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백성들을 위로하는 윤음을 내리다

고종실록 13, 고종 1389일 정유 1번째 기사

1876년 조선 개국(開國) 485

함경도(咸鏡道) 백성들을 위로하는 윤음(綸音)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너희 함경도(咸鏡道)의 대소 민인(民人)들은 내 고시(誥示)를 분명하게 들으라. 옛날 우리 환조대왕(桓祖大王) 은 북방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고, 우리 태조 대왕(太祖大王)에 이르러서는 천명(天命)에 응하고 민의(民意)를 따라 왕업을 빛나게 열어 나라의 영광(榮光)이 북쪽에서부터 시작됐다. 너희 백성들이 대대로 번창하면서 화락하고 태평하게 지금까지 500년이 되도록 쇠퇴하지 않은 것은 바로 우리 환조(桓祖)와 태조(太祖)께서 길러주고 키워준 크나큰 은택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주(周) 나라 사람이 처음 사는 것이, 저수(沮水)와 칠수(漆水)에 터전을 잡으면서부터’라고 하였고, 《상서(尙書)》에 이르기를, ‘여민(黎民)들이 아! 변하여 이에 화락하게 되었다.’라고 했으니 성인(聖人)들이 우선 교화를 숭상한 것이 어찌 훌륭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너희 백성들은 농사와 사냥, 운수와 장사에 종사하면서 부모를 봉양하고 효도할 줄 알며, 창을 쥐고 말을 달리며 웃사람을 친애하여 그를 위해 죽어도 좋다는 각오를 하며, 나라를 지켜서 충성을 다할 줄 알고, 성현의 글을 읽고 삼가 그 연원을 지켰고, 학교를 세우고 배울 줄을 알게 되어 너희 백성들이 이성(彝性)을 잘 보존하여 불의(不義)에 빠지지 않은 것은 이러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근래에 와서는 기근에 시달리고 부역(賦役)에 고달프며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러시아〔俄羅斯〕로 흘러들어가는 사람들이 무려 몇 천 몇 백 명이나 되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나는 이 소식을 들을 때마다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한밤중에 자주 일어나서 개탄을 그치지 못하니 가엾은 정도가 아니라 애통한 마음에 이르렀다. 아! 부모의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의 백성이 되어, 다른 나라의 옷을 입고 다른 나라의 땅에서 난 곡식을 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크나큰 죄악인가! 나라의 법으로 보아서는 응당 용서할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고(上古)부터 어리석은 백성들이 어리석으니 예의와 법을 모두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사람이 혜택을 베풀어 교화가 스며들게 하고 생활을 넉넉하게 하여 염치를 보존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해마다 큰 흉년이 들어 땅에 풀 한포기 없고, 의복은 남루하고 비쩍 말라서 굶어죽은 시체가 곳곳에 있지만, 관리들은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서 진휼하지 않고 세금을 더욱 독촉하고, 가혹하게 부역(賦役)을 시키고 지나치게 징수하며 사람을 모아서 긁어모으고 있다. 금광(金鑛)은 나라에서 금지한 것인데도 몰래 개발하여 지나치게 세금을 받아내니 마침내는 백성들을 함정에 빠뜨리게 됐다. 사슴을 공물(貢物)로 바치는 것은 본래 회감(會減)했는데도 구실을 붙여 억지로 빼앗으니 도리어 백성들을 해치는 흉기가 되었고, 주첩(朱帖)을 들이대며 마구 매질을 하고, 혹형(酷刑)과 학대를 하니 백성들은 울부짖으며 뒹굴지만 도망칠 곳이 없다. 그리하여 저 나라 사람들이 유혹하는 말을 좋게 들어서 친척과 이별하는 것도 돌아볼 새가 없이 황황급급(遑遑汲汲)하게 물고기처럼 놀라고 새처럼 숨어버리는데, 이른바 예의와 법도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니, 내가 한탄하며 측은해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법으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우선 수령들에게 적용해야 하고, 전적으로 국경을 넘는 어리석은 백성들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중신(重臣) 김유연(金有淵)이 예전에 이 도를 맡아 다스린 적이 있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그리워하니 특별히 함경도 안무사(咸鏡道按撫使)로 차출(差出)하여 보낸다. 그러니 내려가 백성들의 고통을 물어보고 탐오(貪汚)한 관리들을 다스리되 제반 조치는 형편에 따라 좋을 대로 시행하라. 백성들을 불러 모아 이 윤음(綸音)을 가지고 나라에서 어루만지는 뜻을 널리 알릴 것이니, 너희 백성들은 마음을 놓고 편히 지내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고 만약 뼈에 사무치는 폐단이나 살갗을 벗기는 듯한 정사가 있거든 숨김없이 직접 진술하라. 그러면 개혁할 만한 것은 반드시 고치도록 하고, 감면할 만한 것은 반드시 방법을 강구하여 감면하겠다. 삼농(三農)의 때가 어그러지지 않고, 모든 집들에 곡식이 차고 넘쳐야 실로 사람들의 마음이 단단히 메어져서 함께 태평성세를 누릴 수 있다. 이미 국경을 넘어간 백성들은 친척과 보갑호(保甲戶)에서 서로 통보하여 기한 안에 돌아온다면, 잘못과 죄를 용서하여 특별히 널리 은혜를 베풀고 위로하며 모아들여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하여 나라에서 함양해주는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아! 나는 너희들을 나의 자식으로 여기고 나는 너희들의 부모라고 여기고 있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몰라서는 안 되며, 자식은 부모의 말을 받들지 않을 수 없다. 아! 너희들은 내 고시(誥示)를 분명하게 들으라. 내 고시(誥示)를 분명하게 들으라.” 하였다.

【원본】 17책 13권 42장 B면

【국편영인본】 1책 533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재정-공물(貢物) / 구휼(救恤)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국왕(國王) / 구휼(救恤) / 어문학-문학(文學) / 광업-광산(鑛山)

원문

初九日。 關北安撫綸音。若曰: 咨爾關北大小民人, 明聽予誥。 昔我桓祖大王, 肇跡于北方, 逮我太祖大王, 應天順人, 光啓王業, 土宇昄章, 自北而興。 爾民人歷世蕃殖, 熙熙如皞皞如, 至于今五百年不替, 卽惟我桓祖、太祖字育之培養之之洪恩厖澤也。 《詩》云: “民之初生, 自土沮漆?” 《書》云: “黎民於變時雍。” 聖人先尙敎化, 不亦盛乎? 是故, 爾民人耕稼、射獵、車牛、服賈, 以養父母, 能知其爲孝, 執殳躍馬, 親上死長, 以衛國家, 能知其爲忠, 讀聖賢書, 恪守淵源, 以興黌序, 能知其爲學, 爾民人之不泯彝性, 不陷非義, 有如是矣。 柰之何近年以來, 顚連於飢饉, 困乏於繇役, 祈死不得, 流入於俄羅斯者, 無慮幾千百。 予每聞此, 丙枕不寐, 中夜屢興, 憂歎不已, 至于惻怛, 惻怛不已, 至于哀痛。 嗟乎! 畔父母之邦, 作異域之氓, 衣異域之服, 食異域之土, 是何等極罪大惡? 國有三尺, 固當罔赦, 而予以爲不然。 上古以來, 愚夫愚婦, 蚩蚩蠢蠢, 不可盡責以禮義經法。 故司牧者施惠以喣濡焉, 厚生以奠保焉。 今也頻年大荒, 黃沙白草, 一望鹵莾, 鶉衣鵠形, 所在餓莩, 而官吏視若楚越, 旣不有振哺, 又加以督征, 苛役橫徵, 頭會箕斂。 金丱係是邦禁, 而潛開濫稅, 終爲陷民之穽。 鹿貢本是會減, 而憑藉勒奪, 反作戕民之斧。 朱帖白棒, 酷刑逞虐, 呼號宛轉, 逃遁無所。 於是乎甘聽彼人之啗誘, 不顧親戚之離析, 遑遑汲汲, 魚駭鳥竄, 所謂禮義經法, 無暇念及。 予之所以憂歎也, 惻怛也, 至于哀痛而不已也。 然則三尺罔赦之律, 當先施於守土之吏, 而不當專施於犯越之愚民矣。 重臣金有淵, 曾典此藩, 尙有遺愛, 特差關北安撫使。 下往詢訪民瘼, 按治吏贓, 凡諸施措, 便宜行事。 招集爾民人, 將此綸音, 宣示朝家撫綏之意, 爾民人, 其各安堵, 毋或撓動。 而苟有切骨之弊, 剝膚之政, 直陳無隱, 可以矯革者, 必圖矯革之, 可以蠲免者, 必求蠲免之。 三農不愆, 百室俱盈, 固係衆心, 共享泰平。 至若已犯越之民, 親戚、保甲互相通報, 指日捲還, 則赦過宥罪, 特推廣蕩之典, 勞來安集, 可見涵育之澤, 豈不樂哉? 嗚呼! 予以爾爲予之赤子矣。 以予爲爾之父母矣。 子不可以不知父母之心, 子不可以不承父母之言。 嗚呼! 爾尙明聽予誥! 爾尙明聽予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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