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이 바로 ‘국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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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현


열림
지난 12월 7일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춘천 중도 문화를 살려야 국혼이 산다!」 제3차 국혼포럼에서 단재학당 교장과 동민회 공동대표로서 축사를 했다.
강원도 춘천 중도 유적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발견된 가장 큰 규모의 청동기시대 도시유적으로서 한민족을 넘어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중도문화 유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1980년부터 1984년까지 5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5권의 보고서가 나온 바 있고, 2010년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과정에서 유물 200여 기가 발굴되었다. 그리고 2014년 레고랜드를 짓기 위한 1단계 발굴조사에서 1,400여 기의 유구가 발굴되었고, 2015년 2단계 발굴조사에서는 345기의 유구가 발굴되었다. 이러한 문화유적을 덮고 그 위에 레고랜드가 준공되어 영업을 개시하고, 강원도와 춘천시에서는 중도를 사적지로 지정하려고 하자 시민단체에서 중도문화 원상복구와 춘천 중도 전체 사적지 지정, 영국 멀린사와 강원도의 레고랜드 건설협약 무효와 함께 레고랜드 건설 참여자의 문책과 재발 방지책 강구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필자는 축사를 통하여 춘천의 역사성과 대한의 국혼을 설명하고 국혼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으나, 획기적임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춘천은 열국시대 예맥국의 중심지
상해임시정부 국사교과서 「배달족역사」에 의하면 춘천은 열국시대 우수맥牛首貊, 예맥국의 중심지이다. 예맥국에 대한 기록은 「악서樂書 卷158 예맥」에 ‘예맥국은 조선의 동쪽에 위치하며, 항상 매년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먹고 마시며 노래하며 춤을 추는데, 이를 무천들天이라고 한다.’라고 나타난다. 춘천은 지리적으로 북한강의 풍부한 담수어족과 강변의 비옥한 평야는 선사시대 인간의 정착지로서 손색이 없어, 중도와 교동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가 발달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우두산성과 즐문토기, 지석묘, 맥국의 궁궐터가 이를 증명한다.
축사를 통해, “중도 유적지는 이스라엘 예리고의 신석기 문화와 모헨조다로의 청동기 유적으로 198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터키 핫투샤 유적지보다 더 찬란한, 한강변에서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는 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문화유산이다. 한 때 일본 학자들에 의해 일본 고대 신화와 연계, 일선동조론에 악용된 통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부족해 이제, 개발 논리 아래 문화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정부와 상업주의에 의거 철저히 망가졌다.”라고 중도 유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은 역사의 중요성과 문화의 힘을 알기 때문에, 홍산문명의 시원지인 우하량 문화유적 보존에 수천억을 투자하여 자국의 문화 유적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역사는 핵무기보다 더 위험하다. 현 시점에서 ‘개발이냐, 보존이냐’, ‘보존과 활용’ 이런 논쟁은 의미가 없으므로 획기적인 방안을 찾아야한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영국 솔즈베리의 스톤헨지 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춘천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세계 사람들이 찾는 문화 유적지가 되도록 창조적 지혜를 짜 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과 담판을 하든지, 특별법을 제정하든지, 결론을 내야 한다. 현재 판을 뒤집을 파격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중도와 국혼을 살린다는 것은 단재 신채호와 예관 신규식 선생이 역사와 한국 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과 같이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절실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도의 고조선 유적을 살릴 것인가?” 물론,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오늘 우리들 마음, 혼을 모아 파격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를 도출하고, 역사학계의 데탕트와 빅텐트를 구축해 고조선과 삼국을 잇는 대한의 혼을 살려 주기를 기대하였다.
지금까지 해 왔던 생계형 투쟁으로는 안 되며,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신이 내려준 선물! 중도 유직지가 역사성과 상징성, 일상성을 회복하고, 한민족 정신문화의 상수로, 친일과 사대를 극복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도록 논리와 이론을 개발하고, 활동가들이 적극 협력해 중도 유적이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축, 국혼을 전파하는 발신소 역할을 담당하도록 실질적인 방안 이 마련되길 기대했지만, 결과는 원론에 거치고 말았다.
우리들 마음이 바로 ‘한국혼’
중도 문화와 국혼을 살리기 위해서는 주체사상과 민족정신 회복이 우선적이다. 우리 마음속에 내재한 민족정신을 단재 선생님은 낭가사상으로, 문일평은 ‘조선심’, 정인보는 ‘얼’, 최남선은 ‘조선정신’, 박은식 선생님은 ‘혼’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민족주체사상에 대한 관심도 떨어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이미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정신精神은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영혼이나 마음,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 또는 그런 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정신’의 개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김형효는 『한국 정신사의 현재적 인식』에서 ‘정신’은 ‘정精’과 ‘신神’의 합성어로서, 불가시적 형이상의 두 세계가 사람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정신의 ‘정’은 ‘미米’ 개념과 직결되어 있는데, 쌀米 가운데서 가장 깨끗한 미핵米核을 일컫는다. 그래서 그것이 정기精氣가 된다. 정자精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이 없으면 생명의 생기를 가질 수 없을 때 ‘정’이라 한다. 그리고 ‘신’이란 ‘시示’와 연결되는데, ‘시示’는 형이상학적이며 불가시적 세계를 말한다. 한편 문화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기 위하여 사회 구성원들이 습득하고 공유, 전달하는 행동 양식을 말한다. 이러한 문화가 정신과 결합된 것이 정신문화이다. 따라서 ‘정신문화’는 인간의 정신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핵심을 이루는 문화. 사상, 학문, 종교, 예술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에게 문화적 혈맥을 이어오게 한 불변적인 정신문화의 상수常數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민족종교와 홍익사상, 화랑정신, 선비정신 등을 들 수 있다. 민족종교가 불교와 유교, 기독교에 자리를 내놓은 반면, 홍익사상과 화랑정신은 일제 강점기까지는 융성하였으나, 오늘날 그 이념이 쇠미해져 고급 문화적 가치관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공맹사상’을 중국 문화의 불변적 상수라 여기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2,000여 년 이전부터 대하처럼 이어오는 시오니즘을, 아랍세계는 마호메티즘을, 인도는 힌두이즘을, 일본은 대화혼大和魂으로 표상되는 신도사상神道思想이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혼’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한국 정신사를 이야기 할 때 주체성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배달민족은 고조선시대부터 부여, 고구려, 발해를 거쳐 요와 금나라, 그리고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배달민족의 정체성을 소멸시키지 않고 연연하게 이어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친일과 사대의 영향으로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였다. 현재도 우리의 주체성과 배달민족의 ‘혼’을 심어 줄 주체사상과 정신사관 확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와 함께 민족주체사상에 대한 관심도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사람이 자기 운명에 대한 주인이라는 뜻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는 사람이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람은 ‘가장 발전된 존재이며 물질 발전의 특별한 산물’이기 때문에 자주성과 의식성을 지닌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단재는 역사를 통하여 애국심이 창조되며 민족주체의식과 자주독립정신도 역사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단재의 민족주체사상은 그의 역사인식 속에 잘 표출되고 있다. 비아非我의 입장에서 왜곡 서술된 역사를 아我의 입장에서 바로 잡아 바른 역사를 교육함으로써 민족의 주체의식을 국민들의 가슴속에 심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국혼! 대한의 혼은 무엇인가? 예관 신규식 선생님은 ‘한국혼’에서 “아아!, 대한이 기어코 망해버리고야 말았구나.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이 아직도 죽지 않았다면, 비록 지도가 그 빛을 달리하고, 역사가 칭호를 바꾸어 우리들의 대한이 망했을지라도 사람마다 마음속에 스스로 하나의 대한이 있는 것이니, 우리들의 마음이 곧 대한의 혼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들 마음이 바로 한국 혼”이라는 것이다. 예관은 『한국혼』을 통해 대한제국이 망하게 된 이유를 첫 번째는 선조들의 교화와 종법(신규식의 교화란 단군의 이신설교와 제천보본이며 종법은 세속오계를 뜻한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선민들이 공렬과 이기를 잊어버렸음을 지적한다. 세 번째는 역사를 잃어버리고 역사를 망각해온 우리 자신의 잘못이고, 마지막으로 부끄러움을 몰라 국치마저 몰랐음을 이야기한다.
단재 선생님은 역사와 민족과 국가를 삼위일체三位一體로 인식하고, “민족을 사捨하면 역사가 무無하고, 역사歷史를 사捨하면 국가에 대한 관념이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명심해야 할 명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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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민족정신’과 ‘국혼’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레고랜드 밑에 중도 유적을 묻는 것은 우리 ‘국혼’을 매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혼’이 없는 민족이 어떻게 국가를 영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중도 유적은 우리의 주체성과 배달민족의 ‘혼’을 심어 주체사상과 정신사관 확립을 위해 원상복구 되어야 한다. 이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유산과 국민교육장은 없다. 단재 선생의 1920년대에 한국고대사연구를 통해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전통적인 민족사상 ‘낭가사상’을 기반으로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왜곡되고 날조된 한국사 재정립에 윤석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 역사와 민족의 근원인 중도와 한국 국혼을 살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길 강력히 촉구한다. 그리고 포럼에 동참해준 단체들과 시민들이 마음속 ‘혼‘을 일깨워 뜨거운 가슴으로 참여해 줄 것 호소한다. 중도 유적이 살아야 국혼이 산다!

조병현(역사평론가/영토학자)

조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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