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선인의 시원, 경당(扃堂)의 기원과 의의

경당의 육례(六禮) 교육

육례(六禮)를 살펴보자. ‘독서(讀書)’는 단순 글 읽기가 아니다. 천경신고1)를 익히고 인문, 역사, 과학, 기술을 망라하며 산천을 보고 익히는 것 또한 독서이다. 이 때 ‘국자랑(國子郞)’2)의 스승으로 있던 유위자가 계책을 올려 말하길, 생각하옵건대 우리의 신시(神市)는 실로 한웅천왕께옵서 개천하시고 무리를 거두심에 온전하게 하는 것으로 가르침을 세워서 백성들을 교화하셨습니다. 고하여 대종(大倧)의 가르침을 읽히는 등 독서의 범위가 광대하였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글자는 어떠했을까. 태백일사에 신전(神篆)’이 있었으니 이들 글자는 널리 쓰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문자의 보급 또한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활쏘기’는 활을 당김도 그저 과녁을 맞히는 것이 아닌 정신수양의 하나로 궁도에 전해지는 몸가짐을 익히는 자리이다. 말 타기 또한 몸과 마음을 다지는 집단체육으로 힘과 기능, 속도, 비월(飛越)에 대한 순종성을 배운다.
‘예절은 자신의 뿌리인 ‘하늘과 조상’에 경외하고,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규범을 포함한다. 단군세기에, 단군조선 제 2대 부루 단군께서 임인 2년(서기전 2239)에 소련과 대련을 불러 다스림의 길을 물으셨다. 이보다 앞서 소련과 대련은 상을 잘 치렀으니 삼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석 달을 느슨해 하지 않았고, 한 해를 슬퍼 애통해 하고 삼년을 슬픔에 젖어 있었다. 이때로부터 풍속이 변하여 상을 치름에 다섯 달로 하던 것을 오래 될수록 영광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이 기록을 받아 공자는 예기 잡기 하편에 효의 상징으로 이들이 동이의 아들이다라하고, 소학 제4편인 ‘계고편에도 같은 내용을 썼다.
예기의 근원이 이에서 나왔음을 중빙한다. 후일 조선 유학자들이 단군조선은 미개하여 문명이 없었다고 평가 절하한 사례는 제 스승마저 부정하는 모양세가 되지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참전계경>3)의 총론에 신성지역인 태백산 밑에 옛날에 사선각(四仙閣)이 있었는데, 이는 발귀리, 자부선인, 대련, 을보륵 네 선인이다. 모두 하늘에 제사지내고 수련하여 도를 넓히고 백성을 이롭게 하고라 썼는데, 여기서 말하는 대련이 바로 효의 대명사이기도 하고, 선인이며 일명 묘전랑이라고도 했다.

BC 2182년 가륵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신왕종전지도에 대해 하문했다. 을보륵은 ‘삼육대례4)를 행하고서 ‘종(倧) 나라에서 선발한 스승이요 전(佺)은 백성이 천거한 스승이니, 모두 이레(7일)를 한 회로 하여 삼신께 나아가 맹세합니다. 세고을에서 뽑은 사람은 전이 되고 구한(九桓)에서 뽑은 사람은 종(倧)이 됩니다. 그 도를 말하자면 아비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아비다워야 하고, 임금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임금다워야 하고, 스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승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들, 신하. 제자가 된 사람 역시 아들답고 신하답고 제자다워야 합니다.”라고 진언하였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공자가 제나라 왕 경공에게 답한 내용으로 논어 안연편에 나온다. 출처가 어디인가? 바로 을보륵이 진언한 내용을 공자가 답습했다.
이는 배달국 이전부터 가르침을 베푼 ‘신시개천의 도’라고 을보륵이 설명했다. ‘나를 알아 자립을 구하며 나를 비워 만물을 잘 생존케 하여 능히 인간 세상을 복되게 할 따름’이라는 홍도익중(弘道益衆) 바로 홍익인간을 말함이다. 예(禮)의 근본이념이 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격투기와 검술은 장소가 제천단(祭天壇)이 있는 성스러운 성역인 소도라는 것으로 당시 무예를 얼마나 중요시했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유위자와 같이 지극히 높은 도에 이른 선인((A)들이 교육을 담당했을 것이라는 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노래와 음악은 단군세기에 ”신시 이래로 하늘에 제사 지낼 때마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크게 모여 함께 노래 부르고 큰 덕을 찬양하며 서로 화목을 다졌다. 어아가(於阿之樂)5)를 부르며 조상에 대해 고마워했고, 신인(神人)이 사방을 다 화합하는 식(式)을 올리니 이것이 ‘참전의 계’가 되었다.”라고 했다. 전시에는 군사의 사기를 돋우는 군가로써 오랜 세월 불려 온 배달겨레의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규원사화>6)에는 천하 제후들이 찾아와 임금을 섬기겠다는 자가 수십 명이나 있었다. 그리하여 ‘어아가’를 지어 사람과 신을 기쁘게 했다. ‘어아(於阿)’라는 것은 기뻐서 하는 말이다.”라고 썼다.
육례는 이 처럼 목표와 목적을 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교육의 시행으로 오상지도와 치신득도하여 선인(仙人)의 경지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고조선이 왜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부도지>에서 그 답변을 찾아보자. 천지창조 후 ‘오미의 변(變)’이 생기고 마고가 천부를 거두어 자재율이 파괴되다보니 생존을 위한 수단인 식습관으로 인하여 뱀과 같은 독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피와 육신이 탁해지고 인간 마음의 기운인 심기가 모질게 변하는 과정을 부도지에서는 심기혹변(心氣酷變)7)이라 표현하였다.
<부도지> 12장에는 천부를 조증8)하여 수신하고, 해혹복본9)할 것을 맹서하며 부도를 건설할 것을 약속하니, 이는 지역은 멀고 소식은 끊어져 제족의 언어와 풍속이 점차로 변하여 서로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함께 모여 협화하는 자리에서 천부의 이치를 강(講)하여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이더라. 이것은 후일 회강(會講)의 실마리가 되니 인사가 번거롭고 바빠 강하지 않으면 잊버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태초에 무극(無極)이 있으니 무극에서 태극이 나오고 태극에서 사상 팔괘, 육십사패로 나눠지면서 황극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극에 이르면 다시 무극으로 환원을 한다고 보자. 인류의 큰 스승은 천년에 한 명씩 나오게 된다고 보면 황궁 씨, 유인 씨, 한인 씨 등이 천년을 이어오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당시는 힘으로 통제하는 시대가 아니라 깨달음으로 자율적으로 따르는 세상이어서 큰 스승의 법이 천년을 내려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천웅의 도’의 일념, 홍익인간을 이루려는 노력이 바로 경당의 교육 이념일 것으로 본다. 홍익인간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인간을 진정 이롭게 하는 것은 그저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 개개인이 본래 자기 모습, 즉 ‘참나’를 실현해서 참된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후일 격암은 <격암유록> ‘생초지락’에서, ‘천지가 뒤집어져 원위치로 돌아가는 때를 지금 오늘이라고 할 것이다. (부도를 둘러싼) 보성은 밝은 빛을 빈 하늘에 쏠 것이요, 사람의 몸이 높이 솟구쳐 유리세계의 경계를 초월하여 자유롭게 왕래할 것이다. 번쩍이는 해가 지는 일이 없고 달이 이지러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두 번째로 오게 될 해혹복본의 시대를 예언했다.

천웅의 도를 이은 경당 교육 목적은 마고시대의 본성, 즉 신성을 찾아 나라의 윤리 기반을 튼튼히 하고, 도덕적 질서를 저절로 순화될 수 있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제도는 고조선에서 부여를 거쳐 고구려 때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전해진 것으로 본다.

한편 경당의 육예 명칭이 주례에서 바뀐다. 가악(歌樂)은 악(樂), 습사(習射)는 사(射), 치마(馳馬)는 어(御), 독서는 서(書), 권박(拳搏)은 수(數)로 바뀌었다. 여기에 육덕(六德 : 지 인 성 의 충 화 知仁聖義忠和)과 육행(六行: 효孝, 우友, 목睦, 인婣, 임任, 휼恤), 육경(六經)을 덧붙였다. 후일 사대(事大)에 목맨 조선의 사대부들의 덕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글 | 한문수


1) 천경신고 : 천부경과 삼일신고,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따르면, ”천부경은 천제 환국에서 말로만 전해지던 글로 한웅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鹿圖)의 글로써 이를 기록케 하였다. 최치원이 일찍이 신지의 전문(篆文)을 옛 비석에서 보고 다시 이를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게 된 것이다.”라는 설명이 있다.
2)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었다. 미혼 소년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들을 국자랑이라 불렀다. 국자랑이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천지화랑이라 불렀다.
3) 참전계경은 고구려의 명재상 을파소가 다시 정리. 경당의 교육을 통해 고구려 모든 젊은이에게 가르쳐 국가정신을 재확립하는 기초로 삼았다. 천부경, 삼일신고와 함께 3대 경전으로 일명 ’366사‘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단군교팔리, 성경팔리상하, 단군예절교훈 등이 전해진다. 참전계경은 배달국의 한웅천황이 재세이화,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개국할 때에 사용한 경전이다.
4) 삼육대례는 첫 번째 절에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째 절에 여섯 번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째 절에 아홉 번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는데, 무리를 거느리고는 특별히 열 번 머리를 조아렸다. 천제 때 천단 앞에서 행하는 배례법이다.
5) 단군세기에 신시 이래로 하늘에 제사지낼 때마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크게 모여 함께 노래 부르고 큰 덕을 찬양하며 서로 화목을 다졌다. 어아가를 부르며 조상에 대해 고마워하였으며 신인이 사방을 다 화합하는 식을 올리니 이게 곧 참전의 계가 되었다.”라고 했고 북애의 규원사화에는 천하 제후들이 찾아와 임금으로 섬기겠다는 자가 수십 명이나 있었다. 그리하여 어아가를 지어 사람과 신을 기쁘게 했다. 어아(於阿)라는 것은 기뻐서 하는 말이다.”라고 했다.
6) 규원사화는 1675년 북애자가 저술했다. 역사서 형식의 사화로 서문, 조판기, 태시기, 단군기, 만설로 구성되어 있다. 규원사화는 40여 권의 사서를 참고로 하여 우리의 상고사를 바로잡았다. 이로 인해 300여 년 동안 금서로 묶였던 사서이다. 사대주의에 빠진 조선의 역사서를 탄식하던 저자는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해야 하는 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7) 심기혹변 : 혹독하게 변한 심기. 부도지 6장
8) 비출 조(照) : 비추다. 밝게 하다. 빛을 보내다 . 대조하여 보다. 깨우치다. 알게 하다. 비추어서 보다. 비치다. 별. 햇빛. 의거
9) 복본을 위한 두 가지 전제 : ‘마고’는 인간의 본질’로 설정되어 있고, 복본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전제를 설정한다 . 하나는 마고로 들어갈 수 있는 주체로 자기 자신이 거듭나기 위해서 수증(修證)을 해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도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즉 수증’과 부도’를 통해서 마고로 돌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도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첫째는 부도 구성원의 자격을 갖출만큼의 1차 수중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은 부도의 구성원으로서 마고에 돌아갈 수 있는 2차 수중이 필요함을 부도지는 말한다. ‘스스로 수증하기를 열심히 하여 미혹함을 깨끗이 씻어 남김이 없으면, 자연히 천성을 되찾을 것이니 노력하고 또 노력하시오!’ 이것이 부도지가 주는 복본의 메시지이다. 우리는 일만년 천손민족의 자손이니 이 지구상에서 부도지의 복본을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는 모든 자질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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