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무대체질 1)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저는 항상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남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도 쑥스럽고 말 주변도 없어서 오해를 사기도 했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휘하고 강의하는 지금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여유가 생기고 즐겁게 포디엄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 지인들은 저에게 무대체질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나는 무대체질인가? 과거를 돌이켜 볼수록 무대체질과는 거리가 먼 촌놈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대체질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요?
제가 고교 3학년 때 어느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그동안 연습해왔던 것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었는데,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연주를 하고 있는 나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내가 연주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었죠. 하지만 분명히 그랬습니다.
너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나의 뇌 작용과 관계없이 내 몸이 기억하는 대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했고 그 후로부터 약간의 자신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무의식 상태에서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연습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말로만 피나는 노력이 아니라 실제로 피가 났습니다.
트럼펫의 구조에는 Water Key Cup (액체를 빼는 곳)이 있습니다. 연주를 하다보면 생기는 수증기나 침으로 인해 고여 있는 물을 빼는 곳인데 그곳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연습을 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연습을 하다보면 Mouse Peace(입에 대고 부는 깔때기 모양)가 입술에 달라붙어 잘 떼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강제로 떼다가 살점이 딸려 나오면서 피가 나는 것이었죠.
그렇게 많은 시간과 열정을 통해 얻은 결과는 나에게 음악가로서의 삶을 제공해 주었고, 오늘날 지휘자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훈련을 견디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지휘 공부를 하면서도 성실과 인내로 버틸 수 있게 한 요인이었습니다.
이제는 무대에 오를 때 떨리거나 긴장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노력해온 것들이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긴장을 해서 아무 의식이 없다 해도 나의 무의식이 알아서 지휘해 줄 테니까요.
무대체질이라는 것은 결국 얼마나 준비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