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제례 문화에 대하여 ‘제례(祭禮) 유감(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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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묵

우리의 제례문화는 유교문화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유교는 조상을 숭배하고, 부모를 숭배하는 효친사상을 근본으로 한다. 그래서 추석 명절 때는 그해 거둬들인 햇 곡식와 과일들을 모아 조상을 기리는 제례를 지냈고 이것이 점차 전통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옛날 어르신들은 종종 ‘살아도 부모 덕, 죽어도 부모 덕’이란 말을 하였다. 그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든 그 시절에도 조상님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제사나 차례 때가 되면 귀한 음식들을 정성껏 마련하였고 어린 시절의 추석 명절은 귀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즐거운 날로 기억에 남아 있다.

추석 명절의 즐거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은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사교의 장(공간)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이었기에 친지들과의 소통의 부재는 서로간의 거리감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멀리 있는 친인척보다 가까이서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이웃이 더 가깝다는 ‘이웃사촌’이란 말이 생긴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추석명절만큼은 교통의 불편함이 무색하게 멀리 있는 친지까지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의 못다한 회포를 풀어낸다.

그래서 우리의 추석 명절은 더욱 전통을 이어가는 의미와 더불어 가족간의 화합의 장이 펼쳐지는 미풍양속의 유산으로 존속되어야 마땅하다.

제사상에 대한 유감

지금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시대적 흐름에 대가족이 아닌 소규모 가족 단위가 주를 이루는 시대가 되었다. 그 때문에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로부터 제사 의례를 배우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격식을 갖춘 제례를 지내는 것을 무척 어려워한다. 그래서 제례상을 차릴 때에도 의견 다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북망산천(北邙山川)이란 말처럼 영가(靈駕)들은 북쪽에 계신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는 조상님들이 계신 북쪽을 향해 상을 차려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오른쪽이 동쪽, 왼쪽이 서쪽으로 정리가 되고,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오른쪽, 흰 과일 왼쪽), 두동미서(頭東尾西, 생선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처럼 격식에 맞춰 상을 차릴 수 있다.

이후에 이어지는 절의 순서도 매우 까다롭다.

강신, 참신, 헌주, 독축, 아헌, 종헌, 첨작, 삽시정저, 합문, 계문, 헌다, 철시복반, 사신, 철상, 음복 등 그 순서만 해도 외우기가 곤란할 지경이다. 그래서 요즘은 격식이 점차 간소화 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제 제례문화도 시대에 맞춰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명절 때면 대체휴일 정책과 징검다리 휴일로 인해 장기간 연휴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즈음에는 해외여행을 계획한 사람들로 인해 인천공항이 무척 복잡하다. 이 말은 즉 제사를 안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나 형식적인 의식이니 해외에서 제사를 지내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로 와닿는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니터에 안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절을 올리는 새로운 제사의 형태가 이미 만연하고 있는 지도…….

벌초와 선산에 대한 유감

추석이 가까워지면 의례히 고속도로가 정체가 시작된다. 조상들의 묘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다. “부모님 묘에 쑥이 많이 자라면 집안이 쑥대밭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여전히 조상님 봉분에 풀이 넘쳐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묘 봉우리에 자란 쑥을 일일이 손을 뽑아내고 나머지 풀은 제초기로 베어주며, 묘 주위를 말끔하게 정리한다. 이렇게 봄에 한 번, 추석 전에 한 번 벌초를 해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벌초도 점점 옛말이 되어가는 것 같다.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 납골문화로 시대가 변화되고 있는 현재의 장묘 패러다임으로 인해 조상의 묘를 정돈하며 은덕을 기리는 ‘벌초’라는 우리의 미풍양속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때때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더구나 지금은 조상의 묘를 매장하는 선산(先山)도 점점 사라질 전망이라 안타까움이 더하다. 바뀐 묘지법 때문에 자신의 산에 부모의 묘를 쓰는 것조차도 어렵게 변한 지금, 조상과 후손을 이어주는 교차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효친 사상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 아닐까 싶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은 북한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유해 200구를 송환했었다. 이렇듯 서양의 문화도 유골(遺骨)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빨리 그 의미를 지워버리고 있는 듯하다.

제사와 차례 시간

제사를 지낼 때 흔히 4대봉사(奉祀)라는 말을 한다. 즉 제사는 부모로부터 고조부모까지의 4대까지만 모신다는 의미다. 이는 조선 명종 때부터 문공가례(文公家禮)의 지침에 맞춰 행해진 관례로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사 의식이다.

4대까지는 집안에서 제사를 모시고 5대 이상의 제사는 조상의 묘소에서 10월 묘제, 또는 시제(時祭)를 지낸다. 일 년에 한 번 10월에 묘소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여 세일제(歲一祭), 세일사(歲一祀)라고 부르기도 하며, 관행적으로 시제(時祭), 시사(時祀)라고 한다.

제사는 보통 밤 11시에 올린다. 밤 11시는 영가(靈駕)와 귀신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첫닭이 울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와 차례는 영가들이 있는 시간 안에 치러야 의미가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차례는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올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오전 8시나 9시에 차례를 지내기 일쑤다. 제사 또한 마찬가지다. 다음날 자식들의 출퇴근 시간 때문에 초저녁에 일찍 끝마치기도 한다. 그래서 조상들이 밥이나 술 한잔 얻어먹으려고 내려오면 이미 상이 다 치워져 쫄쫄 굶고 돌아간다는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이렇듯 점차 제례문화의 형식과 의미들이 잊혀지는 것을 보면 약간 씁쓸하다.

제사상에 피자를 올려도 되나요?

“피자를 차례상에 올려놓았는데 흉이 되나요?”라는 질문에 어느 박사님이 “그건 당연하다”라고 대답한 기억이 난다.

지역별로 차례상에 올라가는 필수 음식들이 있다.

경기도는 고기와 통북어, 대구는 참상어, 전라도는 홍어가 빠짐없이 올라갔고 최근 제주도에서는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도 차례상에 올린다고 한다. 이렇듯 지역이나 환경적인 영향으로 인해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옛날부터 지방마다 제각각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무엇을 올리든 정성이 깃든 음식이라면 전혀 흉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 관례적 의식보다 차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차례상을 차릴 때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차례를 지내는 의미나 전통적 형식만큼은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나의 손자들에게는 “내 제사상에는 요구르트와 햄버거를 반드시 올리거라!”라며 좋아하는 음식을 미리미리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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