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공간에서 찾는 자유로움

한지민 개인전 <읽는 사람들>

현대인의 모습을 부드러운 화면에 담아내는 한지민의 개인전 <읽는 사람들>이 10월 4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목화랑에서 열린다. 인물화는 대개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한지민의 작품은 온·오프라인 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지민은 그동안 현대인의 모습을 다각도로 그려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주로 서점, 도서관 등에서 포착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면 속 인물들은 주로 뒷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작가가 세심한 관찰을 통해 몸의 표정을 캐치하여 얼굴이나 말에서 드러나지 않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작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믿음 하에 이러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화면 속에서 인물들은 앉아서 책을 읽고, 공부에 몰입하거나 종종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각자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기에 타인의 시선에 다소 무방비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 덕분에 한지민은 마음 놓고 이들을 관찰할 수 있었지만,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의 모습은 현대인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인의 모습을 다룬 작품들은 사실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한지민의 인물들이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인물들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 외에도 익명성을 획득하는 방식에 있다. 회화에서 익명의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얼굴의 형태를 일그러뜨리거나, 혹은 눈을 가리는 등의 방법 등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관람자의 내면에서 불쾌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한지민이 그려내는 대상은 개성이 도드라지는 어느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에서 한번쯤 마주쳐 봤을 법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보는 이의 내면을 자극하여 불편하게 만들거나 외면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는 편안한 대상이다.

또 작가가 캔버스를 오랜 시간동안 두드려 얻은 흐릿한 이미지는 이 인물이 내 자신이 되기도, 혹은 나의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제공한다. 여기에서 한지민 작품의 개성이 드러남과 동시에 그녀의 작업이 많은 이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단초가 있는 것이다.

한지민 작가가 그려온 현대인의 모습은 언뜻 유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읽는 사람들>을 통해 누군가는 현재의 몰입감을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현대인의 외로운 단면을 볼 수도 있겠다.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전시장에 와서 직접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평론|김남윤(아미미술관 큐레이터)


흔한 일상적인 장소(배경)에서의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 그러나 화폭에 담기에는 일상적인지 않은 뒷모습만으로 작품을 표현하셨는데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다’는 말씀은 정말 좋네요. 네, 그런 의도로 작업합니다. 의무와 책임, 현실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있는 순간을 포착하죠. 하지만 특별한 메시지는 담지 않아요. 그림을 보는 이에게 더 다양한 의미나 상상의 여지를 줄 수 있도록, 제 의도가 선명해지는 것은 피하는 편입니다.

모호한 또는 몽환적인 채색기법이 특징적인데

저는 제 작품이 다양하게 해석되길 바랍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이 다르고, 살아온 경험이 다르죠. 같은 그림을 보고도 어떤 분은 ‘내 모습’이라 말하고, 어떤 분은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제 그림이 다양한 이들에게 수많은 의도로 다가갈 수 있도록, 분명한 표현보다는 ‘모호하고 몽환적인 표현방식’을 씁니다.

도서관, 학교, 개인공간 등의 공간 속 인물들은 책을 통해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하면서도 사회성은 결핍되어 보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작품으로 표출된 것인가요?

오히려 그분들이 제 그림에 공감해 주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나이대에 경험한 암울함과 막막함은 제 창작의 주요한 원천 중 하나입니다. 그 시절엔 모든 관계가 너무 버거웠어요. 저는 도서관이나 서점을 좋아합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자신에게만 몰두할 뿐,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요. 저도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저만의 세계에 머무를 수 있고요. 고독하지만 고립되지 않은, 그러나 모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과 그 공간에서의 침묵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피사체를 관찰하려는 목적으로 어떤 공간에 머물지는 않습니다. 의도치 않은 장소나 어떤 순간에서 영감을 얻지요. 그 순간을 포착해서 화면을 재구성합니다. 소설을 읽거나 음악을 듣다가 떠오르는 장면을 그리기도 합니다. 원하는 느낌이 나올 때까지 물감을 얇게 올리고 말린 후 다시 물감을 올리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지요.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젊은이들의 교양서나, 수필집 등 편안한 느낌의 커버디자인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표지로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요. 이미 세 권의 책표지로 쓰였습니다. 그중 한 권은 제가 직접 쓰고 그린 <혼잣말>입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2022년에 작업한 침대라는 작품입니다. 작업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아 작업하는 동안 고민이 많았고, ‘이 작업은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없어지겠구나.’ 생각했지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물감을 한 번 더 올렸는데 그때 원하던 느낌이 나왔어요. 울컥했습니다.

그림을 보는 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세요.

갤러리를 둘러보다 보면 좀 더 나를 오래 머무르게 하는 그림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림에도 개인적인 취향이 있습니다. 편한 복장으로 많이 보러 다니다 보면 ‘나는 이런 그림에 끌리는구나.’ 알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저는 그림을 볼 때 느껴지는 주관적인 감정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그림을 다 본 후에 작가노트를 보면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되지요. 그리고 또 한 번 그림을 다시 봅니다. 그렇게 두 번을 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입니다. 이 또한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결국 그림을 보는 방법은 정해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내년에 국내와 해외에서 예정된 전시가 있습니다. 꾸준히 작품활동 하면서 제 작업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어떤 변화를 거치는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한지민 작가 프로필

학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22 <읽는 사람들> 이목화랑 서울

2021 <Sense of Distance> 프로젝트스페이스 우민 청주

<각자의 방> 갤러리탐, 탐앤탐스 블랙파드 남양주

2020 <monologue> 이목화랑 서울

<혼잣말>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당진

2019 <두 사람> 이목화랑 서울

<두 사람>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당진

2018 <어떤 날> 갤러리 담 서울

그룹전

2022 <살결> 콜라스트 서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기적> 아트비프로젝트 서울

<MY SECRET PLACE> mozuku gallery 대만

2021 <ECOLE DE AMI> 레지던시 결과보고전 아미미술관 당진

<둥근 침묵 ROUND SILENCE> 2인전 폴스타아트갤러리 서울

2020 <KIAF IN YEEMOCKGALLERY> 이목화랑 서울

2019 <Portrait> CICA미술관 김포

<Da Capo-2019> 갤러리담 서울

2018 <New Thingking, New Art> 인사동 청년작가 공모전 갤러리 바이올렛 서울

<자리 Something in here> 4인전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당진

2017 <소소함, 일상을 보다> 당진문예의전당 당진

레지던시 2021 아미미술관 레지던시

저서 그림에세이 <혼잣말> 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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