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정(人生歷程)의 종착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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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묵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중의 하나가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 한다. 때문에 ‘죽음’이라는 현상을 설명한 모든 것들은 다른 이를 통한 간접적인 것뿐이다. 즉 ‘믿거나 말거나’란 뜻이다.
‘사후의 세계가 궁금한가?’라는 논제는 수많은 종교인과와 철학자들을 위한 훌륭한 사유(思惟)의 소재가 되어 주었고, 그것을 분석하고 고찰하는 행위들은 고래(古來)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불가피한 현실로 인식한다. 정작 부처님은 자신의 사후(死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무기(無記)’라 하여 논하려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는 당장의 실재에 대한 탐구에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모두 고(苦)로 인식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을 그 고통에서 해탈(解脫)하게 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었다.
미국 예일대 셀리 케이건 철학과 교수는 ‘죽음이란 결국 모든 인식 주체에 대한 종료를 의미하므로, 인식의 주체가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인식하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결론 내린다. 즉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세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기보다는 현재의 삶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라고 이야기한다.

부처님께 은덕을 빌어
저녁 한 상 잘 차려 먹은 후
잠자듯 저 세상에
가고 싶어요

죽음이란 지(地) 풍(風) 화(火) 수(水)로의 회귀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 죽는 것은 유기체로 태어난 인간의 생물학적 현실이다. 희(喜)·노(怒)·애(哀)·락(樂)·애(愛)·오(惡)·욕(欲)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평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보다 더 큰 슬픔은 있을 수 없다. 죽음 앞에는 어떤 현대의 첨단과학도 무기력하다. 그 때문에 죽음이라는 근원적 공포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은 종교에 의존하게 되며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종교적 믿음에 따라 지인들의 죽음을 너그럽게 받아드리고 위로 받기도 한다.
때때로 ‘인간은 기계의 부품처럼 고장 나면 버려지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죽음에 대해 냉정하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반해 종교적인 신념이 충만한 사람은 ‘결코 인간은 죽어 사라지지 않는다’고 반문하기도 한다. 영원(永遠)에 대한 그러한 신념이 미신으로 치부될 때도 있지만 물질문명이 주도하는 지금의 사회 속에서 종교의 불은 꺼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영원을 꿈꾸게 한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육체와 혼백이 지(地) 풍(風) 화(火) 수(水)로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

生(생)과 死(사)의 갈림길에서 – 필자의 인생 스토리

1976년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햇살이 온몸을 녹여주는 4月 9日 초봄에 겪은 이야기입니다. 군복무 시절 부대 뒷산에 잔디 작업을 나갔을 때 6·25 때 매설되었던 지뢰가 폭발하였지요. 순간 온몸에 경련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보니 동료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저의 온몸은 피투성이인 상태였습니다. 다리 한 쪽은 출혈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출혈이 계속 되면 생명이 무척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전역을 불과 45일 정도 남긴 제대 말년의 베테랑 병사였습니다. 저는 동료의 허리띠를 받아 압박 지혈을 하며 나뭇가지를 꺾어 부목으로 대용했습니다. 동료의 런닝셔츠를 빌려 다리를 동여 메고 구조차량(구급차)을 불렀습니다. 군인 주둔 지역은 거의 비포장도로였고 국군병원까지 후송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비몽사몽의 지경으로 도착한 후송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고 저는 이틀 뒤에 깨어났습니다. 정신을 차린 순간 ‘목숨은 건졌네.’라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겨우 고개를 들어 침대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의 다리 한 쪽이 없었습니다. 살아있음에 안도하던 저에게 절망의 감정이 물밀듯이 들이닥쳤습니다. 허무하고 비통한 마음에 얼마나 울었던지 실신하여 3시간쯤 후에 정신을 차렸을 때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곁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위로의 말을 전하며 이송하는 동안 동료들의 수혈이 없었다면 무척 위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저의 생명을 이어주기 위해 노력했던 군의관, 간호장교 그리고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다시 드립니다.
그렇게 저는 48년 동안 의족으로 몸을 지탱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다시 얻은 삶이라 여긴 저는 미련하다 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때마다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사고를 당해야 하지?’라며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들은 너무 많았는데 허무하게 사라졌다는 절망과 체념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절단의 고통에 다시 정신을 잃고, 그 고통에 다시 정신을 차리는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깨어난 저에게 ‘다행이다, 아직 살아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빨던 생각, 밤늦게까지 놀다 아버지께 혼났던 일, 학교에서 소풍 가던 풍경, 우등상 받아 들고 좋아했던 내 모습, 상급 학교에 입학하여 교복 입고 모자 쓰고 폼 냈던 일 등의 추억들이 영화관 필름 돌아가듯 주마등처럼 저의 뇌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숙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생사(生死)의 경계를 넘어보았던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람이 마지막 임종을 앞두면 이러한 순간들을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저는 미련할 정도로 더 열심히 살게 되었습니다. 셀리 케이건 교수의 말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삶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게 되었습니다.

인생역정(人生歷程)의 종착역에 선 이들

연세 많으신 어떤 할머님 이야기입니다. 1년 전 할아버님을 먼저 여의게 되자 점점 삶이 무기력해졌습니다.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니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할아버님이 계실 때는 비록 두 식구지만 수퍼마켓에서 장도 보고, 드라마도 시간에 맞춰 보고, 때때로 고함도 지르며 살았는데 혼자 남게 되자 모든 일들이 귀찮아졌습니다.
객지로 내보낸 자녀들은 착하고 효심이 많아서 모시겠다고 말하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자식에게 피해가 될지가 먼저 걱정됩니다. 그리고 몸이 아파 병원비로 남은 재산을 모두 쓰게 되는 것이 제일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런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연민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처님 은덕을 빌어 저녁 한 상 잘 차려 먹은 후 잠자듯 저 세상에 가고 싶다는 것이 할머님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역정(人生歷程)의 종착역에 선 이들만이 빌 수 있는 소원인 듯 느껴집니다.

근래 저출산 위기와 고령화 문제를 언급하는 언론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저출산 위기와 고령화 문제를 주로 인구절벽과 생산인구의 감소로 분석하며 부동산 문제, 유령 도시의 증가, 병역 인구의 급감으로 인한 전쟁억지력 약화 등에 포커스를 맞춘다. 복지 사각지대에 노출된 독거노인의 문제는 여전히 뒷전으로 밀린다.
고령화 사회 복지 문제는 누구나 겪게 되는 삶의 과정 안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복지 정책은 미래지향적 구조로 더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더 이상 황혼의 시기에 선 독거노인들이 한 맺힌 마감을 하는 일이 일이 없어야 한다. 현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마감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정책의 입법화, 법제화는 국민과 입법, 사법, 행정기관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준비하여 건강한 복지국가로 거듭나길 바란다.

“인간의 보이지 않는 心(심)이 참으로 수많은 모습입니다.
행복과 불행의 한계점을 어찌 보아야 할까요?
‘선인들의 가르침 속에서 배움으로 터득해야 한다.’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물질문명의 세상 안에서는
많은 것을 가지고도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하고,
적은 것을 가지고도 행복함을 느낍니다.
누구의 삶이 아름답다 할 것인가요?
보이지도 않고 잡지도 못할 마음자리가 얼마나 중요할까요.
내 자신을 찾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본인 인생 경영에 성공한 인생이며
행복을 알고 살고 있는 현명하고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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