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ure of 김일묵
김일묵

불교에서는 인간(人間)이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는 네 가지 고통(四苦) 즉,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이 네 가지 단계를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말한다. 신(神)이 아닌 이상 유한자(有限者)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생로병사의 과정은 누구나 거쳐야 하는 필연적 통과의례일 수밖에 없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생명 연장의 꿈’이 가능해진 현재, 병들고 늙는 고통이 점차 극복되고 있지만 이로 인한 문제들이 곳곳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다. 삶이란 자연스러운 순환의 과정이어야 한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생을 마치면 자연의 보시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생사불이(生死不二)의 가르침을 되뇌여 보자.

생로병사 시작
지금으로부터 2565년(불기 2565년, 2022년) 전, 히말라야의 산기슭의 한 성(카필라 성)에서 왕자가 태어났다. 왕자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라 아기의 발걸음을 받쳐 주었다. 사방을 둘러본 아기는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외쳤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내가 가장 존귀하다. 온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다 해결해주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이를 들은 왕은 아기에게 ‘모든 것을 이룬다’는 뜻의 ‘싯다르타’라는 이름을 내렸다.
왕족으로서 향락과 사치로운 삶을 살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동쪽 성문을 나서다가 늙은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본 싯다르타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태어난 모든 것은 세월이 흐르면 저렇게 늙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 왕자는 이후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발견하고, 남문에서 병자를 보게 되며 생로병사의 참담한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 북문에서 행색은 초라하지만 눈빛이 맑은 수행자를 만나게 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고, 고통에도 근심하지 않고, 기쁜 일에도 들뜨지 않으며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는 진리”를 찾기 위해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이 일화를 불교에서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말하며, 부처가 출가한 동기가 바로 생로병사의 4가지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것으로, 불교의 정법 구현을 위한 구도(求道)의 첫 시작점되었다고 여긴다.

늙음에 대한 과학적 의미
늙을 노(老) 자는 머리가 하얗고 등이 구부정한 늙은 사람이 지팡이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다. 그래서 옛날부터 노인의 모습을 흔히 ‘백발(白髮)이 성성하다’라고 표현했다.
하얀 머리카락은 검은색의 멜라닌 색소가 탈색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다. 멜라딘 색소가 수명을 다했다는 뜻이다.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더 이상 멜라민 색소의 생성 및 유지가 어렵게 되었다”는 의미다.
우리 몸은 100조 개가 넘는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1조 개의 세포는 매일같이 생성과 죽음을 반복하며 사람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 그래서 세포들이 생과 사의 순환의 과정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노화 상태, 즉 ‘늙어감’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사람의 수명이 다양하듯 세포들 또한 생사(生死)의 순환 주기가 다양하다. 위장(胃) 내벽에 자리한 세포들의 수명은 대략 200분 정도다. 또한 피를 구성하는 적혈구는 대략 100일 정도의 삶을 살고 새롭게 교체된다. 하지만 세포들이 태어나고 죽는 과정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1961년 해부학자 ‘레너드 헤이플릭’은 세포들은 보통 70번 정도 분열하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세포들의 반복된 탄생과 죽음의 순환 역시 유한(有限))하기에 사람은 노화와 죽음의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늙음에 대한 사회적 의미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인구절벽’, ‘생산성 인구 감소’, ‘고령화사회’란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저출산(生), 사회복지 향상(老), 의학의 발전(病)으로 인한 생명연장(死)의 현상 때문이다. 불교적 측면에서 말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자연적 순환 주기가 어긋났기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점들이다.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 초저출산 국가이다. 2022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출산율은 0.81명이다. 출생아 수는 26만명이며, 인구의 자연 감소는 약 5만 7300명이다.
1950년대의 출산율이 6명 이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저출산 현상이 야기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국가를 이루는 3요소로 흔히 영토, 주권, 국민을 꼽는다. 전쟁의 위협에서 아직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의 영토적 불안문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하는 후진적 정치 행태, 인구 감소로 인한 생산성 인구의 감소와 징병가능 남성의 감소 문제 등 대한민국은 저출산으로 인한 암울한 문제들이 많다.
UN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에 해당화면 고령화 사회로 분류한다.(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사회) 노인 인구가 많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영양과 위생 상태, 생활환경이 좋아졌고 보건과 의료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령화사회를 준비하는 대한민국은 노인문제점에 대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노인 복지를 위한 행정적 지원과 편의성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한국 노인계층의 자살률은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노인자살률(인구 10만명당)은 2019년 기준 46.6명으로 OECD 평균보다 2.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상당수의 공공기관에서는 노인의 취업 비율을 높이고자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기는 하지만 대부분 정부 시혜적 임시직(비정규직, 안내인, 거리질서 도우미 등)이 대부분인 안타까운 실정이다.

늙어감을 대하는 자세
늙어감은 병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늘어가는 의료비 부담은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 은퇴 이후의 안정적 소득원의 부재로 인한 빈곤 문제는 노년기에는 특히 개선의 여지가 더욱 불투명하다. 하지만 노인이 돼서 겪어야만 하는 만성질환, 경제적 능력 상실로 인한 빈곤, 자식들과의 불화 등 문제는 후대를 위해 겪어야 하는 진통의 과정일 수도 있다.
과거 우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20세기만 해도 대한민국은 경로효친이 사회 풍토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시대였다. 그것은 1970년대의 베이비붐 신드룸(출산율 4.5명)으로 부양할 자식들이 많았던 것도 하나의 맥락일 수 있겠으며, 자식에 대한 헌신과 교육열이 유별났던 대한민국 부모 세대들에 대한 보은의 의미에서도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얼마 전 <고령화가족>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평화롭던 엄마(윤여정, 69세) 집에 나이값 못하는 가족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한다. 엄마 집에 빈대붙어 사는 백수 첫째(44세), 흥행에 참패한 영화감독 둘째(40세), 결혼만 세 번째인 셋째(35세). 어느 집에서 하나쯤을 있을 법한 사건사고들이 끊이질 않는다.
“<고령화가족>은 엄마라는 존재, 즉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을 재충전하고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되는 3남매의 이야기”라고 밝힌 송해성 감독은 ‘엄마의 집’이라는 공간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식들에게는 언제나 열려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라고 영화를 통해 전달한다.
영화에서 윤여정은 이런 말을 한다.
“가족이 뭐 대수냐.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이 살고, 같이 밥 먹고, 또 슬플 땐 같이 울고, 기쁠 땐 같이 웃는게 그게 가족인거지.”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적 급성장으로 인한 부작용을 앓고 있다. 복지를 내버려둔 성장에 대한 후유증이다. 하지만 산업화, 핵가족 시대를 거치며 대가족 체계가 사라져 경로와 효친의 정신이 다소 희미해졌을지라도 부모에 대한 효심과 사랑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Share:

Facebook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