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는 우리민족의 아픔이 시린 식민사관의 용어

한국 사회는 여러 가지로 지금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념의 갈등, 진영의 갈등, 남녀 간 갈등, 빈부의 갈등, 또 종교 간 갈등 여러 가지 총체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데 그 중에 우리가 하나 지금 생각할 게 뭐냐 하면 바로 역사관의 갈등입니다.
이 역사관의 갈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족 사학과 식민사학 이 두 말로 우리가 요약을 할 수가 있겠는데요.
안호상 박사님은 우리 한국 사회를 설명할 때 특히 역사의 관점에서 설명할 때에 우리나라는 ‘중독에 걸려 있다’, 또 ‘왜독에 걸려 있다’. ‘양독에 걸려 있다’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어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혼란한 모습을 압축해서 표현한 말인데요.
중독하면 중국의 사대주의에 중독돼 있는 거, 왜독은 일본의 식민사관 네 중독돼 있는 거, 양독은 서양의 실증사관에 중독돼 있는 거 이런 표현을 해서 중독, 왜독, 양독이라고 했는데요.
아무튼 우리가 해방 된 후 80년이 다 돼가지만 이런 문제가 아직 해결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우리 역사관의 갈등 중에서 가장 예민한 게 한일 간의 역사관 갈등입니다.
이 한일 간의 역사관은 결국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서 우리 역사가 파괴됐다는 것이죠.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한론입니다.
이 정한은 조선을 공략한다는 얘기인데요. 이 핵심 이론이 바로 임나일본부설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조선의 침략을 뭐라고 설명했느냐 침략이 아니라 그것은 역사의 복원이다 이렇게 설명을 한 거죠.
그것은 말이 안 되죠. 침략은 우리 입장에서는 피해를 당하는 것인데 일본 일제가 가해자의 입장에서 우리 한국사를 설명할 때 이것은 조선은 자기들이 일제 침략은 조선을 침략한 게 아니라 역사 복원이라고 하죠. 이 얘기는 바로 임나일본부설인데 과거 삼국시대에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기 때문에 다시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이런 논리로 정한론을 내놓은 것이죠.
우리에겐 고조선이 중요합니다.
고조선이 왜 중요하냐 고조선이 우리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고조선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고조선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식 그러니까 요즘 말하는 민족의식이라고 할 때 그 민족의식의 귀속처가 바로 고조선이라는 얘기죠. 고조선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민족의 정체성도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민족의식의 귀속처로써 우리가 말할 수가 있는 것이죠.
결국 고조선을 말함으로써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한뿌리로써의 동일성 그 고조선이 바로 그러한 역사적 위치에 있다고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현재 고조선이라는 명칭도 우리 역사 용어지만은 매우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조선은 원래 단군조선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일부 학자들은 단군 조선의 존재를 부인하고 기자조선을 고조선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중국의 이주민과 토착 세력이 연합하여 어떤 나라를 세웠을 것으로 가정하고 그것을 고조선이라고 부르고 있죠.
그러니까 우리가 고조선 하면 바로 이 단군조선을 생각을 해야 되는데 고조선은 바로 이 단군조선을 설명한 말인데요. 지금 고조선 하면 우리 역사 일부에서는 기자조선이라든가 위만조선이라든가 이렇게 혼동돼 쓰고 있다는 점이지요.
기자조선을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그런 예가 많아진 거죠. 이것은 역사의 혼돈이죠. 앞으로는 우리가 고조선 하면 결국 단군조선입니다. 단군왕검이 세운 조선만이 고조선인데 우리가 이해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단군조선의 존재를 인정하는 학자들까지도 단군조선과 위만조선 한사군을 합해 고조선이라고 부르고 그러니까 기자조선을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또 단군조선과 위만조선과 한사군을 합해서 고조선이라고 또 부르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죠.
이러한 용어는 바른 용어가 아닙니다. 이러한 고조선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우리가 이번 기회를 통해서 바로잡아야 되겠다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소 고조선론(小古朝鮮論)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조선사가 어떻게 지금 왜곡돼 있느냐 이 말은 소 고조선입니다.
그러니까 고조선을 작은 나라로 보느냐 반대로 큰 나라로 보느냐 이것이 중요한 관점이 되겠습니다.
우리 고조선을 작은 나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892년 하야시 다이스케가 <조선사>에서 조선은 조그마한 나라라고 규정을 했어요. 이 규정 이후에 우리 조선사는 큰 나라가 아니라는 관념이 형성돼 있었죠.
이것도 중요한 역사 왜곡이죠. 뭐라고 했냐면 조선은 조그마한 나라로써 동양의 목구멍에 위치하고 있어 강대국들이 다 다툼을 벌이는 요충지다. 위치는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을 경계로 하며 그러니까 압록강을 넘어가지 못하는 그렇게 작은 한반도에 갇혀 있는 작은 나라다. 이렇게 비판을 한 겁니다. 그래서 한반도 즉 반도 국가라는 그런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조선 총독부에서 이런 논리를 개발한 것이죠.
또 이어서 1934년 이마니시 류가 <조선사 개설>에서 조선은 반도의 소국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렸습니다.
오늘날 조선인의 선조는 이미 한반도에 정주하고서 부락으로 구성된 소국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소국론이 나오게 되죠. 조선인이 한반도의 원주민인지 혹은 이주민인지 알 수 없다. 조선에서도 남조선의 석기 시대의 유물이 어느 민족의 손으로 이루어졌는지도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서 심지어 남쪽 남한 남쪽 지방의 석기 시대 유물이 어느 민족이 만든 역사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부정론적인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 얘기는 뭐냐 하면 한반도 중에서도 평양 중심으로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지금 이렇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겁니다.
해방 후에도 우리 역사를 보는 이런 관점들이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해방 전 대한 암흑기 때는 이렇게 식민사관에 의해서 우리 역사가 작은 나라다.
한반도의 국한된 반도 국가다 이렇게 왜곡이 됐는데 해방 후에 우리 역사가 바로잡히지 못한 거죠. 해방 후에 와서는 소위 말해서 이병도의 국사대관 그 다음에 이기백의 한국사 신론 이런 책들이 나오면서 우리 역사가 다시 또 바로잡지 못하고 식민사관이 그대로 계승돼버렸지요.
그러니까 이병도의 ‘국사대관’에는 고조선의 중심지는 서북 해안지대인 대동강 유역 즉 평양으로서 여기를 중심으로 평양 중심도로로 고조선이 발전했다고 이렇게 아주 작은 나라로 서술이 된 거죠. 심지어 이기백의 ‘한국사 신론’ 같은 책에는 고조선을 대제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라는 한국인 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이런 말들까지 심지어 했던 것이죠.
그래서 해방 이후에도 이 역사가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반면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우리 역사의 원형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하셨죠.
예를 들어서 신채호 선생 같은 경우는 1920년대에 집필한 <조선상고사>에서 우리 역사가 웅운하다. 아주 웅장하고 드넓다. 그래서 상고사의 역사 무대는 어디냐? 요서 지역과 흑룡강성, 산동지역에까지 이른다는 대고조선론이다.
그래서 신채호 선생 같은 분은 그런 대한암흑기 때 제기했던 조선총독부가 제시했던 소고조선론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원형은 바로 대고조선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바로잡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역사의 원형을 회복하자 즉 소고조선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고조선 결국 대고조선의 역사가 다시 부활하기 시작을 하는데요.
일단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의 강역을 어떻게 설명했냐면 만주(흑룡강) 또 요서 서부에 있는 난하 유역, 갈석산, 산해관, 한반도 전역이죠.
그 다음에 한반도 전역일 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요서 또 만주(흑룡강)까지 광활한 고조선 역사의 강역 또는 문화 강역의 지도를 완성했죠. 그러면서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을 그 통치 영역으로 하고 있었던 국가였고 고조선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부여, 고구려, 읍루, 동옥조, 동예, 최씨 낙랑국, 한 등은 모두가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던 세력들이 독립하여 세운 나라들이었기 때문이다.
대고조선론에 대해서 또 이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윤내현 교수는 이 대 고조선 왜 이 고조선이 중요하냐 바로 문화 공동체를 이루었고 이 대고조선을 중심으로 문화 공동체가 이루어졌고 또 우리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민족의식의 귀위처가 바로 이 대 고조선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고조선의 영토는 만주(흑룡강), 서부의 난하 유역, 갈석산이 있고 거기까지가 고조선의 경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 말씀이 이제 가장 우리 고조선 역사에서 고조선의 강역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서쪽 지방입니다.
서쪽의 국경선이 어디냐 이것이 논쟁이 되는데 특히 이제 이분은 이제 난하 유역 그러니까 갈석산 산해관이 있는 그 일대를 이제 난하 유역까지 이제 본 것이죠.
그렇게 보면 만주와 한반도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고조선의 백성으로서 같은 정치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는 얘기죠.
문화 공동체를 이루며 살면서 하나의 똑같은 귀속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른 의미로서의 우리 고조선사입니다.
과연 소고주선론과 대고조선론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 우선 소고조선은 예를 들어서 이병도 박사가 얘기한 이 고조선이라는 것은 어디를 중심으로 얘기했냐면 바로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얘기했어요. 물론 한반도를 중심으로 얘기를 했지만 그 중에도 중심 지역은 평양 일대라고 하죠.
그는 평양 일대만 설명을 했고 고조선이라는 지도를 그리지 않고 그냥 위만조선이 고조선인 것처럼 설명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말하는 평양과 대동강 일대가 바로 고조선의 중심지고 바로 이것이 소고조선론의 핵심 이론이 되는 것이죠.
이 소고조선론이 잘못된 것을 우리가 지적을 하고 그럼 우리 역사는 예를 들면 대고조선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대고조선론에서 말한 우리 역사의 강역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요동, 요서와 또 북쪽으로는 흑룡강까지 포괄하는 것이 고조선 시대의 우리 역사였다. 우리 역사 강역이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단군신화가 아니라 단군 사화
단군 신화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단군 신화라는 말은 우리 일반인들의 귀에 너무나 익숙돼 있는 용어입니다. 사실 이 용어에는 우리 민족 역사를 이해할 때 너무 아픈 상처가 배어 있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이 단군 신화라는 용어가 왜 잘못됐는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기 이미 10여 년 전부터 우리 역사를 연구했습니다. 우리들보다 더 열심히 우리 역사를 연구한 목적은 우리 역사를 조작하기 위해서였죠. 왜 조작을 해야 됩니까? 조선이 일본보다 못생겼다. 일본 역사가 더 위대하다. 조선의 역사보다 일본 역사가 더 위대하다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 였죠.
우리 조선의 역사를 축소하게 되고 또 우리 조선의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조작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 가장 일본이 염두에 두고 한 게 뭐냐 바로 단군 역사를 말살하는 겁니다.
이들은 단군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서 1894년부터 이 역사 왜곡 작업을 시작했고요.이것이 사실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여러 편의 논문이 있는데 그중에 시라토리 구라키치라고 하는 이가 단군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의미하는 ‘단군 고(檀君 考)’라는 논문을 1894년에 이미 이러한 논문이 완성을 했습니다.
논문의 핵심은 한마디로 단군은 신화다. 이때 말하는 신화는 우리가 역사에서 말하는 그런 의미로써의 신화가 아니라 이때의 신화라는 말은 가짜다 허구다라는 것을 전제를 깔아 놓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건 이 말이 좋은 의미의 그런 신화가 아닌 것이죠.
단군의 전설이 더욱 더 불교를 통한 조작이라 보이는 이상, 이 전설이 만들어진 연대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단군의 역사를 불교에 연계시키고 특히 불교의 전설과 연대해서 단군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환인, 환웅, 단군, 한국, 신시 배달, 고조선 이러한 역사들이 조작돼서 나온 것이지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을 설명할 때 뭘 동원했느냐 바로 불교의 전설, 불교의 이야기를 동원을 해서 우리 고조선사를 신화로 왜곡을 하게 되는 것이죠.
불교가 조선에 들어온 시기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서기 372년 그래서 우리 고조선사가 오늘날과 같이 그 당시에 봤을 때 왜곡된 것은 소수림왕 때 고구려의 불교가 들어오면서 그 불교 이야기를 가지고 거짓으로 꾸며내서 오늘날 단군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죠.
그래서 그 단군 신화라고 그래서 그 역사는 바로 신화인데 그 신화는 뭐냐 불교에 근거한 꾸며진 거짓 역사라는 의미로써 단군 신화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죠.
그래서 결국 신화는 허구다.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단군의 사적은 단군의 역사, 이 사적은 불교에 근거한 가공이다. 삼국유사에는 괴상하고 허망한 기사들이 있다.
그러니까 삼국유사에 처음에 석유 환국, 석유 환인 이런 얘기가 나오면서 우리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데 일본 학자들의 얘기는 뭡니까? 삼국유사 처음에 나오는 그러한 얘기들은 다 괴상하고 허망한 거짓된 역사다. 또 그것은 단군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불교에 근거를 둔 가짜 이야기다. 심지어 부루 단군 모두 가공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므로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일본 학자들 자기네들이 논문을 써서 그렇게 우리 역사를 왜곡을 한 것이죠.
시라토리에 이어서 이제 이마니시 류가 1929년에 또 <단군 고>라는 논문을 또 썼어요.
이 이마니시 류는 단군의 사적을 기록한 위서가 역사 문헌에 등장하지 않으므로 그 기록을 믿을 수 없다.
이 위서가 역사 문헌에 등장하지 않으면 오늘날 역사 문헌에 찾을 수 없는 문헌이기 때문에 이 기록은 믿을 수 없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고 또 환웅이 내려왔다는 삼위태백이 삼국유사에 적혀 있는데 그 나오는 삼위태백이라는 것은 지명도 도쿄에 나오는 별자리 이름에 지나지 않으며 믿을 수가 없다.
풍백우사를 삼국유사에 처음에 나오죠.
이런 풍백우사라는 이런 직책들도 다 도교에 관계되는 사직신이지 실제 역사가 아니다.
이렇게 우리 역사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거짓 역사로 꾸미기 시작한 거죠.
그것이 그런 의미로써 우리 역사는 신화로 이제 치부된 것이고 이때의 신화는 예를 들어서 그리스 로마 신화다. 이런 신화의 개념이 아니라 거짓 이야기다라는 의미로서 이제 단군 신화를 많이 쓰였기 때문에 이 단군 신화라는 말은 사실은 우리 민족에게 역사적으로 상처를 준 용어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우리가 쓸 수가 없는 말이죠. 아무리 좋은 의미로 우리가 학문적으로 학술적으로 신화를 재해석을 한다 하더라도 이 단군 신화라는 말은 이미 이렇게 상처를 입은 용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쓸 수 없는 말이죠.
유명한 우리 삼국유사 고조선 쪽에 나와 있는 문헌이죠.
위서라는 말이 나오고 석유 환인, 석유 환국 이렇게 해서 우리의 한웅이 이렇게 해서 설명이 나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유사에서 처음에 나오는 단군고기 우리 역사인데도 불구하고 일제는 단군 역사를 단군신화로 날려버린 것이죠. 자기들보다 더 오랜 단군의 역사를 제거해야 자기들의 식민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유리했던 거죠. 가장 장애 요인이 되는 것이 단군 역사이기 때문에 단군 역사를 말살하는 이런 일을 했던 것이죠.
이렇게 단군 말살, 단군 역사를 말살하고 단군을 죽이는 이러한 역사 왜곡은 사실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어요.
최근에 나온 책 가운데 <단군, 만들어진 신화>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가 쓴 책인데 만들어진 신화라는 말은 앞에서 처음에 얘기했던 그 신화똘이가 했던 그 말 용어 그대로거든요.
교원대 교수를 지낸 송모 교수가 2002년도에 이 책을 썼는데 뭐라고 했냐면.
식민사학자들이 말하는 단군신화 날조 주장은 성립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니까 식민사학자들이 말하는 단군 신화 날조 주장은 성립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이 됐다고 말해 단군사화를 날조를 주장하는 식민사학자들을 비난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내용에 들어가니까 단군 신화를 날조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그 얘기들을 잘못했다고 말을 하면서도 내용에서는 결국 단군 신화는 만들어진 신화다 이렇게 나오고 있고요. 또 단군 신화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주몽 신화도 신화다.
그러니까 고구려의 주몽 신화도 만들어진 신화, 가짜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일제와 조선을 침략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단군 말살 이론이 오늘날 우리 학계에 그대로 전승돼서 아직도 그 이론이 살아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고구려의 주몽도 신화 이야기, 신화라는 얘기는 가짜 얘기 그럼 가짜라고 하면 광개토대왕 비문도 가짜인가요? 근데 우리 일부 우리 역사학자들은 광개토대왕 비문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지금 그러한 상식 이하의 일들이 지금 우리 학계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군사화를 신화로 보면 안 되기 때문에 이제 우리 역사 단체에서 2018년 9월 13일 단군 신화 종언을 선언하고 이제 더 이상 단군 신화라는 말을 쓰지 말자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단군 사화’ ‘단군 고기’ ‘단군 역사’ 이렇게 우리 역사를 역사로 봐야 되지 신화라고 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제 신화라는 용어를 쓰지 않기로 이렇게 학자들이 선언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 신화설은 아직도 우리 학계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제가 남겨놓은 여러 가지 유산이 있는데 아직도 해명 해결이 되지 않고 그대로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이제 단군 신화설인데 앞에 말씀드렸던 소고조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또 이 단군 신화설을 또 주장을 해요.
고조선은 작다 작으니까 단군도 신화다 이렇게 그 사람들의 주장은 일맥상통하죠.
그래서 소 고조선을 말하고 또 단군 신화설을 말하는 것이죠.
그러면 지금 현재 어떻게 이 단군 신화설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고 있느냐 그 예문을 보겠습니다.
지금 현재 <전라도 천년사>라는 책이 지금 집필되고 있습니다.
전라도에 그러니까 전라도 천년사란 뭐냐 하면 전라도라는 지명이 지금부터 천년 전에 고려시대 때 이 지명이 만들어지고 그 뒤로 지금 천년의 세월이 지났으니까 전라도 역사를 한번 서술을 해보자 해서 전라도 천년사라는 거대한 책을 지금 만들고 있는데요.
만들기 위해서 광주광역시 그다음에 전라남도, 전라북도가 3개 광역단체에서 참여해가지고 이 책을 만들고 있는데요.
뭐라고 했는지 볼까요? 전라도 이 책 전라도 천년사 3권에 나와 있습니다.
단군조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군 신화는 고조선이 고대 국가의 지배 체제를 형성하고 난 이후에 지배층에서 만들어진 신화이지 실제한 역사가 아니다.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사서에 기록된 단군 신화는 사실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사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건 신화고 거짓이고, 가짜이기 때문에 사실의 역사로 서술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 최근에 지금 2022년 2023년에 나와 있는 전라도 천전사란 이 책 서두에 3권 고대편에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 단군 신화는 그러니까 만들어진 신화이지 실제한 역사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실제 역사로 보면 안 된다. 우리가 지금 해방된 지 지금 80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우리 학계에는 단군을 신화로 보는 이 학설, 대한암흑기 때 일제가 물려준 그 학설 그대로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죠.
그것뿐만 아니라 고조선이 하나의 정치체로 역사 무대에 등장한 시기는 동아시아에서 청동기 문화가 번성하던 BC 8-7세기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BC 2333년은 가짜다.
그건 말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BC 2333년이 아니라 겨우 한 7-800년 정도 되는 그 정도부터 우리 역사가 시작됐기 때문에 그러니까 1500년은 가짜다 이런 얘기죠.
이것이 지금 현재 우리 역사학자들이 하고 있는 얘기예요.
BC 2333년 무진년에 단군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했는데 그건 가짜고 BC 8세기나 7세기에 시작했다. 그러니까 뭡니까? 그 앞에 있는 1500년은 다 잘라낸 거죠.
앞에 있는 역사는 가짜다. 1500년은 그것은 가짜다.
그래서 우리 역사는 한 8세기나 7세기경부터 고조선 역사가 시작됐을 것이다라고 지금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왜 앞에 1500년을 지워야 되느냐 앞에 1500년을 살려놓으면 우리 역사가 일본보다 앞서기 때문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왔는데 와보니까 조선의 역사가 일본보다 앞에 1500년이 더 길다고 하면 더 멀리 있다고 하면 침략자의 입장에서 조선을 지배하기가 쉽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역사와 정신을 빼야 되기 때문에 고지선 앞에 있는 1500년의 역사를 지우기 시작한 것이죠.
그것을 목적으로 일본이 역사 왜곡을 시작한 것이고 조선에 와서 조선을 침략하면서 그 역사관을 조선인들한테 그 역사관을 심어준 것이고 그래서 이제 나온 게 뭡니까?
조선이 크면 안 되니까 조선은 조그마한 나라였다. 소고조선이었다. 이걸 강조한 것이고 더불어서 뭡니까? 1500년 역사를 지워야 되니까 단군은 신화다.
가짜다 그냥 이렇게 불교가 들어오면서 그냥 꾸몄다는 얘기다.
이렇게 이제 역사를 왜곡하면서 이제 우리 역사의 시작은 초라하게 아주 작게 이렇게 축소를 한 것이죠. 이것이 오늘날 단군 신화설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부산에서도 이 역사책을 써요.
부산의 역사를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렇게 역사가 발전해 왔다 이런 역사를 쓰고 있는데 최근에 문제가 된 겁니다.
뭐라고 하냐면 고조선은 부산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이것이 지금 부산시사에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고조선은 우리 부산 역사하고 관계없다. 물론 이것도 이제 시정되고 수정을 돼야 되겠지만 지금 그 부산시사가 아직 책은 아직 완성이 안 됐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 부산 시사에서 왜 우리 고조선 역사를 다루지 않느냐 우리가 항의를 하니까 부산시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답변은 우리 부산하고는 고지서상으로는 관계없어요.
그러니까 당신네들 관여하지 마세요. 우리 부산 역사는 부산 역대로 쓰겠습니다.
이렇게 지금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 각각 우리 국사 교과서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도 있지만 각 지방에서 쓰고 있는 우리 각 역사서도 이렇게 엄청난 문제를 지금 안고 있다 이것을 아셔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국내에서 우리 단군 역사를 이렇게 왜곡하고 축소하고 허구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 역사가 밖에 나가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작년에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청동기 전시전을 가졌어요.
그 청동기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의 청동기 문화 전시회를 갔는데 우리 고조선을 설명하는 연표에 중국 사람이 만든 연표입니다.
고조선을 설명하러 연표에 우리 고조선 역사 개시 연대를 그냥 물음표로 남겨놨어요.
고조선 역사 언제 시작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BC 2333년을 중국이 인정을 하지 않고 있어요.
왜 인정하지 않을까요? 우리 한국 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데 중국학자가 우리 역사를 인정해 주겠습니까? 안 해주는 거죠. 당연히 그러니까 물음표로 남겨놓은 거예요.
이것이 작년에 있었던 중국 국가박물관 청동기 전시회 때 썼던 한국 고대사 연표예요.
거기에는 고구려도 빠졌어요. 발해도 빠졌어요.
그러니까 모든 우리 역사가 밖에서 대접을 받으려면 우리 국내에 우리 학자들이 우리 역사를 철저하게 식민사관 타파하고 과거에 있었던 그 사대주의 타파하고 우리 역사를 바로 써야 제3국도 우리 역사를 인정해 주는데 우리 역사 내부에서 우리 학자들이 우리 교수들이 우리 역사를 고조선을 부정하고 그러는데 중국학자들이 우리 고조선 역사를 인정해 줄 것 같아요.
안 해주죠. 그러니까 물음표를 남겨놓는 거예요.
이건 아주 이건 창피스러운 거거든요. 고구려 역사 빼고 발해 역사 뺀 것도 문제지만 고조선의 개시 연대를 물음표로 남겨놓은 이 역사 이것은 우리한테는 아주 창피한 역사인 거죠.
이것은 결국 뭡니까? 해방 이후 우리가 우리 역사를 바르게 정립하지 못함에 따른 업보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런 거죠. 그러니까 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우리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그때 우리 역사에 대해서 고조선도 이렇게 우리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물음표로 남겨놓고 인정하지 않고 이렇게 있는 상태인데요.
과연 우리 문헌에 보면 단군 또 단군의 아들 부루 태자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단군과 부루에 관한 우리 역사 내용들이 전혀 교과서에 반영이 되지 않고 채택이 되지 않고 있죠.
한 가지 예로 단군 역사 중에서 생각해야 될 것이 뭐냐면 단군의 아들 부루에 관한 얘기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단군 역사도 조명했지만 단군왕검이 초대 단군이시고 두 번째 단군이 이제 부루죠 부루 태자라고라고 두 번째 단군인데 부루의 서행 그러니까 고조선에서 서남쪽으로 갔던 그 얘기를 부루의 서행이라 그러는데 이런 내용 등이 많아요.
주신의 은덕을 잊지 못했다 그래요. 이게 참 이건 아주 중요한 말이죠.
주신은 숙신 또는 조선 우리 조선을 중국 사람들은 조선이라고 쓰지 않고 주신이라고 써 이렇게 조선이라고 썼는데요.
주신지덕 주신의 공덕 뭡니까? 오행 치수 홍수를 다스리는 법을 일러준 거 첫째 두 번째 정전제를 일러준 거, 세 번째 도량형을 일러준 거요 문물을 고조선으로부터 받았다는 거예요. 만약 이것이 어떤 역사적 사실이 없는 근거 없는 거라면 이렇게 중국 사람들이 자존심에 주신의 은덕을 잊지 못한다는 이 말을 하겠어요.
아마 제가 봤을 때는 이 말도 최소한으로 기록한 것이 주신지 덕이라고 했을 거예요. 이 주신 은덕을 잊지 못하겠다 이렇듯이 그 시대에 그 시대에 고조선의 동북아에서의 고조선의 위치는 요순우를 넘어서는 그러한 위치에 있었고 바로 그러한 일을 행한 분이 바로 부루 태자였다. 이것은 신채호 선생님이 조선상고사에서 이렇게 밝혀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지금 우리는 단군이 신화냐 아니냐 이러한 쓸데없는 논쟁에 빠져 있는데 이 논쟁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고 뭘 해야 됩니까? 실제 역사를 연구에 들어가야 돼요.
단군의 역사는 뭐냐? 우리 고조선은 어떻게 역사가 발전해 왔느냐. 어디까지 강역을 미쳤느냐 어떻게 다스렸느냐 이런 내용들을 우리가 연구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고조선이 소국이냐 대국이냐 소고조선이냐 대고조선이냐 단군이 신화냐 가짜냐 진짜냐 이거 가지고 논쟁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은 뭐냐 단군은 허구의 신화가 아니다. 이 근거를 한번 제시를 해보겠습니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단군은 조선 지역에 웅거하여 왕이 되었는데 옛 시라(신라), 고례(고구려), 남북 옥저, 동북부여, 예와 맥은 모두 단군의 계승자(후손)였다. 이런 기록이 있어요. 이런 기록이 있기 때문에 이미 고려시대에 나온 제왕운기인데 단군은 더 이상 우리가 신화로 보고 가짜로 보고, 허구로 볼 수가 없다는 얘기죠.
또 하나 이제 구체적인 게 뭐냐 하면 고조선에는 8조 금법이 있었다고 그랬어요.
8조 금법이 있었다는 얘기는 국가를 형성했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이것은 허구의 나라가 될 수가 없는 것이죠.
예를 들면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또 사람을 상해하는 자는 곡물로서 배상을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되 자숙하려는 자는 돈 50만 전을 내야 된다.
이러한 것은 경제 체제, 사회 또 법률이 있었다는 점인데 이 모든 것들은 고조선이이 정상적인 국가로서 기능했다는 것을 얘기하기 때문에 우리가 고조선 역사 단궁역사를 그냥 가볍게 신화로 폄하해서는 안 되고 진실한 단군 역사를 우리가 다시 연구해야 된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단군 신화설은 더 이상 우리 역사로서 받아들일 수가 없고 고조선의 역사를 참된 역사로서 우리가 다시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이찬구 박사-고조선 역사 왜곡의 실체와 비판 강의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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