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림분지 구자국 중심으로 티벳 벨트까지 연결된 문명 ‘구다천국’의 발상지
2) 남씨성(藍氏城)과 감씨성(監氏城)의 구별
월지국의 성이 한서 서역전엔 감씨로 되어 있고, 후한서엔 남씨로 기술되어 있다. 감(監)은 옥편에서 살필 감, 거울삼을 감, 거울감으로 해석이 되어 있다. 남(藍)은 쪽남(람)으로 한해살이 풀, 남색 람, 누더기 남으로 해석이 된다. 중국 사가의 왜곡된 표현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눈썹을 그린 청금석, 청남석이 많이 출토되는 지역이다.쪽빛 남색은 이후 그리스,로마로 들어가 토기와 더불어 귀중한 여러곳에 채색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환단고기에 백성들에게 푸른 옷(청의)을 지어 입으라는 기록이 있다. 바로 아프칸에서 생산되는 ‘청람석’이고 이 남씨성(아프가니스탄)이 바로 “월성(月城-달의 성)”이 되는 것이며 카불(아프칸) 주변과 신강성 일대가 당나라때 ‘경주’로 불려진 것이다..이러한데도 중국 사가들은 역사 왜곡을 위하여 고대 산동 주변에 남국(람국, 藍國)을 설치해 놓았으며 이란의 고대 이름인 엄독홀을 역시 산동 주변에 박아두었다. 신라는 한때 ‘월성’이라 불렸고 지금 한반도에 ‘경주’가 있다. 신강성 근처의 ‘경주 ’이름이 지명 이동된 것이다. 왜 월성과 경주의같은 이름이 한반도 경북의 경주가 아닌 아프칸 지역에 등장하는가?
아주 기가 차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연구하지 아니하고 찾지 않으니 타타르(Tatar-머리의 달)족은 이란에서 출발한 종족이고, 투르크(Turks-새 달 집단)는 터키에서 형성된 종족으로 왜곡되어 있다. 리비아 ,터키를 비롯한 타타르 국기를 아는 사람은 필자의 주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고조선의 아사달, 초승달에서 타타르 , 투르크 종족이 있게 된 것이며 고조선의 자산과 자본에서 형성된 종족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남씨성(藍氏城)이 바로 “월성”이 되는 것이다. 고대 신라는 ‘월성’이라 불렀다. 그러고 보면 신라는 고대 아프칸 세력인 신강성, 감숙성에서 출발한 것이 되는데, 한반도 경북의 경주에서 건국한 것으로 왜곡되어 있는 것이고 백제, 고구려 모두 한반도 중심으로 역사가 서술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백제의 백마강(백마하), 황산(계백의 결사대)이 있는 곳이 중국 대륙이며, 한수(한강, 漢水)는 양자강 지류이며 금강(錦江)도 있다.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쟁투 하였다는 엉터리 역사를 우리는 배워왔고, 지금도 배워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패망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 그들은 말하길 “앞으로 100년동안 역사를 찾지 못한다”라고 말하였다.
1945년 독립되어 76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흘렀어도 강단 식민사학자들은 아직도 일본의 식민사관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작태가 계속되어 필자가 비역사학문으로 고대 역사를 새로 조명하게 된 것이다.
바. 김수로는 어디에서 왔는가?
쿠줄라 카드피세스(貴霜)의 4흡후 멸절시기가 서기30년경으로 연구되었는데, 그 이전으로 보며, 이때 멸절된 4명의 흡후중 한 집안의 아이가 구자국에서 탈출하여 사천성 성도로 피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당시 구자국은 여러 소국을 아우러고 있는 큰 나라였다. 왕자 아기를 따르는 9개 씨족이 아기를 키워 가락국을 건국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근거로는
(가)대월지국과 소월지국(구자,언기.소륵,사차등)이 사용했던 언어가 같은 인도유럽어족인
토카리어(토하리어)를 사용하였다.(지금은 死語)
(나)한서와 후한서 서역전에도 대월지가 알타이계의 흉노에 쫒겨 서쪽으로 간것을 기술하고 있고 신강성 타림분지 지역에 그 잔존세력인 소월지국이 존재하고 있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구자,선선등 소 월지국)
(다) 구자국(龜玆國)은 거북토템이고 가락국은 역시 건국신화에 ‘구지가’로 거북이 나오며 죽은 뒤에도 구지봉에 안장되게 된다.
(라)앞에서 언급한 대로 귀상(貴霜)으론 절대로 위구르말로 쿠샨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귀상(龜霜)이 되어야 하고 부를때는 ‘쿠샨’이 되는 것이다.
(마)대월지국과 소월지국은 같은 인도유럽어족인 토카라어를 사용하는 언어에다 같은 토뎀신앙을 가졌다고 보는 것으로 쿠산제국의 마지막 흔적은 소월지국인 구자, 언기, 소륵, 선선, 사차국인데 당 시절에 안서도호부로 편입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바)그리이스 신화에 스키다이인의 조상은 바다 즉, 해신 오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가락과 인도의 쌍어문양은 아리아인의 스키다이 신화에서 온 것이고 아리안민족은 유목,목축을 하는 스키다이 계열로 보아야 하는 것으로 쌍어문양과 거북신앙은 당연한 것이다.
(사) 기원전90 – 30년 시기엔 한나라와 알타이계의 흉노에게 소월지국인 구자,선선,언기,소륵등의 소 국가는 질자(인질)제도가 있었다. 그러기에 왕자는 무조건 한나라와 흉노에게 인질로 잡혀 있어야 했던 것으로 질자(質者)를 회피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피신한 것도 한 이유라 할 것이다.(한서 서역전에서)
(아)기원전 30 -약40년경에 구자왕이 피살되고 알타이계의 흉노는 남,북으로 분열하게 된다.
이 시기에 피신하여 가락국을 건국하였다고 볼 수 있다.(후한서 서역전)
사. 구자국(龜滋國-쿠처, 쿠차,쿠샤, 쿠처르로 불린다.)
고대 불교왕국 구자국은 비단길에 위치하며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가장자리인 무자트강의 남쪽에 위치한다. 한서에 따르면 서역의 36개 왕국중 최고 큰 나라라고 하였다.
7세기 중엽 타림분지 전역을 제압한 당은 구자에 설치한 안서도호부를 중심으로 서역 안정화에 힘을 쏟았다. 당의 장군이자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가 절도사로 승진하고 오랜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으며 신라의 고승 혜초도 이곳을 지나면서 기록을 남겼다.
아.쿠산제국과 훈족(스키다이)은 같은 계보다.
AD 1세기경 다섯 흡후의 하나인 귀상흡후(貴霜翕侯)가 대두하고,(BC30년) 이어서 대월지에 대신하였다(쿠샨왕조, BC 194). 타림분지의 중국 신강성 주변엔 대월지의 잔존세력이 남아 있어서 소월지(小月氏)라고 하였다. (한서, 후한서 서역전)쿠산은 과거 진국을 중심으로 나라를 경영했던 초기 고조선의 후예로 웅족이라 할 것이며, 스키다이의 원류는 그리스 신화에 소개되는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강”이다.
자.연경제전집(硏經薺全集)
연경제전집(硏經薺全集) 속집(續集) 책(冊) 16 동국지리변(東國地理辯) 월성변(月城辯)의 기록을 보면,
月城。今慶州也。一稱鷄林。陳壽史云。韓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韓。辰韓者。古之辰國也。辰王治月支國。月支國者。考之圖經。卽慶州也。豈月城之故號歟。然月支者。漢西方胡種也。
(월성은 지금의 경주이다. 일칭 계림이다.진수의 삼국지에서 말하기를 한(韓)은 3종류가 있는데 일왈 마한이요,이왈 진한이요,삼왈 변한이다. 진한(辰韓)이라는 것은 옛날의 진국(辰國)이다. 진왕이 월지국을 다스렸다. 월지국을 도경을 통해 상고하여 보면 즉 지금의 경주이다. 월지국이 월성의 고호(옛이름)가 되었다. 월지라는 것은 한나라 때 서방의 오랑캐이다.)
현재의 역사에서는 한(漢)나라와 관련된 서역(西域)국가 중에 월지국과 조선의 역사에서 등장하는 월지국은 별개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정조,순조,헌종 때의 학자인 성해응(成海應)은 조선의 역사에서 등장하는 월지국은 옛날 한(漢)나라때 서방(西方)의 오랑캐이며,신라의 경주,월성과 관련된 명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기존의 학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기록이다
차. 훈족
에프탈,악훈(AkHun)에프탈리테(Hephtalites, 484∼567),에프탈— 우아르-훈 혼족(混族) 그룹은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여 아프가니스탄의 토하리스탄 지역까지 진출하였다. 367년경에는 그곳에서 쿠샨 왕국을 지배하던 이란계 키다리타(Kidarita) 왕조(캅카스 지역의 훈족)를 압박하여 박트라(지금의 발흐 지역)로 축출하였다. 이어 이 훈족 그룹은 트란속시아나와 추강 유역의 강거(康居)족과 사마르칸트 일대의 소그드족을 통치하는데, 이로써 유럽과 중국 기록들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9)https://en.wikipedia.org/wiki/Hephthalites
볼가를 지나 서진한 훈의 일부는 다시 남하하여 이란 남부와 아프가니스탄 서부로 진출하여 5세기 중엽 그곳의 에프탈리테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에프탈은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반까지 투르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통일한 민족이다. Haytal, Hephtalites, 압달, 읍달 등으로도 표기하며 이란계 언어로 ‘강한 사람’을 의미한다. 에프탈 3세(재위 484~545) 때에는 인근의 30여 개 부족을 지배할 만큼 위력이 강했다.
사산왕조 페르샤와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산왕조에 협력하여 동방 로마령을 침공하였고 이로 인해 광대한 영토를 획득하였다. 나중에는 사산왕조와 돌궐(突厥)의 목간가한(木杆可汗) 연합군에게 침범당하여 567년 멸망하였다. 그러나 그 민족은 8세기까지 존속되었는데, 그 후손이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바다흐샨 부근에 살고 있다. 이곳은 에프탈 제국의 중심지였고 북쪽의 톈산[天山] 산맥 북부, 남쪽의 아프가니스탄과 북서인도의 펀자브, 동쪽의 동투르키스탄의 허톈, 서쪽의 사산왕조의 서쪽 영역인 호라산 지방에까지 제국의 영역이 미쳤다. 에프탈인은 유목생활을 하였으나 일부는 도시에 정주하였고, 일처다부의 풍습이 있었다. 고유한 문자는 없었고, 박트리아 지방에서 사용되던 그리스 문자로 이란계 언어를 기록하였다.
훈이 에프탈리테 왕조의 주요 지배 세력으로 5~6세기경 서아시아 역사 전개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에프탈리테 지역의 주민이 대부분 인도-이란계로 구성되고, 인도-유럽 어족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칸(Khakan)이란 왕의 칭호를 사용하고,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왕자들도 ‘테긴(Tegin)’이라 불리는 등 지배 계층에 투르크족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는 하나 훈족의 인도유럽어족의 사용은 대월지의 승계라고 보아야 한다. 반면 투르크족은 알타이계 동방스키타이이므로 어족이 알타이어이다.
백훈의 투르크 어 표기인 악훈(Ak Hun)이란 의미와 상통되는 것은 프리스쿠스(Priscus) 역사서에 보이는 키다리타(Kidarites , 카프카스 지방의 훈족)들로 구성되었다고 보았으며, 또 다른 문헌들에서는 에프탈리테를 백(白)훈으로도 표기하였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코스마스 인디코 플레우스테스(Cosmas Indicopleustes, 545~549)와 비잔틴 사가 프로코피우스(Procopius, 545~550년경)의 작품에서는 ‘Devkhoi Ounni’로, 고대 인도 문헌에서는 ‘Shveta-Huna’로 각각 기록되었다. 20)https://en.wikipedia.org/wiki/Kidarites
훈과 에프탈리테 사이의 종족적 관련 관계나 흔히 중동(中東) 훈이라 지칭되는 이 지역의 훈 역사는 아직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이 시기에 몽골을 중심으로 한 스텝 중앙부를 지배하면서 돌궐과 겨루던 연연(蠕蠕)과 에프탈리테와의 관계도 더욱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에프탈리테의 역사는 알타이 지역에서 시작된 중앙 아시아 민족의 대서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것은 아리아인의 남진,서진에 따른 수많은 종족의 이동과 대월지국이 쿠산왕조를 건국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지배 영역을 서쪽의 카스피 해, 남쪽의 히르카니아(Hirkania)에까지 확장한 에프탈리테는 5세기 중반(에프탈리테의 최초의 등장은 457년)부터 아리안계의 에프탈(Hephtal)이란 왕가에 의해 통치되다가 552년경에 중앙 아시아에서 돌궐 제국이 성립되어 이스테미(Istemi), 야브구(Yabgu, 왕)의 영도하에 트란속시아나 지방을 차지하자, 에프탈리테는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협공당하는 상황에 놓였다. 에프탈리테와 연연과의 정치적 연대도 무력해진 567년, 결국 에프탈리테는 사산조의 아누쉬르반과 돌궐의 이스테미 왕가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국가 지배층을 구성하였던 주요 종족 그룹으로는 헤라트에 근거를 둔 카디스-훈(Qadis-Hun), 자불(Zabul), 촐(Chol), 케르미키온(Kermikhion), 아스킬(Askil) 등이 있었다. 카디스족의 거주지란 뜻으로 카디시아(Qadisia), 자불족과 관련하여 오늘날 자불리스탄(Zabulistan)이란 지역 명칭이 유래되었다. 21)https://en.wikipedia.org/wiki/Zabulistan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