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민화계의 맥 이어 가다

이봉숙

민화는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생활 속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그린 생활 그림을 말한다. 민화에는 자연·인간·신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인정이 넘치고 부드럽고 평화스럽고 따뜻한 그림에는 엄격하고 관념적인 일반 회화에서는 볼 수 없는 애정과 사랑이 넘쳐흐른다. 이러한 가운데 민화 한 분야에서 자신의 열정을 20 여 년간 쏟아온 이가 있다. 한 민족의 삶·신앙·멋을 담고 있는 서민적인 그림이기도 한 민화에 자신의 ‘혼’을 쏟고 있는 이봉숙 작가가 그 장본인이다.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이기도 한 민화는 장식장소와 용도에 따라 종류를 달리하는데 이를 화목(畵目)별로 분류하면,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어해도(魚蟹圖)·작호도(鵲虎圖)·십장생도(十長生圖)·산수도(山水圖)·풍속도(風俗圖)·고사도(故事圖)·문자도(文字圖)·책가도(冊架圖)·무속도(巫俗圖) 등이 있다.

화조영모도는 민화 가운데 종목이 가장 많으며 꽃과 함께 의좋게 노니는 한 쌍의 새를 소재로 한 화조도가 많다. 화조도는 매화·동백·진달래·개나리·오동·솔·버드나무·메꽃·해당화 등과 봉황·원앙·공작·학·제비·참새·까치 등을 물이나 바위와 함께 그렸으며 주로 병풍으로 재구성되어 신혼부부의 신방 또는 안방 장식용으로 쓰였다. 또 작약·월계·모란·옥잠화·수선·들국화·난초에 나비나 메뚜기·꿀벌 등을 그린 초충도(草蟲圖)와 사슴·토끼·말·소·호랑이 등을 산수 속에 표현한 영모도가 있다. 이 소재들은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으며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도 단독으로 그려 혼례식의 대례병(大禮屛)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어해도는 물속에 사는 붕어·메기·잉어·복어·송사리·거북·게·새우·조개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꽃과 해초를 곁들여 그린 경우가 많다. 주로 젊은 부부의 방 장식으로 쓰였으며, 잉어를 아침 해와 함께 그리는 경우 출세를 기원한다든지 경축일의 축하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작호도는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와 그 밑에서 이를 바라보며 웃는 듯이 앉아 있는 호랑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수호신적인 역할을 했던 사신도(四神圖)의 한 변형으로 보이며, 까치의 경우 주작(朱雀)의 변용으로 풀이된다. 작호도는 잡귀의 침범이나 액을 막는 일종의 벽사용(僻邪用)으로 그려졌다고 볼 수 있다. 십장생도는 장수(長壽)의 상징인 거북·소나무·달·해·사슴·학·돌·물·구름·불로초를 한 화면에 배치하여 장식적으로 처리한 그림이다. 세화(歲畵)로 그려지기도 하고, 회갑잔치를 장식하는 수연병(壽筵屛)으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산수도는 금강산이나 관동팔경(關東八景)과 같은 산천을 소재로 그린 실경산수(實景山水)와 중국식(中國式) 산수로 나눌 수 있다. 병풍으로 꾸며져 객실이나 사랑방용으로 많이 쓰였다. 그리고 풍속도는 농사짓고 베짜는 모습을 그린 경직도(耕織圖)와, 태어나서 출세하고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그린 평생도(平生圖), 사냥하는 장면을 그린 수렵도(狩獵圖), 일상생활의 장면이라든가 사철의 풍속을 그린 세시풍속도(歲時風俗圖) 등이 있다.

또 고사도는 고사와 민화(民話), 소설 등의 내용을 간추려 표현한 그림으로, 교화용(敎化用)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이야기를 담은 열락도(悅樂圖)를 비롯하여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상산사호도(商山四皓圖), 그리고 삼국지(三國志)·구운몽(九雲夢)·토끼와 거북 이야기 그림 등이 있다. 한편 문자도는 글자의 의미와 관계가 있는 고사 등의 내용을 자획(字畵) 속에 그려넣어 서체(書體)를 구성하는 그림으로, 수(壽) 또는 복(福)자를 도식화한 수복도와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儀)·염(廉)·치(恥)를 도식화한 효제도(孝悌圖)는 교화용으로 제작되어 주로 어린이방을 장식하였으며, 이러한 문자도는 혁필화(革筆畵)라고 하는 서체 위주의 비백도(飛白圖)로 변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수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장식용 민화도 변했다. 장식용 민화는 현재 전하는 민화 중에서 집 안팎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장식적인 작품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비록 화법·기교·독창성 등에서는 일반 회화에 뒤떨어진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무속·도교·불교·유교의 사상들이 강하게 스며 있다. 산수화의 경우 8폭병풍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일반 회화의 산수화와 달리 민화에서는 대개 채색을 많이 사용하고 얽매임 없는 자유로운 필법으로 정감을 담아내고 있다. 산수화 중에서도 화제(畵題)로 많이 사용된 것은 금강산도(金剛山圖)·관동팔경도(關東八景圖)·관서팔경도(關西八景圖)·고산구곡도(高山九曲圖)·화양구곡도(華陽九曲圖)·제주도(濟州圖) 등이다. 아울러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을 한국화한 익살스러운 작품도 남아 있다. 화훼·영모(翎毛)·초충·어해(魚蟹)·사군자 계통 민화는 병풍·벽·벽장·다락에 붙이기 위한 그림들은 화조화(花鳥畵)가 대부분이며, 다른 어떠한 종류보다도 그 수효가 많았다. 이 그림들은 가문의 번창, 가정의 화합, 부부의 행복을 음양오행의 철학적 바탕에서 꽃·물고기·날짐승·들짐승·바위·하늘·산·강 등을 여러 구도와 형상으로 그린 그림들이다. 화사한 꽃, 무성한 나무, 싱그러운 풀잎 사이에서 쌍쌍이 어울려 많은 새끼를 거느리고 있는 동물 그림은 부부가 이러한 짐승처럼 떨어지지 않고 사랑하며, 닭이 많은 병아리를 거느리고 석류에 많은 알이 달리듯 대대로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붙였다고 이봉숙 작가는 말한다. 또 풍속화·초상화·기록화는 예로부터 우리 미술의 중요한 소재였다. 고구려 벽화의 수렵도(狩獵圖), 공민왕의 <천산대렵도 天山大獵圖>, 많은 어린이들이 노는 백자도(百子圖)로부터 농민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그린 경직도, 여러 종류의 춘화(春畵)에 이르기까지 민화적인 풍속도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풍속화 중에서도 특히 평생도와 시회(詩會)·기로(耆老)·계회(契會)·연악(宴樂) 장면을 그린 그림과 궁중 관아, 가족의 주요 행사 등을 그린 기록화, 충무공의 해전도(海戰圖), 임진왜란의 전투도는 감계를 위한 그림에 속한다. 풍속·인물과 함께 고대 설화·민담·문학에 나오는 장면을 담은 춘향전도(春香傳圖)·구운몽도(九雲夢圖)·별주부전도·삼국지도 등과 유명한 시 구절을 그림으로 나타낸 그림 등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 잊을 수 없는 생활 풍경, 아름다운 꿈과 소망을 그린 것이다.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이 작가는 말했다.

이 작가는 한국 민화에는 순수함·소박함·단순함·솔직함·직접성·무명성·대중성·동일 주제의 반복과 실용성·비창조성·생활 습속과의 연계성 등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민화의 우리의 전통 ‘멋’이다.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를 계승 발전하는 것은 물론 처음처럼 늘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겠다.” 고 말하고 인터뷰를 마치면서 “여건이 마련되면 속리산 현재 공방주변에 아담하게 전시관을 건립해서 민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 체험장을 만들어 개방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 전통 민화계의 ‘맥’을 이어 가는 이봉숙 작가의 작은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 / 최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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