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미술관에서 당진 바다를 만나다

예술가들의 당진 포구, 두 번째 이야기

2022 레지던시 보고展


‘당진의 포구(浦口)’를 주제로 한 아미미술관 레지던시가 올해로 2회를 맞이하였다. 포구란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로 규모가 큰 것은 항(港), 작은 것은 ‘나루’를 의미한다. 당진에는 지금까지 조사, 연구에 의해 밝혀진 것만으로도 60여개의 포구가 있었을 만큼, 당진 지역의 문화정체성에서 포구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꾸준한 간척사업과 해안가에 조성된 대규모 산업단지, 방조제 등으로 포구의 상당수가 이미 옛 모습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이에 아미미술관은 기존에 자유롭게 운영하던 레지던시에서 탈피하여, 작년부터 ‘당진의 포구’라는 주제로 예술가들의 작업을 도모하고 있다. 지역 미술관으로서 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당진의 사라져 가는 역사문화를 시각적으로 발굴, 조명, 재탄생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이다. 올해 레지던시에서도 회화, 사진, 조각 및 설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5명의 작가들이 두 달 동안 안섬의 숙소와 소금창고를 활용한 오섬의 작업실 등을 오가며 당진의 포구를 직접 경험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과 공간, 조건에서 기존 작업과는 다른 작업에 도전해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류소리, 안경진, 정지연 작가는 이번 레지던시를 경험하며 새로운 시도를 통해 눈에 띠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박용화, 이예은 작가역시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작업을 확장하거나 기존 작업을 돌아보고 재해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레지던시의 주체인 아미미술관 역시 지역문화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문화적 자극을 공급해야 하는 입장에서 단순히 외부의 작품을 소개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지역의 역사 문화적 자원이나 자연 환경, 인적 자원 등을 활용하여 참여 작가들의 작품 제작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다행히도 2022 레지던시를 무사히 잘 마쳤다. 이제 이번 결과보고전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사라져가는 당진 포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관련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길 소망해 본다.


작업의 전환점을 맞이하다 – 류소리 작가

류소리 작가 전시전경

신진작가로서 작품이 팔려나가는 순간 등 미술생태계에서 경험하는 여러 감정을 담아 찰나의 순간을 그려왔던 류소리 작가는, 당진에서 북적임 없이 고요한 포구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이에 작가의 시선 역시 변화무쌍한 당진에서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던 바다와 하늘, 갈매기와 섬 등으로 자연스레 옮아갔다. 상전벽해를 이룬 도시에 비해 자연은 상대적으로 불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들 역시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무상(無常)한 존재이다. 류소리 작가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과 물결의 모습을 보며 이를 기록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꼈다. 이에 7-8월의 무더위에도 직접 캔버스와 물감을 들고 포구로 나감으로써 인상파 화가들을 연상케 하는 야외 작업을 새로이 시도한 것이다.
“자연을 따를 수는 있지만 따라잡지는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강물의 수위가 들쭉날쭉해 하루는 초록인가 하면 다음 날에는 갑자기 노란 빛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물이 거의 말라 버렸다가도 이튿날 금세 맹렬한 급류가 되어 흐릅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는 일입니다”
하늘과 바다를 관찰하며 인상적인 순간을 빠르게 그려낸 류소리 작가의 작업노트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본문의 ‘강물’을 ‘서해바다’로 바꾼다면 더욱 그럴싸하겠지만, 이는 놀랍게도 인상주의의 대가 끌로드 모네(1840-1926)가 1889년 제프루아에게 보낸 편지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 화가가 50점, 100점, 1,000점이라도 그릴 수, 아니, 그렸어야 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의 순간의 수만큼 얼마든지 많이 그려야 하고…(후략)” (조르주 클레망소, <대성당의 혁명>, <정의>지, 1895. 5. 20)
루앙 성당을 40점 넘게 그린 모네에 대한 클레망소의 이 같은 평가는, 순간의 인상을 그리려는 시도에는 역시 다작(多作)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류소리 작가가 두 달 동안 40여점의 많은 그림을 그려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빛에 따라 달라지고 바람에 흩어져 버리는 대상과 마주하는 매 순간이 한시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데서 특별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작가가 맞이한 가장 큰 변화는 기존 작업처럼 가슴(감정)이나 머리(의도)로 출발된 작업이 아니라, 눈(시선)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되는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이에 작가 스스로도 앞으로 기존 작업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시선이 찾아내고자 하는 것은 단지 인상의 효과뿐이다. 결국 제대로 된 표현은 선 묘사에 숙련된 자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모네의 말처럼, 주변 세계를 넓게 탐구해 나아가는 류소리 작가가 시선과 표현의 간극을 메우려는 이 과제를 계속 염두에 두고 작업하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공간 탐구자가 바라 본 포구의 모습 – 박용화 작가

박용화 작가 전시 전경


박용화 작가는 주로 인간을 위한 교육, 여가적 기능과 동물의 권리 보호의 측면에서 양립하기 어려운 동물원이라는 근현대적 공간을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을 표현해 왔다. 이는 주로 동물원의 동물이 아닌, 동물원의 배경그림이나 인공적인 구조물을 부각시키는 회화 작업과 휴먼케이지라는 설치 작업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 중 케이지는 관람자가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설치물로 자발적으로 갇히거나 혹은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으며, 케이지 밖에서는 작품의 일부가 되어 관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레지던시에서 케이지는 작가가 앉아서 포구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숙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실 작가에게 당진의 첫인상은 길 위에 떨어진 낙석처럼, 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포구와 같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공간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숙소에서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실내에서 안섬포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오래된 포구에 대한 아쉬움도 들었다고 한다. 박용화 작가는 케이지를 통해 작가 내면의 공간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치환하면서, 관람객들도 이를 통해 당진의 포구를 둘러싼 여러 감정들을 함께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바다와 육지 경계의 조형물 같은 새나 성구미포구의 할매바위는, 기존 작업과 같이 자연과 인공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동물원처럼 사라져야 할 것은 오히려 인공을 더해 존재하고, 포구처럼 지켜야 할 것은 사라져가는 가운데 아직까지 남아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묵도하면서 말이다.


기존 작업 스타일을 과감히 깨다 – 안경진 작가

안경진 작가 전시 전경


안경진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아 간과되고 중요해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그림자와 여백 작업을 10년 넘게 지속해왔다. 특히 그림자 작업은 조각 형상과 대조되는 인간의 내면과 무의식을 표현하면서 한 작품에 여러 이야기를 풍부하게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을 보여주었다. 또 안경진 작가는 명상하는 조각상도 꾸준히 제작해 왔는데, 글을 통해 조각가로서의 삶과 자신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위치와 나아갈 길을 성찰하고자 하는 진지한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안경진 작가가 레지던시에서 보인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그림자, 여백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작업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작가는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체감한 환경 변화에 주목하여 추후 지구의 미래 환경에 관한 작업을 하고 싶다고 인터뷰나 책에서 누누이 밝혀왔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레지던시에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다음 작업의 큰 줄기를 시간과 인간, 생명력, 자연의 치유, 인간에 의해 규정된 자연이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 등으로 기록할 수 있을 것 같다…”
-안경진, <여백의 무게>(2020) 중에서-
장고항의 갯벌에서 수집한 철물(보상을 받고 폐기된 배의 잔해)과 표면에 붙은 따개비, 굴 등 자연물을 이용한 새로운 도전은 이러한 맥락에 닿아있다. 철물이 자연에 의해 부식되고 단단했던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며 서서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작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결국 자연이 인간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작가는 기존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작업 스타일을 버리고 자연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즉흥적인 작업을 즐겁게 진행했다. 단 사라져가는 포구와 갯벌의 파괴, 인간의 유한성과 대조를 이루는 지구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여전히 작업 속에 묵직하게 담겨 있다. 작업의 스타일, 재료나 소재는 바뀌었지만, ‘늘 존재하지만 쉽게 인식되지 못하는 것들을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 드러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작업의 목적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작가 – 이예은 작가

이예은 작가 전시 전경


사진은 시각적인 매체이지만 청각적인 매체로 느껴진다는 이예은 작가는 그녀 특유의 탁월한 공감능력으로 타자의 이야기를 나, 혹은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데 재능을 보여준다. 실제로 레지던시에서도 당진에서 만난 ‘그들’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대어 ‘나’ 혹은 ‘우리’로서 “들려주는 사진”을 찍었다.
자발적으로 한 조를 이루어 포구를 방문했던 류소리 작가가 구름, 물결 등 흘러가는 부드러운 자연에 시선을 주었다면, 이예은 작가는 오랜 세월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포구의 변화를 지켜봤을 단단한 돌멩이에 귀를 기울였다. 작가에게는 포구마다 널려있는 돌멩이들이 단순한 돌이 아닌, 많은 스토리가 담긴 이야기 주머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에 이예은 작가는 두 달 동안 60여개의 포구 중 40여개의 크고 작은, 혹은 사라진 포구를 직접 방문하여 채집한 돌을 매달아 배경과 함께 촬영했다. 마음만 먹으면 기존 자료 및 온라인 등에서 포구의 이미지를 보다 쉽게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는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고단하지만 발로 뛰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진 작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 한 장만으로도 각각의 포구가 현재에도 바다로 남아있는지, 민물이 흐르는 하천이 되었는지 혹은 매립되어 논이 되었는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귀한 아카이브 자료까지 만들어 낸 셈이다.
또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당진의 포구를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받아 쌓아올리는 ‘쌓기 작업’도 진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예전에 포구해서 일했거나 지금도 포구에서 일하는 사람들, 혹은 포구를 기록하며 포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마치 무너지더라도 계속하여 공을 들여 탑을 쌓는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고 한다.
이들 사진은 디지털 이미지를 후가공하여 얻은 합성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가 짧게는 1시간에서 하루, 길게는 1-2달이 걸리는 까다로운 작업 끝에 얻은 아날로그적인 결과물이다. 물건들을 층층이 쌓는 과정에서 물건에 대해, 그리고 그 물건을 내어준 사람에 대해, 혹은 이들 관계를 마주하며 기꺼이 고행을 감수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작업의 스펙트럼을 새로이 발견하다 – 정지연 작가

정지연 작가 전시 전경


주로 실을 매개로 추상적인 작업을 풀어냈던 정지연 작가는 환경의 변화나 새로운 자극으로 인해 작업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변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물론 작가 자신도 언급했듯이 이는 한정된 시간이라는 제약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작업의 스펙트럼을 한층 넓혔다. 작가 스스로도 오랜 시간동안 뭉근히 끓여내야 하는 곰국 같은 작업만이 아니라, 신선한 샐러드처럼 날 것을 빠르게 내어놓을 수 있는 역량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에 작업했던 천을 작업장인 소금창고로 가져와 과감히 오려 재조합, 재배치, 재구성하여 재탄생시키는 과정은 여전히 작가가 지니고 있는 진지하고 묵직한 작업 태도를 보여준다. 기꺼이 샐러드를 요리할 수 있지만 그 소스만은 본인만의 비법을 지닌, 충분히 발효된 것을 고집하는 요리사라고나 할까.
실제로 정지연 작가는 이번 레지던시에서도 드로잉의 연장선상에서 실과 천을 이용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으나 기존의 추상성보다는 구상성과 명확성이 두드러지는 특성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가 워크샵 등을 통해 알게 된 멍텅구리 배나 당진의 산업단지에서 만난 새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데서 기인한다.
또 동력이 없어 독립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멍텅구리 배에 발을 달아주고, 그물이 텐트가 되어 의식주에 대한 어민들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설치 작업은 작가에게 포구는 상실의 공간이 아니라 희망이 담긴 상상의 파라다이스임을 보여준다. “포구와 포구와 공생하던 모든 존재들이 좀 더 유쾌하고 독립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실의 슬픈 현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포구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어떻게 포구에서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생겨난 바램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Share:

Facebook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