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의 백중(百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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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묵

불교의 행사나 법회들은 대부분 음력으로 날짜가 정해진다. 불교의 5대 명절인 부처님오신 날(음력 48), 출가절(음력 28), 성도절(음력 128), 열반절(음력 215), 우란분절(음력 715)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우란분절은 민가에서는 백중(百中)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날은 음력 715일까지 49일 동안 돌아가신 조상의 영가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연 영가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날로 불가(佛家)에서 매우 중요한 날로 여긴다.

백중(百中)이란?

백중은 백종(百種),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 우란분절(盂蘭盆節) 등으로 불리는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 중의 한 날이다.

속가에서는 7월 백중을 조상들에 대한 공덕을 기리는 날로 여겼고, 100가지 곡식으로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도가(道家)에서는 삼원(三元, 상원 1월 15일, 중원 7월 15일, 하원 10월 15일)의 한 날로 성신(星辰)에게 제사를 지내는 초제(醮祭)를 행했다. 망혼일(亡魂日)은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새로 농사 지은 과일이나 곡식으로 감사의 뜻으로 제를 지는 천신(薦新)을 하는 것에서 유래가 됐다.

그리고 우란분절(盂蘭盆節)은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내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란분은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뜻의 인도 범어로 ‘지옥에 매달려 있는 중생을 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 우란분절을 5대 명절 중의 하나로 여긴다.

약 1700년 전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나 고려 때에는 일반인까지 백중 행사에 참여했을 정도로 큰 명절이었으나 조선시대 이후로 사찰에서만 행해졌고 민간에서는 거의 소멸됐다.

백중의 유래

옛날 인도에 ‘부상’이라는 장자(長者)가 살았다. 자신의 땅을 밟지 않고는 마을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자였던 부상 장자는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과 집을 나눠 주며, 모든 이들에게 항상 선업(善業)을 베풀었다. 특히 매년 7월 15일이면 집에 수천 명의 스님들을 모셔놓고 음식 공양을 드렸다. 그는 불가(佛家)에서 행하여지는 모든 공양(음식 공양, 의복 공양, 주거 공양)을 마다하지 않고 공덕을 쌓았다. 하지만 부상 장자는 갑자기 부인(청제부인)과 나복이라는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컸던 부인은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매일 큰 재를 올렸다. 그로 인해 많은 양의 돼지와 소, 양을 잡으며 살생을 거듭하게 됐었고, 차츰 재산도 줄어들게 됐다.

재산이 점점 축나게 되자 아들 나복은 이웃 나라로 장사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됐다. 그는 스님들을 모셔놓고 재(齋)를 올릴 수 있을 넉넉한 재산과 살림밑천을 어머니께 나눠준 후 떠났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아들 나복까지 외국으로 떠나자 부인(청제부인)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녀는 “내 남편이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스님들을 모두 돌려보냈고, 이후 동냥 오는 거지들의 쪽박까지도 깨부수는 등 악업을 저지르다 결국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병에 걸려 죽게 됐다.

큰 재산을 벌어 돌아온 아들 나복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며 무덤 옆에서 시묘살이를 하던 중 주민들로부터 그동안의 어머니의 악업을 듣게 되며 슬픔에 잠긴다. 그러던 어느 날 고승을 만나게 된 나복은 어머니의 악업을 씻기 위해서는 출가를 해서 중(스님)이 돼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고 그는 곧바로 머리를 깎고 수행을 시작했다.

남들이 10년 배울 것을 1년이면 모두 익힐 정도로 열심히 수행을 한 나복은 ‘신통제일존자’라고 불릴 정도로 큰 신통력을 얻었고, 부처님의 10대 제자에 들어가게 되며 ‘목련존자(目連尊者)’의 직함을 얻게 됐다.

신통력을 얻은 목련존자는 돌아가신 자신의 부모님을 찾아보게 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의 선업(善業)으로 천상에서 큰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부처님을 찾아뵙고 하소연을 했다.

“저는 어머니의 업을 닦아드리고 죄를 사해 달라고 하기 위해 중이 됐습니다. 열심히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도무지 어머니를 만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너의 어머니는 무간아귀지옥에 있을 것이니 찾아보아라”했고 목련존자는 무간아귀지옥까지 어머니를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꺼내올 수 없었다.

목련존자는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너의 공덕이 부족해서 그렇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스님들께 공양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하고 더 배워라. 그런 후 7월 보름날은 안거 해제일이라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스님들의 원력(原力), 법력(法力)을 도움 받아 지극정성으로 기도와 공양을 올린다면 어머니는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대답을 듣게 되고 목련존자는 다시 수행에 들어갔다.

스님들이 토굴 속에 들어가서 3개월 동안 외출을 삼가하고 기도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을 안거(安倨)라고 한다. 안거는 인도말인 산스크리스트어(범어)의 ‘바르샤’를 번역한 말로 우기(雨期)를 뜻한다. 우기인 몬순(Monsoon)기가 오게 되면 3개월 동안 비가 오는데 이때는 외출과 활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승려들은 동굴이나 사원에 모여 좌선 수행을 했다. 이때 비롯된 수행의식이 바로 안거다. 안거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여름에 수행하는 하안거(夏安居)와 음력 10월 16일부터 1월 15일까지 겨울에 수행하는 동안거(冬安居)가 있다.

수행을 마친 목련존자는 음력 7월 15일 즉 안거 해제일에 오곡백과(五穀百果)와 가사(袈裟, 승려가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치는 법복)를 준비해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의 위신력과 스님들의 법력, 그리고 지극한 기도로 마침내 청제부인을 무간지옥에서 구해낼 수 있었다.

지옥문이 열리는 날

백중(百中)인 음력 7월 15일은 불가에서는 ‘안거(安倨)가 끝나는 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무간아귀지옥에서 천상락(天上樂) 받아 하늘로 올라가는 날로 ‘지옥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늘 문이 열리고 지옥문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에 조상들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날, 혹은 천도재를 위한 길일(吉日)로 여겨지는 매우 중요한 날이 되었다.

지옥문이 열리기에 평소 불공을 드려도 뜻을 이루지 못하거나 천상락을 받지 못한 조상,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후손(後孫)들이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날이 되었다.

이날 불공을 드리러 온 신도들은 삼보전에 공양 올린 후 스님께도 공양을 올린다. 스님을 위해 백 가지 음식을 준비하고(음식공양), 의복(장삼)을 마련하고(의복 공양), 요사채(주거 공양)까지 받들어 모신다.

즉 스님께 공양을 올리는 날이 바로 백중이다.

“조부모님, 부모님께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돌아가신 다음 해드린 게 없어 백중날 절에 가서 옷이라도 한 벌 해서 입혀드려야겠다”라는 마음을 지닌 후손들을 위해 백중날 사찰에서는 종이로 만든 깨끗한 옷을 준비한다. 마고자, 두루마기, 버선, 속옷까지 남자옷, 여자옷으로 따로 구분짓는다. 그러면 종이옷들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얻어 비단옷으로 바뀌게 되는데, 다시 말해 혼백에게 새옷으로 환복시켜주는 의식이 이날 진행된다.

자시(子時, 밤 11시~오전 1시)는 영가(靈駕, 이생에서 삶을 마치고 떠난 영혼이 다음생의 생명을 받기 이전까지의 상태)와 귀신(鬼神)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제사를 보통 밤 11시에 이후에 지내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강신 재배(신령을 강림하게 하는 의식)를 시작으로 참신, 헌주, 삽시정저, 시립, 사신 재배, 철상, 음복의 순으로 보통 제사가 진행되지만 절에서의 제사는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스님들은 부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법력으로 천문을 열어 영가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낮에 제사를 지내거나 의식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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