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조선사람들 조혼의 이유

19세기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 읽어드릴 부분은 영국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고 1894년 갑오경장 전후로 해서 왔던 분인데 와서 조선에서 만주까지 여행을 다 해보고 쓴 책이 <조선과 그 이웃들>이라는 아주 유명한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차별받는 사람들이 천민들, 여성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차별을 받았다.
그때에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나 언더우드 목사 부인이나 수많은 의사 간호사로 왔던 서양 여성들이 조선의 여성들을 봤을 때에 정말 얼마나 처참해하고 슬퍼했는지 모른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와 같이 조선에서도 풍속이 무섭게 부패해 있으며 그 필연적인 결과로 여성의 처지는 불쾌하리만큼 천하고 열등한 상태에 놓여 있다.
여자는 남자의 반려가 아니라 노예에 불과하고 쾌락이나 노동의 연장에 불과하며 법률과 관습은 여자에게 아무런 권리도 부여하지 않고 말하자면 아무런 정신적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남편이나 부모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는 여자는 주인 없는 짐승처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의 소유물이 된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법정에서도 공인된 원칙으로서 논박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편이나 부모의 지배 아래 있지 않는 여자는 짐승처럼 먼저 데려가는 사람의 차지다.
이게 보쌈이다. 과부가 있으면 보쌈해 간다. 여자가 있으면 아무나 남편도 없고 부모도 없으면 그냥 데려가서 산다. 데려가서 살면 관가에 가서 고발해도 어쩔 수 없는데 어떻게 하냐 이렇게 서양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 되는 거였다.
가정의 행복은 아내가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 사람은 집 하우스는 있으나 가정 홈은 없다. 남편은 아내와 떨어져서 기거한다.
부부 사이에 우정과 같은 관계나 애정 표현 같은 것은 없다.
남자의 즐거움은 여자친구나 기생을 통해서 얻어진다.
우리는 아내와 결혼하지만 첩과 사랑을 나눈다라고 한 이야기한 조선 양반의 표현으로 그들의 결혼 관계를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이 당시 조선의 여성들의 처지였다.
고대 그리스 같은 경우도 주로 소년들과의 사랑에서 가슴 뛰는 사랑들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에로스라고 하는 게 보통은 어린 소년들하고의 관계에서 정신적 사랑을 느꼈고 그때는 그게 동성애라는 그런 단어나 개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같은 경우도 아이를 낳아야 하는 본 부인이 있어야 된다. 본처를 말하고 그리고 내 몸 관리도 해주고 정기적으로 성생활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첩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떤 사회적인 모임을 가고 문화 행사를 갈 때 같이 데리고 갈 수 있는 좀 고급 유녀라고 하는데, 고급 유곽 아가씨들이 한다는 거다. 그걸 헤타이라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평균 수명이 몇 살까지 살았을까? 19세기 조선 사람들의 평균 수명 그것도 남성 기대 수명이 23이었다.
18세기, 19세기 조선 양반의 기대 수명이 25이었고 20살 때까지 살아난 사람이 그러면 언제까지 더 살 것 같으냐?
20대까지 살아남았던 사람이 기대 수명이 18세기에는 35세였고 19세기에는 31세였다.
조혼이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주로 15 정도에 결혼을 했다..
그럼 조혼 풍습이 생긴 것은 23살까지밖에 못 사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일찍 결혼해서 애를 오륙 명씩 낳고 그 중에 반은 죽고 그때에 무슨 산후조리원이 있었겠는가. 무슨 약이 있었는가? 그럼 여성이 아이를 하나 낳고 둘 낳고 셋을 낳는데 영양제도 없는 상황에서 치약 칫솔이라는 것도 없고 비누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 서넛 낳고 그러면 이 다 빠지고 머리 다 빠진다. 그렇게 죽으라고 일을 하다가 23, 25세가 되면 죽는 것이다.
조선에 왕이 28명이 있었는데 조선의 왕의 평균 수명이 마흔 하나이다. 조선에서 제일 좋은 집에 살면서 제일 좋은 옷 입고 제일 좋은 음식 먹고 제일 용하다는 의사들 진료받고 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41살 밖에 못 살았다.
그나마도 영조가 80까지 살아준 덕분에 평균이 올라갔다.
요즘 비교해 보면 저렇게 처참한 삶을 살았던 게 조선의 현실이었다. 조선이 멸망하는 것을 조선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 500년 된 나라가 망했는데 조선이 망한 지 9년 만에 일어난 3.1운동에서도 국권 회복 운동에서도 아무도 나라를 되찾자 그러고 국권을 두루 내놓으라 면서도 조선을 다시 세우자는 사람은 없었다.
임시정부에도 그런 사람 없었다. 1910년 나라가 망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조선을 다시 세우자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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