 관할하던 하급 무관직을 말한다. 천호(千戶)는 원나라의 군제를 수용한 고려의 관직으로, 조선에서도 계속 존재했다. 원래 만호(萬戶) 등과 더불어 관할하던 민가의 수를 나타내는 직책이었으나 점차 진장(鎭將)의 품계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나중에 만호, 백호도 있었고 천호는 군을 통솔하던 토착 조직 체계의 속성은 엷어지고 무관직으로만 기능했다. 진관 체제가 편성되면서 사실상 기능하지 못했고, 조운선을 호위하는 임무만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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