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三神)의 삼(三)이나 일본 고사기의 ‘삼(參)‘은 같은 글자다.
일본사서 ‘고사기(AD712년)’ 서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乾坤初分 參神作造化之首(건곤초분 삼신작조화지수)
하늘과 땅이 처음 나누어질 때 삼신이 만물창조의 시조가 되었다.<일본 사서에 나오는 삼신>
<신단실기(神檀實記)>에 나오는 삼신의 이야기는 이렇다.
요(遼) 태조가 영천(永川) 목엽산(木葉山)에 사당을 세우고 삼신(三神)의 신주(神主)를 모셨다.
요나라(916~1925) 최초의 임금 태조(재위 916~926)는 영천 목엽산에 사당을 세웠다. 동쪽을 향해 천신위(天神位)를 설치했다. 그 당시 요나라 때는 이미 단군조선의 중심지가 하얼빈 쪽에 있을 때다. 세 번의 단군 조선의 수도가 이동이 됐는데 당연히 동쪽의 단군 신위가 있는 곳을 보고 제를 올렸다. 사당 뜰에 단목(檀木, 신의 나무)을 심었으니 이름이 군수(君樹, 그 지역을 지키는 나무, 성황나무, 당산나무)이다. 사당 앞에는 여러 나무를 심어서 조회 받는 반열을 상징하고 또 모퉁이에 두 나무를 심어서 신문(神門)이라 했다. 해마다 황제와 황후가 군수(君樹) 앞에 이르러서 친히 잔을 올리고 음복하며 군사의 일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이 사당에 고했다. 이때 삼신의 신주를 모시고 푸른 소와 흰말을 잡아 제사를 지냈다. 이 사실은 여러 군데서 증빙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단군사당이 아니라 그 사당에 모신 신은 삼신이라고 요 태조는 제대로 알았다.
* 출저 요사(遼史)김교헌(1868-1928) 쓴 한국고대사에 관한 책 1914년 2월 발행.
컷‧글 | 정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