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 선 이게 도교라든가 또는 이게 선도라고도 한다. 사실 유교 불교보다도 우리 문화에서 아주 본질적이고 더 토착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신선이나 도교와 관련된 문화의 기원이 어디서부터일까? 우리가 기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고인돌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인돌에는 시신을 뉘는 맨 밑바닥에 있는 돌판이 있다. 이 돌판에 구멍이 파여져 있는데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만든 구멍이 있다.
그것이 별자리들인데 주로 북두칠성의 모습이 많다.
북두칠성을 옛날부터 우리가 이 숭배를 해왔다. 북두칠성을 왜 숭배했을까? 이 북두칠성은 나중에 도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신이죠. 고대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원시 종교가 샤머니즘인데 이 샤머니즘에서는 죽은 사람의 혼이 북두칠성으로 간다는 믿음이 있었다. 죽은 사람의 혼이 북두칠성으로 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고인돌의 돌판에 북두칠성을 새겨놓은 것은 돌아가신 분의 혼이 북두칠성으로 편안하게 가서 안착하리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원시적인 이 관념은 단순히 그 시대에 끝나지 않고 신화처럼 우리에게 하나의 원형이 돼서 후대에까지 이어진다. 아마 오늘날에도 시신을 매장할 적에 밑에다가 칠성판이라고 하는 것을 깐다. 이 칠성판은 그 판자에다가 구멍을 7개 뚫어놓은 것이다. 북두칠성의 그 돌판에 구멍 7개 뚫어놨던 것과 일치한다. 지금도 시신 밑에 칠성판을 까는 것은 망자의 영혼이 북두칠성으로 가서 안착하라는 소망인데 지금은 그 의미가 거의 잊혀졌다. 이제는 하나의 관습이 돼 있을 뿐이다. 그 신앙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시골이나 사극드라마에서 특이한 풍속이 남아 있다. 어떤 분이 돌아가시면 제일 먼저 하는 절차가 있다. 그분의 입던 옷을 들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북쪽을 향해서 그 옷을 흔든다. 왜 그럴까? 그 죽은 사람의 혼이 북쪽 즉 북두칠성 있는 곳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혼을 잡으려고 가장 높은 지붕에 올라가서 그 옷을 흔들면서 돌아오라고 그 혼이 돌아오라고 복! 복! 복! 하고 북쪽을 향해서 옷을 흔든다. 원래는 복귀인데 말을 줄여서 복 복 복 외마디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망자의 혼이 북두칠성을 향해서 가다가 자기가 입던 옷의 냄새를 맡고 아니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지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그 혼을 부르죠. 돌아오면 이제 소생하는 거죠. 물론 대부분 소생을 못하죠. 이런 행위를 초혼이라고 한다. 이 절차를 마쳐야지 그다음에 이제 그 장례 절차를 시작한다. 완전히 이제 돌아가셨다. 이 초혼 의뢰를 했는데도 안 돌아오신다면 이제는 완전히 돌아가셨다. 그분의 혼이 저 북두칠성으로 이제 가셨다. 이러한 습속도 바로 이 북두칠성에 대한 숭배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 북두칠성은 우리의 죽음과 이승의 삶을 주관하는 별이다. 또 신격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상이나, 관념 이것은 바로 우리가 영생 불사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우리가 여러 가지 이 신체를 단련하거나 또는 여러 가지 수련을 하거나 하는 이런 후대의 도교나 선도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관념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북두칠성 숭배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본다면 선도라든가 도교를 말하자면 역사 이전에 가장 오래된 관념은 바로 이 북두칠성 숭배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흔적이 발견된다는 것은 벌써 그러한 선도와 도교의 어떤 기원적인 그런 하나의 흔적으로써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칠성판을 시신에 까는 것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게 되면 고구려가 가장 문화적으로 빨랐다. 고구려에서 선도, 도교 관련 유적이나 유물들이 제일 먼저 발견이 된다. 공식적인 기록은 영류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도교를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사실은 이미 고구려 벽화라든가 이런 데서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 이전부터 벌써 이 도교를 신앙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글 | 김민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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