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소나기 맛, 오이 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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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

6월이 들어서기도 전에 모내기를 하느라고 분주하다.
농번기의 시골은 텅텅 빈 집에 시내에도 오가는 사람이 드물다. 가뜩이나 시골에 인구도 없는데 그나마 들로 논으로 나가고 나면 동네는 한산하니 조용하다.
지구 온난화, 이상기후 이런 말들이 시끄럽게 오가더니 계절이 오는 건지 가는 건지 모호하다. 모든 것이 빨라졌다.
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뒤뜰에 딸기가 올망졸망 열리기 시작하고, 앞마당의 청포도 나무에 깨알만한 포도가 맺히기 시작했었다.
갑자기 더워진 초여름 날씨에 나른해져 어릴 적 옛 생각에 졸고 있는데, 옆 동네 딸기밭 주인아저씨가 이제 딸기도 끝물이라며 한 소쿠리 소담스레 갖다 주신다.
‘아니, 벌써요?’ 하고 놀랐다.
노지 딸기는 이제 맺힐 때인데 비닐하우스에서 스마트팜으로 이어지는 농사는 계절을 혼돈스럽게 한다.
노지 딸기, 노지 오이, 노지 호박, 노지 수박 같은 단어도 들어보기 힘들다. 자연적으로 밭에서 키우는 먹거리는 ‘맛없는(?)~’의 대명사이다.
정말 시대가 변했다. 스마트한 지금의 세상이 좋다고 해야 하는데 옛 추억이나 더듬으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하는 심사는 무엇인지?

6월엔 상큼한 오이처럼
6월 초가 되면 오이도 벌써 끝물에 들어간다. 미처 어릴 때 따지 못한 오이는 호박만큼 커져서 늙은 오이 즉 ‘노각’이 되어 버린다.
늙어도 시원하고 상큼한 향은 더 짙어져서 오히려 노각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끝물 때가 되면 못난이 오이가 많이 달린다.
이 오이도 버리지 않고 소금에 절여서 오이지, 고추장 장아찌로 담으면 청오이보다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여름 땀 흘리고 난 뒤 먹으면 더 이상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더운 여름, 찬물에 물 말아 오이지와 먹을 때면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
교황님이 해미 성지 방문차 들렀을 때 하신 말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절인 오이처럼 축 쳐져 있지 말고, 생기 있고 늘 기쁘게 살라’는 말씀을 전했다고 한다.
오이지(오이 피클)를 볼 때마다 그 말씀이 생각나서 혼자 웃는다.
오늘 나는 푹 절인 오이지처럼 살지 않았나? 청 오이처럼 상큼하게 생생하게 살라고 했는데…
그래도 단물, 쓴물 다 빠진 오이지도 맛있다. 오독오독 씹으면서, 노년의 인생도 오이지처럼 맛 들어 있기를 바란다.

초여름 6월의 나른한 오후엔 푹 절여진 오이지보다는 상큼한 청 오이 쥬스로 생기를 일깨워 보련다.
왠지 젊어진 느낌으로…


  • 청 오이 1개
  • 파인애플 캔 5조각
  • 레몬 1/2개
  • 물 500ℓ(혹은 탄산수나 사이다)

※ 위 재료를 믹서기에 넣고 곱게 간다.
체에 걸려서 즙만 마신다. 상큼한 오이의 향이 오묘하다.

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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