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해양영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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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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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 사이 국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브라질, 인도, 중국이다. 현재 네 나라는 전 세계 국토면적과 인구 규모, 경제규모 모두 10위권에 진입해 있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명목 GDP 상위 국가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인도,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한국, 러시아, 브라질 순서이다. 한국은 ‘하드 파워’가 떨어지지만, ‘소프트 파워’를 앞세워 이들 국가와 어께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문화 선진국이 되었다. 모든 국가들도 미래의 국가 비전을 위해 ‘소프트 파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우리를 따라오지 못한다. 중국 시진핑의 장기집권 체제 확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은 핵 전술무기 사용 언급,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아마존 삼림 파괴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당하고, 10ㆍ29 참사 다음 날 인도 구자라트 모르비에서는 다리가 무너져 14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국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최근 우리도 ‘소프트 파워’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사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왜 일까? 국가 지도자들의 역사의식과 리더십 부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독도 인근의 한미일 3국 연합 훈련에 이어 관함식에 참가하여 욱일기에 경례를 하고, 10ㆍ29 참사에 대한 책임과 수습과정에 나타난 난맥상이 가슴을 후벼 판다.

일본에 독도 길 열어준 정부
한미일 군사훈련에 일본 해상자위대가 육일기를 달고 참여했다. 그 곳이 하필이면 일본의 끊임없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 인접 동해이다. 작전지도에는 동해가 아니고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었다. 결국 일본의 자위대를 독도 인근까지 끌어들인 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이 11월 6일 일본 해상자위대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관함식에 참가하여, 대함경례를 하였다. 독도 문제와 수출 규제 등 외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관함식에 참석하는 것은 잘못된 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이번 관함식은 한미일 군사훈련 논란을 두고 친일 국방과 식민사관 논란이 일던 상황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을 고려, 한일 안보 협력 강화를 명분으로 참가를 결정하였다는 국방부의 해명은 더욱 가관이다. 1953년부터 사용되고 있는 해상자위대기에 대해 ‘국제관례를 고려’했으며, ‘관함식 측면만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심포지엄에 30여 개 국이 참여 한다’고 해명하였다. 언론도 욱일기 경례 논란을 의식했는지 욱일기를 비추지 않고 소양함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만 화면에 잡았다. 일본 외무성에서도 인정하는 해상자위대기 모양이 욱일기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일본 관함식 참가를 결정한 윤석열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식민 지배를 기억한다면 절대 나올 수 없고, 친일본능이 다시 살아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도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며 전범기인 욱일기가 펄럭이는 행사에 우리 해군이 경례를 한 것은 일본의 재무장화를 용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2008년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하자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는 탓에 일본이 우리의 완전한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씁쓸함이 더해 울분이 터진다.
이번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 지도자들은 독도의 ‘통한의 아픈 역사’를 이해하는데 인색하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첫 번째 희생양이다.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기 위해 독도를 ‘주인 없는 섬’이라며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에 의거 불법 편입하고, 1945년 토지대장을 만들어 등기부에 등재하고, 공시지가를 결정하였다. 이것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하여 실시한 지적활동의 핵심이다. 일본의 우익보수는 국내 정치 기반이 약화될 때마다 한일 역사 갈등을 자극해 여론의 관심을 돌리는 전략을 사용한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영토에 관한 특명위원회‘에서 “양국 정부가 다케시마 문제를 협의하는 자리를 설치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라”고 정부에 대책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독도문제를 회부하여 “국제사회의 정의와 법에 따라서 독도문제를 처리하겠다.”라고 얼음장을 놓는다.

한중일은 해양영토 전쟁 중
현재 한중일은 총성 없는 해양영토 전쟁 중이다. 이제, 기시다 총리는 독도 침략 카드를 꺼내들 것이 분명하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꺼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전쟁가능국가’ 개헌을 밀어 붙여 독도를 완전히 빼앗아 다목적 최신 군사기지로 조성하고, 독도를 기점으로 EEZ를 설정하여 경제적 이권과 바다 밑 자원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일본의 헛소리를 계속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기에 지도층의 막말까지?, 일본의 억지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 자료는 너무나도 많다. 일본의 고지도와 『태정관지령』을 예로 들어보자. 1775년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는 기존의 지도를 정리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기하고, 일본 경위도선 안에 그려 넣은 「신각일본여지노정전도」를 제작했는데,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했다. 3년 뒤 1778년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과 같은 색으로 그려 넣어 개정 1판을 제작해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1877년의 『태정관지령』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려주는 일본 측의 대표적 자료이다. 일본 정부가 ‘지적편찬사업’에 독도를 제외하라고 지시한 공문서이다. 시마네현에서 독도에 대한 지적조사 실시 여부를 내무성에 질의하자, 내무성이 5개월 조사한 후 태정관에게 결정을 요청하였다. 그 결과 태정관이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는 땅이니 지적편찬에 편입하지 말라”고 1877년 3월 29일 지시한 것이다. 지적학적으로 볼 때 일본의 주장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독도가 자기 영토가 아닌 것을 일본도 잘 알고 있다. 이를 감추기 위한 피눈물 나는 노력이 가소롭기 그지없다. 대한민국 독립과 주권을 상징하는 독도, 신성한 독도 영유권을 침해하는 어떤 일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중국의 해양공정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의 해양공정은 제주-이어도 해역에서 센카쿠에 이르는 동중국해를 중국의 내해로 만드는 것이다. 그 한 가운데 이어도와 제7광구가 위치하고 있다. 발해사와 고구려 역사를 왜곡한 동북공정에 이어 어어도 침탈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이어도에 대한 관할권 주장은 단순히 향후 우리와 EEZ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차원을 넘어 해양법과 국제법에 관한 모든 연구와 준비를 끝내고, 해양대국을 위한 정치적ㆍ군사적 움직임을 본격화 한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저의를 잘 파악해서 적극 대처하지 않으면 동북공정 때와 같이 또 당하고 후회할 수밖에 없다.

태정관지령과 기죽도약도
한중일 해상경계 분쟁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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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영향력과 지도력을 갖춘 나라들은 ‘하드 파워’뿐 아니라 ‘소프트 파워’를 동시에 갖춘 나라들이다. ‘소프트 파워’가 한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이 ‘소프트 파워’는 지정학적인 특성과 역사의식에 기인한다.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영토학자의 가슴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10ㆍ29참사를 두고, ‘세월호 참사에서 최고 수준의 무능한 정부를 목격하였고,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 30년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닌지’ 외신들이 묻고 있다. 우리가 인도의 기반 시설 부실로 인한 사고를 지적하듯, 외신들은 반복되는 우리 정부의 무능으로 인한 참사를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비한 한미일 군사훈련이라고 하지만, 독도에 일본 군함 접근과 욱일기에 대한 경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의 독도침탈과 역사왜곡, 아직도 우리의 완전한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철천지원수,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당연히 그기에 걸 맞는 응징을 해야 한다. 앞으로 독도와 이어도, 제7광구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도전이 거세질 것이다. 독도는 우리 영토의 시작이요, 이어도는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목젖’이다. 독도와 달리 이어도는 아직까지 해양주권 인식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 이어도 영토화를 위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총성 없는 전쟁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나라가 못하면 백성이 나서야 한다.

조병현(역사평론가/영토학자)

조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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