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서(古代史書) 분서(焚書)과정

사서(史書)가 불태워 졌음[悉燒之]을 알렸다
이규경(李圭景)❶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 서(五洲衍文長箋散稿序) 인사편(人事篇) 비위도참변증설(祕線圖讖辨證說)에는, 태종 11년 (1411) 1월 서운관의 참서를 불태운 상황과 1457년(세조 2년), 1469년 12월 9일 성종조의 수거령과 사서 목록(凡十九書目)을 같이 기록하여 고조선비사(古朝鮮史)가 참서류에 포함, 수거되어 불태워(悉燒之)❷졌음을 암시했다. 이 같은 확증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북부여기(北扶飮記)를 저술한 범세동(范世東)❸의 화동인물총기(東人物叢記)에는 수많은 사서가 불태워 졌음이 기록되었고, 조선조 27대 왕조마다 수거령과 수(水), 불(火)에 의한 사서 처리가 진행되었으며, 때마다 조심스러운 증언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성종조에 서거정(徐居正)이 ‘삼경(三京)·삼소(三蘇)’라 하여 신지비사(神誌秘詞)❹의 내용을 거론하며 “지금 그런 글을 얻는다면 오히려 불살라야 마땅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 글이란 바로 고대사서를 지칭한 것으로 이규경이 암시한 내용과 부합된다. 아래 글에서 다시 논한다.
한편 태종이 불태운 것은 참서(讖書)❺ 괴서(怪書)❻로 분류한 음양서(陰陽書), 역술서(曆術書)❼이며, 역사서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참서, 괴서, 요서, 비기라는 것은 명목상 분류일 뿐 고대사서의 한 장르였음을 반증하고 있다.
산간 곳곳까지 뒤져 수거하여 불태워
앞서 당시의 실세였던 정도전(鄭道傳)은 앞장서서 산간 곳곳까지 뒤져 수거하여 불태웠으며, 태종 12년인 1412년에는 역대 사서로 알려진 신지비사(神誌秘詞), 즉 신비집(神秘集)이 괴탄, 불경하다 하여 불태워 졌다. 또한 이색의 문집 일부도 이 범주에 넣어 수거했음이 확인된다. 원천석(元天錫, 1330~?)❽의 후손들은 멸족의 화를 면키 위해 조상의 서책을 스스로 불태웠다. 북부여기(北扶餘記)를 저술한 복애 범세동(伏崖 范世東)의 화동인물총기(話東人物叢記)❾는 500년간 금서(禁書)로 묶였다. 원천석과 공동 저술한 화해사전(華海師全)❿은 신돈(辛旽)⓫에 의해 압수, 소각된 바 있고 재편집 복간했으나 정도전에 의해 또 다시 불태워졌다.
조선 건국과 함께 국시가 된 유교의 유입은 통치 강화의 수단이 되어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전반에 걸쳐 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모두 사문난적(斯文亂賊)⓬이란 미명 아래 난도질했다. 또한 고려를 타파하고, 조선 개국에 앞장 선 유학자 사대부들의 권력 유지책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1) 이규경(李圭景, 1788~?) 조선 후기의 실학자.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금사물(古今事物)대한 수백종의 서적을 탐독하여 정밀한 고증으로 천문·역수(曆數)·종족·역사·지리·문학·음운(音韻)·종교·서화·풍속·야금(冶金)·병사(兵事)·초목·어조 등 모든 학문을 고정변증(考訂辨證)하여 1,400여 항목을 담아 《오주연문장전산고》 60권을 집대성하였다. 그는 일생 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이룩한 실학을 계승, 조선 후기 실학을 꽃피운 박물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저서로는 《오주연문장전산고》·《오주서종박물고변>·<백운필》등이 있다.

2) 실(悉) : ㉠다 ㉡모두 ㉢갖추다 ㉣다 알다 ㉤다 내다 소(燒) : ㉠(불)사르다 ㉡익히다 ㉢불나다 ㉣야화 ㉤타다

3) 범세동(范世東, 1342~?), 고려말의 학자. 본관은 금성(城).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 통찬(通贊) 후춘(後春)의 아들이며 정몽주(鄭夢周)의 제자이다. 1369년(공민왕 18)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덕녕부윤(德寧府尹)·간의대부 등을 지냈다.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원천석과 함께 화해사전(華海師全)》을 편집하고 《동방연원록(東方淵源錄)》을 편찬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였다가 낙향하였으며, 조선 태종이 여러 번 벼슬을 권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다. 죽은 뒤 후덕군(厚德君)에 봉해지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았으며 개성의 표절사(表節祠),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 광주(光州)의 복룡사(伏龍祠)에 제향되었다.

4) 신지비사(神誌祕詞)는 BC 2049년 6세 단군 달문 때의 사람 신지(神誌)인 발리(發理)가 지은 것으로 삼신(三神)께 제사할 때 하늘에 올리는 기원의 글을 적은 책이다.

5) 참서(書): 미래의 일에 대한 주술적 예언을 기록한 책.

6) 요서(妖書) : 민심을 어지럽히는 요망하고 간사스러운 책

7) 역술서(曆術書) : 해와 달의 운행과 사람의 운명 사이의 관계를 예측한 책

8) 원천석(元天錫) : 1330년(충숙왕 17) ~? 고려말과 조선초의 은사(士).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자정(子正), 호는 운곡(谷), 일찍이 방원(芳遠太宗)을 왕자시절에 가르친 바 있어 그가 즉위하자 기용하려고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으며, 태종이 그의 집을 찾아갔으나 미리 소문을 듣고는 산속으로 피해버렸다. 시조로는 망한 고려왕조를 회고한 것으로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 하노라.”라는 회고 시 1수가 전해오며, 시문들은 뒤에《운곡시사(耘谷詩史)》라는 문집으로 모아져 전해온다. <왕부자이위신돈자손폐위서인(王父子以爲辛旽子孫廢位庶人)>이라는 시를 읊어, 만일 왕씨(王氏)의 혈통으로 참과 거짓이 문제된다면 왜 일찍부터 분간하지 않았던가 힐문하면서 저 하늘의 감계(鑑戒)가 밝게 비추리라고 말하였다. 그는 또 만년에 야사 6권을 저술하고 “이 책을 가묘에 감추어두고 잘 지키도록 하라.”고 자손들에게 유언하였으나 증손대에 이르러 국사와 저촉되는 점이 많아 화가 두려워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강원도 횡성의 칠봉서원(七峯書院)에 제향되고 있다.

9) 범세동 저, 정주영 연의, 전남대학교 출판부, 1993. 10.
10) 華海師全 : 고려말 유학자 불훤재(不齋) 신현(申賢, 1298~1377)에 대한 전기.
11) 신돈(辛旽):?~1371 (공민왕 20). 고려 공민왕 때 개혁정치를 담당했던 승려. 본관은 영산(靈山), 승명은 편조(遍照), 자는 요공(空)이며 왕이 내린 법호로 청한거사(淸閑居士)가 있다. 돈은 집권 후에 정한 속명이다.
12) 사문난적(斯文亂賊):유교(儒敎)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교리(敎理)에 어긋나는 언동(言動)으로 유교(儒敎)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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