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번인(眞番人)과 재일동포, 왜노(倭奴)와 중화민국

역사는 반복되는가?

어떻게 반복되는가?

한사군(漢四郡)으로 등장하는 진번(眞番), 그러나 <사기>에는 진번군이 없고 <한서>부터 진번군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진번이 <사기>에 없는 것이 아니다. 진번 임둔은 이미 <사기> 조선전에 등장한다.

분명 한사군 명칭이 없다. 조선인들을 봉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위만이 조선왕위를 어떻게 됐는지를 설명하지 않지만 위만이 왕이 된 이후에 진번과 임둔이 복속하는 기록이 있다.

한서는 定朝鮮爲四郡대신하여 定朝鮮爲眞番臨屯樂浪玄菟四郡이라 했다.

그런데 <한서>권95 위만전 앞쪽에서는 진번과 임둔이 복속했다고 했는데 뒤에 한사군에 명칭을 넣었으나 <한서>권27에서는 개삼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 우거왕 때 내부 반란에 의하여 패망했기 때문에 조선인에게 봉작을 하였으니 실제 군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서>를 지을 때 한나라가 정벌하여 4군을 둔 것처럼 했는데 위만이 번조선 왕위를 찬탈하니 진번, 임둔이 복속하게 된 것이다.

기준이 번조선 왕위를 위만에게 찬탈당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이 되었다. 진번이 위만에게 복속하기 이전에는 번조선의 일부였다고 보이는 것은 굳이 위만이 정권을 잡으니 마지못해 복속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아니하여 진번이 폐지됐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진번인의 고향방문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진번인(眞番人)의 고향은 현재 살고 있는 곳인 진번으로 상각하지 않고 옛 치우천자의 활동 지역이었다. 태항산맥 북쪽의 탁록과 태항산맥 동쪽의 거야임이 1996년 처음으로 허용된 고향방문을 한 묘족들에게서 들었다. 그들이 방문하는 고향, 바로 거야와 탁록이라는 사실 때문에 위만에게 복속했다가 기준이 한을 일으키니 위만을 따를 필요가 없었고 자연히 폐지된 것으로 보았다. 바로 묘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 진번이었기에 이런 해석을 해 본 것이다

<한서>권7에서 罷儋耳眞番이라 하고 儋耳本南越地 眞番本朝鮮地에서 남월(南越) 위치가 송간본 우적도에서 확인이 되고 주변에 진파(珍播)가 진범(眞番)임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은 묘족으로 불리는 그들이 살고 있는 귀주성 여파(荔波)가 바로 진번이었던 것이다

고향이란 조상들이 살던 곳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데 2천년이 지난 후 그 현실이 재현된 것이 제일동포 현실이었다. 그들이 살던 때문 조선이었으나 국호가 조선과 대한으로 갈라진 현실에서 북쪽을 따르는 조총련과 남쪽을 지지하는 한총련으로 나뉘어 고향 방문을 하게 되는 반복된 역사를 겪고 있는 것이다. 진번인들이 자유롭게 된 그날같이 되기를 빌 것이다.

日本古倭奴也와 중화민국의 교훈

중화민국에서 지나 본토인들은 장개석정부를 따라 대만으로 왔다. 그들은 자유롭게 왕래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자유롭게 방문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 조상이 살던 곳을 방문하는 고향이 언제 쯤 가능할까?

그러나 삼국시절 백제와 왜(倭)는 연합을 할 정도의 친밀하였고 백제 패망 때는 연합군으로 당과 신라에 대항군(對抗軍)이었다. 그들은 백제 패망과 함께 철수한 곳이 바로 대만이었고, 660년에 백제 패망하고 부흥군에 동참하던 그들이 670년 국호를 일본으로 변경하고 구토회복(舊土回復)을 노리던 왜구(倭寇)가 바로 백제와 왜(倭)의 연합군으로 그들은 마한50여국의 백제국(伯濟國)과 구로국(狗盧國) 비미국(卑彌國) 후예의 연합군이었으며 구토회복을 끝끝내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역사를 알았다면 장개석 정부는 대만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천오백년전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국사와 동이전에 의하면 이사아인은 첫 국가를 구리(九黎)로 하고 조선을 거쳐 고구리(高句麗)에 이르고 고구리연방 속에서 경제적 공통체로 있었으나 자립과 독립이라는 야심 때문에 다물(多勿)이라는 이상을 잊어버리고 있다.

영연방처럼 고구리연방시대로 다물정책을 한다면 경제적 공통체로 모두가 공존하는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립적인 군대와 종묘사직까지 허용됐던 고구리 가한신(可汗神)제도에서 배워야할 미래인 것이다. 마음의 고향, 바로 조상들이 살던 곳이 고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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