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이치가 곧 사람 사는 도리

집 근처 산에 올라갔습니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벌레 한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슴벌레였습니다. 참 오랜만에 본 것이라 반갑기도 하고, 도회지 한 가운데에서 만나서 그런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제법 큰 놈이어서인지 굼뜬 것을 따라가며 눈요기를 하다 보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감없이 동심을 소환했길레 한참이나 쳐다보면서 녀석의 행태를 지켜보았습니다. 저들도 걷는 걸음마다 희로애락이 작용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이치에 따라 그 행적을 남기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쳐다보는 내가 내 감정에 겨우ㅏ 희로애락이 묻어나는 건지는 모르겠지요. 누가 그들의 생명성을 관리할까요?

한참을 그렇게 지켜보지만 헤아릴 수는 없었고 그냥 세속적인 욕심만 돋았습니다.

여름벌레라고는 하루살이와 모기, 파리 밖에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구경을 시켜주어야겠다는 욕심이 났지요. 꿈도 야무진 혼자만의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보여주고 내일 다시 가져다 놓으면 되겠지’하는 생각에 얼른 잡아서 먹던 과자상자에 담아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걸을 때마다 덜거덕 거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젊은 연예인들을 선망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사슴벌레는 그저 징그럽고 흥미 없는 곤충일 뿐이었나 봅니다.

의기도 양양하게 내가 아이들을 불러 모우고 과자 상자를 풀자 뭔가 대단한 것이 나올 줄 알고 지켜보던 아이들은 불과 몇 분 만에 눈길을 거두어 가버리고 사슴벌레 혼자 두꺼운 과자상자 안에 남겨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상자 안에는 사슴벌레가 없었습니다.

두꺼운 종이 상자에는 손톱만한 구멍이 생겼고 뜯겨진 종이 구멍은 마치 솜처럼 부풀어져 있었습니다.

그 조그만 집게 턱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게 갈고 또 갉아냈을까요.

사슴벌레의 탈출(?)이 제계는 충격이었습니다.

괜한 욕심을 부렸다는 자책과 함께, 그 작은 벌레가 갖고 있는 무한한 생명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였습니다. 제대로 자신의 종족들이 살던 최적의 환경을 찾아 갔는지 마음이 쓰렸습니다.

그 후로 그 사슴벌레를 다시는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사슴벌레에게는 행운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어디서든 자신의 노력으로 뜯어먹을 풀을 뜯어먹으며 스스로 풀잎이나 나무에 집을 짓고 살면 대단한 생명성이 아닐까요?

설령 제가 그 사슴벌레를 다시 산에 가져다 놓았다해도 제대로 고마워했을까요?

그 이후엔 아무리 획기적인 발상을 안겨주는 곤충이라도 절대 손대지 않고 집으로 가져 오지 않았고 다만 자연으로 환치해서 보고 말지요. 너는 곤충, 나는 사람이지만 둘 다 생명을 가진 자신만의 길이 있으니깐요.

글 | 정우제(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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