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地藏菩薩)과 백중(百中)

매년 음력 7월 15일(2023년에는 8월 30일)은 불가의 명절인 백중(百中)날이다. 백중(百中)은 백종(百種), 망혼일(亡魂日), 머슴날, 우란분절(盂蘭盆節) 등으로도 많이 불리지만 일반적으로 백중(百中)으로 통일해서 사용하고 있다.

백종(百種)은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었다는 의미이고, 망혼일(亡魂日)은 돌아가신 조상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과 과일, 술을 차려놓고 복을 빌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이날 농촌에서는 백중장(百中場)이라는 장이 섰으며 머슴이 있는 지주(地主) 집에서도 이날만큼은 머슴들에게 하루를 쉬게 해 주었다. 즉 여름철 휴한기에 접어든 농민들과 머슴들의 그동안의 수고를 위해 지주들이 음식과 술을 내주며 이날만큼은 놀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배려해 준 날이 민간에서 백중날로 굳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겨울철 휴한기인 정월대보름과 더불어 오늘날의 ‘여름축제’가 바로 백중날이다.

불가에서의 백중은 우란분절(盂蘭盆節)로 부른다.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말로 ‘거꾸로 뒤집어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이는 부처의 제자 중 한 명인 목련존자(木連尊者)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목련존자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서 안거(스님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한 곳에 모여서 수행하는 기간) 마지막 날에 승려들을 모아 공양을 올려 어머니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한 일로서, 이날 스님들의 법력을 빌어 공양을 올리면 죽은 조상이 지옥에서 극락으로 갈 수 있다고 널리 민간에서 퍼지게 된 것이다. 백중은 목련존자의 일화와도 연관이 있지만 지장보살과의 관계는 더욱 특별하다.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지키며 중생들이 그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는 중생의 죽음을 관장하는 보살이다. 그는 때때로 지옥문을 부수고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천상으로 인도한다.
인간은 알면서도 죄를 짓지만 모르고 짓는 죄도 많다. 그래서 죽은 뒤 지옥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관음보살(현실의 고통을 없애주는 보살)과 더불어 지장보살(죽음을 관장하는 보살)을 민간에서는 더욱 신봉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죽은 사람을 위한 49재(齋)와 천도재에서 지장보살은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보살로 여겨지고 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한국인
지장보살은 신라의 왕자(?) 출신으로 24세 때 중국(당나라)으로 건너가 출가하였고 교각(乔觉)이라는 법명을 받으며 불교의 귀의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는 중국 구화산(九华山)에서 수행하다가 99세에 열반에 들었다.
지장보살이 이 중국 구화산에서 수행을 할 때의 일화를 소개한다.
설청이라는 백구(白狗)와 함께 구화산 깊은 곳에서 수행을 하던 교각 스님은 호랑이에게 물릴 처지에 놓인 6살 남짓의 소년을 보게 되었다. 그는 도력을 발휘해 호랑이를 물리치고 소년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무사히 마을로 돌아온 소년은 산에서의 일을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 산 위에서 내가 호랑이에 물릴 뻔 했을 때 어느 스님이 나를 구해주셨어요”
이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곧바로 교각 스님이 수행하는 곳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손주의 목숨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스님께서 구해주신 이 아이는 저희 가문의 오대(五代)손 독자입니다. 아이 목숨을 구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중생이 위험에 빠지면 구제해 주는 것은 당연한 불자로서의 도리입니다.”라며 교각 스님은 거절을 하였다.
그런 교각 스님의 인복에 탄복한 할아버지는 “손주의 목숨값으로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제가 이 산의 지주(산 주인)인데 스님이 계신 이곳을 시주하고 싶습니다”라며 다시 간절히 간청을 했다.
시주를 하는 것도 공덕(功德)을 쌓는 일이니 막는 것 또한 도리(道理)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교각 스님은 “제가 입고 있는 이 가사(袈裟)는 부처님의 옷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위한 시주가 됩니다. 가사(袈裟)를 펼칠 터이니 가사가 덮는 곳만큼만 부처님을 위해 시주를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 뒤 가사를 펼치자 부처님의 도력을 입은 가사는 구화산의 아흔아홉 봉우리를 모두 덮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지주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출가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후 그 마을에는 교각 스님의 구원을 받은 소년을 비롯해 16명의 마을 사람들이 교각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지장보살을 모신 구화산은 중국 불교의 4대 성지
입적을 앞둔 직전 교각 스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 시신을 석함에 넣고 3년 후에도 썩지 않으면 등신불로 만들라” 그리고 교각스님이 열반에 들자 구화산도 슬펐는지 천둥소리를 내며 산이 허물어졌다고 한다. 3년 후 석함을 개봉할 때 석함 안에서 맑은 향이 흘러나오며 육신이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기에 신도와 승려들은 그를 지장보살(地藏菩薩)의 화신으로 여기게 되었고 그의 유언에 따라 육신에 금을 입혀 등신불로 봉헌하였다. 지금까지 그의 육신은 육신보탑에 안치되어 있으며 구화산은 지장보살의 도량으로 중국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가 되었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성지인 오대산(五臺山),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성지인 아미산(峨眉山),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성지인 보타산(普陀山)과 함께 지장보살의 성지인 구화산은 현재 불교문화와 자연경관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서 ‘구화산지질공원’으로 등재되어 보호받고 있다.

석장을 짚고 중생을 극락을 인도한다
지장보살의 본래 모습은 천관을 쓰고, 가사를 입고, 왼손에는 연꽃을,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모습이다)을 짓고 있는 형상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연명지장경(延命地藏經,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중생에게 복리를 주려는 연명지장보살의 행적과 서원을 기록한 경전)에 근거하여 삭발한 머리에 석장(錫杖)을 짚고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지장보살과 관계된 특별한 의식이 있다. 바로 매년 7월 24일에 행하는 지장재(地藏齋)가 그 하나이고 백중날의 우란분회(盂蘭盆會)가 지장보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불교의 백중은 세속의 축제 형식의 백중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 날은 중생들이 부처와 승려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날이다. 중생들이 자손의 기복을 위한 소원을 비는 날이다. 또한 죽은 조상들을 위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날이다. 이날 오직 하루 동안만 지장보살의 힘으로 지옥문이 열리고 부처님의 원력과 스님들의 법력을 빌어 지옥에 계신 조상들을 승천시킬 수 있기기 때문에 지장보살은 관세음보살과 함께 죽은 이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로의 역할도 함께하는 불교의 구세주 역할을 담당하는 보살로 여겨지게 되었다.

“나는 지옥(地獄)에 있는 중생을 모두 극락왕생(極樂往生) 시키고 나서 성불하겠다.”
불교에서의 모든 스님의 목표는 성불이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것이 최종목표다. 하지만 지장보살은 스스로 성불이 되기를 포기한 보살이라고 흔히 회자한다. 그는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중생들 모두가 빠짐없이 성불하기 전에는 자신도 결코 성불하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그 때문에 지장보살의 불교의 기본을 거스르는 파격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일반적으로 불교는 전생의 업에 의해 현재가 결정되어지는 업보사상을 지니고 있다. 지장보살의 능력이 파격적인 것은 업보사상에 반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은 전쟁과 현생의 업의 연결고리 즉, 업장(業障, 전생에 악업을 지은 죄로 인하여 받게 되는 온갖 고통)을 끊어내는 능력을 지닌다. 불교의 근본 사상을 거스르는 능력을 지닌 것이다. 그 때문에 지장보살에게 해탈을 구하게 되면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장보살만의 특화된 능력이다. 이는 살아 있을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지장보살은 부처가 있지 않은 세상에서도 모든 중생의 행복을 책임진다. 마지막 한명까지 행복해져야만, 지옥을 가지 않아야만 그때서야 지장보살은 성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현세의 구세주와 다름이 없다고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백중날에는 절에서 천도재를 함께하기도 한다. 천도재(薦度齋)는 말 그대로 천도, 즉 극락으로 인도하고 나쁜 업장을 소멸시키는 것을 뜻한다. 현세의 구세주인 지장보살과 함께하는 백중날이 바로 조상들에 대한 효도를, 못다한 후손의 도리를 다하는 날인 것이다. 백중날을 기해 가까운 절을 찾아보자. 왼손에는 석장을 짚고 오른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는 서 있는 지장보살의 모습만 봐도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지은 업장들이 소멸되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절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백중날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절을 찾아가 지장보살의 모습을 한번 뵈면 힐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 자명사 주지 지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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