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갑자 동방삭이 잡는 이야기

역발상의 지혜, 수면연장 설화

삼년고개 구르는 이야기!
그런 고개가 있으면 나도 가서 몇 번이나 구르고 싶다.
경상도 어느 곳에 삼년고개가 있었는데, 예로부터 이곳에서 넘어지면 삼 년 내에 죽는다는 말이 있었다. 한 노인이 집으로 가다가 잘못해 삼년고개에서 넘어졌다. 크게 낙담한 노인이 자식들을 불러 유언을 하던 중, 이웃의 의원이 와서 그 고개에 가서 여러 번 더 넘어지면 넘어진 만큼 더 살 수 있다는 계책을 내놓았다. 노인은 과연 그렇겠다고 여겨 다시 삼년고개로 가서 몸을 마구 굴리며 빌었다. 그러자 공중에서 ‘걱정마라. 동방삭도 여기서 천 번을 굴렀다’라는 말이 들렸다.
<삼년고개설화>는 가파른 고개에 얽힌 지명전설에서 역발상의 지혜를 강조한 웃기는 이야기(笑話)로, 광복 후 국정 교과서에서는 점차 아이의 지혜와 슬기, 또는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모됐다.
삼년고개에서 넘어져 삼 년 이내에 죽을 위기에 처한 노인이 의원, 친구, 소년, 아들 등의 지혜로 오히려 수명을 연장하게 됐다는 설화이다. 역발상의 전환이 강조되고 있다.
이 설화는 수명연장담이 풍부한 한국 구비문학의 토양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아울러 역발상의 지략을 낸 주체가 아들, 손자 등으로도 나타나는 변이는 효(孝)의 관념과 문화가 특히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여기서 장수의 상징인 동방삭(東方朔)이 등장하고 있다.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은 불로불사를 상징하는 고대 인물로 18만 년을 살았다고 한다.
동방삭이 서왕모(西王母)가 심은 복숭아를 훔쳐 먹고 인간계로 내려와 삼천갑자, 즉 18만 년을 살았으므로 ‘삼천갑자 동방삭’이라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동방삭 설화’는 크게 연명설화 형태와 저승 차사에게 잡혀간 내력이라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에 동방삭이 목숨을 연장하게 된 내력은 모두 저승사자를 잘 대접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밥·신·노자 등을 저승사자의 숫자대로 준비했다가 먼 길을 걸어오느라 지친 사자를 대접하는 것이다. 그 결과 대접을 받은 저승사자는 인정상 그를 잡아갈 수 없어서 저승의 명부에 단명할 삼십 갑자인 동방삭의 수명에 한 획을 삐쳐서 십자(十字)를 천자(千字)로 만들어 삼천갑자를 살도록 수명을 연장시켰다.
걸출한 외모, 익살스러운 언변과 거침없는 행동 때문에 동방삭은 생존할 당시부터 이미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특히 동방삭의 해학과 말재주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원전 154년부터 기원전 93년까지 환갑 조금 넘게 살았다.
구전설화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며 널리 전승된다. 동방삭이 유독 우리나라 설화에서 얻어터지고 있다.
염라대왕이 저승사자 대장 강림도령에게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는 동방삭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동방삭이 워낙 오래 살아 지혜가 뛰어나니 보통 방법으로 잡을 수 없겠다 생각하여 꾀를 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냇가에서 숯을 씻고 있는데 어느 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다가 와 ‘왜 숯을 씻고 있는가?’하고 묻기에 강림도령은 ‘하얗게 만들려고 그럽니다’ 대답하니 ‘내가 3천갑자나 살았는데 이런 놈 처음 봤다’며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놈이 동방삭인 줄 알아보고 잡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설화로 본디면 숯을 씻었다는 설화가 있는 곳이 성남에서 서울로 나가는 탄천 이외도 김유신이 계백을 치러 갈 때 탄현을 넘었다고 하는 금산에서도 같은 설화가 전송되고 있다.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격변기 사회상을 반영한 것일까?
이 설화는 내세보다는 현세적인 삶에 가치를 두는 우리 무속의 세계관과도 일치하고 있다. 제주도의 ‘멩감본풀이’, 전라도의 ‘장자풀이’ 등의 서사무가는 이 유형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료들이며, 고대소설 ‘당태종전’ 등과도 관계가 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탄천(炭川)
숯골에서 발원을 해서 한강에 유입됐던 지천이었던 탄천의 변화

경기도 광주군 세촌면 탄동이라는 동네가 원래 이름이 숯골이었다, 그 탄동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하천을 탄천이라고 불렀다. 이 개천의 이름을 검내 혹은 숯내, 숫내, 탄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성남시의 옛 지명이었던 이 탄리가 탄동으로 대한실권기에 바뀌게 되는데 현재로서는 성남시 태평동, 수진동, 신흥동 일대가 바로 이 탄리에 해당된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독을 구워내서 독정이 혹은 숲골 이런 명칭으로 불렸던 마을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이 동네에 흐르는 개천이라고 해서 검내라고 불렸던 것이 한자화되는 과정에서 오늘날 탄천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강의 제1 지류로서 길이가 35km에 달하는 긴 하천이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청덕리에서부터 발원해서 북쪽으로 흘러 한강에 흘러내려가면서 성복천, 동막천, 분당천, 운중천, 야탑천, 여수천, 상적천, 대원천, 단대천, 세곡천 등 많은 지천들과 합류된다. 강남구 대치동 부근에 와서는 양재천과 합하고 오늘날의 강남구와 송파구의 경계를 이루면서 흐르다가 청담동과 신천동 사이의 한강으로 흘러드는 것이 바로 이 단천에 해당 된다.
오늘날 성남시 태평동은 일찍이 광주군 세촌면 탄동이었던 곳으로 1973년도에 와서 천하태평의 좋은 동네라는 의미를 갖는 태평동으로 개칭이 됐다.
예전에 탄동의 흔적은 행정동명에서는 사라지게 됐다. 다만 이 지역이 예전에 탄동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하천의 이름이 탄천으로 불리어져서 한강으로 유입이 되게 된다.
당시 송파강과 신천강이 이렇게 함께 흐르고 있었던 잠실 일대에 흐르는 것이 탄천이 되겠고 옆으로 흘러들었었던 것이 양재천이었다. 그래서 당시만 하더라도 탄천과 양재천이 부리도 쪽으로 흘러 들어섰던 것이 1971년도에 송파강 일대가 물길이 바뀌어서 송파강 대신 신천강이 주강으로 바뀌게 되면서 현재의 모습은 탄천과 양재천이 유입이 되어서 삼성동을 거쳐서 한강으로 유입되는 구조로 돼 있다.
지금 수서동이라고 하는 것도 이 탄천 서쪽 지역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수서동이라고 하는 명칭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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