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두려움이여.

야야, 니가 언제부터 거위와 가족이 됐나? 짜식 모처럼 친구가 왔으면 대접을 해야지. 거위 한 마리 갖구 패밀리 찾고 야단이람? 그럼 우리 패밀리는 수십만은 된다.
지방 소도시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달구 씨는 옆 동네 전원주택에서 사는 친구 구용서 씨 집에 놀러왔다가 친구가 키우는 거위를 봤다. 거위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한 눈에 봐도 탐스럽게 보였다. 달구 씨는 닭을 키워서인지 닭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가 먹는 것은 유일하게 오리였다. 달구 씨는 세계 3대 미각 중에 하나인 거위 간의 맛을 어떨까 생각하며 친구가 기르는 거위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거위는 유난스레 구용서 씨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한 치의 틈도 주지 않고 오직 구용서 씨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야야, 닌 그 달랑 거위 한 마리 키우면서 뭐 원격 조정이라도 하는 기가? 그놈은 뭐 그리 졸졸 따라 다니나.
친구의 속셈을 눈치 챈 구용서씨는 그릇에 몇 개의 거위 알을 담아 내왔다.
이거 지금 막 삶은 기다. 그동안 아껴두었다 삶은 거니까 먹어봐라.
됐다마, 내가 뭐 알 먹자고 이런 기가?
니, 닭이나 오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뭐로 깨고 나오는 줄 아냐?
얌마, 내가 닭만 키운 게 20년인데 그걸 모르겠나? 난치 아이가, 난치!
난치는 새들이 태곳적부터 파충류에게 물려받아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이빨이다. 파충류들 역시 한 개의 이빨을 가지고 있는데 새들과 마찬가지로 입 안에 있지 않고 코끝에 있다. 그러니까 알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 부리가 아니고 이 난치다. 부리로 깨기에는 알 속의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난치로 알에 압박을 가해 갈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신비함에 놀라워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달구 씨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또 다시 알을 두드려 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 거위를 보았다.
봐라봐라, 그래, 기러기라니까? 니 이거 솔직히 어디서 났는지 말해라, 이거 불법 포획하면 징역 가는 거 알제?
달구 씨의 으름장에도 구용서 씨는 빙그레 웃을 뿐이다.
서울에서 대기업 다니다 명퇴한 구용서 씨는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다. 귀향이니 뭐니 하지만 어릴 적부터 살던 고향이고 해서 오히려 좋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허나 주변의 동네 사람들은 전원주택을 짓는 구용서 씨를 마치 외지인 취급을 했고 그 무엇 하나 동조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친구 달서 씨만이 그의 집을 오갔다.
그가 처음 여기 오게 된 것은 이곳이 고향이기도 했지만 가을이면 철새들이 나타나는 곳이다. 늘 회사와 집 밖에 몰랐던 그는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았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철새들이 나는 것을 보고 어린 시절을 그리워했고 늘 철새처럼 어디론가 가고 싶어 했지만 그의 생활을 그렇지 못했다.
그가 고향 땅에 집을 지으며 강가를 오가던 중 덤불속에서 알을 하나 발견 했다. 어렸을 적엔 알을 주워 구워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왠지 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알을 따듯하게 해주었다.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 알에서 야생 거위 새끼가 나왔던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 거위는 고개 들기를 시도하고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구용서 씨를 마치 엄마인양 따라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달구 씨는 그럼 니가 엄마 맞다. 이놈들은 태어났을 때 자신의 울음에 답하는 이를 엄마로 각인한다카이, 그러니 니가 엄마 맞데이.
거위는 알 속에서 흐물흐물한 액체 상태로 존재하다가 알에서 나온 지 불과 4주 만에 보드라운 솜털로 몸을 치장하고, 울고불고 인사하고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발달 과정을 거치는 8주가 지나면 제법 어른다운 모습을 갖추고 다른 거위들과 함께 센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높이 날게 된다.
사실 구용서 고향으로 온 것은 부모님을 곁에서 보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제는 두 분 다 안 계시지만 살아 계실 때 좀 더 보살펴드리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구용서 씨는 거위와 오리의 다른 점을 알고 있다. 오리는 대부분 날기 시작하면 부모 곁을 떠나 사는 반면 거위는 가족과 똘똘 뭉쳐 살면서 다른 거위 가족들과 맞설 일이 생기면 그 싸움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형제간이거나 친한 사이면 새끼들끼리 서로 무리지어 다니고, 결혼생활도 사람과 비슷하다. 일생동안 부부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지킨다는 것이다. 또 사랑에 빠진 거위가 연인에게 강력하게 구애를 하다가 상대방 또는 자기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는 일이 야생 거위의 사회에서도 있다는 것이다. 또 거위들은 보수적이라 낯선 곳에는 가고 싶어 하지 않으며 늘 점심시간 즈음에 목욕을 한다고 했다.
박달구 씨가 폭탄선언을 했다.
야야, 이 거위 돌려보내라.
구용서 씨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디로 돌려보내란 말이가?
이 거위가 지금은 니를 따르고 있지만 본능으로만 보면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겠나 이 말이다.
구용서 씨는 거위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 이 거위는 내가 덤불속에서 주워온 기라, 그래서 이놈 고향은 여기단 말이다.
거위를 쓰다듬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걸 어디다 보내라 카나, 니 미쳤나?
그리곤 그런 말하려면 오지도 말라고 화를 냈다.
어느덧 더위도 물러가고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면 강가에 철새가 늘어났다. 철새들은 군무에 사진작가들이 모여들었고 관광객도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강가의 철새를 보고 돌아온 구용서 씨는 거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찾아도 거위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박달구 씨 집을 찾아가 거위의 행방을 물었다. 그의 부엌을 보고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뒤졌다.
야야, 니 우정이 요거 밖에 안 되나? 아무려면 내가 니 가족을 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하나? 정말 그러나?
박달구 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자칫 친구 간 한 판 싸움이 벌어질 것도 같았다.
박달구 씨가 애써 화를 누르며 말했다.
니가 거위를 길러봤댔자 얼마나 됐노 고작 1년밖에 더 됐나?
내는 아까도 말했지만 달구만 키운 게 20년이다. 내가 그놈들과 살다보니께 성질이 급하긴 해도 그래도 반듯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데이. 니 이거 아나?
지금 니는 이게 야생 거위라 우기지만 내 눈에는 기러기로 보인다. 니도 그렇겠지만 나도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살았다카이 내가 알기로는 기러기들은…
하면서 동물의 사회학적인 행동심리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흔히 어미 새가 새끼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새끼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다만, 어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과정에서 잘 나는 법과 먹이를 구별해내는 법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기러기는 새끼가 자라 즈음 깃털을 모두 잃는다. 부모 모두 깃털 없는 몸이 되는 것이다. 이때가 날지 못하는 휴지기다. 이 무렵이면 새끼들이 완전히 날 수 있게 되는 시기이지만 이때 새끼 거위들도 털갈이를 시작한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난 자리에 깃털이 나는 것이다. 거위의 털갈이는 상징하는 바가 있다. 철새의 본능인 멀리 날고자 하는 욕구와 맞물려져 있다.
그러니까 박달구 씨 말에 의하면 구용서 씨가 기르던 야생 거위가 본능 따라 어디론가 날아갔다는 말이다. 어쩌면 저 멀리서 찾아온 철새들 틈 속에서 끼어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구용서 씨는 자기만을 따라다니던 녀석이 저 군집하는 철새들 속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염려됐다.
처음 직장 생활을 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한 때 왕따를 당하고 그러면서 버틴 세월이었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친구이건 모임이건 수도 없이 바쁜 생활을 했다. 몰려다니는 겁쟁이 시절이었다. 도대체 그 무엇이 두려웠을까?
이제는 명퇴를 했고 그 군집 속에도 낄 수 없는 몸이 됐다. 깃털을 모두 잃은 채 말이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그가 있는 곳은 고향이 아닌가. 지금은 다만 새로운 깃털이 생성하기를 기다리는 휴지기일 뿐이다. 그는 날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떠는 거위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오라 두려움이여. 난 결코 두렵지 않다. 하고는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글|이시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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