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병원

신유리는 아들과 커다란 바위 앞에 쓰러진 채로 누워있었다. 굴은 바위로 굳건히 닫혀있어 누가 봐도 굴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어디선가 컹컹 하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유리는 꿈결처럼 아스라이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두 마리의 세퍼트가 경찰들과 함께 다가와 있었다.
“어이, 여기! 두 사람 찾았어.”
그녀는 그 말을 들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엄청난 피곤이 몰려와 도저히 누을 뜰 수가 없었다. 그녀는 꿈결 속으로 빠져들었다.
세별이를 만나고 있었다.
“미안해하지 마. 우리 인연은 끊긴 게 아니야. 할 일이 아직 남았거든.”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각종 의료기기들이었다. 그리고 하얀 병실의 형광등 다른 사람들의 침대가 눈에 띄었다.
“정신이 드세요?”
간호사가 다가와 물었다.
“태양이는요.”
그것이 그녀의 첫마디였다.
“한태양 환자요? 아드님이시죠. 뇌사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나서 완전 병원 뉴스거리에요. 신유리 환자님하고 같이 오늘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 가시게 될 거에요.”
그녀가 깨어나자마자 얼마 안 있어 시어머니, 시아버지, 여동생이 마치 중환자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한꺼번에 들어섰다.
“괜찮아”
“얘, 기적이다 기적.”
“애 아빠는요?” “많이 나아졌어. 시력을 잃었지만 이식 수술하면 나아질 거래”
남편이 세별이의 눈을 이식했다는 것은 그러고도 하루가 지나서야 알았다.
그들이 세별을 찾은 것은 신유리 모자보다 하루 먼저였다고 했다.
하지만 머리를 많이 다쳐 이미 뇌사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장기 이식을 결정하고 7명에게 장기를 나눠주었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아버지 한단수에게 준 안구였다.
신유리는 얘기를 듣고 하염없이 울었다.
“근데, 언니 아기 가진 거 알아?”
“뭐? “무슨 소리. 내 나이가 몇인데, 그것도 올 초부터 끝났는데.”
“어쨌든 의사가 언니 임신이래. 축하해.”
“민망하게 축하는……”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고도 아기가 무사한 거 보면 분명히 이건 천운을 받고 태어날 아이일 거야.”
신유리는 세별이를 생각했다.
‘네가 이렇게 내게 다시 오는 구나’
“근데 언니 임신해서 그런가. 회춘한 거 같아. 확실히 더 젊어졌어.”
“태양이는”
“저 위에 소아병동에 있어. 오랜 뇌사상태에 있다가 깨어나서 많이 약해져있어. 좀 더 입원해있어야 하나봐. 몸 좀 추스르면 가봐. 시어머님도 거기서 손자랑 계셔.” “그렇구나. 괜찮겠데”
“깨어났는데 괜찮지 그럼. 사실 장기기증 얘기까지 나왔었는데, 언니 시어머님이 반대해서 기계로 생명연장만 유지하며 있었던 거야. 뇌사에서 깨어난 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뉴스거리잖아, 요즘.”
그녀는 아들을 보러 소아병동을 가기 위해 병실 밖을 나섰다.
태양이는 이제 완전히 깨어나 있었지만 아직 호흡하는데 조금 문제가 있고, 백혈구수치가 낮아 무균실에 있어야 해서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넓은 잔디 마당이 나타났다. 자갈 깔린 정원도 보였다. 그녀는 문득 다이아몬드를 떠올렸다.
병실에 있는 태양에게 그 얘기를 했다. 자신이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진짜 저승여행을 하고 온 것인지는 같이 헷갈렸다.
사실 남편과 동생에게 그 얘기를 했지만 모두 꿈으로 치부하고 아무도 믿지를 않았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에게까지 상담을 받아보았다.
“간혹 오랫동안 생사를 넘나들던 사람들 중에 저승여행을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이 만들어낸 꿈인 거죠. 우리의 의식은 사실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저 밑에 가라앉아있는 무의식의 깊이는 이루 짐작할 수 없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교수님께서 신화를 연구하시는 분이시라서 그런 꿈을 꾼 것 같습니다.”
동행한 아들과 얘기를 해보면 정말 꿈이었는지, 저승여행을 한 것이 맞는지 알 거였다.
그래서 오늘은 아들 상태를 봐서 괜찮으면 얘기 좀 해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자갈을 보니 그때 일이 떠올랐다.
병실에 들어가니 간병인이 잠깐 어디 갔는지 아이 혼자 누워있었다.
친구들이 면회를 다녀갔는지 탁자 위며 머리맡에 인형과 뜯지도 않은 과자 등 포장 선물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하이!”
아이가 제 엄마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무척 반가워했다.
“많이 좋아진 거 같네.”
“어. 날로 좋아지고 있데. 의사선생님하고 이모가 방금 전에 왔었는데, 이제 무균실 안 있어도 되서 이따 오후에 병실 옮길 거래.”
“잘 됐다. 이모는?”
“밥 먹고 온데.”
“아-”
신유리는 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잠시 할 말이 없어진 것을 빌미로 꿈 얘기를 꺼냈다.
“엄마가 꿈을 꿨는데 철길에 자갈 대신 엄청난 다이아몬드가 깔린 거야.”
“어.”
“우리 그 다이아몬드 가져왔으면 엄청난 떼 부자 됐을 텐데.”
그녀는 아들의 표정을 살폈다.
아들은 아무 대꾸도 없이 뭔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작은 소리로 대꾸했다.
“다이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해”
“다이아 끔찍해 하면 안 돼. 이담에 장가갈 때 신부가 다이아반지 해달라고 할 텐데.”
그녀는 농담처럼 웃으며 얘기했다.
“이상한 말 좀 하지 마.”
“태양아 너 저승……”
“누나 죽었다며?”
아이가 말을 자르며 말했다.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거렸다.
“그게, 그러니까……”
“됐어.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이번에도 말을 잘라버렸다.
신유리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때 간병인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사모님은 이제 괜찮으신가 봐요?”
“네, 전 내일 퇴원해요.”
“태양이 아빠는요”
“남편은 골절이 심해서 아직 많이 있어야 되요. 눈도 더 있어야 되고.”
“태양이는 간호사가 1시 전에 701호 9인실로 옮기라는 대요.”
“그래요?”
“밖에 눈 와요, 사모님.”
“어머!”
“참, 이상한 눈가루 내린 거 아세요? 눈 같은데 물로 된 눈이 아니라, 드라이아이스 같다는데, 그것도 정확한 건 아니고 확실한 성분을 밝히지 못했데요. 하여튼 수수께끼래요.”
신유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마고의 성에 내렸던 그 사람 모양의 재인지 눈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이상한 현상들이 여기서도 실제 일어났다니 신기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태양아 들었지? 여기서도 그 눈이 내렸데.”
태양이는 말없이 눈이 날리고 있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흰 눈이 금세 허공을 하얗게 채우고 있었다. 눈가루는 허공에서 마치 춤을 추듯이 빙빙 돌다가 오르락내리락 거리더니 어디론가 휘리릭 날아갔다.
신유리는 마치 세별이 창가에 와서 춤을 추고 가는 것만 같았다.
“누나는 죽지 않았어.”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대체 무슨 소린가 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거렸다.
“엄마 뱃속에 아기가 생겼데.”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누나인거, 알지?”
“무슨! 동생이지.”
“한 세별, 왔네.”
태양이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배를 만지며 빙그레 웃었다.
날아간 줄 알았던 눈송이가 다시 창 앞으로 날아와 오르락내리락,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또 다시 저 멀리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나뭇가지 위로 내려가 앉았다.
<계속>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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