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에 골동품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역사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낙후된 경제는 20~30년이면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지만 한번 파괴된 역사유적은 영원히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레고랜드 건설로 인한 중도유적 파괴는 가위 역사 참사다. 최근에 이태원에서 158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는 10, 29 참사가 발생하여 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춘천 중도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 참사가 일어났는데 그것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더 이상의 역사 참사가 진행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도 또 이나라에서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전 국민들이 역사 참사의 진상을 알 필요가 있다. 춘천 중도 역사유적은 한국 최대의 청동기시대 유적이자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 위대한 유적을 유지 보존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지성인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이에 역사 참사의 진상을 널리 알리고 그 대책을 국민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강구하도록 하기 위해 본 논문을 발표하는 바이다. - 춘천 중도유적은 고조선사 연구에 한 획을 긋는 대발견이다.
춘천 중도에서는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부터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삼국시대 유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관통하는 많은 유물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중도문화 유적은 1980년대에 270여 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1980년부터 1984년까지 5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5권의 보고서가 나온 바 있고, 2010년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 과정에서 유물 200여 기가 발굴되었다. 2014년 레고랜드를 짓기 위한 1단계 발굴조사에서 1,400여 기의 유구가 발굴되었고, 2015년 2단계 발굴조사에서는 345기의 유구가 발굴되었다. 중도문화유적에서는 모두 2,200기가 넘는 많은 유구가 발굴되었는데, 그 중에 청동기시대 주거지로 추정되는 유적이 1,200여 곳에 달한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유적이다. 《이형구 춘천중도유적보존을 위한 백서 총론, p 27 참조》
중도에서는 신석기시대 유물도 발견되었지만, 청동기시대 유적이 주류를 이룬다. 청동기시대는 우리 역사상에서 고조선 시대에 해당한다. 비파형동검을 비롯한 청동기가 고조선 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춘천 중도문화 유적은 한국 최대의 고조선 유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삼국시대 이전에 고조선이 있었다는 것을 문헌을 통해 접하면서도 고고학적으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저 멀리 내몽골의 하가점하층문화에서 발굴된 유물을 고조선 시대의 유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몽골은 현재 중국 땅으로 귀속되어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서 그것을 고조선의 유적으로 연구 고증하는데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그런데 춘천 중도유적의 발굴을 통해서 한반도에 고조선이 존재했다는 것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마련하게 된 것은 한국 고대사 연구 특히 고조선사 연구에서 한 획을 긋는 대발견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도문화의 발굴은 그동안 고고학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던 고조선을 새로운 차원에서 유물 유적을 통해 실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이정표적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 오늘날의 춘천은 고대의 맥국 땅이다.
삼국사기 잡지 제4 지리2 신라조에 “옛 맥 땅이 지금 신라 북쪽에 있는 삭주(朔州)이다 (古貊地 盖今新羅 北朔州)”라고 하였다. 고려사 지(志) 권12에는 “춘주가 본래는 맥국이다. (春州本貊國)”라는 기록이 나온다. 거기에 “춘주는 우수주, 우두주, 수약주, 수차약, 오근내 등으로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 때 삭주로 고쳤다가 고려 태조 23년에 춘주라고 변경했다”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을 검토해보면 고대의 맥국 땅이 신라 때 삭주로 이름이 바뀌었고 고려 때는 다시 춘주로 변경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삼국유사 제1, 기이(紀異) 마한조에 삼국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춘주는 옛 우수주로 옛적의 맥국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지금의 삭주가 바로 맥국이다.’라고 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 유리이사금 조항에 “왕이 맥국과 우호조약을 체결했다.(王與貊國結好)” 라는 기록이 나오고 또 “맥국에서 총수가 사냥을 하여 짐승을 잡아 바쳤다.(貊帥 獵得禽獸獻之)”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신라국의 경덕왕이 삭주로 명칭을 바꾸기 이전에는 신라국 북쪽에 맥국이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 시대까지는 고려 때 쓰던 춘주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태종 시대에 이르러 춘주를 춘천으로 바꾸었고, 그 뒤 조선조 말엽까지 줄곧 같은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조선조에서 쓰던 춘천이란 지명은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춘천의 역사적 연혁을 살펴보면, 춘천이란 지명은 조선조 때 붙여진 명칭이고, 고려 때는 춘주로 불렸으며 삼국시대에는 삭주로 호칭되었고 또한 우수주, 우두주, 수약주, 수차약, 오근내 등의 별칭이 있었으며 삼국시대 이전에는 맥국 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겠다. - 중도문화는 고조선의 맥국 유적이다.
고조선사 연구에서 한 획을 긋는 고고학적 대발견이 오늘날 강원도의 춘천, 고대의 맥국 땅에서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맥국의 역사적 실체와 그것의 고조선과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먼저 삼국시대 이전 고조선 시대에 과연 맥국이라는 나라가 실재했었는가를 문헌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단군의 역사를 기록한 단군고기가 실려 있다. 단군고기에 “단군이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는데 시라, 고례, 남옥저, 북옥저, 동부여, 북부여, 예, 맥이 다 단군이 다스리던 나라이다. (檀君立國 號曰朝鮮 尸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濊與貊 皆檀君之理)”라고 하였다. 이는 단군조선 즉 고조선 시대에 맥국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정사 자료인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입증하는 결정적인 자료라고 하겠다. 단군고기에서는 단군이 다스리던 나라가 9개국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아홉 개 나라의 국명까지 일일이 열거했다. 이는 명나라의 오명제가 조선세기에서 “단군은 아홉 개 동이족들이 모여서 임금으로 추대한 분이다.(檀君九夷君之)”라고 말한 것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근거가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단군조선에 대해서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신화로 취급하여 부정하는 태도를 취했고 혹자는 고조선은 국가가 아니라 고을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늘어놓기까지 하였다. 한국의 일부 강단 사학자들 가운데는 그 설을 추종하는 한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산해경에서 “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北海之隅 有國 名曰朝鮮)”라고 말한 것을 본다면, 고조선은 고을이 아니라 국가였고 한반도가 아닌 발해만 부근에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중국 북경 북쪽에 조선하(朝鮮河)가 있다는 무경총요의 기록과 하북성 동쪽 노룡현에 조선성(朝鮮城)이 있다는 태평환우기의 기록은 “발해의 모퉁이에 고조선이 있다” 는 산해경의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단군고기에서 단군이 다스린 아홉 개 나라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한 것을 본다면, 단군조선은 한반도 대동강 유역 한쪽 귀퉁이에 있던 작은 한 나라가 아니라 발해유역을 중심으로 산동반도, 요동반도, 한반도에 걸쳐 여러 제후국을 거느린 통일왕국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그런데 단군조선이 거느린 아홉 개 나라 중에 시라, 고례 등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삼국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신라, 고구려의 전신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리고 남옥저, 북옥저, 동부여, 북부여 등의 명칭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나라들이 고조선이 망한 뒤에 비로소 건국된 나라들이 아니라 단군조선 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단서가 된다. 예와 맥은 원래 국가의 명칭이 아니라 민족의 명칭이었다. 그런데 단군고기에서는 예와 맥이 시라, 고례와 함께 단군이 다스리던 국가의 명칭으로 등장한다. 이는 예맥이 본래는 종족이나 민족을 지칭하는 명칭에서 뒤에 국가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변경되었음을 말해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성편(武成篇)에는 “화하만맥(華夏蠻貊)”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화하족과 만맥족을 대칭하여 말한 것으로 여기서의 맥은 종족을 지칭한 개념이다. 서경 주서 무성편은 서주 무왕이 은 주왕을 정벌한 사건의 경과를 다루고 있는데 서기전 1,046년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와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맥족에 대한 문헌상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례(周禮)는 주나라 시대의 관제(官制)를 기술한 책으로 주공(周公) 단(旦)이 지은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후한의 학자 정현(鄭玄)이 주석을 하였고, 당나라의 가공언(賈公彦)이 소(疏)를 지었다. 주례에 “직방씨가 사방의 이족과 아홉 개의 맥족을 관장하였다(職方氏掌四夷九貊)”라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의 맥은 민족을 가리킨 것이다. 시경 한혁편에는 “한국의 제후가 예족과 맥족의 지도자로 되었다(王錫韓侯 其追其貊)”라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맥은 또한 민족의 명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중국 고대문헌에 나오는 이러한 기록들은 맥족이 3,000년 전 서주시대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과 민족명칭 또는 종족명칭으로 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사마천 사기에서는 오환, 부여와 함께 예맥, 조선 등이 나온다.(夫燕 北隣烏桓夫餘 東쭿濊貊朝鮮) 맥이 아닌 예맥이라는 이름으로 또 민족명이 아닌 국가 명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단군이 다스린 나라 중에 조선, 시라, 고례, 부여와 함께 예국과 맥국이 포함되어 있는데 사마천 사기에서 오환, 부여, 조선과 함께 예맥국이 등장하는 것을 본다면 예맥은 종족이나 민족의 개념으로서 뿐만 아니라 국가의 명칭으로도 사용된 것을 증명하는 확실한 근거가 된다. 상고시대에는 맥족으로 표기되다가 후대에 예맥이 등장하는 것은 예족이 맥족에서 갈려 나간 하나의 지류라는 것을 말해준다. 호타하 지류 예수유역에 살던 맥족이 크게 발전하여 새로운 하나의 민족을 형성함으로써 맥족이 예맥족으로 호칭되게 되었다고 본다. 맥이 초기에는 종족의 이름으로 사용되다가 맥족이 분파를 형성하여 예맥민족이 되었고 예맥족이 발전하다가 뒤에 다시 이를 국가의 명칭으로 삼은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을 것이므로 예맥이 국가의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비교적 후기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단군고기에 예국과 맥국이 나오고 사마천 사기에 예맥국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이 예맥국이 과연 어디에 존재했는지 그것을 고증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오늘날의 춘천이 고려시대의 춘주이고 고려시대의 춘주가 신라시대의 삭주이며 신라시대의 삭주가 삼국시대 이전에는 맥국 땅이었다는 사실이 문헌적으로 확인이 된다. 그리고 이제 춘천 중도에서 한국 최대의 청동기시대 즉 고조선 시대의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에 말한 맥국, 단군고기에 나오는, 단군이 다스린 나라 맥국이 바로 오늘날의 춘천지역이라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강원도 춘천이 고조선의 맥국 땅이라는 것을 문헌적으로 고고학적으로 모두 입증할 수 있게 된 것이며 따라서 춘천 중도문화는 단군조선의 제후국가 맥국의 유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 맥국은 우리말 밝달국의 한자 표기이다.
맥국은 우리말 밝달국의 한자 표기이다. 맥(貊)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맥으로 발음하지만 맥의 고대 발음은 박 또는 밝이었다. 주례(周禮)에 서주(西周)에서 사냥을 할 때 “맥족의 신에게 제사지냈다(祭表貊)”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한나라의 학자 정현은 그 주석에서 “맥족의 신은 치우를 가리키며 맥(貊)은 밝으로 발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대 한국어에서 맥(貊)을 맥으로 발음하는 것은 남방의 오(吳)나라 계통의 발음을 따른 것으로 보이며 북방의 고대 고유한 발음은 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貊자는 치(?)와 백(百)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글자인데 우리말 밝을 한자로 음차하여 표기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한족들이 이 글자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글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貊은 또는 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백(百)과 백(白)은 음부를 표현한 것이다. 백(百)과 백(白)은 중국 발음으로는 바이이고 한국 발음으로는 백으로서 우리 옛 말 밝, 백, 배이 등의 발음을 한자로 음차하여 표기하는 데 쓰였다. 밝족이 중국문헌에 맥족, 또는 예맥족으로 표기되었는데 이 예맥족이 발해유역의 산동반도, 요동반도, 한반도에서 세운 나라들이 조선, 시라, 고례, 남옥저, 북옥저, 동부여, 북부여, 예,맥이었다는 사실을 단군고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 춘천의 맥국은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서 형성된 것일까?
예맥족은 본래 서주 이전에는 지금의 발해만 유역 일대에서 주로 생활했다. 그러다가 서쪽의 화하족 주나라가 동쪽의 동이족 은나라를 정벌하고 중원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하자 발해를 건너 동북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고조선과 뿌리가 같은 동북방 맥족 즉 밝족으로서 중원에 진출하여 건국한 상나라가 황하 중류에 기반을 둔 화하족 서주 무왕에 의해 멸망하고, 또 주공(周公)의 동정(東征)으로 그 세력권이 발해유역으로 확대되자, 이때 발해유역 일대에서 생활하던 밝족의 고조선인들은 동쪽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특히 전국시대 연나라 소왕 때는 연나라 장수 진개의 기습공격에 의해 중국 하북성 동북쪽에 있던 고조선 땅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5군을 상실하기도 했다. 진시황 시대에는 중원을 통일하였으나, 동방의 6국을 멸하였을 뿐 동북방의 고조선 영역에는 변화가 없었다. 유방이 다시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을 세워 중원의 주인이 되었는데 서방으로는 강역을 넓혔으나, 동쪽으로 고조선을 침략하지는 않았고 고조선 왕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때 한 왕조와 고조선은 고대의 요수, 현재의 역수와 고대의 갈석산, 현재의 백석산을 경계로 국경을 마주하였다. 그러다가 한무제 때 갈석산을 넘어와 고조선을 공격하여 고조선 서쪽에 한사군을 설치했다. 이때부터 고조선은 국력이 약화되었고 뒤에 연방국가 고조선이 망하자 그 유민들이 동북방에 흩어져 각자 독립하였는데 그 나라가 72개국이었다고 당나라 두우의 통전과 일연의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 72개국은 대체로 지방 100리에 달하는 소국이었는데 마한, 진한, 변한과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고조선의 유민이 세운 나라 중에 비교적 대국에 속하는 나라들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신라, 고구려와 같은 경우는 신생 독립국이 아니라, 고조선이 망한 뒤에 고조선의 제후국이었던 시라가 신라로 고례는 고구려로 이름을 바꾸어 새 출발을 하였던 것이라고 하겠다. 시경 한혁편에서 맥족이 중국 하북성 연나라 부근에서 활동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면, 맥족은 상고시대에 대륙의 동북방에 분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춘천의 맥국은 언제 어떤 경로를 거쳐서 형성되게 된 것일까. 발해유역에 있던 예맥족이 서주시대에 동쪽으로 이동할 때 그 세력의 일부가 한반도로 내려와서 세운 나라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런데 자연환경이 빼어난 북한강 유역 춘천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나라 이름을 자신들의 종족명칭을 따서 맥국이라고 한 것은 밝달민족의 먼 조상을 잊지 않기 위한 의미가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들이 맥족의 직계후손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춘천의 맥국은 제1대 단군왕검이 다스리던 나라가 아니라 2,000년 가까이 유지된 고조선 왕조의 중기 어느 한 시기에 존재했던 나라였다고 하겠다. 우리는 그동안 단군고기에서 고조선 시대에 예국, 매국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춘천이 고대의 맥국이라는 문헌기록을 확인하면서도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고고유적이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의 춘천을 고조선 시대의 맥국으로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했다. 그런데 이번에 춘천의 중도 유적의 발굴을 통해서 춘천이 고조선의 맥국유적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레고랜드의 중도 개발은 재앙이지만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서 고조선의맥국 유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 것은 한편 다행이기도 하다. 이번 공사가 아니었으면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랜시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을는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레고랜드 건설 공사를 하루빨리 중단하고 중도문화를 국가적 차원에서 원상복구하여 국민적 역사유적으로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 중국 내몽골의 홍산문화와 한국 춘천의 중도문화
홍산문화는 중국 동북쪽 발해유역에서 발굴된 5,500년 전의 문화를 가리킨다. 1921년 최초로 발굴되었고, 1935년 내몽골 적봉시 동쪽 교외 홍산 뒷면 유적에 대한 발굴을 진행했으며, 1954년에 홍산문화라고 명명하였다. 70년대 초부터 적봉시와 조양지역에 대한 대규모적인 고고학적 조사를 전개하여 1,000곳에 가까운 유적을 발견하였다. 능원, 동산취, 우하량에서 발굴된 홍산문화 유적은 제단, 여신전, 적석총으로 상징되는데 이는 북경의 천단, 태묘, 명십삼릉과 같은 구조로 건설되어, 건국 전야의 유적을 상징한다는 것이 소병기 북경대 교수를 비롯한 중국 고고학계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중국 한족의 시조 황제헌원은 4,700년 전의 인물이고, 중국의 첫 국가는 서기전 21세기에 건국된 하(夏)나라이다. 따라서 5,500년 전 만리장성 밖 동이족의 땅 현재의 내몽골 적봉시에서 발견된 유적인 홍산문화는 한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이 동아시아 문명의 서광 홍산문화를 건설한 주역은 누구인가. 우리 한민족은 밝족이고 한국의 첫 국가는 환국이다. 5,500년 전에 바이칼, 즉 밝바다에서 오늘의 발해유역 적봉 홍산으로 이동하여 홍산환국을 건설한 주역은 구려족의 지도자 치우천왕이었다. 한족의 시조 황제헌원의 성은 희(姬)이다. 그것은 희수유역 즉 오늘날 중국 서쪽 황하 중류 섬서성 위하유역을 중심으로 성장 발전했기 때문에 붙여진 성이라고 한다. 황제의 능이 섬서성 황릉현에 있다. 이것은 그의 활동무대가 황하 서쪽 황토고원이었음을 말해주는 근거가 된다. 또 그의 황제(黃帝)라는 칭호에 황토고원의 황(黃)자가 들어 있는 것도 황토고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 동북방에 위치한 내몽골 적봉시의 홍산문화는 중국의 한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동이족이 창조한 문화이다. 중국 한족들은 5,500년 전에 자신의 조상들이 건국한 일이 없기 때문에 홍산문화를 건국 전야의 유적으로 규정했지만, 사실은 삼국유사에 말한 환웅의 환국과 시경에 나오는 “현왕환발玄王桓發” 즉 환국 밝족의 5,500년 전 치우 현왕의 건국을 증명하는 유적인 것이다. 중국 내몽골의 홍산문화가 치우 현왕 환국의 건국을 입증하는 유적이라면 한국 춘천의 중도문화는 단군조선의 건국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유적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의 단군고기 등을 통해서 문헌적으로 고조선을 접할 수 있었고, 또 최근에는 새로 발굴된 사고전서의 북경 북쪽의 조선하, 하북성 동쪽 노룡현의 조선성, 또 남북조시대 유신庾信이 쓴 선비족 모용은 비문에서 말한 “조선건국(朝鮮建國) 고죽위군(孤竹爲君)”이라는 기록 등에 의해서 발해유역에 실재했던 고조선의 실체를 문헌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고조선의 건국을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가 중국 내몽골 적봉시 하가점하층문화를 제외하고, 한국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인은 물론 학자도 그것을 직접 목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춘천 중도에서 고고학적으로 고조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청동기시대 거대유적이 발굴된 것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현재 남한에는 강화도에 단군 제천단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상에 있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후세사람들의 손길이 가해져서 역사적 가치가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다. 춘천의 중도유적은 수천년 동안 지하에 있다가 발굴되어 후인의 조작이 전혀 가해지지 않아서 역사성이 매우 높고 더욱이 그 규모가 남북한은 물론 한, 중, 일 삼국을 통틀어 최대라는 점에서 특별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중국 내몽골의 홍산문화가 밝족 치우 현왕의 홍산환국 건국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하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라면, 한국 춘천의 중도문화는 단군의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의 작은 나라가 아니라 발해유역을 중심으로 맥국을 비롯한 아홉 개 나라를 거느린 통일왕국이었다는 것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하는 동아시아 최대의 고조선문화유적인 것이다. - 포크레인으로 중도유적을 파괴하고 레고랜드를 짓는 것은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참사다.
레고는 덴마크의 장난감 제조회사 이름이다. 1932년 덴마크의 시골 마을 빌룬트의 작은 목공소에서 목수가 창업했다. 처음에 나무로 장난감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다가 뒤에 플라스틱으로 완구를 생산했다. 플라스틱으로 다양한 모양의 장난감을 만들 수 있는 레고의 장난감은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디자인 아이디어로 꼽힌다. 레고랜드는 덴마크의 레고를 대표하는 놀이공원이다. 3~12세의 어린이와 그 가족을 위한 놀이 교육시설로 설계 건설되었다. 덴마크를 시작으로 일본, 영국, 미국, 독일,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이탈리아 등에 있다. 레고랜드 코리아는 세계에서 열한 번째, 동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가 되므로 세계 유일이 아니다. 중도유적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고조선의 최대 유적이다. 레고랜드 코리아는 일자리 총 9,800여 개를 만들고 220만 명 이상의 관광객과 4,400억 원의 수익을 낼 것이며 막대한 양의 지방세를 걷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22년 5월 5일 개장한 레고랜드는 일자리 창출도, 관광객도 수익을 내는 일도 모두 실패했다. 가령 그것이 모두 성공했다손 치자,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민소득35,000불 시대에 진입하여 성장의 시대를 지나 성숙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가격보다 가치를 중요시할 시점에 와있다. 레고랜드가 내건 주장이 모두 현실화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가격의 문제이지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물품이 있는데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어서 그것을 내다 팔아 연명을 한다면 그래도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부득이 한 행위이니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물을 내다 팔아서 욕심을 채운다면 그것은 천벌을 받아 마땅하고 조상님과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일자리를 위해서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포크레인으로 남북한 최대의 고조선 유적,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어린이 플라스틱 장난감 놀이공원 레고랜드를 짓는다는 것은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 참사이자 문화테러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밖에 없는 고조선 유적을 돈 몇 푼에 눈이 멀어서 플라시틱 장난감 놀이공원과 맞바꾸는 이런 짓은 먹고살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즐비한 아프리카의 후진국가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제 10대 대국인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역사유적을 부동산개발 차원에서 접근하는, 이런 파렴치한 만행은 민족의 이름으로 규탄하고 역사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한다. 중도문화는 한민족의 역사유적을 넘어 인류가 함께 누려야할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유일무이한 역사유적을 파괴하고, 거기에 레고랜드를 짓는 한국인은 세계의 지성들로부터 혼이 없는 야만인으로 멸시당할 것이며, 조상들은 지하에서 피눈물을 흘리실 것이다. 자손 대대로 지켜가야 할, 국내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고조선의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나면 장차 무슨 낯으로 조상을 대할 것이며, 또 먼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 춘천 중도를 살리지 않고서는 한국의 국혼은 살아날 수 없다.
한국인의 역사의식의 결여와 국혼의 부재를 반영하는 두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첫째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했을 때 한국 정부, 의회, 언론계, 학계 그 어느 누구도 나서서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실이 없다. 가령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간부들과 술자리에서 농담삼아 던진 말이라 하더라도 한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이런 발언은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사석이 아닌 양국 정상이 공식적으로 만나는 공식 석상, 그것도 미국의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한국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중국 땅의 일부였다”는것을 세계를 향하여 공표를 한 것이다. 그런데 8,000만 민족 가운데 시진핑을 향하여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판성명 하나 낸 사람이 없다는 것은 오늘 한국인의 역사의식의 결여와 국혼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둘째 춘천 중도문화는 한국의 고조선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하는 최대 유적이자 유일한 유산이다. 이것은 유일무이한 유적이기 때문에 한번 파괴되면 더 이상의 재생이나 복구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진귀한 유적을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뭉개버리고, 그 자리에 플라스틱 장난감 회사 레고를 끌어들여 레고랜드를 짓는 것은 한국인의 국혼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상징적인 사건인 것이다. 시진핑의 망언에 대해서는 그것을 학술적으로 논리적으로 비판한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라는 심백강의 저서가 출간됨으로써, 한국인이 그나마 체면유지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레고랜드는 지금 진행형이다. 불도저와 포크레인으로 중도문화를 파괴하고 플라스틱 놀이공원을 완성하기 위한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춘천 중도문화를 살리지 않고서 수수방관한 채 한국의 국혼 부활을 논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춘천 중도를 더 이상의 개발을 중단하고 원상 복구토록 하는 것이 한국 국혼 부활의 첫걸음이다. - 레고랜드 사업을 추진한 당시의 대통령 박근혜, 문재인, 강원도지사 최문순, 문화재청장 나선화, 문화재위원장 김정배는 역사 참사의 5 대 죄인이다.
2013년 7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춘천 중도 레고랜드개발 예정부지를 방문하고 “진입교량 건설사업비의 국비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뉴시스 서울, 2013, 7, 2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7월 24일 레고랜드 코리아 건설현장을 방문, ‘테마파크 유치로 관광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진입 교량 건설사업비의 국비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총 사업비 895억 원이 투입되는 교량건설비 가운데 50%인 447억 원을 지원하기로 확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그치지 않고 같은 해 9월 25일 열린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강원도민일보, 2015, 7, 17》
이 두 기사를 통해서 우리는 춘천 중도 레고랜드 개발사업은 당시 강원도지사 최문순이 앞장서서 추진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개발예정부지를 방문하여 관광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오판하고, 진입교량 건설사업비의 국비 지원을 약속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사업이 탄력을 받아 추진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춘천 중도 레고랜드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2013년 10월부터 2014년, 2015년 고인돌 무덤, 대형 주거지, 비파형 동검 등 우리나라 최대의 고조선 유적이 발굴되었다. 그야말로 한국의 고대사를 새로 써야할 정도의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굴된 것이다. 이때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가 중도 유적은 춘천지역에 국한된 유적이 아니라 국가적 세계적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그 유적의 가치를 정부와 국민에게 널리 알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사를 중단시켰어야 했다. 문화유산 특히 중도와 같은 유일무이한 역사유적은 원상을 보존시켜야 하며 어떠한 명분으로도 이전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청동기시대 중도유적을 걷어내 흙을 덮고 그 위에 레고랜드의 각종 시설을 짓도록 승인하였다. 문화재청은 고인돌 무덤을 해체 이전하고 그 자리에 레고랜드와 호텔 위락시설을 건설하도록 허가하였고, 문화재위원회는 중도유적의 이전 또는 매립을 허가하는데 방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국가의 문화재를 보전·보존해야할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가 이처럼 문화재를 파괴하는 데 방조한 것은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사업이므로 국가시책에 호응한다는 차원에서 이런 어리석은 만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문화재청장 나선화와 문화재위원장 김정배는 역사문화를 보존하고 보호해야할 최고 책임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로서 중도문화 파괴에 동조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 때 레고랜드 사업이 추진되었다 하더라도 정권이 바뀌어 문재인이 집권하게 되었으므로, 문재인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를 중단시켰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불행한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업을 계속 밀어붙이도록 지원하였으므로,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역사 참사의 죄인이란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역사 참사를 일으킨 원흉을 단죄해야 한다.
당시에 대통령 박근혜, 문재인, 강원도지사 최문순, 문화재청장 나선화, 문화재위원장 김정배 5인 중에 어느 한 사람만 국혼이 살아 있었어도 이런 민족의 불상사, 역사의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역사 참사는 한 번으로 족하다, 두 번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면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죄인을 단죄해야 한다.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 지금 비록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에 여기에 관련된 당사자들은 민족과 역사 앞에 참회하고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먼저 국민들 앞에 사과 성명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레고랜드 사업을 모의하고 기획한 역사 참사의 원흉 전 강원도지사 최문순은 그동안의 공직을 모두 박탈하여 기록에서 삭제하고, 영원히 국가의 공직을 다시 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그 더러운 이름을 교과서에 실어 역사를 망친 죄인의 상징으로 응징함으로써 후손 가운데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역사 참사를 되풀이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윤석열 정부는 레고랜드를 철거하고 중도문화를 원상복구 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중도 문화유적 위에 세워진 플라스틱 장난감 공원 레고랜드를 철거하고, 중도문화 유적을 원상복구해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투입된 돈을 어떻게 마련하여 레고랜드 측에 배상하고 또 중도유적을 성역화하여 국가적 고조선 역사유적지로 조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을 배상하고 새로 유적을 조성하자면 최소한 5,000억 원 가량이 소요될 것이다. 어떻게 이런 거대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정부가 나서서 중도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원상복구를 위한 비용 5,000억 정도를 국민 세금으로 마련하는 방안이다.
둘째 10대 재벌기업이 500억씩 출연하여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셋째 국민 성금을 모금하는 방안이다. 5,000만 국민이 1인당 1만 원씩을 각출하면 5,000억 원이 된다.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에게 그대로 레고랜드로 가는 게 좋은지 원상복구를 하는 것이 좋은지 의견을 묻고 원상복구의 찬성자가 많으면중도유적복원국민위원회를 출범시켜 작업을 진행하면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먼저 중도문화를 파괴하는데 참여한 5인의 책임을 묻고 원흉 최문순을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해야 한다. 그리고 위의 세 가지 방안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레고랜드를 철거하고 중도문화를 원상복구시켜 세계적 역사유적,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 맺는 말
아오이도(井戶茶碗) 다완, 조선에서는 막사발로 쓰이던 그릇인데 일본에서는 국보로 대접을 받는다. 일본에서 만일 중도와 같은 거대한 청동기시대 역사유적이 발견되었다면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중앙 언론에서 연일 대서특필하여 벌써 세계적인 명소로 각광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중도 문화유적이 발굴되자 부동산업자가 포크레인으로 갈아 업기에 급급했고, 발굴된 유물을 비닐봉지에 쓸어 담아 잡석 취급하여 강가에 내팽개쳤다. 이것이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 참사가 아니고 무엇이냐. 강원도 춘천의 중도 레고랜드 사태는 춘천시장이나 강원도지사가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나서서 책임지고 풀어야할 국가적 사안이다. 중도문화유적은 국가적 세계적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노자는 “천하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는 것은 신의 의지가 담겨 있으며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한 나라의 수장으로 국민을 대신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은 하늘의 뜻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은 5년 임기로 되어 있다. 5년짜리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도 임기 5년 동안에 무슨 가치 있는 업적을 남길 것인가가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시대적인 과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역사에 향기를 남기는 대통령이 될 것인가 반대로 시대를 역행함으로써 역사에 악취를 남기는 대통령이 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5년 임기에서 윤석열 정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는데 국민에게 보여준 것은 별로 없다. 윤석열 정부가 국부를 넘어 국혼을 살리는 것이 시대적 과제임을 직시하고 국혼을 살리는데 국정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 특히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 망쳐놓은 중도문화를 복원하여 레고랜드 사태를 슬기롭게 해결한다면, 죽어 있는 국가의 국혼을 되살린 대통령, 역사에 향기를 남긴 대통령으로 청사에 기록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국가와 민족과 역사가 사는 길이고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사는 길이기도 하다. 중도유적을 통해 잃어버린 고조선, 잃어버린 맥국을 되찾게 된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파괴된 중도문화를 원상복원하여 국민들 가슴속에 고조선의 긍지를 심어주자. 후손들에게 찬란한 고조선의 영광을 물려주자.
심백강(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사)삼일역사문화연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