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세로(世路)의 말(末)’이란 김시습이 말년에 세상을 등지고 방랑을 떠났던 시절을 말한다.
매월당 김시습이 박제상이 쓴 증심록을 읽고 난 뒤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를 쓰면서 제1장에서 <세로의 말(世路의 末)>을 언급했다 ‘세로의 말을 당하여 천리 밖으로 유랑한다’는 말을 적었다. <세로의 말>은 세상의 길 즉 인생의 끝자락에 섰다는 뜻이다. 매월당이 말년에 세상을 등지고 방랑을 떠났던 시절을 말한다. 자유분방한 김시습이 세상의 조악한 틀을 놓아버리고 인간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유로이 ‘유무극지야(遊無極止野)’의 경지로 들어섰다는 말이 된다. 격랑의 시대를 치열하고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던 매월당이 활연한 세상살이의 뜻을 훤히 간파한 인생의 끝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이 된다. 어느 시대이든 매월당은 필요한 인물이다. 그는 자유분방한 코드다. 천재이기 이전에 언행이 일치가 된 사람으로 혼란기인 이 시대에 불러내어 현대인의 삶에 본보기로 삶아야 할 인물이다

우리민족의 보고 『부도지』가 있다. ‘부도(符都)’는 하늘의 뜻에 맞는 나라, 또는 그 나라의 서울이라는 뜻으로, 1만 년 전 파미르고원(혹은 수미산)을 발원지로 펼쳐졌던 한민족의 상고 문화를 다룬 책이다. 단군시대와 단군이전의 환웅시대, 그 이전의 한인시대, 그 이전의 마고성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우리민족의 창세기다. 이 책에서는 이제까지의 역사관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문헌 <부도지(符都誌)>의 번역문과 함께 원문, 그리고 주해를 함께 실었다. 이 책은 영해 박 씨 문중으로 전해 왔다.

<징심록 추기>는 영해박씨 문중에 내려오던 <징심록> 15지를 조선 초 대학자 김시습(1435∼1493)이 영해박씨 집안 박효손으로 부터 전해 받고, 이를 읽은 소감을 기록한 글이다.

김시습은 조선 초기의 학자·문인으로 말년에 <징심록>을 보고 느낀 바를 <징심록 추기>로 전한 것인데, 지금으로 부터 530여 년 전의 일이다.

전체 <징심록>은 본 후의 매월당이 그 후기를 14장으로 기록했다.

그 제1장(第一章)의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징심록(澄心錄)>은 운와(雲窩)2) 박공(朴公)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책으로, 그 비조(鼻祖)이신 관설당(觀雪堂) 제상공(堤上公)이 지은 것이다.

후대 종가의 여러 후손들이 복사(필사)하여 전한 것이 천여 년이 됐으니, 그 귀하고 소중함이 어떠한가? 슬프다! 우리 가문 선대의 복호공(卜好公)께서 일찍이 공의 큰 은혜를 입은 지 천년이 지난 후에 또 공의 자손과 이웃이 되어 한집처럼 오가며 가족같이 만나보고, 나는 또 훌륭한 가문에서 수업하고, 지금 ‘세로(世路)의 말(末)’을 당한 것을 연유로, 공의 후예와 더불어 다시금 ‘세한지맹(歲寒之盟; 김시습과 박계손 사이에 맺은 약속)’을 맺어, 천리 밖으로 유랑의 흔적을 같이 남기게 되니, 이것이 바로 천명이란 것인가. 기나긴 고금의 일을 생각하고 회포를 펼치니 슬프고도 슬플 뿐이다. 오늘 이 책(징심록)을 읽으니 홀연히 천 년 전 옛날로 돌아가 공을 뵈옵는 것 같고, 더욱 우리 가문 선대의 조상들을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할 뿐이다.

징심록(澄心錄)의 본래 이름은 <증심록(證心錄)>이다.

후대에 안전하게 전하기 위해 제목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 <증심록>은 ‘상교’, ‘중교’, ‘하교’로 구성된 책이다.

① 상교(上敎) 5지(誌)

– 부도지(符都誌) : ‘마고-궁희-황궁-유인-한인-한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천손 역사를 담고 있으며, 징심록 전체의 줄기를 요약해 서술하고 있다.

– 음신지(音信誌) : 부도지에 나오는 율려 등에 대한 설명서로 탄생 수리(數理)의 의미를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 역시지(曆時誌) : 하늘의 역법에 대해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 천웅지(天雄誌) : 하늘 세계의 계보 및 역사를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 성신지(星辰誌) : 하늘의 별자리를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② 중교(中敎) 5誌

– 사해지(四海誌) : 지리에 관하여 세부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 계불지(禊祓誌) : 수계제불(修禊除祓) 즉 수련방법을 세부적으로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 물명지(物名誌) : 세상만물의 이치를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 가악지(歌樂誌) : 하늘의 소리를 이 땅에서 표현하는 방법을 세부적으로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 의약지(醫藥誌) : 인간의 몸을 하늘에 비추어 원초적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③ 하교(下敎) 5誌

– 농상지(農桑誌) : 하늘에 천제를 지낼 수 있는 제물을 마련하기 위한, 농사짓고 양잠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 도인지(陶人誌) : 하늘에 천제를 지낼 수 있는 제기를 제작하는 방법에 대한 세부 방법을 설명한 책으로 보인다.

나머지 3지(誌)는 본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보내용이다.

– 식화지(食火誌) : 제사음식, 각종 먹거리의 가공 및 조리법, 장과 술등 발효음식 담그는 법 등을 기록한 책으로 보인다.

– 궁성지(宮城誌) : 터 잡는 법(풍수), 각종 집 짓는 법, 도성 산성 축성법, 현대 토목 및 건축기술을 망라한 책으로 보인다.

– 의관지(衣冠誌) : 각종 복식, 관모, 실 뽑는 법, 짜는 법, 염색법 등을 기록한 책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현재 현존하는 책은 <징심록> 전체의 개념서 격인 <부도지>만 남아 있다. 하지만 김시습은 이들 책들을 모두 보고 그 추기를 남겨 그 존재를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시습(金時習)은 조선 전기의 문인, 학자이다. 1435년(세종 17)~1493년(성종 24), 자 열경(悅卿), 호 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峰), 벽산청은(碧山淸隱 췌세옹(贅世翁), 법호는 설잠(雪岑), 시호 청간(淸簡), 서울 출생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저서(작품)로는 조선전기 매월당집,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 취유부벽정기,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 탕유호남록, 유금오록, 동일록, 신귀설, 태극설, 천형, 애민의, 산행즉사, 위천어조도, 도중, 등루, 소양정, 하처추심호, 고목, 사청사우, 독목교, 유객, 고금제왕국가흥망론, 위치필법삼대론 등을 저술했다.

고소설 작가 중 김시습의 귀신론과 문학론을 <금오신화>와 관련하여 이해하고 있다. 김시습은 영해박씨 문중과 절친해 그 문중이 소지한 부도지 등 <징비록>을 다 읽었던 인물이다. 그것을 읽고 난 뒤 그 후기 형식으로 쓴 것이 <증비록> 후문이다. 그는 한문소설을 지은 작가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금오신화가 특히 유명하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읽다

고소설사의 효시에 해당하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가치와 의의는 실로 대단하다. <금오신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김시습의 사상 가운데 우선 주목할 것이 있다면 귀신에 대한 관점이라고 보인다.

김시습의 귀신은 ‘바르고 진실 된 기(氣)’에 해당한다. 그런 기가 ‘하늘과 땅 사이에 움직이고 변화해서 아래로는 백성을 돕고 위로는 천지에 순응하는 까닭에 사당을 세워 기도한다. 기의 움직임을 귀신이라 할 따름이고 지각과 행동의 주체가 되어 화복을 내리는 귀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기의 움직임이 순조로워 백성이 살게 하는 데에 감사하느라고 제사를 지낸다’고 인식했다.

귀신이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귀신 자체는 순조로운 기의 흐름에 대한 감사의 대상이지 구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불교의 구복성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과 것으로 볼 수 있다. 원귀의 존재를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런 인식은 <이생규장전>에서 홍랑의 원귀와 이생이 해후했다고 영원히 이별하는 장면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남염부주지>에서는 음양의 이치가 어디에서나 한 가지로 통용되므로 극락이나 지옥이니 하는 별세계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일리론>을 지었다고 하고, 염왕과 박생의 대화를 통하여 밝히고 있다.

귀신의 우두머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염왕의 입으로 『주역』에 있는 말을 인용함으로써 천지 외에 별세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결론이게 설정하고 있다.

<만복사저포기>에서는 양생과 죽은 처녀의 관계를 이별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완강한 자세와 이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생겨나는 충격의 실상이 핵심적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하는 구실로서 그 충격이 새롭게 인식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주인공 양생은 만복사의 구석방에서 배필이 없음을 슬퍼하며 지내다가 부처와 저포놀이를 해서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얻는다. 저포놀이는 오늘날의 윷놀이와 비슷하다.

<금오신화>에 실려 있는 <만복사저포기>의 양생은 개녕동이라는 죽음의 공간으로 가서 귀녀들과 마음을 나누고 동침한 후 세상에 대한 뜻을 잃는다. 다시 말하면 죽음과의 접촉이 일상적인 삶에 대한 부정을 초래한 것이다. 양생이 들어간 산은 삶의 저편에 대한 상징으로 제시된다. ‘부지소종(不知所終)’, 곧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는 결말은 삶에 대한 양생의 태도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면서 귀녀들과의 만남이 다른 형태로 지속되는 것이다. 양생은 원혼들을 만난 후 일상적 삶으로 돌아올 길을 영영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과 결말을 두고 김시습의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은 그래서 가능하다. 김시습 자신이 머리를 깎고 일상적 삶을 떠났듯이 <만복사저포기>의 주인공 양생 또한 그랬던 것이다. 부처님과 벌인 저포놀이는 사실은 여자를 얻어 정욕을 채우는 데 목적을 둔 놀이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 또는 목숨을 건 한바탕의 내기였던 셈이다. 그런만큼 부지소종(不知所終) 즉 ‘마친바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 아닐까?

<이생규장전>에서 이생과 홍랑의 이별은 원귀와 인간은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이생이 겪는 자아와 세계의 대립과 갈등을 종국적으로 강조하는 구실을 한다. 결연과 이별을 반복함으로써 독자가 감정의 진폭을 크게 갖는 것은 문학적 장치로 볼 수도 있다.

<금오신화>는 전대(前大) 한문학의 전통과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창작된 작품이다. 詩詞라든가 傳, 記事, 산수기, 問對, 論, 가전, 제문, 상랑문, 축문 등의 산문 양식이 자유자재로 소설 속에 펼쳐져 있어 김시습 자신의 문제를 유감없이 드러내기도 하면서 <금오신화>의 소설적 성격을 더욱 명확하게 확정하는 역할을 한다. 산수기의 형식은 <취유부벽정기>와 <용궁부연록>의 서두에 활용됐다. <금오신화> 5편 작품 속에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설정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전의 양식은 희문적 성격을 띠는 것인데, <용궁부연록>에서 가전의 전통과 전기소설의 접목을 시도한 점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시습 문학사상의 중요한 대목을 <제금오신화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인데, 김시습의 문학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점에 푸른 방석을 깔고 있노라니 따스한데/창 가득 매화 그림자 밝은 달이 막 떠올랐음이라.” 매화 그림자는 달빛이 없으면 창에 그득하게 비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달빛이 있음으로 해서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매화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매화 그림자는 개연서 있는 허구로 구축된 작품세계에 대응하고 달빛은 실재하는 현실세계에 대응함으로써 실제세계와 작품세계의 관계를 상보적으로 이해하는 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전대(前大) 한문학의 전통과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창작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詩詞라든가 傳, 記事, 산수기, 問對, 論, 가전, 제문, 상랑문, 축문 등의 산문 양식이 자유자재로 소설 속에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글 | 홍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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