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파트를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 눈이 오려는지 아니면 바람에 쌓여있던 눈이 날아다니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잖아도 그 간의 폭설로 길이 미끄러운 판인데 또 다시 눈이 내리면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를 조롱하듯이 눈 가닥이 하나 둘 늘어나며 허공에서 킬킬거리며 웃어대고 있었다. 방향도 못 잡고 이리저리 흩날리는 꼴이 소리 없이 아무 곳에나 대고 웃음을 날려 보내는 미친년 웃음 같다고나 해야 할까?
“님이 오려나”
생뚱맞게 눈 속에서 갑자기 엄마의 중얼거림이 들여왔다.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엄마는 “님이 오려나”하고 중얼거렸다. 아침부터 창호지 방문 앞에서 까치가 깍깍거려도 “님이 오려나.”했고, 혼자 앉아 화투로 패를 놓다가도 “님이 나왔다. 누가 오려나보다” 하며 배시시 웃음을 흘려냈다. 남편도 없이 혼자서 허덕허덕 살아가던 엄마였기에 나는 엄마의 ‘님’을 늘 ‘좋은 소식’ 정도로 생각했다. “야, 경치도 좋은데 바깥구경도 할 겸 엄마랑 서점에 가자.”
나오면서 애들을 꼬드겨봤지만 애들은 도리머리를 흔들어댔다. 며칠 째 이어지는 눈으로 이젠 내 집의 꼬맹이조차 눈이라면 지긋지긋하단다.
“이 상황에 애들까지 데려가겠다고? 제 정신이야?”
남편이 발목이 푹푹 빠져지는 아파트 주차장을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바람이 한바탕 불며 나무에 얹혀있던 눈 가닥이 후루룩 흩날렸다.
“님이 오려나. 웬 눈이 또…….”
남편이 나를 흘깃 돌아보았다.
정말 님이라도 나타나서 책이나 몽땅 사들고 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겨울 새해벽두부터 책을 내놓고 나니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로 어린애 혼자 덜렁 내보내 놓은 것처럼 불안했다.
“네 팔자니까, 이제 너 혼자 알아서 살아 남거라”
기를 자신도 없이 그렇게 덜퍼덕 아이만 내질러놓은 철부지 산모처럼 팔 자신도 없이 털썩 책을 내놓아버린 자신이 서글프고 한심스러워 기쁨보다는 씁쓸함이 더 컸다. 내 자식 같은 책들도 뿌리 없는 나무처럼 3류 아웃사이더를 어미로 갖고 있다 보니 살아남을 수나 있을지 앞날이 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대로 품고만 있다가는 이젠 그대로 사장 돼 버릴 위기였다.
“옛날에 써놓으신 것들이라 내용도 그렇고, 지금과 맞지 않네요. 곤돌라만 해도 그래요, 이런 거 요즘은 무슨 말인지 몰라요, 다 사다리차를 쓰잖아요.”
그랬다. 등단이라고 해놓고도 책 한번 번번이 내지 못하고 원고만 가지고 있다 보니 놈들은 태어나지도 못하고 디스켓 안에서 늙어버렸다. 자비가 아니면 이 무명 작가에게 누구도 책을 내주지 않겠다는데, 자비라는 것이 만만치도 않았지만. 작가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쉽지도 않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니 자비로 책을 내고 공짜로 여기저기 나누어준다는 비아냥거림은 둘째치고라도, 골 빠지게 잠도 못자고 써봐야 공짜로 받은 책은 누구하나 읽어주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인세는 못 받더라도 자비만큼은 피하려고 기다리다보니 마치 시간을 거슬러 태어난 아기처럼 다 늙은 아이가 태어나 버렸다.
작년 봄에 어떻게 지인을 통해, 출범한지 얼마 안 된 작은 출판사를 소개 받았다. 다행이 책은 내주기로 했지만 미루고 미루어져 제작비를 반씩 부담한다는 조건으로 올 해야 겨우 출간이 되었다. 하지만 나온 꼴을 보니 경비를 최대한 줄인 까닭에 표지 디자인이며 질이 상당히 허접했다. 더욱이 광고 한 줄 내주지 않는 마당에 누가 나를 알아 책을 사 볼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모 유명 작가가 출판사와 협의해 다른 무명작가의 글을 손보아 자기 이름으론 낸 경우가 떠올랐다. 내용이 좋으니 작가만 바꾸면 잘 나갈 것이란 출판사의 안목은 적중했다. 결국 나중엔 원 작가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을 해서 아름이 바뀌었지만 어찌됐건 1년간이나 베스트셀러가 된 다음의 일이었다. 유명 작가가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준 덕에 무명작가의 다음 작품은 그 다음부터 몇 번을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려놓을 수가 있었다.
처음엔 그 사실을 듣고 ‘작가의 양심’ 운운하며 분노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작품이 살아남기나 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라도 그런 제안이 들어왔다면 많이 고민했을 것 같았다.


‘몇 권이라도 나가고 있을까?’
‘창고 비며 운영비는 모두 저자가 부담한다.’라는 계약 문구가 쇠줄처럼 목을 조여와 더 이상 태평하게 앉아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 서점을 좀 돌아보자고 남편을 조른 것이었다.
“작가라 그러나, 이 상황에서 임 타령이나 하고 나 참, 길이 이런데 어딜 가겠다는 건지.”
집에서부터 툴툴거리던 남편의 볼멘소리가 또다시 터져 나왔다.
“큰길은 좀 녹았을 거야, 저렇게 이사 가는 집도 있는데.”
내 말에 남편은 고개를 빼들고 사다리차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이삿날 눈 오면 재수가 좋다는데 이제 저 집 부자 되겠다.”
가장의 갑작스런 실직으로 고향에 내려가게 된 그 집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마음이 안 좋았던지 남편은 이삿짐을 향해 덕담을 날렸다.
“눈 오면 재수 좋아? 그럼 내 책도 잘 나가겠네?”
남편이 뜨악한 눈길로 나를 바라다보았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이 떠올랐다. 예감이 좋지만은 않았다.
팔리지 않으면 책은 일주일이면 진열대에서 쫓겨나 다 들어가 버린다. 잘못하면 어미인 나는 진열된 것도 보지도 못한 채 저세상으로 떠나버렸을 수도 있었다. 만약 아직 살아있다면 어떡하든 그 녀석을 서점에서 살아만 이라도 있게 해야 한다.
정 안 팔리면 우리라도 가서 몇 권을 사와야겠다는 초조감 때문에 남편을 졸랐다.
“당장 가서, 우리라도 각자 두어 한 권씩 사 들고 오면 들어가진 않을 거 아냐”
남편은 이렇게 길도 미끄러운데 굳이 오늘 돌아야 하냐며 심사가 단단히 틀어져버렸다.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심사가 틀리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화를 내기에도 작가로서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 안으로만 삼켰다.
눈은 내리려다 마는가 싶더니 시내로 나섰을 즈음 굵다랗게 바뀌어갔다. 쉰 게 아니라 숨을 고르고 더 크게 내뿜는 것 같았다. 이러다 도로 돌아와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다면’
우리는 서울로 나가기 전에 우선 집에서 멀지 않는 대형 서점을 들렀다.
유명 작가들의 베스트셀러들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소곶이 앉아 있을 내 책을 만날 생각하니 약간의 설렘이 일었다.
하지만 들어가서 쌓여있는 책을 보는 순가 감동은 싸늘한 바깥 날씨만큼이나 식어버렸고 머릿속은 거리에 엉켜버린 자동차들처럼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나는 출판사에서 메일로 보내준 배분표를 꺼내 ‘하늘서점’의 배분 권수를 확인했다. 책은 납품 된지가 며칠이 지났건만 배분된 책들 중 하나도 줄어든 게 없이 제 높이 그대로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게다가 그 꼴은 또 뭐람.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과 질 높은 양장표지로 한껏 단장하고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나의 책은 촌티 나는 시골 소녀처럼 촌스러운 꽃무늬의 싸구려 표지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천박한 웃음만 날리고 있었다.
처음 책을 받는 순간 “아!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막상 서점에 들어가 다른 책들 속에 끼어있는 것을 보니 뚜렷이 비교가 되어 더 속이 상했다. 값이 더 싼 것도 아닌데, 내가 독자라고 해도 같은 돈 주고 저것을 살까 싶었다.
나는 남편 보기 창피해져 말없이 서둘러 서점을 나왔다. 그리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거기인들 더하면 더했지 별다를 게 있겠나 싶었지만 우리는 누구도 차마 ‘가지 말자, 더 갈 필요도 없겠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주변의 아는 사람만 사줬어도. 동네 친한 사람만 해도 몇 명이고, 교인들만 해도 몇이며, 애들 학부모만 해도 몇인데 하고 생각하니 여간 화가 나고 서운한 게 아니었다. 애들이 임원을 해서 종종 커피며 밥도 사고했었다. 모임 중에 누가 식당을 내면 찾아가 맛이야 있든 없든 밥 한 끼라도 꼭 팔아주었고, 커피숍을 냈다고 하면 멀어도 일부러 찾아가 뭐든 마시고 왔으며, 가게를 내면 꼭 필요치 않아도 한 개쯤 팔아주었다. 그런데 그만큼 부탁했건만 비싸지도 않은 책 한 권 팔아주는 게 그렇게 힘드나 싶었다.
“한 권 싸인 해서 선물해. 읽어 볼게”
책을 냈다고 하면 지인들조차 그랬다.
그나마 선물이라도 하려면 겉모습의 촌스러움 때문에 내 책이라고 내미는 나조차 부끄러웠다.
처음엔 양장본으로 멋지게 내고 싶어 모 작가의 책을 샘플로 출판사에 가지고 갔다.
“돈 많아요? 그렇게 하면 돈 엄청 들어요. 기본이 백만 부 이상 팔리는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 것도 그렇게 만들면 남는 게 없어요. 그래도 그 작가를 섭외할 목적으로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거예요”
‘섭외?’
작가한테도 섭외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기분 나쁘게 들리시겠지만 냉정하게 솔직히 말할게요. 선생님께서 지명도가 있으신 것도 아니고 이런 단편소설 내야 팔리지 않아요. 그걸 빤히 아는데 내주겠습니까? 양장본으로 그림까지 넣어가며 고급스럽게 책을 내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요. 자비로 전액 하시겠다면 그렇게 해드리고요”
“알았어요. 알아서 해 주세요”
그런 결과가 정말 참담했다.
“저 새끼가!, 첩의 자식인가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나는 깜짝 놀라 운전을 하고 있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이어지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어지러웠던 상념들을 걷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꼬리 물기와 끼어들기로 얼기설기 얽힌 차들이 도저히 풀 수 없이 엉켜버린 실처럼 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첩의 자식?’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남편은 법대출신답게 누구든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그 꼴을 참아내지 못했다. 특히 운전에 있어선 더 그랬다. 누가 진입로 코너에 차를 세워놓아 시야를 가리기라도 하면,
“첩의 자식인가? 아무데나 차를 세워놓고 지랄이야?”
하고 첩의 자식을 운운했고, 매너 없이 운전하거나 경적을 울리기라도 하면,
“저런 망할 놈, 제 장모가 첩질 해서 차 사줬나.”
하고 화를 냈다.
‘첩의 자식은 하고 싶어 하겠나?, 그 상처는 오직하겠어,’
하고, 첩의 자식으로 살다가 미쳐버린, 그래서 지금 정신병원에 있다는 초등학교 동창을 떠올렸다.
<계속>


글 | 김기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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