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라는 영화를 보았다. 공상과학 액션 어드벤처다. 며칠 전에 강동원 영화 보러 갔다가 영화 상영 전에 틀어주는 트레일러를 보고 마음을 훅! 뺏겼다. 기억력이 나쁘기 때문에 까먹기 전에 적어 두어야겠다. 인간과 인공지능 세력 사이의 미래 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서사 과학 액션 스릴러이다. 아내(젬마 찬, ‘이터널스’)의 실종을 슬퍼하는 굳은 전직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 ‘테넷’)는 전쟁을 끝낼 힘을 가진 의문의 무기를 개발한 첨단 AI의 설계자 창조주를 추적해 죽이기 위해 영입된다

영화는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은 순서대로 Nirmata, The Child, The Friend, The Mother이라는 핵심어와 함께 시작한다. 첫 장 Nirmata는 Nirmata의 사전적 정의와 함께 시작한다. 영화에 따르면 Nirmata는 알려지지 않은 A.I.의 창시자이다. 이어 영화는 머지않은 미래에(나에겐 명사와 숫자를 기억하는 능력이 부재하므로) AI의 소행으로 L.A.에서 제2차 세계전쟁과 9.11 사건을 동시에 연상케 하는 핵폭발이 일어나는데, 이를 계기로 미국을 위시한 서구사회는 AI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하여 서구사회는 개발된 AI를 모두 제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데, 후발주자인 가상의 지역 뉴아시아(New Asia)에서는 여전히 AI를 개발하고 있다. 따라서 뉴아시아는 서구사회의 적이 되고,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은 10년 동안 개발한 노마드(NOMAD)라는 강력한 무기로 뉴아시아의 모든 도시를 공격함으로써 AI를 전멸시키고자 한다.

영화는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은 Nirmata, The Child, The Friend, The Mother이라는 핵심어와 함께 시작한다.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은 마야(Maya), 조슈아(Joshua), 그리고 알피(Alphie)이다. 조슈아와 알피는 친숙하지만, 마야는 마야 문명밖에 떠오르지 않아 검색해보니 산스크리트어로는 “꿈” 또는 “환상(환각, 착각)”을 뜻한다. 또한 부와 사랑, 아름다움과 환희의 힌두여신 락슈미의 별칭이기도 하다. 그리스어로는 “좋은 어머니”를 뜻하는데, 그리스 신화에서 마야는 제우스의 아들인 헤르메스의 어머니이자 땅의 어머니, 그리고 봄의 여신으로 여겨지며 그 이름은 5월(May)에서 연유한다. 헤브라이어로 마야는 “물”을 의미하는 마이므(Mayim)에서 기원을 두고 있으며, 동시에 “신으로부터 from God”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름의 전형성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맞물려 있다. 조슈아의 이름의 기원은 구약에 등장하는 여호수아로 그 이름은 “야훼는 구원이시다”, 즉 ‘구원’을 의미한다. 조슈아가 작명한 알피는 ‘알파’와 ‘오메가’, 즉 ‘시작과 끝’을 의미하며 이는 기독교에서 완전자인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영화에서 알피는 “For the robots to be free.”라고 말한다. 그 후에도 “to be free”라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어구와 맞물린다. 영화의 큰 줄기는 기독교적인 구원의 서사를 따르지만, 영화는 불교적 색채를 진하게 풍기면서 심층적 주제를 드러낸다.

영화는 ‘인간 대 로봇’이라는 대립 구도를 내세우는데, 재밌는 것은 인간보다 로봇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미국인으로 대변되는 인간 세계에서 존재의 가치는 도구성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개체는 지배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폐기된’다. 영화에 나오는 여자 상관이 이런 말을 한다. “흔히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을 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도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들이 멸종한 이유는 더 강한 존재가 나타나서였다. 그게 바로 우리, 현생 인류이다. 현생 인류가 그들을 강간하고 죽였다.”

뭐 정확히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충 골자는 그러하다. 그런데 영화에서 원숭이 한 마리가 폭탄 버튼을 눌러 거대한 미군 탱크(?)가 폭발한다. 그 어떤 악의도 지니지 않은, 진화론적으로 열등한 존재인 원숭이에 의한 폭발. 그 여자의 말과 맞물려 정말 제대로 된 코미디를 선사한다.
아무튼 여자는 이것을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말했다. 즉,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살하는 것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로봇과의 공존이 아닌 이겨야 하는 전쟁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알피는 ‘무기(the weapon)’에 불과하고 인공지능 로봇, 즉 시뮬런트는 인간을 위협하는 ‘악’이다. ‘우리가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죽일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표면적 논리이다. 실상 L.A. 폭발 사건은 인간의 코딩 실수에 의한 것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을 시뮬런트에게 뒤집어씌워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공공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그러한 잘못된 욕망과 욕심의 결정체가 바로 노마드이다. 노마드는 하늘을 떠다니며 감독(overman)으로서 감시하고 처벌한다. 인공위성과 그에 연결된 모든 망이 우리의 모든 일상을 감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베트남전쟁과 이라크전쟁을 상기시키는 뉴아시아의 농촌 마을 습격 사건에서 인간다움을 상실한 인류의 민낯이 드러난다. 여자와 아이 앞에서 그들의 개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미군에게 사단(四端)의 마음 따위는 없다. 아이를 부둥켜안은 여인은 “차라리 저들(시뮬런트)이 너희보다 더 인간적이다!”라고 외친다.
비인간적인 세상에 평화와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마야는 시뮬런트를 창조한다. 헤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나는 이러한 사이보그가 우리의 사회적‧신체적 현실의 지도를 그리는 허구이자, 매우 생산적인 결합의 가능성 또한 제시하는 상상적 자원이라고 주장하려 한다.”라고 하였다. 당시 헤러웨이의 사이보그가 마야의 시뮬런트가 완전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사이보그가 되기’를 촉구하는 헤러웨이의 사유는 ‘오히려 인간다운 시뮬런트가 되기’를 촉구하는 마야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그렇게 탄생한 알피와 퇴비의 아이들 중 하나인 ‘카밀’이 겹친다. 카밀의 세계에서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폐허의 장소로 이주하고 그곳을 치유하기 위해 인간과 비인간 파트너들과 일하면서, 새로 살기에 적합한 세계의 그리고 그런 세계를 위한 네트워크와 통로, 연결마디, 그물망을 만들었다’.(『트러블과 함께하기』) 인간과 비인간이 어우러져 회복, 생존, 번성의 실천들을 계승하고 발명하며, 가치 있는 삶의 정신을 교육하고 계승한다. 마찬가지로 뉴아시아의 인간과 비인간은 협력하여 땅을 일구고 난잡한 돌봄을 실천하며 가치 있는 삶을 가르친다. 인간 세계의 전문적인 기술인, 도구적 인간을 양산하는 현시대의 교육과는 차별화된 전통적이면서 본질적인 교육이다. 승려 시뮬런트는 티벳 승려의 옷을 걸치고 있고 마야의 환생을 기원하며 생명의 순환성을 이야기한다.

기술의 결정체인 A.I.가 오히려 비과학적이고 미개한 것으로 치부되는 종교적 삶과 자연적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인류애를 상실해 극으로 치달은 인간의 실태에 경종을 울린다.

영화가 끝날 무렵 드뷔시의 <달빛>이 흘러나온다. 마치 마야라는 이름의 뜻처럼 모든 것은 환각인가, 꿈인가? 알피는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마음이 현현한 것은 아닐까? 표층적으로 이 영화는 마야에 의해 탄생한 알피가 조슈아와 협력해 노마드를 파괴함으로써 로봇을 자유롭게 하는 SF 이야기이지만, 이면에 담긴 심층적 주제는 비인간의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현인류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담음으로써, 상실한 인류애 회복을 통한 인간다운 세상 구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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