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칠석 ‘견우와 직녀의 만남’

하늘에 아로새긴 기쁨과 슬픔의 사랑 변주곡

칠월칠석은 한마디로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다. 음력으로 7월 7일. 이날을 ‘칠월 칠석’ 혹은 ‘칠성날’라고도 한다. 우리네 엄마나 할머니들이 새벽에 정안수 한 그릇 장독대에 올려놓고 북두칠성께 치성을 올리는 날. 주변에 성황당이 있으면 정안수 한 그릇을 올리는 날이다. 지극정성으로 치성을 드리면 반드시 북극성에 계신 마고님이 감응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승의 삶을 마치고 돌아가는 곳도 북두칠성을 통해 북극성이라고 믿었다. 이렇듯 우리선조들의 삶을 영위하는 사유체계에서 생이란 탄생과 죽음의 순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에 빠진 견우‧직녀에게 형벌을 내리신 분이 바로 부도지에 나오는 ‘마고(삼신)’님이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의 생활방식이 된 만남과 이별의 사연을 천문으로 끌어 올렸고 사후의 영역까지 확대시킨 민족적 철학을 간과하고 우리 후손은 아직 선조들의 해원과 삶의 철학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견우와 직녀가 한 해에 한 번 만나는 칠월칠석의 설화

칠월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번 은하수를 건너 만나는 날로 전승돼 온다.

옛날 하늘의 목동인 견우(牽牛)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織女)가 있었는데 견우는 소를 잘 키웠고 직녀는 길쌈을 잘하고 부지런했다. 직녀는 옥황상제(天帝, 마고, 삼신, 서황모, 하느님 등 믿음 성향대로 명명)의 손녀로 옥황상제가 매우 사랑하여 은하수 건너편의 하고(河鼓)라는 목동(견우)과 혼인하게 했다. 그러나 직녀와 견우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맡은 일은 않고 게으름을 피우자, 화가 난 옥황상제는 그들 두 사람을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놓았다. 그리고 한 해에 한 번 칠월칠석에만 같이 지내도록 했다. 하지만 은하수 때문에 칠월칠석에도 서로 만나지 못하자, 보다 못한 지상의 까마귀들과 까치들이 옥황상제 몰래 하늘로 올라가 머리를 이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 직녀는 그 다리를 건너서 견우를 만나서 하루를 지내고 다시 되돌아온다. 그 다리를 ‘까마귀와 가치가 놓은 다리’, 즉 ‘오작교(烏鵲橋)’라 하며, 칠석이 지나면 새들은 다리를 놓느라고 머리가 모두 벗겨져 돌아온다고 한다. 또한 이 날 오는 비는 ‘칠석우(七夕雨)’라 한다. 그래서 칠석날 아침에 비가 내리면 견우‧직녀(牽牛織女) 상봉(相逢)의 눈물이요, 저녁에 비가 내리면 이별(離別)의 눈물이라 한다.(형초세시기와 최남선 조선상식) 또 저녁에 두 사람이 만난 상봉으로 흘린 기쁨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리며, 그 이튿날 아침에 오는 비는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 말하는 등 하루의 만남이 낮이나 밤의 관계 등으로 혼선이 돼 있다. 이 설화는 다분히 남녀상열지사의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하긴 남녀 사랑이 인생사의 근원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잖은가.

견우·직녀 상봉의 눈물인가 이별의 눈물인가

칠석(七夕)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애틋한 사랑 전설(傳說)을 간직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아낙네들의 길쌈 솜씨나 청년들의 학문 연마(硏磨)를 위해 밤하늘에 별을 그리며 소원을 빌곤 했다. 애절한 사랑 전설(傳說)만큼이나 잠 못 이루는 한여름 밤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한 칠석은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을 연결하는 풍속(風俗)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사랑에 빠진 직녀는 하늘의 신들이 입는 천의무봉의 비단을 짜는데 소홀 했으니 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비단은 날줄을 세우고 씨줄을 끊어짐 없이 좌우로 가로질러서 짠다. 날줄이 기본 틀을 이루고,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씨줄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여 완전한 옷감을 만든다. 이 날줄과 씨줄을 경(經)과 위(緯)라고 말한다. 그렇게 세로와 가로,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 종적인 면과 횡적인 면 등을 표현할 때 경위(經緯)라고 한다. 날줄과 씨줄이 맺힌 점을 올이라 하고, 경위가 맞으면 ‘올바르다’고 한다. 이 경위를 맞추는 것을 이치라 한다. 모 종교에서는 이를 ‘선녀직금(仙女織錦)’으로 표현했다. 즉 직녀가 우주의 이치를 어긋나게 했기 때문에 벌을 받게 된 것이란 유추도 설득력이 있다. ‘牽(견)-끌다’, ‘織(직)- 짜다’의 이름자 풀이처럼 직녀는 제대로 자연의 이치를 올바르게 짜고 견우는 우주의 운행을 끌고가는 역할을 충분히 해야 우주는 잘 돌아가기 마련이다. 평소 잘하던 역할을 사랑에 빠지면서 소홀해지면 우주가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일 게다.

사료에 나타난 견우직녀 이야기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두 별이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그 위치가 매우 가까워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설과는 달리 실제 천체(天體)의 운행(運行)에서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의 각(角)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이맘때 초저녁 하늘 가운데 뜨기 때문에 시야에 가득 들어오고 7월 7일이 양수(陽數)가 겹치는 왕성한 날이기에 애절한 견우직녀 전설과 함께 어울려 늦여름의 행사로 정착된 것이라고도 한다. 견우성(牽牛星)은 동양의 이십팔수 중 북방칠수의 하나인 우수(牛宿)에 속하는 별이며, 서양의 별자리에서는 염소자리의 β별인 다비흐(Dabih)로 불린다. 이런 사실에서 설화가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이 설화의 발생 시기는 불확실하나, 후한(後漢) 때 조성된 효당산(孝堂山)의 석실 속 화상석(畫像石)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전한(前漢)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곧 춘추전국시대에 천문 관측을 통해 은하수가 발견됐으며,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설화의 연원으로 추정되는 시구가 있다. 후한(25~220년) 말경에는 견우와 직녀 두 별이 인격화하면서 설화로 꾸며졌고, 육조(六朝, 265~589년) 시대에 이르러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 견우를 만난다.’라는 전설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 설화의 가장 오랜 것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발견된다.

견우·직녀에 관한 전설은 한국·중국·일본 모두 비슷하다.

『고려사』에서는 공민왕 때는 몽고인 왕후인 노국공주가 견우와 직녀성에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에는 칠석연회를 베풀고 과거시험을 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강서 북한의 덕흥리 고구려고분벽화(408년)에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가 소를 끌고 직녀는 구미호를 데리고 있는 그림이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채록본은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에 수록한 <오작교>에 나온다.

천해(天海)는 물과 관련이 많다

천도(天道), 즉 하늘의 도는 북극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천일(天一)의 물이 나온다. 이를 ‘북극수’라 하며 북극은 ‘수정자(水精子)’가 기거하는 곳이라고도 했다.

인류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나반’이 ‘아만’을 만나기 위하여 하늘의 강, 즉 은하수를 건너는 날이라는 기록과 하늘의 은하수를 천해(天海)라고 했으며, 이것이 지금의 북해(北海)라고도 했다.

하늘에서 ‘수정’은 남방주작 칠 수에 속한 첫 별자리인 ‘정수(精宿)’를 말하며 정수는 우물 정(丼)자 모양의 별자리며 흔히 동쪽 우물이란 뜻으로 동정(東井)이라고 했고, 남자들의 첫 경험에서 얻어지는 사정을 ‘동정’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 여기서 천일의 물, 즉 천일 생수와 수정자 등 물과 관련된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물이 바로 생명의 근본으로 생명은 생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성의 자궁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곳으로 모두 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칠석날은 여성들의 날로 칠석제(七夕祭)는 여성들이 제관이 되어 지낸다.

칠석제를 지낼 때 집집이 우물을 청소하여 청결하게 하고 고사를 지낸다.

또한 칠석제의 제물은 남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오이, 가지, 호박, 당근, 참외, 수박, 복숭아 등 과일과 시루떡, 밀전병, 칼국수, 호박 부침 등의 음식을 준비하여 칠석제를 올렸다.

하늘에서 음양의 교접이 일어나는 날이 바로 칠석날이라는 것이다.

칠석날에 하늘에서 음양의 교접이 이루어져야 땅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도 열매를 맺고 맛이 든다.

음력 6월은 장마가 심하지만, 칠석 무렵부터는 장마도 끝이 나며, 칠석날이 지나면 땅에서 자라는 농작물들이 제대로 열매를 맺고 영글어 가기 시작한다.

벼가 이삭을 맺고, 모든 과일은 맛이 들어 그 과일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맛을 낼 수 있다.

칠석날은 양의 기운이 극하는 단오날과 달리 양과 음의 기운이 일 년 중 같은 시기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양수인 홀수 날이 겹칠 때는 길일이라 하여 그냥 넘어가지를 않고 꼭 그날을 기리는 의식인 민속놀이를 즐기면서 그날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곤 했다.

1월 1일이 그렇고,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인 단오날, 그리고 7월 7일인 칠석날이다.

일설에는 견우‧직녀를 내세운 것은 농사와 양잠은 당시 필수적인 산업으로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분석도 있다.

칠월칠석은 삼짇날과 같이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날인 것처럼 지내고 있지만, 사실 삼짇날이나 칠월칠석날은 다른 날보다 더욱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있는 의미가 깊은 중요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의 용상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는 임금의 위상을 나타내는 그림도 되지만, 바로 칠석날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형상을 나타낸 그림이다.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것은 양과 음의 기운이 똑같다는 의미이며, 그 아래 그려진 오악은 조선의 팔도강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월오악도는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때 음양의 기운이 똑같듯 불편부당함이 없이 공평하게 나라를 다스리라는 교훈이 담긴 그림이다.

그러나 천문을 모르고 칠석날의 의미도 모르면 이 일월오악도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나반’ ‘아만의 변용

칠월칠석의 가장 오래된 근원적인 유래는 무엇일까?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 보면 인류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나반’이 ‘아만’을 만나기 위하여 하늘의 강, 즉 은하수를 건너는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견우와 직녀는 인류의 조상인 ‘나반’과 ‘아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7월 7일은 ‘나반(那般)’이 천하(天河)를 건넌 날이다. 하백(河伯)은 천하(天河)의 사람이며 나반(那般)의 후손이다. 이 날 천신께서 용왕에게 명하여 하백을 용궁으로 불러 그로 하여금 사해의 모든 신을 주재하게 했다. 천하는 일설에 ‘천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북해’이다.

<河伯是天河人 那般之後也. 七月七日那般渡河之日也. 是日 天神命龍王 召河伯入龍宮 使之主四海諸神 天河一云天海 今曰北海是也(태백일사 삼신제오본기)>

인류의 조상은 ‘나반’이다. 나반께서 아만과 처음 만난 곳은 아이사비다. 두 분이 꿈에 천신(하느님)의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혼례를 올리니 구환족의 모든 족속이 그 후손이다 <人類之祖 曰那般 初與阿曼 相遇之處 曰阿耳斯庀 夢得天神之敎 而自成婚禮 則九桓之族 皆其後也(삼성기 하)>

<한단고기> 삼성기 하편을 보면 인류의 시원을 ‘나반’과 ‘아만’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바이칼호수 동쪽과 서쪽에 나뉘어져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꿈에 천신의 가르침으로 만나 혼례를 치루게 됐는데 바로 그 날이 음력 7월 7일이다. 그러나 칠석날이 되면 민족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의식이나 민속놀이는 사라지고 오직 절에 가서 개인의 기복만을 기원하는 불공을 드리는 날로 되어버렸으니 안타깝다.

사실 칠월칠석날은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날이다. 칠석날은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번 은하수를 건너 만나는 뜻깊은 날로 바로 직녀성의 날이기도 하다.

고구려 국소대형 무덤의 견우직녀도

덕흥리 벽화문 앞방 남쪽천장 고구려 국소대형 진의 무덤에 그려진 견우직녀도를 보면 천하(天河)는 은하수가 연상된다. 견우는 하늘 목동이다. 그래서 황소를 끌고가는 형상이다. 황소는 하늘 동물이다. 치우한웅의 형상이 그려지고 있는 듯하다.

직녀는 여우가 보좌하고 있다. 여우(구미호)는 하늘 동물이다. 직녀는 옥황상제의 직계다.

중간에 은하수는 천하(天河)로 불리는데 의견은 분분하다. 천해=북해=바이칼호 또는 발해로 연상되기도 한다. 그 은하수 위로 놓인 다리가 오작교다. 다리를 놓는 것은 까마귀로 천조인 것이다. 이를 살펴 볼 때 견우직녀도는 하늘세계를 그린 것이다. 천손민족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들 마음의 고향 북두칠성을 형상화 한 것이다. 그 내용은 북극성에서 와서 살다가 죽으면 내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인 것이다.

견우직녀도는 하늘세계를 그린 것이다. 우리는 칠성신앙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돌아갈 고향세계를 그려 놓은 것이다. 우리는 삼신의 자손이자 천손민족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형벌을 내린 주재자는 서왕모(마고=삼신)

대륙에서 말하는 서왕모는 하늘과 땅의 형벌을 주재하는 주재자이다. 견우‧직녀가 사랑에 빠져 하늘 일을 게을리 하니 일 년에 한번 칠석날 만나게 형벌을 내린 주재자이다.

서왕모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삼신(마고)이다. 마고를 보좌하는 4마리 신수가 있다. 구미호와 삼족오, 토끼, 두꺼비다. 사신수는 나중에 바뀐다. 원래 동쪽엔 구미호(여우)인데 나중에 청룡으로 변하고 남쪽은 태양의 새인 삼족오다. 삼족오는 다리가 3개인데 이는 왕권을 상징한다. 나중에 주작으로 바뀐다. 서쪽을 담당하는 토끼(卯)는 백호(虎)로 바뀌고 북쪽의 두꺼비도 훗날 현무로 바뀐다.

별자리 이름으로 알아보는 견우직녀 이야기

견우, 직녀 전설은 BC 2300년경에 생겨 난 설화로 누구나 알고 있는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아름다운 가는 하늘의 별자리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직녀를 의미하는 직녀성인 ‘녀수(女宿)’ 위에 ‘패과(敗瓜)’라는 깨진 바가지란 뜻이 담긴 별이 있다. 직녀는 견우를 만나려고 그 깨진 바가지로 은하수 물을 퍼내려고 했으나 깨진 바가지론 그 많은 은하수 물을 다 퍼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직녀는 ‘점대(漸臺)’라는 정자 모양의 별자리에 올라 견우를 그리워하면서 사랑의 정표를 자기가 짜고 있던 베틀 북을 견우에게 던졌는데 그것이 ‘포과(匏瓜)’라는 별자리가 됐다.

견우 또한 직녀가 그리워 논밭을 갈 때 끌던 소의 코뚜레를 던졌다. 그 별이 ‘필수(畢宿)’라는 별자리가 됐다. 다시 직녀가 견우에게 자기의 아름다운 머리를 빗든 빗을 던졌다. 이 별이 바로 ‘기수(箕宿)’라는 별이 됐다는 전설도 있다.

이러한 전설에 걸맞게 칠석날은 바로 연인들의 날이기도 하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연인들이 다시 만나는 그런 날이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까마귀와 까치들을 빌려서 서로 만날 수 있게 오작교를 놓아주는 공동적인 애절한 마음의 발로 일 것이다.

그러나 장사꾼의 얄팍한 상술로 만들어진 ‘Valentine Day’나 ‘White Day’ 그리고 ‘Black Day’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불멸의 사랑’을 통하여 밸런타인데이에 밀려난 토종 ‘연인의 날’을 되살리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급하다. 하지만 칠석을 사랑만으로 푼다면 ‘수박 겉핥기’이다. 칠석은 수명장수, 농사의 결실, 음양의 균형 등과 연결되면서 우리의 가치관을 정립해온 기념일로 고구려 벽화와 삼척의 성혈이 역사와 민속의 증거물이다. 선조들은 칠석날 칠성신, 북두칠성, 옥황상제 등을 모시고 고사를 지냈다. 이들 신격은 도교의 신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수명을 관장하기 때문에 중요한 신이다.

별자리는 유선이 합치된 종교관

견우와 직녀상이 고구려 덕흥리 무덤 벽화에 나타난다.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견우는 소를 끌고 있고 직녀는 구미호(여우)를 데리고 나와서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 이를 견우지상(牽牛之象), 직녀지상(織女之象)이라고 쓰고 있다.

‘별자리 전문가’는 ‘별자리는 유불선이 합치된 종교관’으로 풀어내고 있다.

‘제주도에서나 보이는 남극노인성은 무병장수를 비는 별자리다. 세종대왕은 천문관을 서귀포로 보내 남극노인성을 보고 오라고 했다. 남극노인성을 보면 나라가 평안해지고 무병장수한다는 사실을 믿은 것이다’

그는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택했지만, 궁중 안에서는 불교를 믿었고, 도교식으로 별자리에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했다’고 설명하고 ‘이는 유불선이 합치된 종교관’이라며 별자리 이야기를 풀었다.

북두칠성에 담긴 영혼과 환생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사람이 죽으면 북두칠성이 영혼을 인도해서 28수(별자리) 중 하나인 귀수(鬼宿)로 보낸다. 그래서 귀수 안에 시체 기운의 모임이라는 뜻의 적시기(積尸氣)라는 별이 있다. 죽은 영혼들이 이곳에 있다가 남두육성이 다시 살려서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새 생명을 소원할 때는 남두육성에게 빈다’고 말하고 도교나 불교에서도 별자리를 중시했다.

‘북극성을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도교에서는 자미대제(紫微大帝), 인도의 북두만다라에서는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도교에서는 태상삼관북두진경(太上三官北斗眞經) 등을 통해 북두주(北斗呪) 28수주(二十八宿呪) 등을 외면서 무병장수를 빌고 기우제를 지냈다.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는 물론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을 탱화로 표현하여 칠성각에 모셨다. 칠월칠석에는 칠성님(칠성원군, 칠성여래)에 대한 재(齋)를 올리며 집안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별로 제갈공명이 북두성에게 빌었듯이 목숨을 연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칠성에게 빌었다. 죽으면 관 바닥에 일곱 개의 구멍이 뚫린 칠성판을 넣고 그 위에 시신을 눕히는 것도 북두칠성께 잘 보살펴 달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세종 당시의 별자리 연구(천문유초) 수준은 서양보다 200여년 앞선 것이라며 서구식 별자리 이야기에 익숙해진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다.

소는 누가 키우고, 베는 누가 짜나?

남녀 간의 결합 생명탄생을 주관하는 신은 민족마다 여러 이름으로 나타난다. 천체로는 은하계의 최고별 북극성을 상징한다. 북극성에서 삼신(마고)이 아이를 점지해서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생명을 내려준다는 게 옛 우리선조들의 사유방식이다. 이때 창조신으로서 대지의 신은 정월 초하루에 닭을 만들었고… 이레째 되는 날에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창조과정은 훗날 구약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엿새째 되는 날에 사람을 만든 후 이레째 되는 날 쉰 것으로 변용된 것이 참 흥미롭다. 이후로 인간이 생육하고 번창하여 만물을 지배하라는 하느님의 축복이 내림으로써 강력한 인간 중심의 관념을 표명하고 있는 듯하다.

견우는 소를 팽개치고 직녀는 베틀을 팽개치고 둘이 붙어 다니며 놀기만 하자 천상 운행에 차질이 생겼다. 견우와 직녀 앞에 갑자기 하늘의 형벌을 주관하는 서왕모(마고)가 나타나 비녀를 뽑아 허공에 한 줄기 선을 그었다. 그러자 은하수가 생겨나서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됐다.

그리고 서왕모는 그들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1년에 한차례 만날 수 있게 했는데 7일 동안만 만날 수 있게 못을 박았다. 둘이 만나기만 하면 소도 팽개치고 베도 안 짜고 붙어서 놀기만 하던 그들에게 내려진 준엄한 천상의 형벌의 의미도 되겠지만 여기서 이레째 인간을 탄생시킨 것을 연계해보면 둘에게 내린 벌은 생명잉태와도 연결이 되는 듯하다. 구약 창세기엔 하나님이 이레째 날 쉰다는 것과도 둘이 쉬라는 의미가 맞아들기도 한다. 하지만 견우와 직녀는 갑잡스런 슬픔에 겨워 오해를 하고 말았다. 매년 7월 7일 칠석 하루만 만나도 좋다는 뜻으로 서왕모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들은 칠월칠석 하루만 만나고 있다고 한다.

만나면 기쁨의 눈물, 급히 헤어지면 슬픔의 눈물 속에 6일을 손해보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남녀상열지사로 기울어진 견우직녀의 이야기를 접하고 보면 의심이 가는 점이 있다.

칠월칠석의 설화를 바탕으로 그렸다는 그 견우직녀도가 덕흥리 고분의 무덤 천정에도 그려져 있다. 무덤의 천장엔 주로 천상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했는데 왜 그러한 사연의 직녀견우를 그렸을까 궁금해진다. 고관이 죽어서 만든 무덤에 그런 사랑타령이나 그리려는 화공들의 객기는 아닐 것이고 나름대로 엄숙하고 경건한 무덤 속에 그것도 사후 천상의 부분에 해당하는 천정에 견우직녀상을 그렸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상의 인간들이 보면 그런 불완전한 사랑이야기를 왜 천상의 이야기 부분에 그렸을까? 후세인들이 보면 심심해 할까봐 그런 그림을 그런 건 아닐 테고 당시 널리 퍼진 일상화된 가치의 뭔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에게 전해주는 어떤 계시가 분명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궁금해진다.

견우와 직녀에 대한 징표는 여러 곳에 있는데 정확하게 밝힌 곳이 없는 듯하다.

북극성은 자미원이고 그 안에 직녀성이 있고 황천강으로 표현하는 은하수 건너에 견우성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천손이란 사유를 갖고 살아 온만큼 죽어서는 돌아간다는 이곳이 인간의 고향이라 알려져 있다. 삶과 죽음은 돌고 돈다는 대순환의 굴레 안에 있다는 인간에게 별자리 견우와 직녀별을 보면 모든 인간의 신화가 적용이 되는 듯하다.

우리 선조들의 삶의 방식이 됐고 사유체계가 되다

이 설화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특히 강이 가로 막혀 있는 나루터에는 으레 이별에 발을 동동 굴리는 것은 흔했다. 그리고 만나면 반가운 이별과 만남의 반복이 애절한 삶으로 나타난다. 남과 여가 항상 만남과 헤어짐, 다시 만남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곧 천체 우주 질서에 해당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특이한 점은 중국의 설화에는 앞부분에 <나무꾼과 선녀>가 결합하면서 ‘지상에 남은 우랑(牛郞, 견우)이 말하는 소(牛)의 지시로 하늘로 올라간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한반도 지역의 설화에는 그런 부분이 없다.

하지만 우리 옛 선조가 수미산 혹은 파미르에서 옮겨 왔고 대륙이 오랫동안 환국, 한인, 배달, 조선의 우리 선조들의 활동 강역이었으며 그들 중 일부가 이곳 한반도로 밀려와 자리를 튼 장자임을 감안할 때 천자 천손의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날이 되는 계기가 되고 있는 듯하다. 마고력 11,159년, 서기력 2022년 음력 7월 7일(양력 8월 4일) 칠월칠석을 통해 우리 민족은 하늘문화의 중요한 민속절의 하나인 칠석절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정안수라도 한 그릇 떠서 정성껏 소반에 올리면서 영혼이 깨끗해지는 세상이, 후손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10여 년 전부터 있었던 ‘코리안 밸런타인데이-견우와 직녀의 날(음력 7월 7일)’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 농산물을 선물로 주고, 받자는 행사도 시행됐었다. 이 발상을 크리스마스로 이어갔다.

예부터 애절하게 전해오는 견우와 직녀가 옥황상제, 은하수, 까마귀, 오작교, 아반 나반, 여와복희, 치우, 공무도화가, 광한루, 나루터 이야기, 춘향과 이 도령의 사랑 이야기 등으로 변용되면서, 만남과 이별의 정한으로 시나 이야기에 스며들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잊혀져가는 우리 사회의 흥미로운 정서로 이어지고 민족의 정체성은 물론 자긍심까지 주는 민족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중국에서는 칠석을 ‘연인의 날’로 기념하고 그 날을 ‘정인절(情人節)’이라 명명(命名)했다고 한다.

그 이전은 차치하더라도 고려 공민왕은 몽골 왕후와 더불어 내정에서 견우·직녀성에 제사를 올렸고, 이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으며, 조선 시대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를 실시했다는 역사적 유래가 있는 이 날을 우리가 홀대해버린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찾을 수 있겠는가.

후손들이 칠석날을 기려 기념일로 정하여 축제를 하다 보니 후대로 오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로 변해간 것이다. 음력 7월 7일이 되면 견우와 직녀의 만남으로 단순화 시키고 있는 듯하다.

뜻을 가진 단체에서 칠석날을 우리는 ‘연인들의 날’로 제정하여 우리의 전통음식인 떡을 먹는 날로 정하자고 오래전에 주장해 왔지만 아직 그마저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칠석날이 가진 음양의 조화와 견우직녀의 만남을 기리는 뜻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 민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축제, 더 나아가 전 인류가 한자리에 모여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했지만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 칠석날이다.

다양한 생활주기와 변천하는 문화,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오늘날 칠석의 풍속은 견우와 직녀의 전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신화와 천문학, 철학, 문학 등으로 확대되는 사유의 폭을 넓혀 가야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천상으로 확대된 우주관으로 엄연히 정신적으로 뛰어난 우리선조들의 삶의 방식이 됐고 선조들의 활달한 사유체계로 우리들 유전자로 면면히 흘러오고 있다. 이러한 선조들이 물려준 민족적 자산을 홀대하거나 방관하면 엄청난 손실이 될 것이다. 주변국이 갖고 가기 전에 먼저 선점을 하고 스토리텔링해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 가야할 몫이 우리 후손에게 던져진 숙제다.

글 | 정노천(우리원형연구가)

Share:

Facebook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