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라는 것을 사실상 구별해서 써야 할 경우가 있다.
평원에서 농사를 짓는 농경민족의 나와 기마 유목민족의 우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유목민족의 경우 계절 따라 초지를 이동한다. 가축을 먹일 물과 먹이를 찾아서 이동한다. 즉 초지나 강이나 산이나 모두가 공유된 재산인데 반면에 농경민족은 농경지에 자신이 울타리를 치면 자기 것이 된다.
우리들은 기마 유목 민족의 뿌리를 주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습관에도 우리가 나타난다. 우리 집, 우리 마누라라는 말을 입에 올리곤 한다.
우리라는 관점이 잠재의식에 들어가 있는 것은 또 다른 언어 특색이 있다.
나라는 주어를 주로 생략한다. 외국인들과 달리 목적인 유까지 빼고 사랑해라고 말을 한다.
행복이라고 말할 때 가장 첫 걸음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탐색에 있다.

기마 민족의 뿌리를 가진 우리는 내가 속한 공동체, 내가 속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걸 탐색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기마민족에서는 우리라는 것은 역사 속에 묻혀 있다.

역사를 모르고 우리 속에 들어가 있는, 내 속에 들어가 있는 우리를 탐색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역사라는 것은 문자, 돌에 새겨진 금석문을 포함한 문자의 형태로 전해지는 것 또는 길가메시 서사시처럼 입으로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은 의식 속에 담겨질 수 있다.
그러나 문자 이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의 경우에는 대부분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 잠복되어 있다. 유감스럽게도 의식이 인지할 수 있는 문자 또는 구전의 역사는 우리 민족은 그 사료가 부족하다. 그 이유가 부끄럽게도 타인이, 다른 나라가 우리들 역사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주로 우리 손으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고 주기적으로 역사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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