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 편찬 878돌 및 ‘역사의 날’ 기념식

‘삼국사연구회’ 주최, 2월 1일, ‘우리역사교육원’에서 진행

우리나라 국보이자 유네스코 등재 작업까지 하고 있는 <삼국사(三國史, 국보 제322-1, 2호)> 편찬 ‘878돌’과 ‘역사의 날’ 기념식을 지난 2월 1일(목)일 오후 3시에 가졌다.
‘삼국사연구회’와 ‘우리역사교육원’이 서울시 동작구 동작대로 소재 우리역사교육원에서 역사 관계자들이 모여 기념식을 진행했다. 이 행사는 왕명을 받아 <삼국사(金富軾撰三國史)> 편찬에 참여했던 김부식 등 14인에 대한 예를 올리고 이어 김부식이 삼국사를 편찬해 왕(고려 17대, 인종 23)에게 진상한 2월 4일을 우리역사에 대한 ‘기록의 날’로 선포했다가 올해부터 ‘역사의 날’로 개정했다.
이날 행사에 삼국사 편찬작업에 관여한 정습명의 후손 정정화(영일정씨 교리공파) 씨가 참여해 초헌을 하고 전서울시교육위원회장이었던 강호봉 선생이 아헌을 했다.
이 행사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적 자산이자 자존감인 <삼국사(기)>의 진가를 확인하고 이를 편찬한 선조들에 대한 예를 올리는 의미다.
향후 <삼국사>가 바르게 전수되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취지로 삼국사연구회 등이 합동으로 2012년부터 매년 기념식을 겸해 왔다.


<삼국사>는 국내외적으로 편찬일이 기록(<고리사>권 17)된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사서다.
1146년 2월 4일[陰 乙丑(1145)年12月壬戌(22)十二月壬戌金富軾進所撰三國史 丙寅(1146)年2月4日] 편찬한 <삼국사>는 국내 및 해외 어느 사서 중에 편찬 기록이 적혀 있는 최고 오래된 정사서다. <삼국사(金富軾撰三國史)>는 1135년에 시작 1145년 편찬을 마치고 1146년 2월 4일(음력 1145년 12월 22일) 왕에게 진상한 날자가 나오는 유일한 사서로 이날을 정해서 ‘삼국사연구회’와 ‘우리역사교육원’이‘역사의 날’ 기념식 행사를 지내왔다.
<삼국사> 편찬에 참여한 이는 고려 중기 인종(17대)의 명에 따라 김부식의 주도하에 최산보(崔山甫)·이온문(李溫文)·허홍재(許洪材)·서안정(徐安貞)·박동계(朴東桂)·이황중(李黃中)·최우보(崔祐甫)·김영온(金永溫) 등 8인의 참고(參考)와 정습명(鄭襲明)·김충효(金忠孝) 2인의 관구(管句, 관리) 등 11인의 편사관에 의해서 편찬됐다. 그리고 2년 후 김거두, 최득경, 민개 등의 재판(再版) 작업이 있어 오늘날 이 책이 전해 올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 책임 편찬자인 김부식은 진삼국사표(進三國史表), 각 부분의 머리말 부분, 논찬(論贊), 사료의 취사선택, 편목의 작성, 인물의 평가 등을 직접 담당했다.


<삼국사(三國史)>는 해모수(BC239년)부터 경순왕(AD936년)까지 1,175년간의 역사를 기전체로 우리역사를 나타낸 김부식 편찬(金富軾撰)인데 본기 28권(고구려 10권, 백제 6권, 신라·통일신라 12권), 지(志) 9권, 표 3권, 열전 10권 등 총 50권으로 구성돼 있다.
오재성 삼국사연구회장은 ‘김부식을 기리는 차원에서 삼국사 비를 세우고 삼국사 등 역사관련 박물관도 세워 우리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세계 속에 살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헌을 한 한문수 선생은 삼국사 편찬 작업에 참여한 14인의 족보를 추적하고 그들의 후손과 업적을 설명하면서 내년부터는 이들 후손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엔 허홍재 후손이 기념식에 참여했다.
‘역사계도 그렇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 삼국사에 대한 관심 부족은 물론 홀대하고 있는 상황하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 기록은 범 아시아적인 역사인데도 대부분의 사가들은 <삼국사>를 한반도로만 압축해서 이 땅에 적용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한반도의 실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서논란까지 드러내는 무지성을 내 보인다. 이 삼국사의 기록은 대륙의 유·연·제·로·오·월나라가 있던 지역 그곳에 사로신라와 백제 고구려 그리고 가야와 왜까지 포진해 있던 동이의 역역을 인정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는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기술할 때 불교입장에서 대륙에서 활동한 승려들을 이 땅으로 가져 오기 위해 한반도로 압축할 때부터 오류가 시작됐다는 것이 <삼국사> 연구가인 오재성 삼국사연구회장의 지적이다. ’<삼국사>가 정사이고 <삼국유사>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불교의 입장에서 쓴 콘텐츠 성이 강한 소재를 차용해 왔다‘고 오재성 삼국사연구회장은 말했다.

취재 | 김민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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