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문화적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2

한민족사의 기원이라고 하면 좀 포괄적이라서 실감이 나지 않고 한국인의 기원이나 한국민족사의 기원이 비슷함으로 <한국인의 기원> 이렇게 하고 제목을 붙여 서론, 본론, 결론으로 단계적 설명을 하고자 한다. 순서로는 첫째 인류학적 시각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 두 번째는 언어 문화적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 세 번째는 상고사적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 이 세 가지로 설명을 하기로 한다.

2-2. 문화사적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

문화사적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은 고인돌 유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김해의 구산동 고인돌이 최근에 발굴이 됐는데 그것이 얼마나 크냐 하면 그 무게가 350톤으로 이것 발굴 전에 큰 고인돌은 전라남도 화순의 것으로 200톤 정도 된다고 합니다.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기 위해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것이 350톤짜리 고인돌은 크기가 길이가 10m 이상, 높이가 45m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것으로 고인돌은 역시 우리 한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 고인돌의 40%가 한국에서 발굴되고 있고 또 평양이라든가 요하강 쪽에서도 많이 발굴이 되고 있습니다. 제일 많이 발굴되는 곳은 대한민국 호남 쪽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고인돌이 많이 발굴되는 그곳이 고인돌 문화의 발상지고 중심이었습니다. 한민족 고대 상고사에 있어서 동이족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중에 고인돌이 있고 비파형 청동금이 있으며 그 다음에 도자기가 있습니다. 빗살무늬토기, 청동거울, 옥구슬이라든가 옥기가 대표적인 한국인의 고대 유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유물들이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는 것을 봤을 적에 한민족의 고대 문화와 문명이 여기에서 발달했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정해 줄 수 있는 내용이 뭐냐 하면 최근에 발굴된 것으로 홍산문화인데 일본 사람 도리이 유조(鳥居龍藏)가 처음 그걸 발굴하였고 현재는 중국 땅입니다마는 만주 지방에 있는 적석총이라고 하는 장례문화유적을 통해서 발견되어 그 묘를 발굴하면서 유물들이 많이 나왔고 그 일대가 붉은 바위와 돌로 된 지역이었습니다.

거기서 도리이 유조가 처음으로 고대 묘를 발굴함으로써 랴오닝성 일대 넓은 지역의 요하강에서도 우리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기 때문에 그거를 요하 문명이라 그랬는데 그것을 인류 제5의 문명이다. 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구역을 크게 잡아서 요하문명이라 그러고 좀 축소해서 얘기하는 것이 지역적으로 홍산문화라고 합니다. 그 문화는 좀 적은 부위의 그런 명칭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홍산문화와 요하문명을 통해서 오늘날 전 세계 인류학자들이 이것은 황하문명하고 구분되는 제5의 문명이다. 라고 부릅니다. 세계 인류학계나 문명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그것을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대거 개발하지만 거의 외부공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공개해서 입장이 곤란한 그런 면이 있으니까 공개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발굴을 하고 있는 실제입니다.

다음에 고인돌 문화가 발전해서 장례문화 중에 분묘로서 고인돌이 원래 왕이나 높은 사람들의 무덤으로 시작했는데 이것이 발전해서 적석문화 적석총으로 되었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고인돌로 했지만 나중에는 돌을 쌓아서 큰 무덤 가운데 방을 만들어 그 안에 시신을 눕히고 각종 유물도 그 안에 보관하고 있음을 봤을 적에 지금 전라남도 나주나 금강 일대의 고대 능들이 많은데 특히 금강가야 김수로왕을 중심한 금강가야라든가 대가야, 고령가야 그런 걸 현재 발굴을 많이 했습니다만 큰 능속에 돌로 석곽 같이 만들어서 시신을 모시는 장례문화 발전사로 봤을 적에 역시 출발지는 전라남도를 가야 문화에서 출발해서 그것이 중부 지방을 거쳐 서울로 왔는데 서울에는 몽촌토성이 있어 돌로 3층으로 피라미드식으로 쌓아서 능을 만들었는데 최근에 많이 발굴이 되고 많이 공개된 상태입니다.

한강을 중심한 몽촌토성을 거쳐서 평양까지 가게 되어 상당히 발전이 되어 적석이 거의 피라미드 형태를 갖추고 단군 이북에서는 단군능이라 해서 어마어마하게 크게 피라미드식으로 보수해 현재 단군능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거의 피라미드식으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평양을 지나서 압록강을 거쳐서 요하강 또 옛날 그 고구려에 숨겨 있던 집안이라고 하는 데를 가게 되면 광개토대왕릉이 있고 장수왕릉이 있는데 거기는 거의 피라미드식의 능으로 조성이 돼 있습니다. 고대 능의 발전형태로 봤을 적에 우리 동이족이 그야말로 현대인의 하나의 기원이고 시원이었다. 문화의 시원이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이제 장수왕릉을 지나서 동쪽으로 수메르 지방으로 옮겨져서 이집트까지 영향을 주어 오늘날 이집트 문명, 이집트 피라미드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마는 그 배경은 역시 출발지가 한국으로부터 출발했다 하는 것이 지금 상고사 고대사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그렇고 단지 한국 사람만의 주장이 아니고 고대사 상고사 인류학을 연구하는 세계 석학들이 많은 공감을 하는 내용으로 지금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3. 상고사적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

오늘의 주제의 세 번째, 상고사적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은 그 구역이 문화사적 입장에서 보나 상고사 중에 환단고기에 나오는 삼성기에서 기록한 국가 강력도를 보나 이게 광대한 중앙아시아가 우리 민족의 고조선의 강역이었다 하는 것이 이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 삼성기에도 표시를 남북으로 5만리, 동서로 2만리라고 하는 그 기록이 있고 또 고인돌이라든가 빗살무니 토기라든가 비파형 청동금이 발굴되는 그 지역이 그렇게 넓어 한반도에 그치지 않고 우랄 알타이, 중앙아시아까지 펼쳐진다고 하는 점입니다.

고조선의 기원을 우리 한국 역사책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이 지금부터 약 1600년 정도 전에 만고 충신 박제상이라는 신라 사람이 쓴 책이 징심록이라고 하는 책이 있고 그것이 열다섯 소책자로 이렇게 돼 있는데 그 첫째가 부도지라고 합니다. 부도지에 한민족의 기원에 대해 나오는데 마고신화 내지 마고설화입니다. 마고신화의 내용을 보면 아주 1만 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중앙아시아 고산지대의 고산문명을 처음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언어학상으로도 그렇고 이것을 종합해 봤을 적에 고조선은 중국보다도 더 큰 중앙아시아를 중심한 엄청난 강역을 우리 조상들이 지배했다. 이렇게 이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앙아시아의 고대 상고 시대에 우리의 환인시대와 환웅시대가 있는데 그 밑에 12개 주력의 작은 소국가들이 있었는데 그 12개 부족 국가 중에 수밀국이라는 게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수밀국이 수메르의 어원이 됐고 그래서 그 수메르산이라는 게 있습니다. 티벳 수도 라사 동북 쪽에 수미산이라는 게 있는데 그 수미산이 우리 수밀국과 연관이 되고 그 중심으로 수메르 문명이 연결돼서 문명이 꽃을 피우고 영향을 받아서 홍해를 건너서 이집트의 나일강 문명이 형성됐다. 그리고 그것이 구라파로 이렇게 확대되어 서구문명도 기독교문명도 이 수메르문명의 영향을 받아서 문화가 형성됐다 이렇게 보는 견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의 문명은 그 기원이 역시 한민족이고 제3의 인류인 한민족을 중심 삼고 발전하고 확대돼 나갔다 하는 것이 이제 한국 상고사 쪽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 상고사적 그런 확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반대의 이론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사학계를 둘로 구분해서 얘기하는데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을 들 수가 있습니다. 강단사학은 그 근원이 일본은 식민지 정책에 의해서 수립된 사학이기 때문에 그걸 우리가 믿기는 어렵습니다마는 현재 한국의 사학가들은 대부분 현직 강단에 있으면서 그걸 따르기 때문에 재야사학자들은 어떤 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지요. 그걸 일본 말로는 이지매라 그럽니다마는 왕따라고 말하죠. 왕따를 당해서 재야사학자들은 제대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한국의 사학계는 주로 강단사학자들이 다 쥐고 있습니다.

그 강단사학자들의 뿌리를 보면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일본 사람 이마니 시루(今雪鈴)인데 한국강단사학계의 원로인 이병도 박사가 그 식민사관을 전수받았고 이병도 박사를 중심한 오늘날 한국의 사학자들은 대부분이 이병도 박사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만이 강단에 서서 결국은 식민사관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100% 다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이 왜곡 사관으로 근본적인 방향은 다 식민사관이기 때문에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현재 한국강단사학회와 재야사학회 간에 갈등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그런 내용을 중심으로 봤을 적에 상고사적 입장에서 본 한국인의 기원에 있어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식민사관이나 동북공정은 한국 상고사, 고대사를 왜곡해 온 그런 내용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극복해야 된다고 하는 커다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4. 결론

한국인의 기원이나 한민족사의 기원에 대해 지금 말씀드린 내용과 같이 인류사적 또는 언어문화사적, 상고사적 입장에서 본 그 기원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결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될 그 내용은 오늘날 미국의 부르스 존슨이나 또 토마스 프레이드 같은 미래학자가 이야기 한 대로 이제 우리 한국이 현대사에 있어서 어느 때보다도 비상하여 문화적으로나 안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괄약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국가로서 중심민족으로서의 위상을 현재 찾아나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시대에 있어서 중심국가가 될 거라고 예언한 내용이 현실로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사실에 우리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 한민족이 고조선 환인 환웅시대에 그 찬란한 문화를 다시 재현하는 그런 시대의 문화권에 와 있다고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문창수(한민족사연구회 공동대표) 문정기(교수) 공동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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