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때문에 길도 미끄럽고 날씨가 흐려지자 차량들이 미등을 켰다. 그런데 남편이 신경질적으로 상향등을 껐다 켰다 하는 것이었다.
“왜 그래?”
“저 자식한테 신호를 주잖아. 멍청한 놈, 알아먹지도 못해”
“왜?”
나는 백미러로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렸다.
“첩의 자식새끼 같이 남 생각 않고 상향등을 켜고 지랄이잖아. 대낮부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첩의 자식이라면 거품을 물고 화를 낼까?’


분명 아버님이 어디서 씨앗이라도 봤지 싶어 언젠가 시어머니한테 물어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마작이랑 화투 때문에 속은 좀 썩였지만, 술이나 여자 문젠 없었다. 그런 짓은 절대 안했어.”
그런데 왜 남편은 그렇게 첩의 자식에 열을 돋우는 것일까?
“못가겠다 돌아가자. 다른 데 더 보고 말고 할 것도 없겠다.”
뭐라 대꾸할 면목도 없었다.
속상해하는 나는 아랑곳 않고 남편이 다시 투덜거렸다.
“그러게 몇 권만 찍어서 주변사람들한테나 나눠주라니까. 무슨 서점에 깔겠다고. 아니면 다른데 더 알아보고 좀 큰 데서 제대로 내던가.”
“그럼 평생 책 한 권 못 내지.”
“그러지 말고 너도 드라마 작가나 하지 그래. 요즘 SBC에선가 드라마 작가 공모전 한다고 매일 광고 하던데.”
‘드라마 작가’
명옥이가 떠올랐다. 친정 엄마도 명옥이 얘기를 하며 늘 그 소리를 했다.
남편은 나의 침묵에 미안했던지 아무 말 않고 그대로 예정지를 향했다. 그러다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저런, 첩의 자식새끼 봤나.”
“그놈의 첩의 자식 소리 좀 그 만해! 첩에 자식한테 뭐 보태준 거 있다고 야단이야. 첩의 자식한테 애인이라도 뺏겼어?”
“아, 그런 것들은 되먹은 게 달라. 아무나 그러고 사는 줄 알아?”
“첩에 자식이라도 상관없으니까 새치기 좀 해서 승진 좀 해봐. 만날 좀팽이같이 당하고 화만 내지 말고,”
“갑자기 여기서 승진이 왜 나와?”
“당신 돈 잘 벌면 내가 글도 제대로 못쓰고 지질이 같이 이러겠어? 살림하랴, 애 챙기랴, 논술 강사하랴, 언제 작품에 전념을 해. 등단한지가 벌써 이십 년이야. 글도 못 쓰고 원로가 됐다고. 나도 가사도우미 두고 작업실 하나 얻어 글에 전념 좀 하고 싶어. 신정순은 하루 여덟 시간을 작품에만 몰두한데잖아.”
“당신이 신정순이야?”
“뭐? 그게 무슨 뜻이야?”
“첩의 자식 치고 잘 되는 놈 못 봤어.”
남편은 유명작가랑 비교한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는지 화제를 얼른 다시 처음으로 돌려놓았다.
“아이고, 신정순도 못 되면서 주제파악 못하고 떠들어 죄송하네요, 그리고 재벌 회장 아들은 첩의 자식이라도 만날 신문에 나오고 장관도 해먹고 잘만 되더라. 나는 범생이 치고 잘 되는 놈 못 봤어.”
그렇게 나는 남편의 두 가지 말에 대한 대꾸를 한꺼번에 쏟아놓았다.
“당신이 왜 첩의 자식을 두둔하고 그래?”
“내가 첩의 자식이다 왜! 됐냐?”
“나한테까지 소설 써? 장모님한테 시집살이 얘기 귀가 따갑게 들었어, 꼭 네 살 박이 억지 쓰듯 굴고 그러네.”
“네 살 박이?”
그렇게 서로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하마터면 큰 싸움으로 치달을 뻔 했던 그 상황에서 때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강명옥’이란 글자가 떴다. 나는 그냥 꺼버릴까 망설이다 받았다.
“가영아, 나 명옥이야.”
“그래, 오랜만이다.”
“그래 반갑다. 네 문자 봤어. 책 냈다며?”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고음의 목소리가 귓속을 채우고도 넘쳐나 밖으로까지 새어나왔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서 떨어뜨리며 껄끄러운 목소리로 마지못해 짤막하게 대답 했다.
“으응”
‘그-때 소설 쓴다더니 아직 쓰나보네. 첫 출판 한 거야?’
“아니 두 번째야, 한 십 년 전에 한 번 내고.”
“그랬어? 난 몰랐네. 많이 팔렸어?”
친구가 언제 때의 일을 묻는 건지 몰랐지만 굳이 따질 필요도 없었다. 어느 쪽이든 대답이야 매 한가지였다.
“팔렸겠어?”
“그랬으면 말 좀 하지. 알았으면 나도 좀 팔아줬을 텐데. 내가 바빠서 아직 책은 못 샀고, 나중에 한번 만나자. 우린 정말 특별한 친구잖아. 만나서 지난 얘기도 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네 얘기도 좀 듣고 그러자. 지금 팀 회의 들어가는 중에 문자 온 거 생각나서 잠깐 전화한 거야. 팀장이 저기서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야단이다. 하하하! 야!, 끊어야겠다. 다시 전화할게.”
나는 끊어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명옥이 번호를 빼지 못한 걸 후회했다. 지인에게라도 책 광고를 해서 단 몇 권이라도 팔아보려는 심정에 휴대폰 저장되어있는 전화번호로 일괄 책 광고 문자를 보냈었다. 그러다보니 그 친구에게까지 문자가 간 모양이었다.
명옥이 번호가 있다는 것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 전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혹시 몰라 엄마 친구들의 전화번호들을 내가 휴대폰에 옮겨왔었다. 그 중에 그 번호도 끼어있었다. 명옥이 엄마가 막내딸인 그 애네 집에 오랫동안 가있곤 해서 엄마가 적어놓은 것 같았다.
그 이름을 전화부의 ‘친구 그룹’에 넣다보니 ‘강명옥’은 다른 친구 이름들을 모두 뒤로 밀어내고 맨 앞자리에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항상 나를 거슬리게 했다. 결국 나는 그 이름을 자주 쓰지 않는 ‘구릅 미 지정’ 쪽으로 쫓아내버렸고 다행히 그 안에는 강 씨가 둘이나 더 있는 바람에 세 번째로 밀려나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강명옥과 나는 오랜 친구면서도 동시에 오랜 앙숙인, 정말 특별하고 이상한 관계였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친구인 부모를 두어 늘 이웃해 살았다. 하지만 친했던 부모와 달리 그 애와 나는 삶의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돌이 갓 지날 무렵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무남독녀로 자랐다. 주변에 힘을 보태줄 누구도 없어서인지 뿌리 부실한 나무처럼 노력에 비해 늘 결과는 부실했다. 엄마는 그게 다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네 당사주를 봤더니 커다란 나무가 서있는데 뿌리가 없더라. 그래서 네가 힘 있게 버티고 서지를 못하는 것 같아. 밑에서 힘을 못 받쳐주니까 열매를 못 맺는 거야. 네 아버지가 조금만 끌어줘도 한결 나을 텐데.”
그 말은 주술처럼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아무리 아등바등해봐야 나는 뿌리 부실한 나무처럼 삼류라는 아웃사이더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거라는 자포자기 같은 암시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친구 명옥이는 4형제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그 애는 뭘 하든 운이 풀려 갈수록 승승장구했다. 내가 오랫동안 마음먹고 준비한 것을 그 애는 어느 날 느닷없이 결정해서는 귀신처럼 나보다 앞서가 있었다. 작가가 되는 것도 그랬다.
“난 이담에 작가가 될 거야. 꼭 국문과에 들어가서 시나 소설을 쓰고 싶어.”
“작가? 난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그러던 명옥이는 명문여대의 에스파냐어학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비록 지방대일망정 원하던 국문과를 들어갔다.
“걘 그런 언어 전공해서 뭐할 거래?”
“내가 아냐, 성적에 맞추다보니 그냥 간 거라더라.”
그러더니 한 참 후에 부전공으로 국문학을 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또 미국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학코스를 2년 밟고 온단다.”
엄마는 그렇게 종종 그 애의 소식을 물고와 내게 전달했다.
그리고 내가 몇 년간 매달려오던 신춘문예를 포기하고 문예지로 갓 등단했을 때 쯤 명옥이 방송 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다시 들었다.
“명옥이 MBS방송국에 들어갔다. 구성작가가 뭔가 한다더라.”
“그 유명한, 애들 프로 포포 뭔가 있잖냐. 그거 맡아가지고 방송국사람 따라 지방에도 가고 얼마 전엔 유럽까지 따라가서 며칠 돌다 왔다더라. 한 달에 돈 천 만원 번다더라. 거기뿐만 아니라 00 방송국도 나가고 그런데. 너도 소설 때려치우고 그런 거나 해봐라.”
“그 집이랑 아직도 연락해요? ”
“명옥이 엄마한테 어쩌다 연락 온다.”
“은혜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연락은 뭐하러한데요?”
“너도 돈도 안 돼는 짓 그만 하고 방송국에나 알아봐라. 내가 명옥이 엄마한테 한번 얘기해볼까. 명옥이한테 말해서 너 좀 넣어달라고.”
“됐어요.”
“걔는 형제도 많고 아버지도 있고 하니 밀어주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잘도 되더고만 너는 어째 하는 일 마다 그러냐. 그건 그렇고 신문에 낸다고 만날 준비하던 건 이제 그만 둔 거냐?”
“신춘문예요? 그거 대신 잡지로 등단했다니까요. 그때 보여드렸잖아요.”
“그럼 신문에는 안 나는 거냐?”
“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명옥이 엄마한테 좀 지나면 신문에도 날 거라고 했는데. 네가 말한 그 잡지 서점에서 팔지도 않더란다. 전에 내가 너 책에 났으니 사서 보라고 했거든. 이번에 전화가 와서 봤는가 물어봤더니 그런 책은 없다 카더라.”
“…….”
“책이 팔려야 니도 돈을 받는 거 아이가? 책을 왜 안 판다노?”


엄마에게 알려지지도 않은 문예지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봐야 알아들을 리도 없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러게 밥도 못 빌어먹는 국문과는 왜 가서, 간호대나 갔으면 취직은 따놓은 단상이지,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도 떡이 생긴다 캣다. 말도 지질이 안 듣더니…”
“엄마가 학비 대 준 것도 아니면서 뭘 그래요? 명옥이 돈 잘 버니까 돈 좀 달라 그러면 되겠네요.”
나는 명옥이가 중학교 교복차림으로 돈을 꾸러 우리 집에 찾아오던 일을 끄집어냈다. 그 친구가 오면 일감을 받아 하던 포목점에 뛰어가서 미리 당겨서까지 돈을 마련해오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새삼 부아가 났다.
제 엄마 심부름으로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들던 명옥이가 발길을 뚝 끊은 것은 그 친구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다시 일어나면서부터였다. 우리는 변함없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가난한 살림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그 집에서 얼마라도 보내줄 주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땡전 한 푼 받은 것 없다고 했다. 그동안 도와준 것이 있으니 그 집에 가서 손 한번 벌릴 만도 하련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망도 없었고, 자존심 때문에 힘든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엄마가 화가 나고 야속했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의 꼿꼿한 자존심이 자랑스러웠다. 가진 게 없어도 남에게 거저는 줄망정 공짜로 뭐하나 받으려 하지 않던 그 자존심 때문에 엄마가 딸 하나 데리고 혼자가 돼서도 꿋꿋이 잘 견뎌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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