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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제

통과의례는 어떤 개인이 새로운 지위나 신분 상태를 통과할 때 행하는 의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프랑스 인류학자 방주네프(Van Gennep A)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로 추이의례(推移儀禮)라고도 한다.
무당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는 내림굿이란 것이 있다. 가끔 내림굿이란 의식을 거치지 않은 무당들이 종종 만나곤 하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내림굿이란 통과의례를 했었다.
예전엔 무당이 되는 과정을 ‘천하 세 품’이라고 하였다. 즉 천하 솟음·길 솟음·재 솟음이라 했으며 다른 말로 허튼굿·내림굿·솟을굿을 의미한다.
<부도지> 제2장에 마고 삼신이 살던 성을 마고대성·실달성·허튼성이라 했으며 이 성들은 8려(呂)의 음(音)에서 나왔다고 한다. 천하 세 품의 허튼굿·내림굿·솟을굿이라는 명칭도 바로 마고대성·실달성·허튼성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내림굿은 천부(天府)의 가르침을 깨우쳐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전계(佺戒)의식이라 할 수 있다.
즉 인간들을 희로애락이 없는 마고대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제를 탄생시키는 의식이다.
​마고대성은 하늘에서 내려 준 인간 본연의 마음가짐인 선청후(善淸厚) 삼진을 보존하여 희로애락을 느끼지 못하고 신선같이 살던 지상 낙원이다.
진정한 무당 본연의 사명은 천부의 마음으로 삼망인 악탁박(惡濁薄)에 물든 인간들이 참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깨우침을 주는 것이다.
허튼굿은 허주굿이라고도 하는데 무당이 될 사람이 어떤 기운에 의하여 점령당한 상태, 즉 빙의(possession) 상태일 때 하는 의식으로 무당이 될 사람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흔히 무병 또는 신병 상태일 때다.
​무병은 무당이 되어야만 증세가 사라지는 병이며, 신병은 몸에 빙의된 귀신을 위로하고 쫓아내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귀신병이다.
지금 무당들이 무병과 신병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무당 양산의 원인이기도 하다.
​내림굿을 할 때 아흔아홉 집에 걸립 다녔다. 이 걸립을 세 걸립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을 다른 말로 세(혀)나린 걸립이라고 부른다.
제주도 심방이 자손이 심방이 되기를 원할 때 단골집을 다니며 놋쇠를 얻어다가 명두를 만들어 물려준다. 이때 놋쇠를 얻으러 다니는 것을 쇠동녕이라 한다. 걸립 다니며 얻은 쌀과 금전은 굿의 비용으로, 놋쇠 등은 무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내림굿 전 걸립 다니는 목적은 여러 가지다.
첫째 이웃 마을과 왕래가 어려웠던 시절에는 걸립 다니면서 내림굿을 한다는 것을 알리고 자신의 영험함을 널리 입소문 내어 달라는 일종의 홍보 성격을 가진다.
두 번째는 무당으로 가질 수 있는 자격지심과 스스로 위축될 수 있는 마음을 버리게 하고, 무당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멸시를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과 무당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의미가 있다.
세 번째는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점을 봐주고 내림굿을 위하여 건립 다닌다고 하면 쌀, 보리, 등 곡식과 집안에서 사용치 않는 촛대, 놋그릇, 북 그것도 없으면 돈이라도 조금 건네준다. 즉 굿의 경비를 일부 조달하는 것이다.
​내림굿할 때 하루 전날 신부모와 애동제자는 반드시 계욕(戒浴)의식을 가졌다.
예전에는 볏짚을 태워 그 재로 만든 물인 잿물로 목욕했지만 향이 나온 후부턴 향물로 목욕재계를 한 후 동쪽을 향해서 기도한다.
그런 후 새벽 3시경 신애기와 신부모 단둘이서 산으로 올라 백설기 등 간단한 전물을 진설하고 사철 푸른 나무, 즉 소나무나 참나무 등에 일월다리를 걸고 일월을 의미하는 재금만 가지고 일월을 받는다.
그런 후 첫닭이 울기 전에 동쪽으로 뻗은 소나무 가지 중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가지를 골라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명두를 걸고 명두 위에 예단을 둘러놓고 미리 준비해 둔 대배기(일월대)를 들고 동이에 올라 신명들을 받는다.

솟을굿은 애동제자가 무꾸리를 하고 굿을 하면서 금전을 모아 신복과 신기물 등을 모두 갖추고 어떤 굿이든 혼자 소화할 수 있을 때 하는 의식으로 가깝게는 5년 멀리는 10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솟을굿을 한 무당이어야 상산거리나 칠성거리 등 큰 거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하니 완전한 무당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요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솟을굿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신엄마와 신제자 간의 해원상생(解寃相生)이라는 것이다.
내림굿을 하고 난 후 솟을굿을 하기까지 알게 모르게 신부모와 신자식 사이에 생긴 반목과 갈등 등 섭섭한 마음들을 모두 푸는 ‘인지화해(人之和解)’가 가장 중요한 솟을굿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무당이 되기까지 치러야 하는 천하 세 품은 단순히 굿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천부의 깊은 뜻이 담긴 의미 있는 통과의례로 여겼고 그렇게 행하여 왔다.
요즘은 허튼굿과 내림굿을 한꺼번에 해 버리니 이런 과정을 잘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기도 힘들 것이다. 돈만 주면 없는 신도 만들어 내림해 주는 선생들이나, 삶이 평탄치 않으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으로 선택한 무당, 만물상에서 신에 대한 정성까지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작금의 내림굿은 천부의 뜻을 깨닫지도 못하고, 왜 무당이 됐으며, 무당으로서 사회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없는 무당 아닌 장사꾼만 득세할 뿐이다. 그러니 내림굿의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 내림굿 대신 전계(佺戒)의식으로 불러야 한다.
전계는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계율이란 뜻이다. 또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계율을 의미한다. 내림굿 대신 전계의식이라고 부를 때 지금의 폐단들이 하나씩 사라질 것이다.

조성제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무속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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