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그들이 갔던 칸들을 통과해서 다음 칸에 가자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한꺼번에 울어대는 수많은 동물들의 괴성 같은 이상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

“엄마 저기 좀 봐!”

아이가 다음 칸의 문을 가리켰다. 문 위의 조그만 유리창으로 건너 쪽 칸 안이 보였다. 그 칸은 컨테이너로 된 화물칸 같았는데, 안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갇혀 있었다. 그런데 놈들이 규칙적인 가격으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대며 울부짖고 있었다.

“왜 저러지?”

신유리가 까치발을 하고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니 사육사 같은 사람이 동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꼬챙이로 코끼리의 등을 찍기도 하고, 불이 뻔쩍 튀어나오는 전기 채찍으로 사자와 호랑이를 때리기도 하고, 몽둥이로 어떤 동물들은 때리고, 또 어떤 동물들은 산채로 껍질을 벗겼다. 또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들은 잡아서 날개를 가위로 잘랐다. 남자가 각 동물에게 다가갈 때마다 그 동물은 공포 가득한 눈빛으로 몸을 움찔거리고는 파르르 떨었다.

“저 사람, 뭐하는 짓이야! “

“안 돼! 가지마.”

하지만 태양이는 제 엄마가 미쳐 말릴 새도 없이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녀는 아이를 잡았지만 기차에 잘린 손가락 때문에 힘을 못주고 그만 놓쳐버렸다.

“어?”

안으로 들어서던 치우는 어이없어하며 두리번거렸다. 객실엔 코끼리 사자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텅 빈, 컨테이너로 된 화물칸일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화물칸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객실 안의 사방이 커다란 그물로 둘러쳐졌다. 그물 안에는 좀 전에 보았던 코끼리와 사자, 호랑이, 토끼 등 수많은 동물들이 괴성을 지르며, 비좁은 공간에서 난폭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때문에 그들은 서로 부딪혔고 그때마다 코끼리는 코를 휘두르고 상아를 들이밀었고, 호랑이나 사자는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적으로 크르렁 거렸고, 바닥의 고슴도치는 가시를 세웠으며, 너구리와 같은 다른 동물들도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위에서는 커다란 새들이 엄청난 날개를 퍼덕거리고 꽥꽥거리며 이리저리 날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무리들처럼 분노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그들 가운데에 갇혀버린 치우는 공포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랐다. 동물들 사이에 끼어 코끼리 발에 밟히거나 사자에게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

“몸을 숙이고 틈새로 나와!”

신유리가 그물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이가 나오려고 하자 코끼리가 코를 아이를 쳐서 넘어뜨렸다. 사자와 호랑이도 당장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그물을 뜯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철사 줄처럼 워낙 튼튼해서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눈치 채지 않게 가만히 조금씩 기어!”

그녀가 또 소리쳤다.

그물망은 손에서 피가 나도록 당겨봤지만 꼼작도 하지 않았다. 이빨로 잡아 뜯으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물을 끊을 만한 뭐라도 혹시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열차 안을 이리저리 뛰며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한 쪽 구석진 벽에서 투명함에 들어있는 비상용 망치를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망치의 머리 부분은 다이아몬드로 되어있었다.

“이거라도……..”

그녀는 주먹으로 투명함을 부수고 망치를 꺼내들었다. 그런 다음 그물 앞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태양이는 그물이 있는 가장자리로 기어와 있었다. 아이를 잡으려고 코끼리가 코를 흔들어대며 앞으로 걸어왔다. 그 바람에 다른 동물들이 밀리며 그물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치우는 밟히고 불에 찍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그녀는 망치에 그물코를 걸고 죽을힘을 다해 당겼다. 그렇게 수차례 힘을 쓰자 그녀가 나뒹굴어지며 그물코 하나가 찢어졌다. 다시 옆의 코를 잡고 반복하자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수월하게 뜯겼다. 그렇게 하나하나 뜯어나가자 어느 정도 구멍이 커지며 아이가 겨우 나올 수가 있었다.

아이가 빠져나가는 것을 알아차리자 동물들이 화가 나서 괴성을 찔러대며 쫒아왔다. 하지만 이내 그물에 걸려버렸다.

“뛰어!”

신유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뛰었다. 아이는 다리를 절뚝거려 잘 뛰지 못했다. 뒤에서 온갖 동물들의 소리가 뒤섞인 무시무시한 소리가 쫒아왔다.

그들이 옆 칸을 지나 막 다음 칸 문을 열고 들어서려고 할 때 콰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커다란 코끼리가 그물에서 나와 옆에 붙은 문을 부수고 있었다.

“꽉 닫아!”

급하게 서두르니 문이 잘 닫히지 않았다. 어느새 커다란 코끼리를 선두로 하여 모든 동물들이 거의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을 겨우 문을 닫고 죽기 살기로 뛰었다. 다음 칸을 들어서려 앞문을 열 때 위의 문이 부서졌다. 그렇게 계속 아래쪽 문을 열면 위쪽 문이 부서지며 동물들이 몰려나오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큰일 났어. 저기가 끝인 거 같은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 칸이 막다른 맨 앞 칸일 거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칸이 나왔다. 그들이 뒤로 간 것은 분명 몇 칸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올 때는 아무리 달려도 자꾸만 새로운 객실이 나왔다. 기차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 것만 같았다.

한 참을 달린 뒤에야 그들의 좌석이 있는 첫 번째 객실이 나왔다.

“어떻게 이젠 끝이야.”

그곳이 막다른 칸인 만큼 이제 더 달아날 곳도 없었다.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 했다. 세별이는 문을 쿵쿵 치는 소리와 온갖 동물들의 괴성에 잠에서 깼다.

“일단 의자 밑으로 들어가자. 세별아 너도 빨리 밑으로 숨어.”

세 사람은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쿵 하고 문이 부서진 소리와 함께 동물들의 성난 울음소리, 우르르 몰려나오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동물들이 밀려나와 객실 안을 꽉 채웠다.

“크르릉!”

가장 먼저 사자의 포효소리가 객실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뿌우우”하고 코끼리가 대답이라도 하듯 소리를 냈다.

의자 밑에 웅크리고 있던 치우가 고개를 들어보니 사자가 아닌 호랑이가 의자 바로 앞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치우와 눈이 마주친 호랑이는 “어흥”하며 목구멍으로 낮게 크르릉 거렸다. 낮으면서도 어떤 소리보다도 위협적으로 들리는 소리였다. 당장 잡아먹을 포효하는 호랑이를 보며 태양이는 사색이 되어 오줌을 주르르 쌌다.

드디어 호랑이가 팔을 뻗쳐 의자 밑에 있는 치우를 획 하고 쳤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순간적으로 치우와 옆에 있던 신유리가 의자 밖으로 휙! 하고 밀려나버렸다.

다시 호랑이가 치우를 막 덮치려는 순간, 신유리는 손에 한지로 싼 뭉치가 잡혔다. 신유리는 그거라도 집어던졌다. 호랑이가 움찔했다.

한지가 풀어지며 마늘 쑥갓 고추 등이 흩어졌다. 호랑이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후다닥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어흥!”하고 크게 한번 울더니 저만치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바리와 신유리는 힘을 얻어 남은 쑥과 고추들을 집어 이리저리 다른 동물들을 향해 마구 던졌다. 동물들은 그들을 공격할 듯이 다가오다가도 그것들을 보면 움찔 거리며 다가오지 못하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동물들은 의자 주변의 공간만 남겨놓고 둥그렇게 남겨두고 모두 물러선 채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적인 자세로 으르렁거렸다. 앞에 선 놈이 뒷걸음질 치면 다른 놈들은 좁은 공간에 밀착되어 서로 부딪히면서도 앞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덩달아 뒤로 밀려갔다. 그 바람에 코끼리 발에 깔린 너구리가 끽끽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코리리가 발을 들자 간신히 빠져나온 너구리의 몸은 납작하게 쥐포같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1초도 안 되어 풍선에 바람을 넣듯이 점점 부풀더니 다시 원래대로 통통해졌다.

‘저것들은 실체가 아니다.’

순간 신유리의 뇌리로 그러한 생각이 스쳤다.

38

“혹시 누구 성냥 있니?”

아이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성냥이 있을 리 없었다.

“큰일 났다. 성냥이 있어야 하는데……..”

“아! 어쩜 있어.”

세별이가 갑자기 생각난 듯 엄마 잠바 주머니를 뒤졌다.

“성냥 있다. 아빠랑 바닷가에서 불꽃놀이 하면서 쓰던 거야.”

“야, 다행이다.”

신유리는 성냥을 켜서 쑥에 불을 붙였다. 쑥은 말라있어 불이 잘 붙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향긋한 쑥 향기와 연기가 객실로 퍼져나갔다.

동물들은 연기 곁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모두 뒤로 물러서며 구슬피 긴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우_”

자세히 보니 모두 상처로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코끼리는 꼬챙이에 찍힌 자국으로 몸에 흉이 선명했고 귀에도 구멍이 뚫려 찢겨있었다. 사자는 몸에 채찍 자국이며 불에 홀랑 그슬린 자국이 있었고, 너구리는 껍질이 벗겨지다 말아 너덜거리고 있었고, 날개가 다 뜯긴 잠자리며, 다리가 뜯기고 반 동강 난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습이 말이 아니어서 눈뜨고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어찌나 불쌍한지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다가가서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조금 있으니 연기 쪽의 가장자리부터 흐릿하니 동물들의 형체들이 사라져갔다.

“와, 신기해.”

“동물들이 연기 속으로 사라져.”

아이들이 놀라워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자, 코끼리, 오랑우탕, 너구리, 호랑이. 악어. 뱀……., 그것들은 모두 연기가 닿으면 실루엣처럼 변하다가 스르르 흐려져 마침내 연기처럼 되어 연기와 함께 사라져갔다.

“우와! 짱 멋져”

털을 곤두세우고 바닥에 엎드려있는 고슴도치 한 마리가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다. 신유리는 그것 까지 없애기 위해 손을 휘저어 연기를 아래쪽으로 몰았다.

“걔는 놔둬 엄마.”

치우가 얼른 고슴도치를 잡았다.

“앗, 따가워!”

“왜?”

“얘는 내가 데리고 있을래. 저번에 내가 키우던 거랑 똑같아. 엄마가 귀찮다고 마트에 갖다줘버렸잖아.”

치우가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는 고슴도치를 다시 살살 쓰다듬었다. 그러자 고슴도치는 세웠던 가시를 가지런히 눕혔다. 손바닥을 갖다 대자 마치 서로 알고 있던 것처럼 녀석은 아이의 팔을 타고 핸드 링을 하듯 쪼르르 올라갔다.

‘혹시 우리가 키웠던 그 고슴도치?’

신유리는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좀 전의 동물들이 모두 자신들과도 조금은 인연이 있는 동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동물 쇼 관람을 유난히 좋아해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 서커스장이며 동물원을 참 많이 다녔던 것 같았다. 사자나 호랑이가 전기 채찍을 맞으며 재주를 부리는 것도 여러 번 봤고, 코끼리 쇼, 원숭이 쇼, 앵무새, 물개, 돌고래 악어, 등등 동물 쇼라면 안 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또 낙타며 말은 물론 타조도 타보았고, 필리핀에서 코끼리 투어도 해보았다.

죽어가거나,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던 동물을 떠올리니 아이들 외투 안에 있던 너구리 털이며, 그녀 자신의 토끼털 조끼며 장갑 등등과 결혼 할 때 받았던 악어가방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 동물들이 왜 자신들에게 그렇게 공격적이었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신들이 특별히 동물을 해한 적은 없지만, 동물 입장에서 보면 좋아할 인연은 아니었다.

고슴도치는 아이가 애지중지 키우던 것을 그녀가 버린 것 이었다.

“아까 그 잠자리 보니까, 어릴 때 잠자리채 갖고 호수공원에서 잠자리 잡던 생각 나.”

태양이가 말했다.

“너 그때 잠자리 날개 뜯어갖고 아빠한테 혼났잖아.”

세별이 말에 태양이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개미 다리도 뜯었어?”

“애들 다 그래. 학교에서 오다 개미잡아서 부러뜨리기도 하고, 다른 것도 많이 갖고 놀아. 형민이가 그러는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병아리도 떨어뜨린데. 우유폭탄처럼. 저번에 어떤 애는 죽은 쥐를……..”

“그만해!”

신유리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져 인상을 찌푸렸다.

와우, 다 없어졌어.

동물들 흔적 없이 다 사라진 뒤, 고슴도치를 품에 안은 치우는 주먹을 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신유리는 빨간 마른 고추도 태워 연기를 피워 사방 여기저기에 두었다.

“고추로 뭐하게? 이제 다 없어졌는데.”

“붉은 걸로 잡귀 막는 거야.”

신유리는 일을 마치고 좌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치우는 오줌을 싸서 축축한 바지 때문에 울상이었다.

“크, 바지 어떡해. 갈아입을 옷도 없는 데”

치우가 어정쩡하게 서서 손가락으로 바지의 젖은 곳을 잡아당기며 볼 맨 소리를 했다.

“바지가 문제가 아니라, 이 팔뚝 좀 봐”

치우의 팔은 아까 호랑이한테 긁힌 발톱자국으로 깊이 파여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자신이 다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 쓰라려!”

아이는 그제야 얼굴을 찡그리며 우는 소리를 했다.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

세별이 옆에서 한 소리 했다.

“이제 좀 쉬자”

신유리는 옆의 빈 의자 하나를 골라 자리를 잡고 누워 침대로 삼아 잠을 청했다. 태양이도 의자에 누워 고슴도치를 품에 안고 이내 잠이 들었다. 바리만이 깨어 치우 앞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세별이는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이상한 상황들을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태양은 어느 정도 현실로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도 뭔가를 조금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별은 아무리 생각해도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엄마 말마따나 오랜 시간 긴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날이 밝고, 이 기차가 멈추면, 잠이 깨고, 꿈에서도 깨어나려나?’

세별이는 혼자 깨어 그런 생각을 하며 창밖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유리창에 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비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노인이 서있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세별이는 노인을 향해 곤손하게 꾸벅 절을 했다.

“할아버지 도사님이시죠, 그죠. 그러신 거 같아요.”

“허허허허허”

노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아까 그 동물들 할아버지가 혹시 도술 부리신 거 아니에요? 전래 동화책보면 도술로 혼내주는 그런 거 많이 나오잖아요.”

“허허허, 재미있는 아이구나. 아까 그것들은 짐승만도 못한 혼령들이다. 학대받은 동물처럼 온 몸이 상처투성이지, 그건 자신이 학대한 동물들이야. 그런데 이를 어쩌누. 너는 마고성을 가려면 앞차를 탔어야 했는데, 네 엄마의 다이아몬드 욕심 때문에 차를 놓쳐 잘못 탔구나.”

“아!, 이 기차는 그럼 어디로 가는 기차에요.”

“지옥으로 가는 열차란다. 탐욕이 너희를 지옥행 열차에 태웠구나.”

“헉!”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디서 내릴 수 없나요”

“이곳 열차는 한번 타면 내릴 수 없어. 지옥에서나 멈출 텐데, 그곳은 한번 들어가면 누구도 영원히 나올 수가 없지.”

세별이는 공포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노인은 그들 일행을 보며 혀를 쯧쯧 차고는 다른 칸으로 걸어갔다.

39

“엄마, 일어나 봐. 큰일 났어.”

세별이는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웠다.

“어? 어어.”

신유리는 기차가 종착지에 도착했나 싶어 깜짝 놀라 일어났다. 그러나 기차는 아직까지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기차가 비행기처럼 구름 위를 달리고 있었다. 구름은 온통 바다처럼 깔려있었고, 저만치서 숲이 우거진 커다란 섬 같은 것들이 배처럼 여기저기 떠있는 것이 보였다.

“야! 꿈인지 생신지는 모르지만 진짜 멋있다. 태양이도 깨워서 보라고 해야겠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이 기차가 지옥행열차래”

“뭐? 누가 그래”

“어떤, 아! 저번에 봤던 그 도사할아버지 있잖아. 그분이 그랬어. 엄마가 다이아몬드 때문에 타야할 열차를 놓친 거래.”

“말도 안 돼. 저렇게 경치가 멋진데 무슨 지옥이야. 천국행이라면 또 몰라.”

신유리는 세별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태양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우와! 우리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거야?”

아이는 창밖 풍경을 보더니 감탄으로 소리쳤다.

“야, 하늘에 무슨 저런 섬이 있겠어.”

“그럼 저기가 어디야?”

“글쎄”

바로 그때 열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갑자기 급 하강을 하는 것이었다.

“아 아아아-”

“아아!”

세별이만 이를 꽉 다물고 태양이와 신유리는 비명을 질렀다.

한참을 내려간 기차는 하강을 멈추고 터널 속을 달리고 있었다. 밖을 보니 마치 지하철인양 컴컴한 터널을 계속 달렸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 돼”

신유리가 초조해하며 세별을 향해 말했다

“기차가 움직이는데 어떻게 빠져나가”

태양이가 끼어들었다.

“네 피규어 그거로 안 되나?”

태양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피규어가 없어”

“뭐?”

“아까 엄마 철길에서 구하느라 난리쳐서 다 빠져버렸나 봐.”

“할아버지를 찾아보자. 틀림없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 할아버지도 타셨을 거 아냐. 설마 지옥을 가려고 탔겠니.”

그들은 일어나 할아버지를 찾아 다음 칸을 향했다. 그런데 다음 칸 문을 열 필요도 없이 그들은 끝 좌석에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는 의자위에 올라 앉아 눈을 감은 채 좌선을 한 자세로 있었다. 사실 그는 시공을 초월하여 마음으로 어디든 가고 어디든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 수 있는 선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신유리가 인사를 했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신유리는 다짜고짜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잠시 탐욕에 눈이 멀었습니다. 이 열차가 지옥행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제발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선생님. 선생님께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소신공양을 할 수 있겠소.”

“하겠습니다. 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다 하겠습니다.”

“음-”

노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이들을 어른들의 얘기가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음이 이미 그대의 반을 구했다. 그대에게 탐욕을 안겨 준 그대의 눈이 화근이로다. 눈을 뽑아 천지신명께 공양시오.”

“감사합니다. 그러겠습니다. 이 아이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엄마!”

“안 돼. 미쳤어.”

이번에는 말귀를 알아들은 세별이와 태양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바로 그때 열차의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여기서 서나 보다. 빨리 내리자.”

“열차는 서지 않아, 곧 다시 빨라질 걸세.”

노인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40

“어쨌든 우리는 내려야 돼. 속도가 느려진 게 기회라는 얘기잖아. 문으로 빨리 가자.”

신유리는 자리에 가서 가방을 챙겨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객차의 출입구로 향했다.

“잠깐, 고슴도치!”

태양이가 자리로 뛰어가 의자 밑 구석에서 자고 있는 고습도치를 챙겼다.

“앗, 따거!”

아이는 가시에 찔리면서도 고습도치를 안았다.

“그냥 뛰어 내리자. 태양이 먼저 뛰어!”

“여기서?”

태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얼른!”

“무서워.”

세별이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컴컴한 철길과 시커먼 벽을 내려다보았다.

“빨리 내려, 지옥에서 영원히 지낼 거야?”

“아니, 차라리 여기서 죽지.”

태양이가 뛰어내리기로 결심을 하고는 문의 난간 끝에 섰다. 바로 그때 태양이 품에 있던 고슴도치가 빠져나와 먼저 뛰어내렸다.

“어 안 돼, 도치야!”

“엄마 도치 기차에 치었으면 어떡해.”

태양이는 뛰어내리려던 것도 잊은 채 울상을 지었다. 순간 기적처럼 열차가 멈췄다. 도치가 철로를 건너가는 바람에 자동적으로 멈춘 거였다. 그것은 단 몇 초밖에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 셋이 뛰어내리기엔 충분했다. 그들은 서둘러 내렸다. 기차는 신유리가 내리자마자 쏜살같이 가버렸다.

기차가 간 다음에 보니 철길 건너편에 고슴도치가 있었다.

“어, 도치야!”

고슴도치는 치우가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쏜살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치우는 고슴도치가 사라진 방향으로 따라 뛰어갔다.

“야야, 조심해. “

신유리가 태양이를 향해 소리치며 세별이 손을 끌고는 따라 뛰어갔다.

“완전 기적이야. 고슴도치 땜에 기차가 선 거 같아. 도치가 철길을 건너니까 안치려고.“

“그러게, 도치 아니면 못 내렸겠어. 세상 모든 것이 자기 행동에서 인과가 따라오는 거 같다.”

“그런데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가야 되는지 모르겠네.”

신유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태양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누나! 여기 나가는 길 있어”

“가보자.”

신유리가 딸의 등을 밀며 발걸음을 뗐다.

“거기 나가면 마고성이 있는 데라면 좋겠다.”

하고 세별이가 중얼거렸다.
“엄마, 우리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도 기차나 뭐가 올까?”

세별은 갑자기 돌아갈 일이 걱정 되는 모양이었다. 임무라는 소리를 들으니 신유리는 자신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한 엄청난 임무를 안고 떠나온 영웅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독수리 오형제, 아니 독수리 삼형제 같지.”

“독수리 삼형제가 뭐야?”

“그런 게 있어”

신유리는 아이와의 세대 차이를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철길 건너 터널 벽 쪽으로 얼마쯤 가니 사다리가 있었다. 그들이 사다리 쪽에 가니 태양이와 고슴도치가 있었다. 그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고슴도치는 길을 안내하듯이 조금씩 앞서가서 서곤 했다. 얼마쯤 그렇게 가자 터널 지붕이 나왔다.

“애들아 저기 봐.”
신유리는 뒤를 가리켰다. 그곳을 보니 터널은 거의 땅 속에 묻힌 거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산 같은 곳에 올라와 있었는데, 그 아래는 끝없는 급경사의 낭떠러지가 있고 그 아래는 망망대해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반대편으로 가 보았다. 그런데 그쪽은 바다가 펼쳐진 낭떠러지가 아닌, 구름이 펼쳐진 낭떠러지였다. 구름 밑으로 물위의 그림자처럼 똑같은 산의 모양이 흐릿하게 비쳤다. 아마 거기에도 똑 같은 산과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그 산에선 어디로도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산에 갇힌 거였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별에 온 것 같아.”

세별이가 말했다.

“이 와중에 넌 그런 낭만 같은 소리가 나오니.”

신유리가 구시렁거렸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 모르겠다.”

그녀는 갑자기 암담해졌다. 그런데 태양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엄마 이 아래로 길이 있어.”

“그래?”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 가까이 아래쪽으로 커다란 나무기둥 같은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옆으로 이지저리 늘어진 나무줄기들은 충분히 외나무다리 역할도 할 만치 굵었다. 줄기 둘레에는 칡넝쿨 같이 생긴 덩굴이 잎 채로 친친 감겨있었다.

“내려가 가보자”

“헉! 떨어지면.”

“아자, 아자! 할 수 있다!”

신유리는 애들을 앞세워 뛰어내리게 했다.

“조심, 조심!”

떨어지면 바다로 빠지듯 그대로 구름 아래로 빠져 박살날지도 몰랐다. 동화책을 보면 구름을 타고 놀기도 하고 그러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본 현실은 결코 그럴 것 같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먼저 태양이가 뛰었다. 그의 어깨엔 어느 틈에 와 있었는지 고슴도치가 올라가 있었다.

“쉬워. 뛰어봐!”

무사히 뛰어내려 옆의 나무줄기로 가서 앉은 태양이 나머지 사람들은 격려했다.

그들은 모두 나무를 타고 내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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