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생명을 건 저항?

당랑권법인가? 당랑비권인가? 당랑거철(韓鄭拒轍)은 무모함인가?

생장의 시절 여름이 가고 다가서는 가을에 대한 저항?

아니면 태풍 ‘힌남노’에 대한 저항인가?

어쨌든 거대한 힘에 맞서는 저항이고

그것도 혼자 막아서고 있다

‘불세출의 용사’

그래 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어느 별에 쟁여놓은 용기라는 파장에 기대냐?

대개 강한 것 앞에 서면 도망가게 유전자를 심어주었는데

그분이 너에겐 잘못 심어 주었냐? 아니면 네가 도둑질한 Dna인가?

결국 너의 잘록한 관절도 꺾이고, 톱니바퀴 앞다리의 위협도, 독을 한껏 품을 수 있는 세모대가리도 무자비한 발바닥에 밟히고 짓이겨 져서 가루로 흩날릴 것이고

거대한 힘에 너는 사라지지만

거부하는 몸짓만 남아 허공에 둥둥 떠다닐 것이다.

먼 훗날 그 먼 훗날 지구별을 떠날 때

그 무자비한 힘의 발자국에게 그분은 물을 것이다

너에게 준 힘을 그렇게 작은 몸부림 하나 헤아리지도 않고 단발에 망가뜨렸는데

왜 그랬느냐고 물으시면 그땐 뭐라 대답할까?

그때 무자비한 발자국의 대답이 우리네 삶의 가치가 듬뿍 묻어날까요?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

초록색과 갈색으로 헝클어진 사마귀 한 마리.

녀석이 앞발을 들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낫 모양의 앞발을 들고 대가리를 좌우로 흔들어 대는 당랑권법! 완성했을까? 겁이라고는 없다. 사마귀의 자세는 오만하고 당당하다.

무모한 것은 용감한 것일까.

앞으로 나서기만 할 뿐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자기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강자에게 함부로 덤비는 것은 사마귀 한 마리의 분노가 상징적인 의미라해도 정말 용감무쌍함이다.

오죽하면 수레바퀴를 막아선다는 당랑거철(韓鄭拒轍)이라는 고사성어까지 생겼을까.

모든 생명체는 삶의 의미를 누려보지 못하고 오직 종족 번식에 그 핵심이 가있는 듯하다. 그런 만큼 그 두 개체(세계)의 합일에 존엄함을 말해야 한다. 성(性)을 비하하거나 기능으로만 떨어드리면 죄악이다. 이 지구별은 무기물과 생물체가 서로 얽혀서 꾸려 가는 별이다.

사마귀는 특별한 생물체다. 교미하고 나면 수컷을 잡아먹는다. 그 대가로 200여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죽는 수컷의 기분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생물학자들의 실험결과에 의하면 사마귀 수컷이 교미할 때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건강한 자손을 얻기 위한 ‘살신공양’이라고 한다. 식물의 사랑은 매우 수동적이고 참고 참으면서 기다리는 사랑인데 비해서 곤충의 사랑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곤충과 새 중에는 암컷에게 먹이를 바쳐서 환심을 사는 수컷이 많다. 제 몸까지 바치면서 자기 유전자를 남기려고 진화해 왔다고 한다.

베짱이와 귀뚜라미는 두툼한 날개 살을 암컷이 뜯어먹게 하고 사마귀는 머리를 통째로 암컷에게 선물한다. 수컷의 희생은 번식 성공률을 높이고 종의 번식에도 유의하므로 수컷들은 온갖 방법들을 동원해서 자기 유전자를 남기려고 진화해왔다. 이렇게 수컷을 잡아먹은 암컷의 새끼가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고 더 큰 알을 낳았다고 한다고 생물학자들은 말한다.

생물학자들은 ‘수컷의 희생이 번식 성공률을 높인다. 종의 번식에 유익하다’라고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자기 분수도 모르고 앞으로 나서기만 할 뿐 뒤로는 물러서지 않는,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마귀가 때로는 부럽다. 부디 그 기백 잃지 말기를!

글‧사진 | 송영조(시인, 식물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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