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천도하는 넋굿, 함경도망묵굿

망묵굿보존회 이경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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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정

한국의 ‘탈무드’를 꿈꾸다

망묵굿의 의미
흔히 집안에 망자(亡者)가 생기면 망자를 위한 제사를 지내게 된다. 제사는 천지신명을 비롯한 신령들과 죽은 사람의 넋에게 제물(음식)을 바치는 의식으로, 보통 조상제사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현대에 와서는 망자가 생기면 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되는데 그곳에서부터 제사(祭祀)는 시작된다. 성복제, 발인제 등의 제사를 지내고, 이후 산소에서 지내는 초우재(돌아가신 날), 재우재(돌아가신 다음날), 삼우제(발인일을 기준으로 이틀 뒤) 등의 제사가 이어진다. 그 외에도 줄곡, 부제, 소상, 대상담제, 길제 등도 있으나 현대에 와서는 49재와 100일재로 간소화했다.
요즘에는 거의 3일장을 치른다. 3일이 지나면 망자는 저승길을 떠나게 되는데 생전에 지은 죄에 대해 7번의 심판을 받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망자가 생전에 지은 업장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유족이나 후손들이 7일마다 7번의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이것이 49재(사십구재, 四十九齋)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지금은 마지막 49일에 한 번만 재를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현세에 지은 업장을 소멸하여야 좋은 곳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내세사상에 기반으로 하는 한국적 사고방식으로 유교의 제사나 불교의 천도재, 무속의 천도굿 모두 다를 바 없다.
함경도망묵굿은 죽은 사람의 넋을 좋은 곳으로 천도하기 위해 행하는 넋굿의 일종이다. 하지만 영혼의 저승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극락환생을 기원하는 점은 비슷하지만 망묵굿은 심판의 절차를 건너뛰고 곧바로 저승문 앞으로 당도하게 하는 굿이다. 다시 말해 저승행 KTX에 망자의 조상과 동갑 친구들을 태우고 중간역(7번의 심판)을 거치지 않고 저승문(환생)으로 직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굿이 바로 망묵굿이다. 함경도 지방에서 유래되어 함경도망묵굿이란 이름으로 불려진다.

망묵굿의 변화
망묵굿을 하게 되면 49재를 하지 않는다. 이미 저승문까지 다 열었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망묵굿은 ‘원스톱서비스’처럼 단번에 모든 과정을 처리한다. 그러기 위해서 굿을 시작하게 되면 과거에는 일주일 정도가 소요되었을 정도로 굿의 규모는 매우 성대했다.
지금은 하루 만에 굿을 끝내기도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만큼은 짧지 않다. 불경하고 사특한 부정의식을 멀리해야 하고, 기도를 하며 몸과 정신을 경건하게 만든 다음에 비로소 의식(굿)을 집전하게 된다.
흔히 상갓집에 간다라는 표현 대신 ‘초상 치른다’, ‘초상집에 간다’ 라는 표현를 쓰기도 한다. 여기서 ‘초상(初喪)’이란 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까지의 모든 장례절차를 함축하는 단어다.
망묵굿은 상(喪)이 나간 다음부터 시작된다. 대문 앞에서 시작하는 사자굿을 필두로 내당(內堂)의 최고 가신(家神)인 성주신(城主神)과 조상신(祖上神), 삼신(三神)에게 하는 안당굿이 이어지고 이후 마당굿을 비롯해 다른 굿들을 연이어 펼쳐진다.
요즘은 집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기 때문에 과거처럼 집에서 굿을 하지는 않는다. 유족들이 원하는 장소나 망자가 좋아하였던 장소에서 굿을 펼치기도 하지만 주로 굿당에서는 하는 경우가 많다.

해원상생(解寃相生)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대하는 자세
무당의 주된 업은 굿을 통해 조상신과 망자들 그리고 후손들의 해원상생(解寃相生)을 기원하는 것이다. 굿당을 찾아 오는 신자들에게는 길흉화복의 예지력을 보여주며 화(禍)를 피할 방도를 알려주기도 한다. 이를 흔히 점사라고 말한다.
한국인에게는 사주팔자(四柱八字)에 대한 깊은 신앙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사주(四柱)는 인간의 운명을 지탱하는 네 가지 기둥을 뜻하는 말로,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를 가리키며, 이를 간지로 표현한 것이 팔자(八字)다. 그래서 신년운세를 보거나 타로점을 보는 등의 행위에도 크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무속에서는 사주는 이미 정해졌다고 여긴다. 그 때문에 사주를 보면 길흉을 예지할 수 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찾아온 신자들에게 피해갈 방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무당이 하는 활업(活業)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의학계에서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플라시보 효과는 의사가 효과 없는 가짜 약이나 치료법을 환자에게 제안했을 때 환자가 이를 긍정적인 믿음으로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무당이 화를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플라시보 효과처럼 벼랑 끝에 몰려 찾아온 신자들에게 활생(活生)의 처방으로 여겨지며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이것이 무당이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온 가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전쟁을 피해갈 수 없다면 피해를 적게 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자세이다. 이처럼 무당의 점사는 ‘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투자’라고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망묵굿에 담긴 설화(서사무가, 敍事巫歌)
현대의 랩(Rap, 강렬하고 반복적인 리듬에 맞춰 읊듯이 노래하는 대중음악)이나 판소리(설화를 노래하는 민속 음악)처럼 굿을 할 때 흥얼거리는 무녀들의 노랫가락은 일반인들이 좀처럼 알아듣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노랫가락 속에는 조상의 삶과 구전되는 설화들이 담겨 있다.
망묵굿이 망자를 위한 굿이라고 해서 저승과 관련된 노랫가락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많은 굿거리의 노랫가락들 안에는 경로효친(敬老孝親), 인과응보(因果應報), 권선징악(勸善懲惡) 등 인간의 도리를 은유하고 풍자하는 신비롭고 재미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마치 서양의 ‘탈무드’나 ‘이솝이야기’와 비견된다 할 수 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들처럼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정겨운 동화 같은 설화들도 많기 때문에 동화책으로 출판하자는 제안도 종종 있다.
감천굿은 효성(孝誠)이 지극한 며느리의 설화를 담고 있다.
시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던 며느리는 아들이 글공부 하러 절(금상절관)로 떠난 사이 시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점쟁이를 찾아간 며느리는 ‘오대독자(아들)를 약으로 쓰면 낫는다’ 라는 말을 듣게 되고 아들을 찾으러 길을 나서게 된다. 산속에서 길을 헤매는 며느리에게 선녀들이 나타나 절의 위치를 가르쳐 주고, 며느리의 효심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인삼을 아들의 형상으로 둔갑시켜 며느리가 아들(인삼)을 데리고 가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며느리는 아들로 약을 만들어 시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지만 손자가 보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걱정에 수심이 가득 차게 된다. 훗날 도(道)를 깨우친 아들이 집의 사정을 알게 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나라에 그 내용을 바치니 이에 효부문과 효자문을 하사 받게 된다. 이후 할아버지는 지신(地神)이 되고 아버지는 성주신(城主神)이 되고 며느리는 불사제석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린 며느리의 선택(孝)에 하늘이 감동한 이야기로 조상들의 삶이 어디를 지향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과거에는 자식보다 부모에 대한 애정이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무교의 미래
무당은 내림굿을 받은 분들도 있고, 부모가 무당이라 세습무가 된 경우도 있다. 무당도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여겨지긴 하지만 사회의 눈초리는 여전히 냉담한 편이다.
직업인으로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지만 ‘문화예술인’으로,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더 꿈꾸어 보고 싶다.
이처럼 한국적 전통신앙인 무교를 계승하고, ‘함경도망묵굿’이라는 갈래를 후대에까지 전승하기 위해 함경도망묵굿보존회가 설립되었다.
현재 7명의 제자가 함경도망묵굿의 형(形)과 식(式)을 배워가며 망묵굿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망묵굿 전수자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손님이 많다고 좋은 무당이 아니다. 자존심을 가지자!”

 

서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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