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무렵, 책상 하나 겨우 들어가는 작디작은 내 방 창문을 열면 내 모교인 중학교가 바로 보였다. 학교 울타리를 접하고 있어 채 1분도 걸리지 않는 그곳은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면 후문을 꽁꽁 잠가 두었다. 빼~앵 돌아 정문까지 가려면 자그마치 5분이나 걸어야 한다. 주말이면 후문은 언제나 굳게 잠겨있었다. 나는 어딘가에 다녀올 때면 학교를 한 바퀴 돌아오기보다는 정문으로 들어가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개구멍으로 나오는 그 지름길을 종종 이용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에,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매우 지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학교 정문을 통해 개구멍으로 향했다. 개구멍으로 가려면 체육관이 있던 뒤 운동장 옆에 있는 작은 텃밭을 지나야 했는데, 아뿔싸! 어느 부지런한 선생님께서 가족을 데리고 텃밭에 나오셨다. 어쩔 수 없어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머뭇머뭇하자, 선생님께서 왜 왔냐고 물으셨다. 후일을 위해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 정문을 통해 학교를 빠져나가 빼앵빼앵 그 머나먼 길을 돌아 집으로 가는 것이었겠지만, 너무 지쳐있던 나는 바로 지척에 있는 집을 두고 그 긴 여정을 되풀이하기는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너무 피곤해서 그러니 개구멍을 이용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당당하게 개구멍을 통해 집으로 갔다.


선생님께서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시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믿었건만! 그다음 날 나의 특별한 통로 개구멍에는 철조망이 칭칭 둘러쳐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한국인이 아니던가! 니퍼로 철조망을 조각조각 잘라 나의 개구멍을 되살려놓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또 열심히 이용하던 나의 개구멍, 그렇게 행복한 며칠이 지나고 또다시 나의 개구멍에는 먹구름 같은 철 울타리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끊고 끊기를 반복했다. 최종 승자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작은 텃밭이 있던 자리엔 강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들어섰고, 내 개구멍이 있던 곳엔 드높은 철제 울타리가 있다.
나의 옛집은 현재 내가 사는 아파트로 바뀌었고, 이젠 내 창을 열어도 나의 중학교는 보이질 않는다. 지금 내 방 창문을 열면 내 또 다른 모교인 초등학교의 후문이 보인다. 내 중학교는 아파트 정문과 마주하고 있는데, 내가 주로 이용하는 것은 후문이다. 나는 여전히 10대의 초중반을 보낸 학교 사이에서 살고 있지만, 학교가 있다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나의 모교와 그곳에서의 추억은 그렇게 내 기억 속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오늘 문득 니퍼를 꺼내 내가 친 철조망을 끊었다. 그렇게 뚫린 내 개구멍을 통해 그때의 기억과 마주했다.

강지영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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