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死)에 대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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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묵

시간(時間)은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다. 세월(歲月) 또는 광음(光陰)이라고도 한다. 시간에 대한 이해는 고대의 모든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추구했던 주된 관심사였지만 서로 다른 관념적 차이 때문에 여전히 시간이란 명제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시간이란 관념적 공간 속에 우리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맡겨진 ‘공간’은 꾸준히 변화를 해왔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앞마당은 공원으로 바뀌었고, 초등학교는 미술관을 변했다. 옆 마을을 가기 위해 오르던 높은 재(고개) 대신 지금은 터널로 이동한다. 이렇듯 시간은 공간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
그러나 시간조차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을 진리(眞理)라고 부른다.
불교에서는 진리(dharma, 다르마)를 절대적 진리와 세속적 진리로 구분한다. 그중 절대적 진리를 진제(眞諦)라고 하고, 불생불멸(不生不滅), 비인비과(非因非果)에 이에 속한다. 그리고 세속적 진리를 속제(俗諦)라고 하는데 이는 인(因)과 연(緣)의 법칙을 따르는 통속적 이치를 뜻한다. 즉 자연의 법칙 안에 순응하는 진리가 바로 속제이다.
쉽게 말해서, 태어남도 죽음도 윤회도 없는 모든 것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반야의 세상 또는 불생불멸의 세상이 진제(眞諦)이고, 중생이 반드시 겪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이 바로 속제(俗諦)이다.


사(死)의 변화
선조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농경사회는 서구의 산업혁명을 발단으로 산업화 사회로 이어졌고, 4차산업혁명 시대인 지금의 글로벌IT 사회로까지 발전되었다. 이렇게 급격하게 가속되는 변화들로 인해 세대 간의 시각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속제의 진리인 생로병사 중 사(死)에 대한 가치관까지 변화의 물결에 휩쓸렸다.
옛날에는 보통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밖에서 숨을 거두는 것을 객사(客死)라고 하여 이를 불행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점차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는 일이 많아졌고 객사(客死)와 다름없는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하는 일들이 지금은 당연시 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장례를 치르고 꽃상여를 뒤따르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매장(埋葬)과 화장(火葬)의 차이에 이해득실을 따지기 전에 그저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사(死)에 대한 반추(反芻)
과거에는 마을공동체에서 어른들이 생을 마치실 때를 준비하기 위해 상포계(喪布契, 상조계)를 만들어 운영했었다. 이 상포계는 노(老)부모님을 모시고 있다면 모두 가입하는 일종의 마을 계모임이었다.
상(喪)이 발생하게 되면 상포계 계원들은 오일장을 찾아 음식을 준비하고, 이웃들에게 부고들 돌리고, 마당 한편에서는 수의와 꽃상여를 준비했다. 그리고 고인의 염습이 끝나면(입관) 그때부터 문상을 받으며 삼일장을 치렀다. 이후 발인제가 끝나면 소리꾼이 앞장서고 계원들이 꽃상여를 메고 상여소리를 하며 집을 나섰다. 꽃상여는 한 번만 쓰고 태워버리는 상여로 흰 종이꽃을 달아 치장한 상여이다. 옛날에는 천민들이 메었으나 젊은 사람들이 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상여의 뒤를 후손들은 머리엔 볏짚으로 만든 또아리를 쓰고, 부모를 지켜드리지 못한 죄인 된 심정을 뜻하는 의미로 바지에는 행건 두르고, 지팡이를 짚으며 뒤따랐다.
상여의 행렬은 명정, 공포, 만사지, 혼백상, 설소리꾼, 상여, 상주, 유복친지, 조객의 순으로 나간다.
상여가 마을을 떠나기 전에 평소 망인이 즐겨 다니던 곳이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을 상여가 지나간다. 그리고 마을 떠나기 전에 마을을 하직하는 제를 지내는데 이것을 ‘노제’ 또는 ‘거릿제’라고 한다. 이후 명당터를 찾아 하관(下棺)을 하고, 묘의 땅을 다지고 묘봉을 단단히 만들어 날짐승들의 침범을 막도록 했다.
이렇게 상포계에 하는 장례는 조의금으로 비용을 사용했고, 그래서 조문 받은 지인들께는 꼭 갚아야 된다는 마음으로 가졌던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장례문화였다.


매장(埋葬)에서 화장(火葬)으로 그리고…
한때 우리나라는 묘지공화국이란 말이 있을 만큼 매장문화를 선호했었다. 그러나 인구수의 증가와 도시화로 인한 임야, 국토관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 문화를 장려하는 시책을 정부는 추진하였고, 1991년도의 17.8%였던 화장률이 지금은 91.8%(한국장례문화진흥원 통계 2022년 7월)에 달할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화장 장례는 보통 화장을 한 후의 유골의 보관에 따라 ‘봉안’의 형식이나 ‘자연장’의 형식으로 나눈다. 웰다잉(Well-Dying)을 염두에 둔 50~60대의 연령층은 봉안보다는 수목장이나 잔디장 형태의 자연장을 더 선호한다는 자료가 조사된 바도 있지만 아직은 지역적 특색(선산을 가지고 있거나 가까이 납골당이 있는 곳)과 종교의 영향에 따라 어느 것이 더 좋은 장례문화인지를 판별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여겨진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장례문화는 또다시 한 차례 격동을 맞이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 조문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장례’로 변화된 것이다.
그동안의 장례문화는 고인과 유가족의 사회적 관계가 어우러져 다소 허례허식(?) 풍조가 있었다. 그 때문에 빈부 격차와 고인의 지위에 따른 장례 절차와 비용의 문제점도 계층 갈등을 부추겼다는 것에는 변병의 여지가 없다.
엔데믹(Endemic, 종식되지 않고 주기적으로 발생하거나 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바뀌어가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간소화 되었던 ‘가족장례’ 문화가 어떻게 변할 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다.
현재 젊은 사람들은 ‘스몰웨딩’을 선호하고 있다.
장례문화도 이러한 새로운 유행에 발맞춰 사이버 조문, 사이버 부조금 등 ‘사이버 장례 플랫폼’을 활용한 ‘가족장례’ 위주로 변화된다면 어떨까?
웰다잉(Well-Dying)을 준비하는 나로서는 약간은 서운할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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