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소지를 태운 재는 눈이 되어 여전히 사방 온천지로 하얗게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요정들이 하늘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며 허공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 큰 돌 산 어디에서 마고 알을 찾아.”

그들은 일단 산을 내려갔다. 조금 내려가니 올라올 때 굴에서 나왔던 둥글게 움이 패인 웅덩이가 나왔다. 그들이 굴로 들어가려면 일단 그 웅덩이로 내려가야 할 거 같았다.

“이제보니 작은 백두산 천지 같다.”

신유리가 말했다.

위로 그들이 빠져나왔던 굴의 구멍이 보였다. 그리로 들어가면 다신 산 중턱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었다.

“다 된밥에 코 빠뜨린다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그 고생하며 힘들게 손에 넣어놓고는 , 그걸 산 정상에서 떨어뜨리면 어떻게 하니. 그걸 찾으려면 이 산을 다 뒤져야 할 거 같다. 둥글둥글한 그게 이 바위산에서 어디로 굴러 갔을지 알 수 있어야 말이지. 오늘 해지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신유리가 암담해하며 어떻게 해야 할 지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서있는 동안, 태양이는 풀이 잔뜩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로 바닥의 흙을 벅벅 긁고 있었다.

“엄마 저것 좀 봐!”

세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태양이의 발치에 무슨 문양 같은 것이 보였다.

“어머, 뭐지?”

“여기도 무슨 비밀이 있는 거 같아.”

“무슨 그림인가 살펴보자.”

세 사람은 엎드려서 손바닥으로 허겁지겁 흙을 쓸어냈다. 그러자 바닥에서 차차 문양의 형태가 나타났다. 그것은 돌 위에 새겨진 두 마리의 용 문양이었다.

“우와! 청와대 그림이다”

태양이의 탄성에 신유리는 그만 웃음이 나왔다.

“야, 청와대가 왜 나와.”

흙을 완전히 쓸어낸 신유리는,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그림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이건 무슨 알 같네. 용 알인가? 아님 여의주인가?”

마치 알을 지키고 있는 두 마리의 용처럼, 그 돌 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마주보며, 커다란 알을 지키고 있는 모습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용의 눈은 어찌나 부리부리하고 매서운지 금방이라도 살아나 자신들에게 달려들 것 같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알을 자세히 보니 알에는 별 세 개가 삼각 모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마치 세별의 이마에 있는 점과 비슷했다.

“이것도 마고 삼신 표지야?”

세별이 이제 제법 아는 체를 했다.

“그런 거 같아.”

“그럼 혹시 이게 마고의 알이 아닐까?”

태양이도 아는 체를 했다.

“헐~ 설마. 엄마도 이게 마고의 알 인거 같아?”

“마고의 알? 그럼 아까 거는 뭐야?”

“하긴, 금소화 할머니가 말한 불알 어쩌고 한 거 보면 아까 그게 맞는 거 같은 데.”

“혹시 금소화가 잘 못 안 거 아닐까?”

“엥?”

“그렇잖아.”

신유리는 그림을 다시 살펴보았다. 아이들 말처럼 마고의 알을 봉황이 지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봉황의 알인지 알 수는 없었다. 만일 그것이 마고의 알이 맞는다면 그 돌덩이를 파서 들고 가야 한다는 말인데.

“그럼 이 돌을 파가야 돼? 어째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엄마, 혹시 이거 무슨 비밀스러운 뚜껑 아니야?”

태양이는 그림이 있는 바닥의 흙을 계속 옆으로 털어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신유리가 말렸다.

“그만 해, 이건 인디아나 존스 영화가 아니야. 그냥 바위에 새겨진 거야.”

“인디아나 존스가 뭔데?”

“그런 게 있어. 유적이 살아나는 거”

“박물관이 살아나다 같은 거네.”

아이는 떠들면서 계속 바닥을 더듬어 손바닥으로 여기저기를 훑어보았다.

“맞아, 이봐, 뚜껑이네!”

“뭐, 어디?”

아이가 흙을 털어낸 곳에 둥글게 휜 테두리가 나타나 있었다. 선을 따라가며 흙을 헤쳐 보니 그것은 커다랗고 둥근 맨홀 뚜껑처럼 되어 있었다.

“와 진짜 재밌다. 고고학자가 된 거 같아”

“그런데 이걸 어떻게 열지?”

그것이 뚜껑이라 해도 여는 것이 문제였다. 그들이 서있는 곳이 웅덩이가 다 뚜껑인 셈이었으니, 그것을 열기 위해 모두 뚜껑에서 비키려면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면 또 뚜껑을 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무엇으로 어떻게 그걸 열어야 할지도 몰랐다.

신유리는 아이들은 일단 위로 올라 간 뒤에 팔을 뻗쳐 보았다. 하지만 손이 닿지를 않았다. 그때 세별이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거꾸로 떨어지려는 것을 신유리가 순발력 있게 다리를 잡았다. 그 순간 뚜껑위의 세 점이 신유리의 이마로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갑자기 돌 뚜껑 위의 용 두 마리가 놀란 듯 컥! 컥! 하며 살아나 몸을 뒤틀고 이리저리 불을 뿜어내더니 마치 달아나듯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모두들 비명을 지르며 뒤로 몸을 젖히고 혼배 백산하여 지리저리 도망갔다.

잠시후 그들이 다시 내려 보았을 때 뚜껑은 얌전히 그대로 덮여있었다. 다만 돌 위에 새겨진 두 마리의 용이 없어졌다.

“뭐지?”

“네들도 분명 용이 올라가는 거 봤지?”

아이들이 반쯤 얼이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한번 당겨볼게. 빠지지 않게 내 다리 좀 잡아 줘”

“아서, 우리도 못한 걸 네가 무슨 힘으로…….”

“혹시 또 알아? 한 번 해볼게.”

신유리는 폭삭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된 세별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팔도 잘 닫지 않는데, 자기와 치우도 못 들은 돌 뚜껑을 그 몸으로 들어보겠다니 좀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가 안쓰러워 더 이상 막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걸 열진 못 하겠지만 해보겠다는 것까지 말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세별이가 그런 노파 꼴이 된 건 결국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이게 꿈이면 깨어나면 괜찮겠지”

그 와중에서도 신유리는 이 모든 상황이 꿈이라는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세별아, 조심해서 해. 힘쓰다 뼈라도 다치면 큰일 나.”

신유리는 늙은 어머니를 부축하듯이 조심스럽게 바리를 부축하여 태양이랑 다리를 잡았다. 세별이는 두 팔을 뻗어 구멍에 손가락을 끼웠다. 그러자 알의 문양에서 빛이 나오면서 거짓말처럼 뚜껑이 저절로 열렸다. 돌 뚜껑이 원통형으로 엄청나게 두꺼웠다. 그렇게 무거운 걸 새별이 손가락으로 들었다는 것이 물가사의 했다.

“와!”

“어머!”

태양과 신유리가 동시에 감탄의 환호를 내뱉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실망스럽게도 안에는 물만 좀 고여 있을 뿐인 텅 빈 흙구덩이 같았다.

“엄마,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게”

“그냥 놔! 도로 덮어놓고 가자.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의미심장하게 생각했네.”

마고의 알이건 뭐건 간에, 안에 뭐라도 있을까 싶어 잔뜩 기대했던 터라 모두들 실망감이 컸다.

“도로 닫아 놔.”

“아니!”

뒤집힌 뚜껑을 내려다본 그들은 모두 너무 놀라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다.

55

뚜껑이 바로 보물 상자였다. 안쪽에 둥근 홈이 파여 있고 그 홈에 새알 같은 모양의 둥근 것이 꽉 끼어 박힌 채 들어있었다. 뚜꺼은 마치 물건에 끼워 맞춘 포장상자 같았다. 홈은 알의 모양 데로 딱 맞추어져 파여 있었고, 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안에 딱 맞게 끼워져 있었다.

하얀 은빛 알이었다. 그것은 하늘에서 비추는 태양의 빛과 어우러져 신비하고 고고한 은빛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알에 불이 붙어있는 것처럼 태양 빛을 쏘아냈다. 저녁에 태양이 붉어지면 그야말로 불의 알이 될 거 같았다.

“불의 알인 게 틀림없어.”

신유리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읊조렸다.

신유리와 태양은 홈에서 알을 빼느라 안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별이가 손을 갖다 대자 알은 힘들일 필요도 없이 슥 빠져나왔다.

“야, 신기하다. 네가 하면 다 되네.”

“누나 몸이, 아니 이마에 이 점이 열쇤 가봐.”

“근데 알을 왜 이런데 감춰놨지?”

하고 세별이가 중얼거렸다.

그런 세별이 머리를 감싸더니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신유리는 순간 아이의 얼굴에서 언뜻 박선화 모습을 본 거 같았다.

“원래 그 알은 인간들을 위해 세상에 두었던 건데, 인간이 타락하게 되자 여기다 놓고 봉인 한 거야. 이 알은 인간을 창조한 알이야. 이 알을 통해 나온 인간은 아주 순결하여 지유만 먹고도 영원한 생명을 갖지. 그런데 인간이 어느 날 백소에 의해 오미라는 생명을 먹게 됨으로써 인간은 동물과 같이 포악해지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영원한 생명을 잃게 돼. 그게 오미의 변이야. 그러자 마고는 더 이상 인간을 창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알을 여기 봉인 해 버려.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대신해 자신의 종족을 번식하는 방법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이어가기를 원하게 되고, 자신의 몸속에 있는 생명의 알을 아이를 만드는 일에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지. 자신들이 마고로부터 받은 알로부터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내게 된 거야.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이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손을 만들어 내야 해. 너는 이것을 가지고 오되 금소화에게 주어선 안 돼. 금소화는 자기가 신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 이 알을 탐내는 거야.”

신유리는 세별의 말에 너무 놀라서 하얗게 질렸다.

“나눈 세상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어. 이 알은 세상을 구하는 알이 되어야지 한 증오에 사로잡혀 복수심과 탐욕이 들끓고 있는 자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돼, 백소는 이 알을 흡수해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래. 그는 마고대성에서 쫓겨난 이후 인간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수억 년을 기다려왔거든. 마고가 허달성으로 옮겨가고부터 실당성은 비어있어. 그는 알을 가지고 실달성을 들어가면 인간세상을 지배하려고 해. 그는 악으로 인간 세상을 파괴시켜버릴 거야. 봉황이 지키는 알은 마고대성의 알이라 누구도 가져갈 수가 없어. 그것을 집어봐야 그 알은 허상이나 돌이 돼있어. 백소는 그것까지는 몰랐던 거야. 하지만 이 알은 인간 세상에 있던 알이야.”

“그러면 알을 가져갈 필요가 없네.”

“아니. 이 알은 세상을 구해. 알이 원래 자리를 찾아가면 수정 복본 되어 땅의 선한 기운이 돌아올 것이야. 이제 인간은 그나마 남아있던 선한 본성마저 잃고 종족조차 번식하지 않으려 하지. 알이 인간이 창제될 때 마고삼신이 주신 본성을 찾아가도록 할 것이야.”

“이가 어떻게 해야 돼?”

“백소는 마고의 불알을 직접 본 적이 없어. 이 알을 보여주고 처음의 알을 우물에 넣어. 그건 상징물일 뿐이야. 그렇게 그를 유인해서 우물로 끌어들여 다시 봉인해. 내 이마에 있는 삼신 표지가 마고삼신을 불러 봉인을 하게 해 줄 거야.”

“그리고 이 알을 박선화 만신님께 가져가야돼. 그러면 천제께 제를 올리고 알이 원 자리를 찾아 갖다놓을 거야.”

세별의 표정에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이내 번쩍! 하고 마른번개가 쳤다.

“엄마! 무서워.”

세별은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표정이 달라져있었다. 그리고는 방금 전의 모습과는 전혀 딴사람인 되어 평소 때의 아이처럼 엄마 품에 뛰어들며 소리쳤다.

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세별을 껴안으며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비가 오려나 봐”

신유리는 두려운 마음을 애써 감추고 아이들을 다독거렸다.

“이거 어떡해”

“엄마 가방에 넣어서 태양이가 메.”

신유리는 세별에게 알을 받아, 가방에 넣은 후 아들 어깨에 메어 주었다.

“좀 무섭다. 저번에 왔던 저 굴로 해서 빨리 내려가자.”

신유리는 딸을 안아 올려 굴로 들어가는 구멍으로 들여보낸 다음, 아들도 밑에서 받쳐 올려 들여보냈다. 그때 다시 또 거대한 천둥소리가 나더니 마른번개가 돌 뚜껑에 내리 꽂혔다.

“아악!”

마지막으로 구멍을 올라가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카아악! 카악!”

뒤에서 뭔지 모를 이상한 괴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용 두 마리가 그들을 공격할 듯이 다가왔다. 알이 없어진 걸 알고 그러는 거 같았다.

“엄마, 빨리 올라와!”

“알았어.”

그녀는 서둘러 아들이 내미는 손을 잡고 올라섰다.

“아아!”

그녀의 등 뒤에서 새들이 달려들며 공격을 해왔다.

“빨리!”

그녀는 공격을 받으며 겨우 굴속으로 들어섰다. 목 뒷덜미에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등도 쓰라렸다. 새들은 굴 입구에 고개를 들이밀며 깍깍 거렸다. 하지만 날개가 걸려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뛰자!”

얼마쯤 가는 데 뒤에서 쉿쉿 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저건 또 뭐야?”

태양이 소리에 놀아 신유리가 돌아보았다. 커다란 용 두 마리가 굴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들어서려 하고 있었다. 괴물은 둘이 서로 들어오려고 머리를 들이 밀며 싸우느라 빨리 들어오질 못했다.

“우와! 아까 그 놈 같아. 그놈이 변신한 거 아냐? “

아들이 뒤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돌아보지 말고 앞이나 잘 봐. 넘어지면 끝장이야.”

세별이가 소리쳤다.

“누나나 빨리 뛰어. 누나 땜에 늦잖아.”

신유리와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었다. 어둠 속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달아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뒤에서 두 마리의 괴물이 입을 벌리며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바로 뒤에서 칵칵! 거리는 소리가 아무래도 거리가 꽤 가까운 것 같았다. 하지만 굴 안이 컴컴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좁은 굴이 빙글빙글 굽어져 있다 보니 괴물들은 쫓아오다가 한 번씩 벽에 쾅! 하고 머리를 부딪쳤다. 그때마다 괴성을 질러댔다. 괴물은 몸을 돌리느라 잠깐씩 시간이 걸렸다. 굴을 꺾을 때 마다 괴물과의 간격도 좀 넓혀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달리다 보면 이내 또 거리가 좁혀졌다가 굴이 꺾이면 다시 넓혀지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넓은 우물터가 나왔다. 그들이 건너편의 좁은 입구를 찾아 들어서려 할 때 괴물도 우물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나선형의 통로보다 조금 밝아 완전히 드러난 괴물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엄마, 둘이 아니라 한 마리였어!”

신유리가 돌아보니 꼭 한 마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괴물은 두 개의 머리와 몸을, 그리고 하나의 꼬리를 가진, 즉 반은 둘이고 반은 하나인 한 마리이자 동시에 두 마리였다. 꼭 샴쌍둥이 같았다. 꼬리에서 몸통 가운데가지가 한 몸이고 가운데 위쯤부터는 둘로 갈라져 두 마리였던 것이다. 서로 몸을 하나로 바싹 붙여오면 빠를 텐데, 양쪽으로 서로 벌리다보니 들어올 때랑 굽어진 길에선 빨리빨리 못 쫒아왔던 것이었다.

그들이 다시 좁은 통로로 들어서자 괴물이 바로 뒤에 바짝 다가와 공격을 했다.

“후욱!”

“악!”

태양이 뒤로 휘청거리며 미끄러졌다. 괴물이 등에 있는 배낭을 물은 것 같았다. 한 손은 세별의 손을 잡고 있어 그나마 끌려가진 않아 다행이었다. 마침 굴이 꺾어지는 곳이라 괴물은 배낭을 금방 놓쳐버렸다. 아마 가방 끝부분만 슬쩍 물었던 모양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계속되는 괴물과의 추격전 속에서 세별이 자꾸 쳐지는 바람에 몇 번이나 잡힐 뻔 했다. 그들은 어느새 굴 입구까지 다다랐다.

“이제 어떡하지?”

어떻게 저기로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앞은 거의 낭떠러지였다. 올라올 때야 겨우 기어라도 왔지만 내려가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뛰었다간 바로 황천길일게 뻔했다. 엎드려 뒤로 천천히 기어서 내려가도 아찔할 판국인데 지금은 그렇게 한가하게 내려갈 형편이 아니었다.

“쉬쉿!”

돌아보니 굴 입구에 벌써 괴물의 머리가 드러났다.

까악! 까악!

까마귀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 위를 날고 있는 까마귀가 선회하며 날고 있었다.

“도와줘!”

그들 셋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러자 기다리고라도 있었던 듯이 저만치 갔던 새가 다시 선회를 한 뒤에 그들 쪽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바로 바위 아래쪽에 날개를 댔다. 그들은 동시에 날개 위로 뛰어내렸다.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동안 그들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용같이 생긴 그 괴물들이 두 개의 머리와 몸을 들어 올리며 분하다는 듯이 칵! 칵!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새는 그들을 싣고 어딘가로 한참을 날아가더니 어느 풀밭 위에 내려주었다. 풀과 작은 나무들과 들꽃들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에덴동산 같았다. 올 때는 보지 못했던 낯선 곳이었다. 앞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마워”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들은 인사를 하며 새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러다 그만 너무도 놀라 뒤로 자빠져버렸다.

“카악!”

어느새 그 괴물이 그들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었다.

56

괴물을 곧장 태양을 향해 다가왔다. 아마도 그 배낭 속의 알 때문인 것 같았다.

“엄마!”

“배낭 벗어”

그때 막 날아오르던 새가 내려와 괴물을 무섭게 공격했다. 괴물은 두개의 머리로 수리부엉이를 공격했지만 그때마다 새는 날아오르며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괴물들은 괴성을 지르며 서로 머리를 부비며 일어서더니 토네이도처럼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위로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두 머리의 괴물이 두 마리 새가 되었다. 돌 뚜껑에 그려져 있던 두 마리의 봉황이었다.

수리부엉이와 봉황 두 마리가 하늘에서 뒤엉켜 싸워댔다. 그 사이에 하늘에서 다시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 가방에 엄마 화장할 때 쓰는 거울 있지.”

태양이 해를 보더니 뭔가 생각니 안 모양이었다.

신유리가 콤팩트를 열어 거울을 꺼내 주자 아들이가 햇빛을 반사시켜 봉황의 눈에 비췄다. 봉황한 마리가 움찔 거리며 휘청거렸다.

수리부엉이가 그 틈에 봉황의 눈을 쪼자 봉황이 비명을 지르듯 까! 깍!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둘이 한 참을 싸우는가 싶더니 봉황 한 마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금세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없어졌어!”

그 모습을 지켜본 태양이 소리쳤다.

나머지 한 마리와도 계속 싸웠다. 눈을 쪼였는지 한쪽 눈에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렇게 한참을 또 싸우다 봉황이 바위 쪽으로 날아갔다. 새는 쫒아가다 튀어나온 바위 모서리에 부딪혔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날개를 다쳤는지 바닥으로 그만 툭 떨어졌다.

봉황이 날아와 다시 공격했다. 그러다 그만 꺽! 소리를 내더니 봉황이 바닥으로 풀썩 떨어져버렸다. 봉황은 날개를 파닥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숨죽여 지켜보던 세 사람은 새에게 달려갔다. 봉황의 목이 새에게 물려있었다. 마치 사자가 기린 목을 물어 숨통을 끊어 놓는 것처럼 봉황의 숨통을 끊어놓은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봉황의 모습이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새도 원래 크기로 작아져서 쓰러져 있었다. 깃털이 온통 피로 젖어있었다. 한쪽 눈알도 파여 있었다.

“날개도 부러졌어”

태양이가 울면서 꺾인 채 아래로 접혀져있는 날개를 조심스럽게 들썩였다. 새는 고통스러운지 몸을 움찔 하더니, 치우를 올려다보고는 이내 눈을 감았다.

“어떡해, 죽었어.”

“우리 구하느라 그랬어. 엉엉”

태양이 엉엄 울었다. 세별은 훌쩍거렸고 신유리도 눈물을 훔쳤다.

그들은 풀을 뽑아내고 나뭇가지와 손으로 땅을 긁어서 파냈다. 조금밖에 파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 위에 새를 눕혔다. 그러자 날개가 잠깐 꿈틀거렸다.

“엄마. 아직 안 죽은 거 같아. 묻지 마.”

“죽었어.”

“아니야 꿈틀거린 거 같아”

“바로 죽어서 그래.”

그녀는 주변에서 흙을 긁어와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치우는 나뭇가지를 꺾어와 토끼풀 줄기로 친친 감은 다음 무덤에 꽂았다. 십자가였다.

“고마워요. 삼족오님”

“좋은 데 가서 잘 살아.”

“고마워, 넌 꼭 천당 갈 거야.”

세 사람은 새 무덤 앞에서 절을 했다.

“너 말이야 가방이 엄마 거잖아. 그래서 네가 혼령인데도 보이는 거 아닐까. 알을 그냥 들고가는 게 어떨까”

신유리가 말했다.

“그러다 또 떨어뜨리면 어쩌라고”

“잘 들고 가야지.”

“알았서 한번 해보지 뭐”

그러고 알을 꺼내려던 태양이 갑자기 소리쳤다.

“엄마 배낭에 아직 물 있어!”

“아, 마시려면 마셔”

“이거 정화수잖아. 치유의 물.”

“아 맞다”

비닐봉지를 꺼내보니 신기하게도 도망치고 하던 그 난리 속에서도 터지지도 않고 용케도 그대로 잘 있었다.

“이걸 새한테 부어보자.”

“조금만 써, 남겨서 아빠한테 써야 돼. 눈을 다쳤잖아.”

신유리가 말했다.

“우리 땜에 죽었어. 우리 살리다가 그랬잖아. 아빤 병원에 가면 낫겠지.”

“아무리 그래도 죽었는데 살아나겠어?”

“그래도. 어쩌면 아직 완전히 안 죽었을 수도 있어. 밑져야 본전이잖아”

“본전이 아니라 안 살아나면 물만 없어지잖아”

“한 번 해봐.”

세 사람은 허겁지겁 무덤을 파헤쳤다. 신유리가 흙투성이의 새를 바닥에 놓자 그대로 널브러졌다. 비닐을 열어 새를 씻기듯이 조금씩 물을 뿌렸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입 좀 벌려”

“봉지를 벌리고 있고 새별이가 손으로 물을 떠 새의 입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물은 부리 밖으로 주르르 쏟아질 뿐이었다.

“그래도 계속 해봐”

그들이 한참을 그렇게 여러 번 물을 부어주자 꿀꺽 넘어갔다.

“와! 먹었어.“

“살아났다.”

새는 조금씩 몸을 꿈틀거리더니, 날개를 파닥파닥 흔들었다. 몇 번을 그러다가 몸을 움직이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들은 다친 눈에 물을 뿌려주었다. 그러자 눈이 나아졌다. 기운을 차린 새는 그들을 한참 쳐다보더니 드디어 일어섰다. 그러더니 다시 파닥거리다가 드디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야아!”

짝짝짝!

세 사람은 날아가는 새를 향해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새는 자신의 임무는 다 마쳤다는 듯이 하늘 높이 멀리멀리 날아올랐다. 그리고 한 점이 되어 사라져갔다. 이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그들은 새가 사라져간 하늘을 한참 바라보다가 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아빠를 치유할 정화수가 없어져버렸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세 사람의 마음이 다시 무거웠다.

“여기 경치 정말 멋집니다.”

세별이 얼른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치. 외국 같지 않니? 이담에 먹을 것 사갖고 피크닉 오면 좋겠다.”

“엄만 여길 또 오겠다고? 여긴 저승이야 저승.”

세별의 말에 신유리는 자신들이 있는 곳을 새삼 깨닫고 놀란 듯 움찔 했다.

그런데 세별은 발에 뭔가가 툭 걸리는 바람에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조심해”

“어!”

아이는 뭔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숙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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