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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제

우리는 매년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아오면 신년 정월 초하루 날에 동해바다로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떠난다. 신년 첫날 밝게 떠오르는 태양을 누구보다 먼저 보기 위하여 고생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난다.
저마다 한가지의 소원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새해에는 꼭 내가 바라는 소망을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맞이함으로써 이루어 질 것이라 믿으며 또 이루겠다고 스스로의 다짐과 함께 너도나도 동해 바다로 해맞이를 떠난다.
이 지구상에서 해맞이를 떠나는 민족이 우리와 일본 말고 또 있는지는 공부가 부족하여 모르겠으나 우리 민족의 해맞이는 극성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신년 정월 초하루 날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린다.
그러면 언제부터 해맞이를 하였으며 해맞이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소蘇씨 문중에 전해오는 진주 소씨 족보의 서문인 <부소보서扶蘇譜序>에

옛날에 적제赤帝 즉 황제요, 휘가 부해復解이고 호가 축융祝融이란 한국의 제帝가 되어 기묘년에 나라를 세우고 풍주의 배곡에 도읍했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이 말을 한인천제가 적제赤帝로써 기묘년에 풍주 배곡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는 말이다. 적제赤帝라는 것은 바로 남방적제南方赤帝 즉, 태양의 황제라고 풀이할 수 있다.
또 한인천제의 깃발인 휘가 부해라는 말은 부해浮海로 풀이할 수 있으며, 바다가 떠오른다는 것은 다시 해가 둥글게 떠오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부상浮上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해나 잠수함이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이 부상이다.
또한 한인천제의 부인이 해(海, 태양)를 의미하는 오이烏夷족 출신이라는 것과 이름이 항영姮英이라는 것도 해를 의미하고 있다. 항姮자를 파자하여 보면 하늘과 땅(바다) 사이에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여자로 풀이할 수가 있다.
또 축융이라는 명칭에서도 그 비밀을 찾을 수 있다. <산해경山海經>에 축융은 불을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불은 곧 태양으로부터 시작하므로 축융이라는 말뜻 또한 태양을 나타내는 말이라 하겠다.
즉 한인천제의 휘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나타내는 부해이며, 호가 축융이란 말은 불을 다스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즉 하늘에서는 태양을 상징하고 땅에서는 불을 다스리는 신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다시 풀이하면 한인천제는 태양을 대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한 한인천제가 기묘년에 풍주 배곡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으니 풍주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풍이족이 나왔으며 배곡은 배달민족이라는 말의 기원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새해 첫날 동해로 해맞이를 떠나는 것은 바로 항영姮英이 한인천제를 맞이했듯이 우리도 한인천제를 맞이하러 가는 것이다. 우리 민족 최고最古 조상 중에 한 분인 태양의 신, 한인천제를 맞이하면서 일 년 동안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옛날 한인천제의 부인 항영姮英이 인류 최초로 떠오르는 태양, 한인천제를 맞이하였듯이 9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그 당시에 한인천제를 맞이하는 해맞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한인천제가 인류 최초로 태양을 숭배한 제관이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가 있다. 또 한인천제의 적제라는 명칭은 바로 한인천제가 태양을 상징한다는 뜻이다.
한인천제가 인류 최초의 제관이었다는 것은 부해와 축융에서 금방 알 수가 있다. 부해復解라는 말을 한자 표기대로 되새겨보면 ‘부復’는 ‘다시 되풀이하다’로 풀이가 되고 ‘해解’는 ‘풀다’는 뜻이 있으므로 부해라는 말은 하늘에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잘못된 일이나, 노여움을 푸는 일을 되풀이하는 사람이란 뜻이 있다.
또 축융祝融이라는 말을 풀이하면 ‘축祝’은 빌다, 기원하다, 또는 신을 섬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융融’은 화합하다, 녹이다, 녹다 는 뜻이 있으므로 축융이라는 말의 뜻은, 신을 섬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신의 노여움을 녹이고 인간들 상호간에 화합하여 홍익인간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한인천제의 휘가 부해復解요, 호가 축융祝融이라는 말은 바로 한인천제가 바로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인간들이 화합할 수 있도록 하늘에 드리는 제사를 맡아 지내는 제사장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하겠다.
그러면 한인천제가 9천여 년 전에 떠오르는 태양신께 민족의 번영과 화합을 기원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태양을 숭배하는 사상을 가진 민족임에도 언제부터인가 이 태양족임을 잊어버리고 단순히 새해에 해맞이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지내는 사이 태양족의 장손자리를 일본에게 빼앗겨 버렸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설화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하겠다.
이 설화는 해와 달의 생성에 관한 내용으로 일월신화日月神話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 측의 자료를 보면 이 설화가 일본의 건국신화와 관계있음도 알 수 있다. 또 태양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닌 경북 영일迎日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신라 8대 임금 아달라阿達羅 왕 즉위 4년 정유(A.D 157년)년 때의 일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에 나가 해조를 따고 있는데 홀연히 바위 하나가 나타나 연오랑은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는 바위를 타고 온 연오랑을 왕으로 모셨다. 한편 아내인 세오녀는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바다에 나가 보았다. 남편이 바위에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그 바위에 올랐다. 그리고 세오녀도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남편을 만나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부부가 신라 땅을 떠난 뒤부터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아달라왕은 천문을 맡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신하는 “해와 달의 정精이 우리나라에 있다가 이제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이런 변괴가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곧 사신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연오랑 부부를 귀국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연오랑은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하늘의 뜻이니, 어찌 홀홀히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아내가 짠, 가는 명주를 줄 터이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늘에 제사하면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발할 것이오.” 라고 말하며 그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그 비단을 가지고 와서 하늘에 제사했더니 과연 해와 달이 옛날같이 빛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명주를 국보로 모시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했고,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하였다.

는 기록이 있다.


이 설화에서 보면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고 하였다는 말은 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들판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그러면 지금의 영일만에서 신라의 아달라阿達羅 왕이 연오랑이 준 세오녀가 짠 비단을 바치고 해맞이굿을 하였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지금같이 단순하게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는 해를 바라보는 형태가 아니고 비단을 바치고 태양의 정情, 즉 본성을 되찾는 굿을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본성을 되찾는다는 것은 그 당시 밤이 길고 낮이 짧은 것을 태양이 정情을 잃었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태양의 본성대로 낮이 길고 밤을 짧게 되돌려 놓기 위하여 아달라왕이 영일현에서 해맞이를 굿을 한 것이다. 바로 그날이 동짓날이었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이날 제사로 인하여 태양이 다시 본성을 찾았다고 한 것은 낮의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설화의 주인공들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국가를 세운 천일창天日槍이 아닌가 한다. 일본 건국의 주역이므로 일본도 당연히 우리와 같이 정월 초하루 날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를 맞이하러 해맞이를 간다. 일본의 국기가 태양이고 보면 일본 역시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임을 내세우는 것이다. 또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가 2002년 월드컵 당시 일본 축구협회 앰블린을 삼족오三足烏로 정하였다.
한인천제의 집안 또는 부인 항영 집안의 깃발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태양 속의 삼족오를 일본이 가져가 버렸다. 우리는 신년마다 해맞이를 하러 바다로 몰려가느라 아우성을 치고 있을 때, 진정한 해맞이의 의미와 뜻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이상한 해맞이를 하고 있을 때, 일본은 한인천제를 상징하는 우리 민족의 상징물들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진정 우리는 해맞이를 떠나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는 것인지, 해맞이를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또한 해맞이를 신년 정월 초하루에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낮은 태양으로 양陽을, 밤은 달로 음陰으로 인식한 음양관에 의해 동지는 음陰이 극에 도달한 날이지만 이후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다시 말하면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받아들였다.
12월 25일을 예수탄생일로 잡은 기독교 역시 태양이 부활하여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는 태양을 상징하는 것이다.
동짓날은 태양이 다시 부활하는 날로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을 아세亞歲, 즉 작은 설날로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조상들이 동짓날을 새해 첫날이라고 삼았듯이 동짓날 해맞이를 떠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지는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날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동지가 지나면 서서히 밤의 길이가 짧아지고 낮의 길이가 길어진다는 뜻이다. 즉 태양이 바다 속에 잠기었다가 동지를 기점으로 하여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 해맞이는 동지 날에 하는 것이 해맞이의 의미와 조상들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동지 날 팥죽을 끓여 집안에 뿌리며 액을 물리친다. 즉 다가오는 새해에도 집안의 평안과 식구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그리고 팥죽을 먹으며 그 속에 든 새알심도 함께 먹는다. 새알심은 반드시 나이에 비해 한 개를 더 먹어야 나이도 한 살 더 먹게 된다고 하였다.
동지 팥죽에 새알심을 넣어 먹는 것 이유는 <문자학회>에서는 염제 신농의 자손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염제炎帝는 불의 임금, 해임금, 밝은 임금이란 뜻이다. 즉 우리는 태양족이며 염제의 후손들이며 ‘불의 씨’ ‘불의 알’들이다. 우리가 무심코 말하는 ‘부랄’ ‘불알’이라는 말이 바로 염제 신농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염제는 남쪽을 뜻하며 남쪽을 대표하는 동물은 봉황을 닮은 주작朱雀이다. 즉 새알심은 동이족 중에서도 새족鳥族이라는 뜻으로 새알심을 먹는 것이다.
이런 연유에서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 등 모든 건국신화가 알에서부터 시작하는 난생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곡식의 알이든, 남자의 성기든, 새의 알이든, 알은 생명탄생의 전前과정이다. 이것은 풍요의 의미도 있지만 동지가 바로 새알과 같이 죽었던 해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팥죽에 새알심을 넣어 먹음으로서 우리가 한 살을 더 먹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풍습을 보면 우리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시기는 바로 동지 날부터가 아닌가 한다.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날이 바로 새해 첫날이라 생각 한다면 해맞이는 동짓날 하는 것이 올바른 해맞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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