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그곳은 익숙한 숲이었다.

“우리 혹시 원위치로 온 거 아냐?”

“그러게. 뭔가, 도로아미타불 같다.”

“우리 새됐어.”

하지만 그곳은 섬이었다.

섬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온통 바닥에 이끼가 수북했다. 한참을 헤집고 다녀도 생명체라고는 나무들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엄마, 여기가 설마 마고의 허달성은 아니겠지?”
“절대 아니지”

그런데 어디선가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커다란 바위가 고위 돌처럼 묘하게 세워져있었다. 바위 아래로 비스듬히 커다란 굴 같은 것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들은 소리에 이끌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살금살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부러 만든 지도처럼 통로가 굉장히 길었다. 길은 아래쪽으로 하강하는 식이었다. 계속 따라 내려가니 운동장처럼 커다란 광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바닥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웅덩이들이 나란히 늘어서있었다.

그 많은 웅덩이들 사이 붉은 머리와 파란색 피부를 가진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몸을 최대한 숙이고 웅덩이들 사이를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런다고 안보일리야 없겠지만 상대를 알 수 없으니 일단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앞쪽으로 돌아가서 보니 그는 얼굴 가운데에 커다랗게 눈만 하나 박혀있는 외눈박이 괴물이었다. 입은 있으나 코도 없고, 귀도 없었다. 머리 위는 붉었지만 머리카락은 아니었다.

“산해경에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 같다.”

신유리가 소곤거렸다.

“단안증, 싸이클로피아cyclopia.”

태양이가 제 엄마를 향해 말했다.

“<과학문화>에 나와. 산해경이나 신화에 나오는 싸이클롭스나 이상한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보면 다 장애인이야.”

태양이가 조그맣게 소곤거렸다.

“참나”

세 사람은 계속 앞을 주시하며 그 괴물을 관찰했다.

괴물의 몸 앞 아래쪽으로 털 없는 꼬리 같이 생긴 기다란 것이 남자의 거시기처럼 징그럽게 달려있었다. 그것을 그는 배에 있는 자신의 배꼽 같이 생긴 구멍에 밀어 넣고는 숨을 헉헉거리고 묘한 신음 소리를 땅 전체가 울리도록 뱉어냈다. 그것은 여자소리와 남자소리가 섞인 것 같은 희한한 이중 음이었다. 순간 신유리는 어쩐지 민망하여 두 손으로 아이들의 눈을 가렸다. 그는 어찌나 그 일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는지 그들이 거의 가까이 다가와서 보고 있는 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에 남자가 꼬리를 꺼내자 구멍에서 작은 메추리알 같은 것이 투둑! 투둑! 하고 하나씩 미끄러져 나왔다. 마치 닭이 알을 낳는 것 같았다. 그는 그것을 움푹 파인 구덩이에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넣었다. 그리고 꼬리를 구덩이데 대고 밀자 체액이 마구 쏟아졌다. 그런 다음 일어나 다른 구덩이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되어있는 자웅일체형 생물인 것 같았다. 젖가슴과 남자의 거시기가 한 몸에 같이 달려 있었다.

그는 한 참 앞으로 걸어가 다른 구덩이가 있는 곳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작은 아기를 꺼냈다. 그는 아기를 이리저리 꼼꼼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만하면이젠 완전하지 않습니까?”

아기가 말했다.

“두고 보면 알지”

그는 아기를 무릎에 눕혀놓고는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허공에서 기운을 모으듯이 뭔가를 끌어보마 아기 머리에 쏟아 붓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일그러진 원형의 고리가 나타났다.

“아니야, 아직은 완전하지 않아”

그는 운동장 가운데 있는 우물 같이 생긴 곳으로 가 아기를 그 안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시구덩이에 와서 두 번째 아기를 안아 올렸다. 그러더니,

“너는 내 자식이면서도 나보다도 형편없다”

하고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처음 버러지만도 못했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아기가 애원하듯이 중얼거렸다.

“억겁의 세월을 쏟아 노력하여 수천억겁의 자식을 만들어 내버린 내 노력을 몰라 그러느냐?”

그는 이번에도 그 우물로 가서 아기를 던져버렸다. 그리고 또 그 자리로 갔다.

“모든 생명체중 으뜸입니다.”

세 번째 아기가 교만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다시 기운을 끌어 모아 첫 번째 때와 똑같이 했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완전히 찌그러진 고리 모양이었다.

“나는 신에 버금가는 완전한 자식을 갖고 싶다!”

그 아기도 마찬가지로 우물로 던져졌다.

그는 네 번째 아기를 꺼내 한참 살펴보더니 똑같은 동작을 했다. 완전한 공처럼 동그란 고리가 만들어졌다.

“히이호, 너야말로 완벽해. 나를 신으로 만들어 줄 놈이구나.”

하고 기쁜 듯이 아기를 안고 뒤뚱 뒤뚱 춤을 추었다. 그러더니 아기를 가슴에 안고 젖을 물렸다. 아기는 게걸스럽게 젖을 빨아대고는, 이윽고 배가 부른지 끄윽-하고 트림을 뱉어냈다. 그리고는 “나는 너무 완벽해서, 너 같은 신 따위는 안 섬겨.” 하고 방글거렸다.

“이런 건방진 자식!”

괴물은 화를 내고는 아기를 바닥에 내팽개쳐서는 꾹꾹 밟더니 우물에 던져버렸다.

그는 화가 안 풀렸는지 다른 아기들을 꺼내 같은 짓을 몇 번 더 되풀이 했다. 이윽고 다시 다른 웅덩이를 들여다보더니 버릴 아기가 더 없는지, 그가 허공을 향해 절망적인 소리로 울부짖었다.

“대체 얼마나 더 해야 내가 신이 될 수 있는 거지!”

“여기 있습니다.”

웅덩이 속 여기저기에서 소리들이 메아리처럼 울려나왔다.

“왠지 기분 나빠. 어서 여길 떠나자.”

신유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서서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낮추고 살금살금 네다리로 기어서 왔던 길로 돌아갔다. 그러다 우물이 있는 곳을 지나며 궁금해서 잠시 몸을 일으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버려진 아기들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깊이 들이밀고 아무래 살펴봐도 그 끝없이 푸르른 낭떠러지뿐이었다. 간혹 우물 같은 그 아래서 구름 같은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우물은 아니고……, 저 아래가 어디야 엄마?”

“꼭 물구나무섰을 때처럼, 하늘이 거꾸로 있는 것 같다.”

“불길해. 빨리 가자.”

그들 세 사람은 우물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허억!’하고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42

“누구냐!”

그 괴물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우, 우린…….”

“아니 이럴 수가! 이 모습, 그래 이것이야!”

그는 신이 나서 아주 방정스럽게 팔짝팔짝 뛰더니 신유리와 아이들의 머리 위로 손을 뻗쳐 허공에서 기운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둥글게 만들어 허공을 향해 띄워 올렸다. 둥근 기운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삼각형 모양의 피라미드를 만들며 허공에 멈춰있었다.

“완전해! 완전해! 이것이야 말로 나를 신으로 만들 종자다.”

“종자?”

그들은 깜작 놀라 얼굴이 굳어졌다.

“게다가 암 수가 각각이라니.”

“아하! 아하! 아하!, 이히! 이히! 이히!,나는야 은기조차 번기조차 은기번기 버번기, 내 기도는 이히 어허, 이히 아하 , 미니니미미니니미 돔 디스 트”

그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지, 그런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매우 흥분하여, 그들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뛰어댔다. 그가 “아하! 아하! 아하! 이히! 이히! 이히, 나는야 은기조차 번기조차 은기번기 버번기, 내 기도는 이히!어허! 이히 아하 미니니미미니니미 돔 디스 트”하고 돌 때 마다 안개 같은 것이 소용돌이치며 그들을 점점 조여 왔다.

그들은 달아나려고 했지만 소용돌이는 이상하게 그들 셋을 점점 더 가까이 안으로 밀착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소용돌이는 그들을 끈으로 함께 묶듯이 조여 놓아 세 사람은 옴짝달싹 못하고 등을 맞대고 달라붙어 있었다.

“겁먹을 거 없어. 크크크“

“아가들아, 너희는 선택받은 자야. 이제부터 너희 셋은 모두 나와 수정하여 새로운 나의 자손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몸속에 들어가 세상을 지배할 새로운 신이 될 것이야.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나 혼자 만들어낸 놈들은 너무 형편없었어.”

그들 셋을 끌고 향긋한 이끼가 깔린 동그란 바닥으로 갔다. 그러더니,

“누구부터 할 까? 암 수 둘을 같이 데리고도 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니까 우선 이것 하나만 먼 저 시범으로 해볼까?”

하고는 세별의 얼굴과 몸을 쓰다듬으며 찬찬히 살폈다.

“다, 당신은 귀도 없는 데 어떻게 소리를 듣나요?”

태양이가 그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어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귀가 뭐냐?”

“그러니까, 소리를 듣는 것”

“소리란 파장이다. 기운을 통해 온 몸으로 전달되는 거다. 나는 기운을 다스리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 세상 만물을 마음껏 조정할 수 있지. 내가 기운을 뽑아내면 세상만물은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어 기운을 잃고 소멸해버리지. “

그리고는 “이히! 이히! 이히!, 어허! 어허! 어허, 나는야 은기조차 번기조차 은기번기 버번기,내 기도는 이히 어허, 이히 아하! 미니니미미니니미 돔 디스트”하고는, 이번엔 아까 묶일 때와는 좀 다르게 노래하며 반대로 맴을 돌았다. 그러자 소용돌이가 반대로 스르르 풀어졌다. 그는 세별이를 꺼내고는 다시 또 처음처럼 묶을 때처럼 반대로 맴을 돌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꼬리같이 생긴 거시기를 빳빳이 앞으로 들어올렸다.

“안 돼!”

신유리가 소리쳤다.

“걘 놔두고, 차라리, 나, 나부터 해”

“그, 그걸 하고나면 지금 바로 저, 저 웅덩이에다 넣는 겁니까?”

세별이가 긴장한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렇다. 그리고 저것들은 인큐베이터다. 좀 전에 태어난 곳이 비어 있는 곳이다.”

“새, 새 술은 새 푸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것들이 태어나면 섞여서 뭐가 뭔지 모르게 됩니다. 우선 저것들부터 치우고 하시지요. “

“하! 역시 똑똑한 종자군.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

“그러니까 당신은 바보라, 절대 신이 될 수 없어!”

태양이가 나서 소리쳤다.

“저 놈은 건방져서 쓸지 말지 생각 좀 해봐야 겠군.”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이제 너희 쓰레기 자식들은 다 필요 없다.”

하면서 웅덩이 속에 든 알들을 다 건져서 우물에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봐라, 이제부터 이 인큐베이터는 오직 너희와 나 사이에 나온 것만 담는다. 어떠냐?, 영광스럽고 기쁘지 않느냐.”

그는 열심히 왔다 갔다 하며 수많은 웅덩이 들을 청소했다.

그 사이 바리가 맴을 돌며, 좀 전에 봤던 대로”이히! 이히! 이히!, 어허! 어허! 어허! 나는야 응기조차 벙기조차 응기번기 버벙기, 내 기도는 이히 어허, 이히 아하! 미니니미미니니미 톰 디스트”하고 노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소용돌이가 풀리지를 않았다.

“누나, 잘못 돌았어. 거꾸로 돌아봐.”

그래도 안 됐다. 태양이가 그 괴물을 살피며 자신이 그 노래를 읊조려보며 뭔가를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이 났는지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아이는 “아!”하고 엄지중지로 “딱!” 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청소에 열중하던 괴물이 다시 돌아보았다. 태양이는 눈을 반짝이며 그 괴물을 살피더니 귓속말을 했다.

“톰이 아니라 돔이야 돔!”

그는 우물과 웅덩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몇 번씩이나 고개를 돌려 이들을 주시했다.

43

“여기 보지 말고 깨끗이, 아주 깨끗이 청소해야 돼. 그래야 좋은 아기가 태어나는 거야.”

신유리가 시간을 끌기 위해 괴물을 향해 소리쳤다.

“알았어. 역시 내가 바라던 똑똑한 종자들이야 .크크크크”

“대충 하면 안 돼.”

“우린 더러운 걸 제일 싫어해”

태양이와 세별이도 눈치껏 엄마를 거들어 한마디씩 던졌다.

세별이는 태양이가 가르쳐주는 대로 다시 돌며 주문을 외웠다. 역시나 반응이 없었다.

“이건 주문이 아닌가봐.”

“뭐야. 저 새끼가 아까 그렇게 했는데”

태양이가 소리를 낮춰 짜증을 냈다.

“그 새끼한테만 되는 주문일 수도 있잖아”

“’응기조차 벙기조차 응기벙기 버벙기’ 있잖아. 그걸 은기조차 번기조차 은기번기 버번기로 해봐. 박침이 ㅇ이 아니라 ㄴ일 수 있어.”

신유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낸들 알아.”

“난 또, 뭘 알고 하는 소린 줄 알았지. 됐어.”

“아, 지금 생각났는데, 옛날에 외할머니한테 들은 ‘이름 긴 아이’이야기에 나오는 아이 이름 같아.”

귀한 아이라고 이름을 특이하게 길게 지어서 긴 이름 때문에 죽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주인공 아이 이름이 ‘은기조차 번기조차 은기번기 버번기였다.’ 신유리는 이야기 속의 그 이름이 하도 재미있어 초등학교 학교 다닐 때 종종 친구들에게 들려주곤 했었다.

세별이는 그가 다른 쪽으로 가길 기다렸다가 다시 맴을 돌며 어머니의 말대로 다시 고쳐서 조그맣게 노래했다.

“아하! 아하! 아하! 이히! 이히! 이히, 나는야 은기조차 번기조차 은기번기 버번기, 내 기도는 이히!어허! 이히 아하 미니니미미니니미 돔 디스 트”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엔 더 조여들었다.

“아아아! 그게 아니잖아”

“그만해, 아!”

신유리와 태양이까지 조여들어 둘은 고통스러운 비명이 나오려는 걸 되도록 참으려고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아, 이게 아니지. 맞다. 다시”

“이히! 이히! 이히!, 어허! 어허! 어허, 나는야 은기조차 번기조차 은기번기 버번기, 내 기도는 이히 어허, 이히 아하! 미니니미미니니미 돔 디스트”

이번엔 제대로 됐는지 치우와 신유리, 세별이를 묶은 소용돌이가 점점 풀렸다.

“와!”

“기어간 다음에, 저기 가서 뛰어.”

세별이가 파장이 울리지 않게 수화로 말했다.

셋은 살금살금 긴 다음 출구 쪽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저만치서 그가 뛰어왔다. 그들은 힘껏 왔던 길로 달아났다. 그런데 오르막길이라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태양이의 옷 속에 있던 고슴도치까지 가시를 곤두세웠다.

“앗 따거!”

고슴도치는 배가 따가워 비명을 지르며 멈춰 섰다.

“살려 줘, 도치야.”

그는 고슴도치를 꺼내 내려놓았다.

“따라 와! 도치!”

고슴도치는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쪼르르르 따라갔다.

그런데 얼마쯤 가서 굴 입구까지 다다랐을 때 쯤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따가! 이게 뭐야!, 저리가!”

고슴도치가 그 괴물 같은 놈의 얼굴에 뛰어올라 공격하고 있었다. 그가 떼어서 던지면 또 등으로 뛰어오르고, 다시 목으로 뛰어 오르고 했다. 그는 옷을 입지 않아 더 고통스러워했다.

그사이 세 사람은 죽기 살기로 뛰어 굴 밖을 나왔다.

그들은 위로 올라가 굴 바로 위에 있는 바위를 셋이서 젖 먹든 힘까지 다해 밀기 시작했다. 아래로 떨어질까 봐 겁이 났지만 방법은 그뿐이었다.

바위는 흔들거리면서도 좀처럼 굴러 내리지 않았다.

“이히 이히 이히……..”

그 괴물 같은 것이 굴 밖으로 나오고 있는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나의 아기들. 크크크크크”

그가 위를 쳐다보며 기괴하게 웃어댔다.

“좀 만 더 힘 좀 써봐!”
“어어, 어어”

그가 막 달아나려고 할 때 커다란 바위가 쿵 하고 굴러 떨어졌다. 그 바람에 괴물은 바위에 완전히 깔려 뭉개져버렸다. 바위 밑에서 엄청난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하얀 액체가 흘러나왔다.

“오 마이 갓!”

신유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44

그들은 숲을 얼마쯤 걸어 물가가 있는 곳까지 왔다. 물 한가운데로 배가 떠가고 있었다.

“야 배다”

그들은 너무 반가워 손을 흔들었다.

배는 세 사람이 서있는 곳 앞으로 다가와 멈춰 섰다. 가까이 보니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다 낡은 나룻배였다. 사공인 노인은 얼굴만 보면 수염이 허예서 신선 같아보였지만 노인이지만, 다 낡은 베옷을 둥둥 걷어 입고 있어 행색이 영 엉망이었다.

“어르신, 이 바다를 건너면 어디가 나옵니까?”

신유리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이건 바다가 아니라 강이야. 저승을 건너는 강.”

“아!, 잘됐네요. 어르신, 저희가 지금 거기를 가는 중인데, 좀 태워주십시오.”

“너희들은 산자들이 아니냐? 어떻게 여기를 왔지? 저승 계는 사자死者들만 가는 곳이야. “

사공이 세 사람을 훑어보더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저승계를 지나고 천상계도 마고 성으로 갑니다. 제발 태워 주십시오.”

“산 자는 태울 수 없어”

신유리는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배를 타지 않으면 그 섬에서 꼼짝도 못하고 갇혀야 하는 신세였다. 그런데 사공이 갑자기 음흉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배 삯을 내겠다면 태워주지.”

“배 삯이요? 네, 드릴게요. 근데 얼마면 되는지…….”

신유리는 가방을 열고 지갑을 꺼내들었다.

“한 사람에 삼십 살이니, 90살을 내야한다.”

“네?”

“90살?”

“돈은 어기서 필요가 없어. 삯은 나이로 받아요.”

셋은 깜짝 놀라 한마디씩 하고는 노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배를 타고 강을 한 번 건널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줄어. 그래서 배 삯으로 받은, 사람의 수명을 가지고 내 수명을 늘여가지. 흐흐흐.”

신유리는 노인의 말을 이해하느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죽은 사람만 타는 배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수명을 삯으로 받는다니 무슨 소린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신유리의 생각을 읽기라고 했는지 노인은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아, 제 명을 다 살고 온 사람은 삯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못 받아, 그레도 상제의 명이니 태워줘야지 어쩌겠나. 하지만 급사를 당해 수명이 남은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의 남은 수명을 내가 갖는다 이거야.”

“그럼 저희 수명을 달라는 건……..”

말을 하다가 그제야 제대로 이해가 된 신유리는 너무 섬뜩해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결국 90년의 수명을 달라는 것은 그만큼 빨리 죽으라는 것 아닌가.

“제가 40이 넘었는데 어떻게 90살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9살 정도라면 또 모르지만…….”

신유리가 울상을 지으며 사정조로 노인에게 말했다.

“아, 서로 나눠서 내야지. 여기 어린 아이들이 둘이나 있잖아.”

“네?”

신유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원래는 나머지 생을 내가 다 갖는 거야. 허나 너희는 저승에 주저앉는 게 아니고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내특별히 봐주는 거야, 흐흐흐, 삯을 내고 타겠느냐? 그냥 돌아가겠느냐.”

그때 세별이가 나서서 질문을 했다.

“올 때고 또 타야 되고 그러니까 좀 싸게 태워주시면 안되나요. 저희가 산 사람인데 여기 계속 남아있으면 할아버지도 법을 어긴 거니 알려져서 좋으실 건 없잖아요”

신유리는 아이 옆구리를 팔뚝으로 툭 치고는 가만있으라고 눈짓을 했다.

“오는 배는 없어. 여기는 한번 들어오면 돌아갈 수가 없는 곳인데 어찌 오는 배가 있겠나. 허허허허”

“그럼 올 때는 어떡하라고요.”

“그야 내 알바 아니지”

그들은 강을 건널 수도 없고, 안 건널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버렸다. 강을 건너면 자신들의 수명이 30년씩 줄어버리는 것이었다. 원래 자신의 수명이 몇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100살까지 산다 하더라도 30년을 주어버리면 70살이 남는다. 30살에 치우를 낳았으니 신유리는 지금 43살이었다. 그러면 남은 해는 27년이었다. 하지만 친정엄마처럼 80까지가 자신의 수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으로 7년밖에 못 사는 것이다.

‘어떡해야 하나’

신유리는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아이들의 수명도 30년씩이나 줄여야 하는 것이다. 다행이 아이들이 100세 이상까지 장수 할 수명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만약 아이들이 80까지 밖에 살 수 없는 수명이라면 50살에 훅 가는 것이다.

“저희가 갖고 있는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있나요?”

신유리가 물었다.

“그건 천기누설이야. 말 못하네.”

사공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제게 남은 수명으로 두 아이들 것을 다 낼 수는 있나요?”

“쯧쯧, 네게 남은 걸로는 너 하나 몫도 낼 수 없어.”

그러면 아이들을 여기에 놓고 저만 타고 건너갔다 오겠습니다.”

“오는 뱃길은 다르다는 걸 알고 하는 소린가? 이 길로 이별 일세.”

“길이 다르다고요?”

“쯧쯧, 이런 우둔한 것! 죽어 저승으로 가는 길과, 태어나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어찌 갔겠느냐?”

신유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안타려거든 관두게나. 난 바빠서 그럼 가네.”

사공은 뱃머리를 돌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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